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다 글러 처먹었네.
‘씨X 이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데.’
속으로 욕지거릴 뱉는 주인공은 칠흑 같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작은 인간이었다.
그것도 유모의 품에 안겨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물려주는 젖병을 있는 힘껏 빨고 있는 작은 인간.
“아유~ 우리 도련님. 어쩜 이렇게 힘도 좋으실까~”
젖병을 꽉 쥔 작은 손을 매만지는 유모의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게 뭐냐고 도대체.’
며칠이나 흘렀을까. 이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을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하물며 손가락 하나 제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눈앞에 있는 것은 모두 흑백뿐이었으며 그조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배는 어찌나 자주 고픈지 배가 고플 때마다 짜증이 일었다.
그렇다고 한들 제 손으로 배고픔을 해결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짜증 그 자체였다.
‘빌어먹을 천사 새끼들! 일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내 기억을 그대로 남겨둬?’
속으로 미친 듯이 욕을 하며 젖병을 빨아 젖히고 나니 유모가 자신을 일으켜 등을 토닥였다.
“끄어억…….”
저도 모르게 시원하게 내지른 트림에 놀라는 것도 잠시.
“아유~ 우리 도련님 어쩜 이렇게 트림도 잘하실까~”
그러거나 말거나 유모라는 인간은 모든 것을 칭찬했다.
똥을 한 사발 푸짐하게 싸놓아도 ‘어쩜 이렇게 응가도 잘하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은, 제 엉덩이를 이렇게 들고 저렇게 들어 응가를 싹싹 닦아내도 그것을 저지할 방법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작고 나약한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 혀라도 깨물고 콱 죽어버리려 했건만, 이가 없어 그조차도 할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그보다 더한 것은 이 몸은 어쩜 이렇게 본능에 충실한지, 원하지 않아도 배가 고프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만큼 서러웠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엉엉 울진 않았지만, 눈물이 맺히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또 먹고 나면 어찌나 잠이 쏟아지는지. 이건 뭐 자신이 매일같이 먹는 분유에 필시 무슨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배변 또한 제 멋대로였다. 참을 새도 없이 마렵다 싶으면 그냥 저도 모르게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밀어내고 말았다.
그렇게 수치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깨어 있을 때마다 속으로 천사들에게 욕을 퍼붓고, 아는 신들의 이름은 죄다 끄집어내 욕을 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온종일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또 먹었다고 잠이 쏟아지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신이 되기만 하면…. 아니, 이빨만 나… 도….’
언제나와 같이 욕지거릴 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
“다녀오셨어요?”
“응.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라.”
“다행이네요. 혹시나 약이 듣지 않았으면 어쩌나 했는데…….”
커다란 날개를 한번 쭉 폈다 접은 키리타가 안심하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휴, 그 약이 안 들을 리가 없다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조금 전 라노스의 환생을 막 보고 돌아온 키리타가 자리에 풀썩 앉았다.
혹시나 싶어 찾아갔더니 아주 열심히 우유를 먹으며 트림까지 시원하게 하는 것을 막 보고 온 참이었다.
“응. 아마 잘 지낼 거야.”
나름대로 고르고 고른 곳이었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으며 성정이 온화한 부부였다.
비록 쇠퇴한 백작가였지만 아이 하나를 잘 먹여 키울 정도의 자산은 충분히 있을 테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낼 리도 없었다.
어디 왕자나 황자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구태여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못 가진 것 없이 원 없이 가지고 살았던 오천 년이었으니, 조금은 부족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피곤한 것은 딱 싫어하는 성격이었으니, 크게 피곤할 일 없는 그런 집안으로 환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크게 틀렸다.
그저 아기라서 말을 못 한 것뿐인데…….
***
이제 뒤집기쯤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이제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데…! 이 다리는 왜 이렇게 나약한지 도통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머, 어머, 도련님! 이제 곧 걸으시겠어요!”
박수까지 짝짝 쳐가며 눈앞에서 방울을 흔들어 대는 유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 그래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힘이 탁 풀려버리고 말았다.
‘염병. 저놈의 방울은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 재끼네.’
기진맥진해 바닥에 푹 퍼져 있자니 잇몸이 또 간지러웠다.
주변에 있는 장난감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니 유모가 냉큼 달려와 장난감을 뺏어 들었다.
“도련님! 이건 지지예요. 지지!”
‘…내가 이빨만 나면 진짜 콱 혀를 깨물어 죽든지 해야지!’
