24화. 사고뭉치들.
“키르!!! 정신 차려 제발!!!”
스키르의 몸을 흔드는 폴라의 손짓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어… 어?”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스키르는 지금 온몸에 루넬론의 붉은 잎을 뒤집어썼다는 것.
그런 그의 몸을 아무런 생각 없이 만져댔으니 그녀 역시도 온몸에 붉은 두드러기와 발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 으으! 아아악!”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에 폴라는 스키르를 깨우는 것은 잊은 채 온몸을 긁기 시작했다.
“아악! 내 눈! 눈!!!”
그녀는 온몸을 긁다 못해 얼굴까지 긁어버리고 말았다. 그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눈은 순식간에 부어올랐으며 급기야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꺄아악!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다급하게 외치는 폴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끄아앙! 살려주세요! 누가 나 좀 살려주세요!!!”
-쾅!
목구멍까지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그때.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도대체…!”
익숙한 목소리. 다름 아닌 루카스였다.
“끄아아앙! 도와주세요!!!”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루카스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넘어진 사다리와 그 앞엔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몰골이 말이 아닌 스키르가 드러 누워있었고, 그 옆엔 눈물 콧물로 범벅된 채 비슷한 몰골로 울부짖는 폴라까지.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큭! 저건…!”
루카스의 눈에 들어온 루넬론의 붉은 잎. 이 사건의 주범이었다.
상황파악을 빠르게 마친 루카스의 눈이 선반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어디 있는 거야 도대체!’
하지만 급한 마음 때문인지 그가 찾는 것은 도통 눈에 띄질 않았다.
“케엑… 케엑…!”
숨이 넘어갈 듯 캑캑거리는 폴라와 그 옆에 누운 스키르. 이대로 가다가는 저 둘을 먼저 저승으로 보내게 생겼다.
“젠장 할!!! 도대체 어딨는 거야!”
루카스는 다급한 마음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저들을 죽게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해독제를 찾겠다고 이곳을 모두 뒤집어엎기라도 한다면 더 큰 일이 벌어질 것이었다.
“찾았다!”
선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병을 결국 찾아낸 루카스가 마법으로 빠르게 병을 가져왔다.
-달칵! 쨍그랑!
어찌나 급한지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내동댕이친 루카스는, 손에 보호 마법을 둘러 병에 든 내용물을 꺼내 들었다.
손에 든 내용물을 재빨리 아이들의 입에 욱여넣는 루카스.
“제발…!”
그의 간절한 바람이 입에서 터져 나오고.
“흐어억! 케엑!”
멈춰있던 스키르의 숨이 터져 나왔다.
“컥! 흐억!”
뒤따라 숨이 넘어갈 듯 쌕쌕거리던 폴라의 숨통 역시도 빠르게 트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루카스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루넬론의 푸른 잎이었다.
루넬론의 붉은 잎에 중독되었을 땐 푸른 잎이 해독작용을 했다. 반대로 푸른 잎에 중독되었을 땐 붉은 잎이 해독작용을 했고.
그가 이 사실을 몰랐더라면 지금쯤 그들은 명계의 천사들과 만나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젠장!”
하지만 이것은 응급처치에 불과했다. 붉은 잎을 온몸에 뒤집어썼으니 푸른 잎을 비롯한 다른 약재들로 약을 만들어 제대로 처치해야 했다.
“케엑…. 흐에엑… 헤엑….”
아이들이 숨을 쉬는 것을 보자 루카스는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지 상황을 해결할 만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 아만!”
이 상황을 도울 사람. 아니, 드래곤은 하나뿐이었다.
-파앗!
빠르게 그의 방으로 텔레포트한 루카스는 그를 찾았다.
“아만!”
아만은 부재중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방을 벗어나는 대신 초조하게 걸음을 옮기기만 할 뿐이었다.
-팟!
“루카스님!?”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만은 사무실에 걸어둔 알람 마법이 느껴지자마자 수업 도중에 방으로 텔레포트했다.
“빨리!”
