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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화 (1/225)
  • 1화. 블랙 드래곤, 인간으로 환생하다!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어느 동굴 안.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거대한 검은 생명체.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 불리는 드래곤들의 수장인 드래곤 로드. 라노스 알브란테.

    거친 숨을 내쉬던 그가 입을 뗐다.

    “이제 때가 됐나 보네.”

    숨이 꺼져가는 거대한 생명체의 눈빛은 아직 무척이나 선명했다.

    “로드. 남기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의 앞에 선 인간은 드래곤의 입김만으로도 날아가기 충분한 크기였다.

    “참으로 길고 긴 지겨운 용생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오천 년, 딱 오천 년 하고 일 년을 더 살았다. 나보다 오래 산 드래곤은 여태 없었으니…. 내가 최장수 드래곤이 되겠구먼 그래.”

    어딘지 모르게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거대한 생명체의 희미한 웃음에 날카로운 잇새가 드러났다.

    “그렇지요.”

    “자네는 좋겠구먼. 지긋지긋한 늙은 용 한 마리가 드디어 뒈진다니 말이야.”

    “…솔직히요?”

    사내가 눈을 살짝 흘기며 라노스를 바라보자, 그는 콧김을 흥 뿜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지만, 작게 숨을 삼켜 욕지거리를 꾹 눌러 참았다.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욕쟁이 고룡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았기도 했거니와 하셀의 울망울망한 눈동자를 보니 차마 할 수 없기도 했다.

    “로드는 네가 하겠네?”

    “그건 아직 모를 일이지요. 로드 자리를 탐내는 자가 있다면 순순히 내어줄… 윽!”

    라노스는 그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작게 불을 뿜어 그의 말을 막았다.

    “떽, 내어주다니. 지금 있는 용들은 전부 천방지축에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으니… 네가 해.”

    “…….”

    “이 레어는 너에게 주마.”

    “예?”

    “뭘 놀래. 자식도 없는 내가 줄 데가 어딨겠어? 죽을 때 싸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

    “필요 없으면 지금 내가 콱 터트리…….”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로드.”

    한낱 인간도 살다 떠나면 남길 것이 있어 자식들이 탐을 내는데, 하물며 드래곤이 살던 집을 통째로 주겠다니 그걸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드래곤 로드가 살던 레어라니! 보석부터 희귀한 아티팩트까지 세상 진귀한 모든 것이 이 안에 남아있을 것 아닌가.

    “진짜 가야겠네.”

    말을 마친 라노스의 눈이 닿은 곳엔 하얀 빛줄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가 봅니다.”

    “생은 돌고 도는 법이니 언젠가 우리가 또다시 만나지 않겠는가?”

    사내의 눈에 얼핏 슬픔이 깃들자, 라노스가 다정히 그를 달랬다.

    “남은 우리 일족을 잘 이끌어주길 바라네. 하셀 테리디어.”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어느새 내려오던 하얀 빛무리가 사라지고 그곳엔 두 인영이 생겨났다.

    새하얀 날개를 단 천사들이었다.

    “안녕하세요!”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는 천사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어 보인 라노스가 인간의 형상으로 폴리모프했다.

    “그래. 죽어가는 용에게 안녕하냐니 여전하구먼.”

    “하하! 오래 사셨지 않습니까! 저를 만날 때마다 지겨워 죽겠다며 얼른 데리고 가라고 하실 땐 언제고요!”

    호쾌하게 웃어 보이는 천사의 앞에 손을 휙 저어 보인 라노스가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래. 내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날이 오는구먼.”

    “네! 그럼 가실까요?”

    싱긋 웃은 천사 하나가 손을 뻗어 천계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래.”

    대답을 마친 라노스가 하셀을 한번 바라봤다.

    “다시 만나는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네만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게.”

    말을 마친 라노스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웃음 뒤로 천계로 향하는 문이 닫히고 세 인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텅 비어버린 거대한 동굴에 홀로 남은 하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다시, 다시 만날 그날…….”

    ***

    천사를 따라 천계로 인도된 라노스의 표정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방금 막 죽었다고 하기엔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 그 자체였다.

    “긴 삶이었지요?”

    능청을 떨며 차를 내오는 천사의 표정 역시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그래, 너무 길어 치가 떨렸지.”

    제 팔을 감싸며 오스스 몸을 떨어 보이는 라노스의 능청스러운 표정에, 작게 웃어 보인 천사 키리타가 품속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은은한 보라색이 감도는 약병은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드래곤은 신이 되기 전 거치는 견습 단계라는 이야기를요.”

    “알지.”

    태연히 차를 홀짝이던 그의 눈빛이 순간 매섭게 변했다.