먼저 나게 될 앞니 두 개로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여자의 몸엔 식은땀이 흥건했다.
이미 축축해진 베갯잇이 그녀의 꿈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이, 이건…….”
불타는 황성과 혼비백산한 사람들.
그 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는 흑발 남자의 손이 빛나자 하늘이 검붉게 물들었고, 곧이어 하늘에선 메테오가 떨어졌다.
아니,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나만 떨어져도 주변은 온통 쑥대밭이 되고도 남을 커다란 운석들이 하늘을 온통 새까맣게 뒤덮자,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발걸음이 뭐에 홀린 듯 일제히 멈춰 섰다.
이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이들은 도망치기를 멈추고 자리에 주저앉아 저마다의 신에게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언젠간 일어날 일. 예언.
왕궁 예언가이자 점술사인 헬로즈 어넷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폐하, 폐하께 가야겠다!!!”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헬로즈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놀란 병사 한 명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아직 날도 밝지 않은 한밤중이었지만 이 시간에 왕에게 간다는 것은 그만큼 긴박한 사안이겠지.
“폐하. 헬로즈 어넷이 급히 찾아뵙길 요청합니다.”
시종장의 부름에 간신히 눈을 뜬 아란트 제국의 황제인 그래드 루클라이어의 얼굴에 잠깐 짜증이 스쳤으나, 이내 그는 표정을 바로잡았다.
“들라 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이트가운을 입은 그래드 황제가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화, 황제 폐하. 예지몽을 꾸었습니다.”
황제의 짜증 섞인 말투도 헬로즈의 떨리는 목소리에 곧 잦아들고 말았다.
“말해보게.”
그 뒤로 헬로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있던 그래드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의문과 놀라움은 점차 잦아들고 그의 눈빛이 곧 차갑게 식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아니, 안 되지. 안될 말이다.”
작게 중얼거린 황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얻어낸 자리인데!!! 마법사의 탑에 사람을 보내 마탑주인 알베르토 님로드를 당장 들라 하라!!!”
***
“그거 들으셨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라일라에, 유모인 아일린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루카스를 안아 들었다.
라노스의 새로운 이름 루카스 로드리고.
쇠퇴한 로드리고 백작가의 귀한 도련님이었다.
그는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문 채 잘근잘근 씹으며 잇몸의 간지러움을 한창 해소하고 있었다.
“황궁에서 대대적으로 마법사를 모집한다나 봐요. 무슨 마법사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를 세우겠다고 했대요.”
“아카데미?”
“네. 그 검술 아카데미처럼 마법 아카데미를 만든다나 뭐라나.”
루카스의 등을 토닥이며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던 아일린이 그의 이마에 쪽 소리 나게 키스했다.
“왜 갑자기 아카데미를 만든대?”
“들리는 소문에는 무슨 예언이 내려왔대요.”
“예언?”
루카스를 요람에 잠시 눕힌 아일린이 젖병을 흔들어 손등에 우유를 두어 방울 떨어트려 온도를 쟀다.
“네. 엄청난 예언이 내려왔나 봐요. 뭐 황궁이 쑥대밭이 되었다나 뭐라나.”
“흥. 그랬으면 좋겠구나. 그 예언이 참이었으면 좋겠어.”
다시 루카스를 안아 든 아일린이 조심스레 루카스의 입에 젖병을 가져갔다.
“맞아요. 우리 백작님께서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셨는지…….”
“그만하거라. 이미 지난 일 아니냐. 게다가 이렇게 예쁜 도련님까지 와주셨으니 이제 모두 잘될 것이다.”
“헤헤. 그렇겠죠? 아유 어쩜 이렇게 잘생기셨을까!”
루카스의 볼을 살짝 건드리는 라일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입에 문 젖병을 세차게 빨아 재끼는 루카스의 속은 또 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옘병할 이빨은 언제 나는지……!’
***
드디어 일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 라노스가 드디어 두 발로 일어섰다!
오천 년의 용생 동안에도 제 손으로 이룬 일 중에 이만큼 보람찬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의 가슴은 지금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주변의 호들갑에 다시 다리에 힘이 탁 풀리고 말았다.
“어머! 도련님! 벌써 스스로 일어나시다니!”
유모의 감동 어린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말이라도 하는 날엔 기절이라도 하겠네.’
작게 한숨을 내쉰 아기는 있는 대로 인상을 팍 찌푸려 봤지만, 그 모습을 본 유모가 한달음에 달려와 제 엉덩이를 들치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응? 응가는 안 하셨는데…….”
