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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12화 (112/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12화

112. 변화(2)

“크윽!”

간신히 도깨비방망이를 피해 낸 나는 기운을 끌어올렸다.

“한별 씨! 정신 차리세요!”

“닥쳐!”

완전히 눈이 돌아간 박한별이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가문의 원수라도 되는 듯 달려오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암살이를 불러들였다.

화륵-!

도깨비불이 점멸하듯 사라졌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도깨비불을 이용해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그녀는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나올 때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궤도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앙-!

박살 난 바닥의 파편이 넓게 흩날렸다.

박한별의 공격은 다채로웠다. 연기를 뿌려 시야를 차단하기도 했고, 때론 허깨비를 만들어 시야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크윽!”

그녀의 방망이를 막은 손이 저릿했다. 동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직접 경험해 본 박한별의 강함은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도깨비들을 만나고, 비약적인 상승을 이룬 박한별.

천지현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박한별이 이렇게나 엄청난 상승을 이룬 것을 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방심하면 당한다!’

이제는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녀는 신화급 특성을 무려 두 가지나 가진 플레이어였으니까! 겨우 신화급 특성을 하나만 가진 나와 비교해 봐도 그녀는 꿇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유리할지도 몰랐다.

박한별의 방망이를 간신히 피한 나는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갑자기 왜……?’

그녀가 돌변한 이유는 다름 아닌 최면이었다. 그것도 광장에서 동족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한별 씨! 정신 차리세요!”

“그 입 닥치세요! 도윤 씨는 왜 어인들의 생태계를 파괴하려고 하는 겁니까!”

“바로잡지 않으면 인간들이 위험합니다.”

“약한 자는 원래 먹히는 법인 거 모르세요?”

“젠장, 완전히 당했군요.”

“헛소리하지 마세요. 저는 정상입니다.”

탁 풀린 눈. 퀭한 눈동자. 박한별은 분노를 고스란히 나에게 내비치며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거리를 벌리고는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의문이었다.

박한별은 분명 최면술사를 쓰러트렸다. 그런데 왜……?

궁금증이 가시기도 전에, 등에 섬뜩한 고통이 일었다.

“크윽!”

상황을 지켜보던 반란군의 우두머리 션이 삼지창을 투척한 것이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암살이에게 말했다.

“저 녀석은 네가 맡아.”

고개를 끄덕인 암살이가 흑운 속으로 사라졌다.

믿음직한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나는 다시 박한별에게 시야를 돌렸다. 그녀를 견제하면서 기감을 넓히기 시작했다.

‘먼 곳에 있지는 않겠지.’

저 많은 수의 어인에게 최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시 가까운 곳에서 힘을 사용해야 할 터였다.

그 점을 인지한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콰앙-!

그 와중에도 박한별의 매서운 공격이 날아왔지만, 이전보다는 비교적 상대하기 수월했다.

“우마!!”

불러들인 소환수 때문이었다.

“크윽…… 치사하게!!”

최면이 걸린 와중에도 박한별은 우마를 공격하지 못했다.

“한별 씨! 정신 차리십시오.”

“우마가 다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한별 씨가 멈추면 됩니다.”

치사한 방법이긴 했지만, 숨어 있는 최면술사를 찾기 위해서는 박한별에게 전력을 쏟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우마에게 명령했다. 박한별의 공격 궤도에 다가가 서 있으라고.

우마는 내 명령에 따라 내 몸 위를 빠르게 옮겨 다니고 있었다.

“우마! 비켜!”

“우마!!”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우마는 박한별의 앞을 가로막았다. 박한별의 방망이가 다시 한번 멈춰 섰다.

“우마…….”

“우마!! 우마마!!”

우마는 박한별을 혼내듯 허리춤에 손을 얹고는 소리쳤다.

순간 박한별의 눈빛이 생기를 찾았다. 찰나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잠시뿐이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박한별이 제정신으로 돌아온 찰나의 순간, 실처럼 이어진 기운이 박한별의 관자놀이 쪽에 연결되는 것을 목격했으니까.

콰앙-!

나는 있는 힘껏 바닥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손에 닿는 감각은 딱딱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저 새끼가!”

이쪽을 인지한 션이 바닥에 숨어 있던 최면술사를 막기 위해 방어막을 펼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서걱.

“크아아악!!”

