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51화
151. 귀환(2)
“대체 무슨 일이오?”
“그러니까. 바빠죽겠는데.”
헌터 협회에 모인 각 길드의 대표들은 불만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지방에 풀린 악마들을 잡고 지역 피해를 수습하기도 바쁜 상황. 하지만 헌터 협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국에 있는 모든 길드의 장들을 불러 모았다.
헌터 협회장 고영환이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이 방법이 최선입니까?”
더원 길드의 수장 정민우는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대한민국 삼대 길드의 수장 정민우. 그는 천가의 요청으로 자신이 불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영 탐탁지 않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느 대형 길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천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문이라고는 하나 자신들을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묵살하기라도 하듯 협회장은 짧은 대답으로 일축했다.
“예, 최선입니다.”
단호한 대답. 이에 회의장 안에 있던 헌터들의 인상이 구겨졌다.
“지금이 긴급상황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악마는 퇴치했고 피해 규모도 감내 가능한 수준입니다.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여러분들은 정말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내를 울리는 짧은 물음. 사람들은 합의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에 어렴풋하게 남아 남아 있던 의심의 조각을 건든 탓이었다. 특히 가장 협회장과 가까이 앉아 있던 3대 길드 수장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회의장의 침묵을 깬 것은 또 다른 3대 길드 오성의 수장 구태민이었다.
“크흠. 분명 다시 침공이 일어난다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니지요. 천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관련자들은 참석했습니까?”
“현재 그들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고 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허, 이런 무책임한 집단을 봤나.”
탄식 섞인 야유가 들려왔다. 찡그린 그들의 인상에는 무시당했다는 오욕이 깃들어 있었다.
“대신 천가는 이분께 모든 권한을 일임했습니다.”
그때 협회장 고영환의 옆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천외천의 멤버 서현우라고 합니다.”
훤칠한 키의 사내가 길드장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를 본 길드장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현우? 처음 듣는데.”
“그러니까요. 저도 처음 들어요. 애초에 천외천은 3인 체제 아니었나요?”
“그러니까.”
낯선 이의 등장에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의문을 표했다. 의심에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부터, 천가의 대표로 핏줄을 내보내지 않은 것은 명백한 무시라며 항의를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부정적 반응들이 이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현우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자연스레 넘기며 말을 이었다.
“악마의 습격은 다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사치레 대신, 본론으로 들어가는 화두를 자연스레 던졌다.
당당한 그의 말에 당내가 조용해졌다.
건방지다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가 꺼낸 화두가 너무 강력했기에.
악마.
워낙 적은 개체의 침공이었지만 악마의 무서움을 모르는 헌터는 없었다.
숫자에 비해 피해는 압도적일 정도로 엄청났다.
정민우가 피해 규모는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고작 한 마리의 악마 때문에 마을 하나가 초토화되고 악마 하나당 평균 사상자가 100이 넘어가는 피해를 결코 감내 가능한 수준으로 포장할 수는 없었으니까.
예민한 주제에 날 선 물음이 날아들었다.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아는 것이오?”
“정민우 님 조금 자중을…….”
“가능성도 낮은 이야기를 확신하듯 떠들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야기는 들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저, 서현우 씨? 혹시, 특성이 예언에 관련된 겁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죠?”
오성 길드의 구태민이 물었다.
그는 서현우의 실력을 가늠하듯 뱀처럼 그를 아래위로 훑고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구태민이 물었다.
“혹시 미국의 예언가 레닌을 만나고 온 것이오?”
“아닙니다.”
“그럼……?”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추궁에 서현우는 작게 인상을 찡그린 뒤 말했다.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은 천가와 여러분이 모두 힘을 합쳐도 쉽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심각하게 말하는 서현우의 말에 싸늘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우리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군.”
“무시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잘난 척하지 마시오. 지금 천가가 예전의 천가와 같은 줄 아십니까?”
다소 도발적인 언어를 내뱉은 것은 다름 아닌 더원의 정민우였다. 그는 자신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대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벙 찐 서현우의 모습에 계속해서 비아냥이 날아왔다.
“지금의 천가는 옛 명성을 잃은 지 오래요. 천지훈은 희대의 역적이 되었고 천가의 주인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모습을 내비치지 않고 있지. 헌대, 우리가 당신네 말을 왜 들어야 하지?”
정민우의 물음에 장내에 있던 길드장들은 하나, 둘 동조하기 시작했다.
“옳소. 천가의 천태산. 그분은 이제 기력이 달려 대외활동을 못 하는 것 아니오?”
“듣고 보니 그렇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조금만 수련을 쉬면 뒤떨어지기, 십상이거늘. 쯧쯧.”
“암, 그렇고말고. 이제는 천가를 하나의 대표 가문으로 추대할 것이 아니라 4대 길드에 포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천지훈 사건도 있고. 이제는 차라리 4대 길드 체제를 유지하는 게…….”
더원의 정민우를 주축으로 오성의 구태민, 청룡 길드의 지창민까지 3대 길드의 수장이 모두 나서며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렇게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페이즈 2가 불러온 변화.
페이즈 2로 돌입하면서 3대 길드는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보다 넘쳐 나는 게이트들을 독식해 가며 빠르게 레벨을 올리고 세력을 키운 것은 다름 아닌 3대 길드였다.