다급하게 아만의 손을 붙잡은 루카스가 텔레포트 하자 재료 창고가 나타났다.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폴라 양! 스키르 군!”
아만 역시도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들을 보자마자 놀라 소리쳤다.
“이게 도대체! 어휴!”
루넬론의 붉은 잎을 발견한 아만은 한심하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사아아
아만의 손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와 아이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케엑… 헤에… 하아… 하아….”
넘어갈 듯 꺽꺽거리던 아이들의 숨이 점차 진정되기 시작했다.
“수업중 아니셨… 아니었니?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얼른 가봐.”
아만은 자연스럽게 나오던 존댓말을 조심스레 잘라 넣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돌아서려던 루카스가 다시 한번 아이들의 안색을 살폈다.
‘가도 괜찮겠지.’
그러자 아만은 제 속이라도 읽은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모두 괜찮다는 듯.
***
“괜찮은 거니?”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마법약 수업을 맡은 하딘 바라드였다.
하딘은 마법약 수업과 함께 학생들의 보건 역시 담당하고 있었다.
“저는… 어떻게….”
그가 누워있는 곳은 뻔하게도 아카데미에 위치한 보건실이었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거죠?”
스키르는 누워있어 숙일 수도 없는 고개가 절로 숙어지는 기분이었다.
“아주 위험한 행동을 했더군요. 스키르 군.”
“그… 그게….”
“아니, 됐습니다. 어떠한 변명도 듣고 싶지 않아요.”
한 손을 들어 스키르의 말을 막은 하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당시에 아만 교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더라면... 학생은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행동을 남들까지 알게 됐다니…. 스키르는 지금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죄송합니다.”
“됐습니다. 몸이 다 낫거든 왜 거기에 있었는지 또 그곳에서 무얼 했는지 모두 설명해야 할 겁니다.”
“네.”
스키르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테스트는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아니었다.
그저 매주 있는 수많은 시험 중 하나였고 평소 작은 시험들을 최종 성적에 반영하기는 하지만, 큰 시험만큼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런데 그깟 테스트가 뭐라고 이 사달을 내다니….
‘내가 뭐가 쓰여도 단단히 씌었었나 보군….’
침대에 누워 눈만 끔뻑이는 스키르는 온갖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키르! 괜찮아?”
불쑥 젖혀진 커튼에서 튀어나온 사람은 폴라였다.
“폴라? 이,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폴라의 등장에 놀란 것도 잠시. 폴라의 얼굴을 본 스키르는 놀라 팔짝 뛰었다.
아직 온몸에 번져 있는 붉은 반점에 여기저기 붙어 있는 약초들까지. 폴라의 모습은 그야말로 중환자였다.
“야! 누가 누굴 걱정해? 나보다 네 꼴이 훨씬 심하거든!”
“그, 그래도…!”
폴라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 붙어 있는 약초 뭉치보다 두어 배는 더 되는 것들이 스키르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거울은 보지 않았지만, 얼굴을 비롯한 다른 부분들도 폴라보다는 훨씬 심각할 것이었다.
“이 멍청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미, 미안하다….”
사과와 함께 스키르의 고개가 푹 숙어졌다.
“이해가 안 돼서 그래!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래?!”
“나, 나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스키르? 저번 마법약 시험에서 F를 받았더구나. 낙제라니? 아들. 네 형은 단 한 번도….’
엄마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도 알고 있었다. 잘난 제 형은 단 한 번도 낙제 따위는 받아본 적 없었다는 것을.
스키르의 형인 스턴 오닐. 그는 지체 높은 오닐 공작가의 장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마법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지금은 마탑에서 일하는 연구원이니 말이다.
집안의 어마어마한 부를 뒤로하고 마탑에서 일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참된 지성인’이라며 입 모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쁜 자식….’
하지만 그의 인성은 사람들이 보는 것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밖에선 지체 높은 공작가의 장남이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정말….
‘내가 너였다면 지금 당장 나가 풀무질이라도 배웠을 거다. 정말 뻔뻔하기 그지없군. 창피한 줄도 모르는 자식 같으니라고!’