작은 도련님은 인상도 함부로 못 쓰는, 말 그대로 아기였다.
***
이제 제법 다리에 힘이 좀 들어가기 시작한다.
벽이나 가구를 짚고 몇 발자국 걷는 것이 전부이긴 하나 이것 또한 굉장한 발전이었다.
대신 한 발짝 한 발짝 뗄 때마다 주변 인물들의 환호성을 견뎌야 했지만 말이다.
“여보 우리 아들은 장차 커서 당신과 같은 훌륭한 검사가 될 건가 봐요.”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벌써부터 저리도 활발하니 말이오.”
하하 호호 웃으며 저를 칭송하는 말을 온종일 듣고 있자니 이 인간들을 모두 슬립 마법으로 푹 재워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나, 고작 옹알이나 하는 아기가 마법을 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혹시 몰라 몸에 마나가 있는지 샅샅이 뒤져봤지만, 마나라고 보이는 것은 단 한 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주신. 올라가기만 해봐. 다 죽여버릴 테니!’
하루 종일 속으로 읊조리는 욕이었지만 입 밖으로 뱉질 못하니 답답함만 쌓여갈 뿐이었다.
***
드디어 제대로 걷기 시작했다.
말도 몇 마디 할 줄 알게 되었지만 아직 어려운 발음은 조금 힘이 들었다.
그리고 저 인간들이 내가 ‘마마’ 하는 작은 소리에도 격하게 반응하니, 그 소리조차 들려주고 싶지 않아 입을 꾹 닫았다.
걷는 것은 어떻게든 빨리 이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서둘렀다지만, 말은 하지 않아도 이미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으니 같잖은 인간들에게 호들갑을 떨 구실을 더 만들어 줄 필요가 없었다.
“도련님께서는 언제쯤 말씀을 하실까요?”
“곧 하실 게다. 원래 남자아이는 말이 조금 더딘 편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실게야.”
걱정 어린 라일라의 말에 부드럽게 대답한 아일린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안 할거다 말. 그리고 처음 뱉는 말은 어떤 욕으로 할지 이미 정해놨다. 건방진 인간들아.’
그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꿋꿋하게 다리 힘을 기르는 루카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어머! 웃으신다!”
‘옘병.’
***
“이제 조금 걱정이 됩니다. 부인.”
“저도 그래요…….”
루카스 로드리고. 그들의 귀한 아들이 입을 열지 않은 지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맨 처음 ‘마마’라든지 하는 짧은 단어를 얘기한 뒤로 가끔가다 작은 신음이나 흘릴 뿐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걷는 것도 먹는 것도 아주 잘하는 루카스였지만 남들 다 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부모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기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귀찮게 내가 뭐하러 말을 해?’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의원이라도 모셔 와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지 않소.”
“그렇다면 신전 사람을…….”
“신전이라면…….”
신전이라면 방법이 있긴 할 것이다.
하다못해 자신의 아들이 벙어리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바보인지라도 알려주고 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신전에서 나와 아들을 진단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콧대 높은 사제들이 지참금 명목으로 얼마를 요구하는지는 저들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요. 사제를 불러옵시다.”
변두리로 내쫓기며 백작이라는 지위만 남았을 뿐, 그들의 손에 남은 것은 작은 영지 하나와 그들을 믿고 따라준 하인과 시녀들뿐이었다.
그마저도 남은 패물들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중에 내린 큰 결정에, 대충 사정을 들어 아는 루카스의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냥 말 한마디 해?’
아무리 이 현실이 싫다고 한들, 안 그래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 백작가의 재정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가난해지면 이 몸의 생활이 불편해지겠지.’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잠시 길을 잃은 듯 방황하는가 싶더니.
‘그래, 가난은 좋지 않고 말고.’
무언가 결심한 듯 아기의 입이 일자를 그렸다.
‘젠장!’
마음을 굳힌 듯 방을 빠져나가는 제 아비라는 시비에 로드리고의 등을 바라보던 그가 결국 입을 뗐다.
“아, 아바!”
그의 부름에 가던 걸음을 멈춘 시비에와 그것을 본 아내 블레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흐, 흑!!! 루카스!!!”
그 모습을 본 루카스는 입 밖으로 작은 욕지거릴 내뱉을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젠장…. 다 글러 처먹었네.’
결국 조용하고 빠르게 생을 마감하려던 그의 바람은 이로써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