그들은 이제 천가가 와도 비벼 볼 수 있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젠 나도 천가 것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
‘우리가 남몰래 올린 레벨이 얼만데.’
3대 길드의 수장들은 이번 기회에 어떤 방식으로 세력을 넓혀 나갈지 각기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크흠.”
헛기침 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단순한 헛기침에도 시선이 한곳으로 몰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주체가 다름 아닌 헌터 협회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협회장에게 몰렸다.
협회장의 시선은 한껏 구겨져 있었다.
때를 가리지 않고 뱀과 같은 혓바닥과 하이에나 같은 기질을 내보이는 그들의 행태에 질린 탓이었다.
무겁게 닫혀 있던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할 때였다.
“큭.”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헌터 협회장 옆, 서현우였다.
“아, 미안합니다. 너무 웃긴 소리를 해 대길래.”
서현우가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
“……미친.”
흉신악살처럼 구겨진 길드장들의 날 선 시선이 날아들었다.
“웃었나, 지금!”
콰앙!
테이블이 부서지고.
“감히 천가의 피도 아닌 녀석이!”
일갈을 내뱉는 길드장들이 속출했다.
특히 3대 길드장들은 서현우를 죽일 것처럼 노려봤다. 모처럼 잡은 기회를 잡을 생각으로 하는 연기였다. 그중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청룡 길드였다. 당장이라도 서현우의 멱살을 틀어쥘 듯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난 청룡 길드의 지창민은 서현우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지창민 님. 여기는 회의장…….”
“뭐 어쩌라고.”
싸늘한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지창민을 말리려던 헌터 협회 직원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지창민은 멈추지 않고 서현우에게 걸어갔다.
‘내가 그날을 잊었을 것 같나?’
과거 데스나이트 출몰사태 때 천도윤에게 박한별을 뺏긴 전력이 있었다. 자신이 노렸던 인재를 뺏긴 것은 그때가 처음.
‘천가가 버린 자식새끼한테……!’
자다가도 이불을 찰 정도로 치욕스러웠던 날이었다.
지창민은 지금이 천도윤에게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팔 하나쯤 가져가는 것쯤은 괜찮겠지.’
아무리 봐도 저 녀석은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면 천외천에서 키우고 있는 루키쯤 될 터.
이번엔 자신이 아닌 천도윤 녀석이 속을 태울 차례였다.
“저는 천외천의…….”
‘인재를 눈앞에서 잃는 고통을 맛보게 해 주마.’
싸늘한 시선이 서현우에게 날아들었다.
서현우는 살기 어린 시선을 모두 받아 내며 입을 열었다.
“힐러입니다.”
힐러.
어딜 가나 대접받는 귀한 자원이었다.
그런 귀한 자원이 지금 이 상황에 자신이 힐러임을 밝힌다? 십중팔구 겁먹은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천가의 팀에 들어간 것을 보면 엄청난 재능을 가진 녀석일 터.
만약, 그런 녀석을 못 쓰게 된다면?
‘크큭. 천도윤. 밤새 배 아프겠군.’
지창민은 올라오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렸다.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라.”
마지막 경고와 동시에. 그의 손에선 엄청난 양의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천지훈이 악마의 편으로 돌아선 이상, 전격(電擊)에 관해서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명실상부 1위였다.
파직거리며 온몸을 둘러싸는 전격에 회의장 안에 있던 길드장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창민 님 조금 자중하시는 게…….”
더원의 정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것을 보니, 진정으로 말한 것은 아닌 듯했다. 걱정하기보단 오히려 건방진 천가에게 한 방 먹여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모습.
지창민은 기꺼이 정민우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천가의 일개 용병이 각 길드를 대표하는 장을 무시했소.”
“그럼…… 적당히 하시오. 여기는 회의장이니.”
정민우는 어쩔 수 없다며 한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명분을 위한 조잡한 연기.
그 보기 힘든 어색한 연기에 깊은 한숨이 잦아들었다.
“하…….”
한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현우였다.
어울리지 않는 서현우의 태도에 청룡 길드의 지창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제 와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래서 내가 오기 싫었는데…….”
녀석이 아무리 울고불고 빌어도 팔 한쪽 정도는 가져갈 생각이었다.
“인버스 타워에서 그 망할 할망구 때문에 성격만 버려서는…….”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도통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청룡의 지창민이 넘실거리는 전류를 내세우며 달려들었다.
콰앙-!
“천가의 일개 용병?”
“……!”
부서진 테이블.
피 묻은 손. 그 우악스러운 손바닥에 담긴 혼절한 사내의 얼굴.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개 용병보다 약한 너희들은 대체 뭐지?”
싸늘한 물음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3대 길드의 수장 지창민. 공격력 하나만큼은 천가와 견주어 봐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는 그가 단 일격에 혼절해 버렸다.
입을 떡 벌린 오성 길드의 대표 구태민이 중얼거렸다.
“분명 힐러라고…….”
“어, 맞아 힐러.”
덤덤한 서현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젠 더 이상 존대가 아니었다.
“이제 알겠지? 너희들은 힐러인 나보다 약하다고. 그러니까…….”
꼴깍.
“닥치고 내 말이나 들어. 새끼들아. 시간 없으니까.”
압도적인 존재감이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