    “지금 나한테 신이 되라는 말인가?”

    “음…. 사실 그렇긴 한데요.”

    멋쩍게 웃어 보인 키리타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티테이블 위에 약병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긴 생이 얼마나 지루하셨을지 저도 잘 압니다.”

    “본론만 얘기하지 그래?”

    탁 소리 나게 찻잔을 내려놓은 라노스가 팔짱을 꼈다.

    어디 할 말 있으면 해 보란 듯이.

    “그… 유독 긴 삶을 살기도 하셨고…….”

    “본론.”

    “하하… 그래서 말인데요…. 신이 되시기 전에 자유롭게 종족 불문… 윽!”

    -쾅!

    키리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라노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신!? 내가 오천 년을 꾸역꾸역 살면서 영생을 기대했다고 생각하나!?”

    “아이고! 라노스님 이거 놓으세요!!!”

    뒤에서 묵묵히 그 장면을 지켜보던 견습 천사인 플랑이 얼른 뛰어와 라노스를 그에게서 떼어놓기 바빴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노스의 언성은 점점 더 높아져 갔다.

    “내가 그 지겹고 지루한 영생을 살면서 평생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 죽지도 못한 채 영원을 누리고 싶어 보이냐고!!!”

    “으윽…. 이것 좀 놓, 놓으시고…….”

    그의 손에 단단히 붙잡힌 키리타가 버둥거렸다.

    사실 천계에서 천사의 멱살을 잡아봤자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한낱 영혼뿐인 그가 천사에게 타격을 줄 리도 만무했다.

    하지만 라노스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천사들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가 살아낸 오천 년의 세월이 어떤 세월이었는지 견습 천사 때부터 줄곧 들어와 알고 있었고, 천사들이 드래곤의 영혼을 인도하러 몇 번 내려갔을 때도 라노스는 항상 입버릇처럼 ‘쟤 말고 나를 데려가라.’ 했었다.

    그런 그에게 영원을 살아내라니? 이보다 더한 고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은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들을 고르고 골라내어 탄생시키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 수많은 세월을 거치게 만드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언제나 강한 힘에는 책임이 따랐고, 그게 주신의 뜻이었다.

    드래곤은 신이 되기 위한 견습 단계였고, 그 과정을 잘 해낸 드래곤만이 천계의 정점에 선 신이 될 수 있었다.

    “진정하세요!!!”

    도통 라노스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플랑이 결국 힘을 써 그를 키리타에게서 떼어놓았다.

    “신!? 신!? 당장 잘난 신을 불러와 봐! 나와서 말 좀 해 보라고 해! 지금 그 자리가 행복한지!”

    천사에게 힘없이 붙들린 라노스의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냥 나를 소멸시켜! 더 이상 삶에는 미련 따위 없으니까!!!”

    “켁…. 켁….”

    길길이 날뛰는 그를 바라보던 키리타가 목을 매만지며 그에게 다가섰다.

    “그러니 들어보세요!!!”

    결국 참다못한 키리타가 소리를 빽 지르자 바람이 훅 일어났다.

    그가 일으킨 바람에 라노스의 긴 머리가 뒤로 휙 넘어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날뛰던 그는 씩씩거리며 결국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 되었건 결국 이곳은 천계. 그가 아무리 날뛴다 해도 눈앞에 있는 천사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못하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그래. 너에게 지랄을 떤다고 해결되진 않겠지. 후… 말해봐.”

    깊게 한숨을 내쉰 그의 앞에 앉은 키리타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입을 뗐다.

    “신이 되는 건 거절하실 수 없습니다.”

    “…왜지?”

    숨을 한번 고른 라노스의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그게 주신의 뜻이니까요.”

    “주신의 뜻이라… 하하…….”

    ‘주신의 뜻’이라는 단어를 들은 라노스가 작게 실소했다.

    “잘난 주신은 얼굴 한번 비추지 않고 뜻은 여기저기 잘 비추나 보구먼.”

    “…말을 삼가세요.”

    제가 섬기는 주인인 주신을 욕보이자 언짢았는지 키리타의 표정이 차게 굳었다.

    “왜? 이미 죽은 몸인데 죽기를 또 겁낼 것 같나?”

    “됐습니다. 이야기를 계속하죠.”

    콧방귀를 한 번 뀌어 보인 라노스가 다리를 척 꼬았다.

    “주신께서 라노스님께 특별히 한 번의 삶을 더 사실 기회를 주셨습니다. 전생의 기억도 깔끔히 잊은 채 새로운 삶을 살아보실 수 있는 거죠. 종족은 상관없습니다. 엘프도 괜찮고 뭐 원하신다면 다시 드래곤으로…….”