마법약 시험 낙제를 받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스턴은 제게 온갖 비난을 해댔었다.
기초반에 들어간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자신을 향한 시선이 더욱 적나라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 때문에 아카데미가 집에서 가까웠음에도 기숙사 생활을 택했던 것이었고.
“너 괜찮아?”
한참이나 달싹이던 스키르의 입이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결국 폴라가 입을 뗐다.
“으응…. 나는 괜찮다… 정말 미안하다… 너를 이런 꼴로 만들다니….”
“야, 나는 됐으니까 네 걱정이나 하라고. 지체 높은 공작가의 영식께서 이런 꼴이어서 되시겠어요?”
“그, 그게 무슨 상관인가!”
괜히 자신을 놀리는듯한 말에 버럭 해보이는 스키르.
“아 왜~ 상관이 왜 없어~ 네가 맨날 그랬잖아? 나눈~ 지췌높으은~”
하지만 작은 버럭은 더욱 큰 놀림거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 그만두게!”
“푸흡! 멍청이. 야, 그것보다 우리 루키 없었으면 진짜 골로 갈 뻔했어. 알아?”
“루… 루키?”
“그래!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카스가 우릴 구해준 거야! 아만 교수님을 모시고 왔다구.”
“…그런가.”
스키르는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린 루카스에게 묘한 감정이 들었다. 분명 네 살이나 어린 것은 맞는데 마치….
“할아버지 같아.”
“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으응? 아, 아니다!”
스키르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 묘한 감정이 이거였어!’
루카스는 외모와 달리 너무나도 어른스러웠다. 아니, 어른스럽다는 말로는 표현되질 않았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바로 ‘할아버지’였다.
루카스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누군가 떠올랐다. 언젠가 만난 적 있는 현자라 불리던 노인이.
“그래서 루카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르겠어. 아직 수업 중일 거야.”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하는데….”
“야, 감사 인사는 당연히 하는 거고! 아… 근데 이거 흉터 남는 건 아니겠지?”
폴라가 제 손에 든 손거울에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상처에는 손톱으로 긁었는지 여기저기 생채기가 가득했다.
“괜찮을 거다.”
“야, 너는 막 생겨 먹어서 어떻게 돼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이런 얼굴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폴라의 말이 맞는 건 아니었지만 틀린 것도 아니었다. 폴라의 말과 달리 스키르는 은백색 머리의 회색 눈동자를 가진 미남이었고, 폴라는 밝은 갈색 머리에 금안에 가까운 밝은 눈동자를 가진 예쁜 얼굴이었다.
“내가 어딜 봐서 막 생겨 먹었다는 말인가! 흥! 그리고 얼굴에 혹시 상처가 남아 혼삿길이라도 막힐까 걱정이라면! 그깟 혼인은 내가 해줄 테니 걱정 말… 으악!”
폴라의 주먹이 머리에 꽂히자 스키르의 눈앞에 번쩍하고 별이 보였다.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야, 내가 너한테 시집을 왜 가!? 어!? 그리고 이게 말이면 다 되는 줄 아나! 내가 평민이니까 뭐 네가 결혼해 준다고 하면 아이고~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먹을 줄이라도 알았나 봐!? 엉?!”
“그, 그게 아니….”
“이런 멍청이 같은 게! 야! 너는 그 주둥이가 문제야 주둥이!!!”
어찌나 벼락같이 화를 내는지 스키르는 변명 한마디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 그게 아닌데….”
이미 커튼을 확 젖히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떠나버리는 폴라의 뒷모습에, 스키르는 아픈 머리만 매만질 뿐이었다.
“도대체 또 무슨 일이야?”
루카스였다. 그는 조금 전 떠난 폴라와 마주쳤는지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물어왔다.
“내… 내가 실수를 한 것 같군…. 그보다 고맙네….”
“하…. 피곤한 인간들이 아닐 수 없군.”
루카스의 입은 짜증을 부렸으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다들 무사한 것 같으니… 이걸로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