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18화
118. 전쟁 준비(2)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 괜찮다니까!”
몇 번이고 물어보는 가문의 직원에게 미간을 구긴 나는 그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애커만의 보물 지도에 적힌 곳을 찾기 전,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분명, 도련님이 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게 하면 넌 해고야.”
더 이상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긴 직원은 특수한 재질로 만든 값비싼 방독면을 쓰기 시작했다. 얼핏 보이는 표정만 보더라도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 걱정하지 말라니까.”
“흑운께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일이 잘못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하, 거참 말 많네. 그럴 일 없다고. 시작해!”
직원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품속에서 작은 공 모양의 캡슐을 꺼내 들었다.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캡슐. 물건을 한 번 바라본 직원은 시선을 돌려 나를 노려봤다.
원망이 잔뜩 섞인 눈빛. 잠시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직원은 ‘아예 죽어 버려라!’라는 눈빛으로 캡슐을 던졌다.
바닥에 닿은 캡슐이 펑,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를 내뿜었다.
A급 플레이어도 1분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는 맹독.
“제발 죽지 마십시오.”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으면서 퍽이나.”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코와 입을 통해 초록빛이 도는 매캐한 연기가 빨려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나는 방독면을 쓰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미친!”
직원은 해독제도 없이 빠른 속도로 독을 빨아들이고 있는 나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나는 계속해서 공중에 퍼진 독을 빨아들였다.
그러고는 직원을 향해 말했다.
“다른 독으로!”
“……도련님!!”
“빨리!”
“하, 진짜 왜 이런 미친 짓을…….”
직원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품속에서 다른 캡슐들을 꺼내 들었다. 그 숫자만 무려 다섯. 모두 치명적인 살상력을 자랑하는 맹독이었다.
“다 터트려.”
“네?”
“아니다. 그냥 주고 너 나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녀석에게 캡슐을 뺏다시피 가로챈 뒤, 녀석의 등을 떠밀었다.
“빨리 나가, 죽기 싫으면.”
아무리 최고급 방독면을 썼다고 하더라도, 이 독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맹독이었다. 독이 섞이고, 그 위로 다른 독이 섞이면 무슨 반응이 일어날지 몰랐다. 즉, 아무리 방독면을 쓰고 있다고 해도 언제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결코 엄한 송장을 치울 생각이 없었다.
“안전 수칙은 알고 있지? 독이 문이 열린 새에 퍼져 나갈 수도 있으니까 다 빠질 때까지 방독면 쓰고 있어.”
“그 정도는 압니다. 그나저나 정말 괜찮으십니까?”
“괜찮다고. 빨리 나가.”
나는 녀석의 등을 다시 한번 떠밀었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몇 번이나 확인을 받은 녀석은 마지못해 밀실 밖을 나섰다.
녀석이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문을 바라보며 작게 투덜댔다.
“시험해 봐야 하는 게 한두 개도 아닌데 시간 아깝게.”
밀실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뒤, 나는 캡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바닥을 향해 가차 없이 던져 버렸다.
펑!
퍼버벙!
보라색, 녹색, 회색 등등 갖가지 색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웁!”
입을 통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맹독이 들어왔다. 목구멍을 지나, 폐로 들어가는 것이 온전히 느껴졌다. 끈적이고 따끔거리는 더러운 기분. 그러나, 몸에 전해지는 이상 반응은 그것이 끝이었다.
혹시 몰라, 5분 이상 호흡을 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숨을 깊게 내뱉은 나는 미소 지었다.
“진짜 되네?”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수많은 호흡으로 독의 색은 현저히 옅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직 실내는 독으로 가득 찬 상태. 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나와!”
나는 그 밀실 안으로 우마를 불러들였다.
“우마!!”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우마는 내 머리 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마우마!!”
그러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역시, 맹독은 우마에게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됐어!”
이것으로 확인됐다. 해저 도시에서 새로 얻은 스킬 ‘왕의 권위’의 사기성이!
[왕의 권위] - 전설
-신하의 충성심이 매우 강해집니다.
-신하의 특성, 스킬, 칭호 중 하나를 원하는 대로 가져와 습득할 수 있습니다. (1/5)
내가 가장 먼저 가져온 능력은 우마의 [만독불침]이었다. 웬만한 독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사기적인 특성.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중의 하나였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몸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허무하게 당할 수 있었으니까. 이것은 예전부터 해 오던 걱정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마침 그 부분을 상당 부분 해결할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만독불침.
매번 의문을 지니고 있었던, 우마의 특성이었다.
“이게 왜 우마 녀석에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된 거지 뭐.
나는 어깨로 내려온 우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도 이미 검증을 마친 상태라 마음이 홀가분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이것이었다. 신하의 스킬이나 특성, 호칭을 가져올 경우, 대상이 된 신하가 능력을 잃는 것. 그러나 역시 예상대로 대상에게는 그 어떤 페널티도 없었다.
“고맙다.”
“우마!!”
우마는 뭐가 그리도 기쁜지 헤실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제 암살이, 반 페르데이스 그리고 박한별 씨와 천지현의 능력만 가져오면 되는데…….”
행복한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능력들을 가진 소환수와 플레이어였다. 어떤 능력을 가져와도 분명 쓰임이 클 터. 나는 무엇을 가져올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가장 탐이 나는 것은 박한별의 상태창이었다.
두 개의 신화급 능력을 가진 그녀의 능력이 탐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후…… 아까워 죽겠네.”
나는 과거의 일을 생각하며 입맛을 쩝 다셨다.