    결국 그의 말을 듣던 라노스가 입을 떼 말을 잘라냈다.

    “미친 소리를 잘도 그럴싸하게 늘어놓는군. 다시 드래곤이 되라니.”

    “아니면 제 마음대로 종족을 정할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무생물이나 미물은 안 됩니다. 몬스터도 안 되고요.”

    “하! 이거 뭐 협박에 가깝구먼?”

    “결정할 시간을 드리지요.”

    도통 말이 통하지 않자 키리타가 자리에서 막 일어나려는 때였다.

    “인간. 인간으로 하지.”

    결정에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건만 라노스의 입은 키리타가 일어나기도 전에 빠르게 떼어졌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엘프나 드래곤같이 오래 사는 생명체들은 질색이라 말이야. 인간은 백 년도 못사니 그게 제일 낫겠어.”

    긴 생을 살아온 만큼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직감한 라노스는 빠르게 단념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알겠습니다. 결정하신 거죠?”

    “젠장……!”

    결국 그의 입에서 참아왔던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리타는 그의 마음이 변할까 싶어 얼른 환생으로 향하는 문을 냉큼 만들어 냈다.

    “자. 그럼 이거 드시고.”

    -뽁!

    테이블 위에 있던 약병을 얼른 들어 뚜껑을 뽑아낸 그가 라노스의 손에 약병을 냉큼 쥐여줬다.

    “빌어먹을 주신.”

    “자자, 욕해도 소용없습니다. 얼른 쭉 들이켜세요.”

    키리타의 채근에 약병을 입에 가져간 라노스가 약을 쭉 들이켜자, 그의 몸에 일순 푸른빛이 맴돌았다.

    “우욱……!”

    입안에 흘러들어 온 비릿한 맛에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찰나.

    “어,어어!!!”

    키리타는 라노스의 목구멍으로 약이 넘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등을 세차게 밀어버렸다.

    그 때문에 라노스는 저항 한번 못 해보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그가 문 너머로 사라지고 나자, 플랑이 얼른 키리타에게 다가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망각의 물이 제대로 작용했는지 확인하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괜찮겠지. 평소보다 다섯 배는 강한 걸로 썼으니 말이야.”

    괜스레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나 환생의 길로 들어간 라노스를 다시 잡아 와 ‘당신이 누군지 아세요?’ 하고 물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제발 주신의 뜻을 잘 이해하셔야 할 텐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환생의 문에서 돌아서는 키리타의 중얼거림에 플랑이 되물었다.

    “넌 몰라도 돼.”

    피식 웃어 보인 키리타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다.

    ***

    편안하고 따뜻한 물에 잠겨 있는 기분이다.

    분명 숨을 쉬는 것 같은데 또 쉬고 있지 않은 그런 기분…….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환생의 문에 빨려들 때의 그 기분은 참 더러웠다.

    ‘키리타 너는 언젠가 내가 신이 되는 그날 잡아 족쳐주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는 그때, 눈앞에 새하얀 빛이 일었다.

    ***

    “부인, 축하드립니다. 건강한 아드님이세요!”

    “부인, 수고가 많았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사랑스럽다는 듯 제 아들과 부인을 번갈아 바라보는 한 남자가 여인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막 태어난 아기의 얼굴은 쭈글쭈글했으나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와 머리칼이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또렷한 눈매와 콧날이 아기가 미래에 얼마나 훌륭한 미남으로 자라날지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막 출산을 마친 부인이 거친 숨을 내쉬며 아이를 받아 품에 꼬옥 안았다.

    “아가… 엄마야…….”

    아기의 젖은 머리칼을 사랑스럽게 쓸어 넘기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의 눈은 왠지 모르게 매서웠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모습에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제 막 출산을 마친 그녀와 감동에 젖어 있는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한참을 아이를 감싸 안고 이마에 입술을 맞댄 그녀가 작게 읊조렸다.

    “엄마가, 엄마가 지켜줄게.”

    쇠퇴한 백작가인 로드리고 백작가.

    아이가 없어 고민이던 부부에게 기적처럼 내려온 아이였다.

    한때는 잘나가던 집안이었지만 왕권 다툼에서 줄을 잘못 서 이곳 변방에 있는 작은 영지로 쫓겨나다시피 나온 지 벌써 수년째.

    하지만 이 부부는 더 이상 소원이 없을 만큼 행복했다.

    매일같이 신전에 가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아이를 제게 내려 달라고.

    그 소원이 이루어진 지금, 부부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하지만 품에 안긴 아기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이게 씨X 뭔 상황이야?’

    라노스 알브란테. 블랙드래곤의 환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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