사실 우마보다 먼저, 능력을 사용했던 것은 박한별이었다. 그녀의 신화급 스킬 청화(靑火)는 나도 가지고 있던 스킬이었다. 그래서 가장 탐나는 것은 그녀의 칭호였다.
도깨비와 관련된 모든 능력을 최상으로 사용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모든 도깨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절대적인 칭호.
이매망량(魑魅魍魎).
도깨비들을 다룰 수 있는 칭호라니…… 그들의 무위를 직접 목격했던 나로서는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칭호였다.
그러나 곧 욕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외쳐 봐도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던 것.
박한별의 이매망량 칭호를 달라는 나의 요구를 알림음은 무심한 목소리로 거부했다.
[고유 칭호는 습득할 수 없습니다.]
[고유 칭호는 습득할 수 없습니다.]
[고유 칭호는 습득할 수 없습니다.]
…….
아쉬움에 몇 번이고 외쳐 보았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결국 나는 칭호 이매망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후, 그래 포기하자. 한별 씨의 특성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박한별은 그것 외에도 다양한 능력이 있었다. 위대한 모험가와 이름 모를 구원자라는 준수한 칭호가 있었고, 야차와 도깨비의 후예라는 전설급 특성도 가지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난 능력들.
어떤 능력을 택하더라도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그다음으로 탐나는 건 ‘도깨비의 후예’인데…… 이것도 고유 특성이겠지?”
실제로 나는 도깨비의 후예가 아니니, 갖기 힘든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선택지가 좁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야차(夜叉)가 베스트일 텐데…….”
원래 박한별의 특성이었던 괴력이 도깨비의 피와 맞물려 진화한 특성. 전설급 특성인 야차 정도는 ‘내가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결정을 내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결정이다.”
마음을 굳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밀실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암살이와 반 페르데이스 그리고 천지현의 능력도 고민해 봐야 했지만 일단 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 부분은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고…….
지금은 신하…… 아니 동료를 늘리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믿을 수 있고 실제로 도움이 되며, 기왕이면 ‘왕의 권위’로 탐날 만한 능력을 배울 수 있는 녀석으로!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녀석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 * *
서현우는 요 며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던전 브레이크. 그곳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을 잃었다. 플레이어가 되기 전부터 중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친근한 동네 형. 그 해맑게 웃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헌터 협회 본사가 있는 명동에서 던전 브레이크라니…….”
서현우는 아직도 그날의 일이 잊히지 않았다.
엄청난 크기의 트롤.
C등급의 몬스터가 B등급의 플레이어를 단 일격에 터트려 버리는 잔인한 광경.
그 모든 것이 눈앞에 재생되듯 생생했다.
“철민이 형…… 흐윽.”
어느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생각할 때마다 똑같았다. 눈물이 흐르고 두려움에 손이 덜덜 떨렸다.
고아인 자신을 위해 매일 밥을 사 주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자신의 자취방까지 내주었던 형이 눈 깜짝할 새에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충격이 쉽게 가신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며칠을 멍하니 보냈는지 몰랐다. 오는 연락은 모두 무시했고, 집 앞으로 찾아온 기자들에게는 화를 냈다.
서현우의 눈빛이 돌아온 것은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그 개자식들!”
서현우는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용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인간들 도륙하고 잡아먹는 존재들.
세상에서 박멸해야 할 존재들이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역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좀만 힘이 있었으면…….”
서현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온몸을 떨었다.
철민이 형을 잃었던 당일을 기준으로 몬스터의 레이드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플레이어도 레벨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꾸준히 강해질 수 있었지만, 현재는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일에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헌터 협회에서는 현재 대형길드 소속을 제외한 B급 이하 플레이어에게 레이드 허가를 내주지 않는 상황이었다. 반발이 거세게 일었지만, 강화된 몬스터를 본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상위 등급 헌터들이 레벨 업을 통해 빠르게 강해진 뒤에 우리를 안전하게 성장시켜 주는 게 훨씬 안전해. 지금 나가면 개죽음이라고!
-이게 맞다. C등급 전사계열 플레이언데 던전 브레이크 때 오크 한 마리랑 30분간 혈투를 벌였다. 한 마리만 더 몰려왔어도 난 죽었을 거임.
-어휴, 쯧쯧. 쫄보 새끼들…… 이 아니네? 지금 뉴스 보는 중인데 무슨 코볼트가 날아다니냐? 저걸 어떻게 이겨?
대부분의 반응이 이와 같았다.
“내가 등급 하나만 더 높았어도…….”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찢어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분노에 찬 시선으로 뉴스를 바라보던 서현우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
젊은 남성. 그가 했던 말이 폭포수처럼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가의 천도윤입니다.
-서현우 씨, 천외천에 들어오시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레벨은 저희 쪽에서 키워 드리면 되고, 등급은…… 헌터 협회가 일을 못 하는 것뿐입니다. 당신의 가치는 결코 C등급이 아니에요.
친한 형의 죽음으로 잊고 있었다.
천도윤. 그자가 뜬금없이 자신을 천외천으로 영입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철민이 형과 별반 다르지 않은 꼴이 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왜 나를…….
당시 넋이 나가 있어 헛것을 들은 걸지도 몰랐다.
혹시? 라는 기대감이 서현우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벌떡 일어난 서현우는 그날 입었던 피 묻은 옷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품을 뒤져 명함을 찾아냈다.
“허, 진짜로…….”
서현우의 손에는 천가의 직인이 찍힌 진짜 천도윤의 명함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