“그러게 왜 ‘군주’를 무시하고 그래.”

암살이가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션이 이쪽을 신경 쓰는 사이 녀석과 대치 중이던 암살이가 션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션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날린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잡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기운을 쫓았다. 신기하게도 녀석은 바닥에 붙어 움직이고 있었다. 완벽한 위장 색을 띠고 있어 육안으로 알아보기에는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기운 또한 은밀했다.

‘한 번 놓치면 따라잡기 더욱 힘들어진다.’

나는 녀석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콰앙-!

쾅!

바닥이 계속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번번이 실패하긴 했지만, 녀석을 잡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놈이구나.”

바닥으로부터 물컹거리는 녀석의 신체를 집어 올린 나는 드디어 최면술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여러 개의 다리를 휘젓고 있는 문어 어인. 위장색을 띠고 있던 녀석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끈질기군.”

“그런 말 자주 들어.”

짧게 대답한 나는 녀석의 빨판이 달린 앞발 두 개를 끊어 냈다.

“크아아악!”

녀석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했다. 문어 어인이 몸부림치는 사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방망이를 코앞까지 가져갔던 박한별은 우뚝 멈춰 섰다.

“어? 제가 왜?”

최면이 풀린 박한별은 황급히 도깨비방망이를 거두어들였다. 나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조심하세요. 저 다리로 사람들을 홀리고 있는 것 같으니까.”

모습을 드러낸 문어 어인의 빨판에는 여러 개의 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투명하고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실이었다. 온 힘을 집중해야, 겨우 미세하게 보일 정도의 실은 하나같이 어인의 관자놀이에 붙어 있었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박한별은 이를 바득 갈았다.

“왜 이런 짓을…….”

“크흐흐흐.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과정이지.”

“새로운 시대는 개뿔. 저 모습을 봐라. 동족끼리 죽이고 전쟁을 하고 있다. 저것이 네놈이 바라는 새로운 시대인 것이냐?”

분노 섞인 내 물음에 문어 어인이 대답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일 뿐이다. 우리 어인들은 곧 너희 인간뿐 아니라, 모든 종의 정점에 설 것이다.”

문어 어인의 당찬 포부. 그에 가장 분노한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가장 먼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뱉은 건 목걸이 속에 들어 있는 반 페르데이스였다.

-저 녀석이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주인!

웅혼한 음성이 머릿속을 울렸다.

문어 어인의 말은 모든 종의 정점이라 불리는 드래곤 앞에서 하기에는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은 발언이었다.

반 페르데이스는 당장이라도 자신을 내보내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나를 내보내라 주인. 당장 저 녀석을 만년설로 얼려 평생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나는 흥분한 반 페르데이스를 나무랐다. 내 소환수로 전락하긴 했지만, 반 페르데이스는 분명 드래곤이었다.

어느 종이 보더라도 혼란스럽고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이런 혼돈 속에 드래곤이 출현하면 더욱 혼란이 가중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 좀 가만히 좀 있어라.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야.’

나의 명령에 반 페르데이스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가…….

축 처진 목소리와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한 말투. 불안해진 나는 반 페르데이스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다 알고 있다. 주인. 내가 아직 선배들과 비교하면 실력이 떨어져서…….

반 페르데이스의 어이없는 생각에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제정신이야?’

-내가 분발하겠다, 주인!

결연한 의지까지 내비치는 반 페르데이스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언제까지 이 바보 같은 푸념에 장단을 맞춰 주고 있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면을 주시한 나는 문어 어인을 향해 말했다.

“꿈이 지나치군. 모든 종의 정점은 드래곤…….”

-주인!!

감동한 듯한 반 페르데이스의 말은 무시하고.

“아니면 인간인데 말이야.”

-…….

마저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문어 어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분노에 휩싸인 녀석이 움직이기도 전에, 박한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찮은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거대한 방망이를 깃털처럼 휘두른 박한별은 정확히 문어 어인의 미간을 노렸다.

‘끝났군.’

박한별의 공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싣고 있었으며,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젠 ‘콰앙’ 소리와 함께 육신이 터져 나가야…… 정상인데…….

“……!?”

문어 어인은 생각보다 너무 멀쩡한 상태로 서 있었다. 비열한 미소를 지은 문어 어인은 말했다.

“나에게 물리 공격이 통할 것 같나?”

나는 황당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물컹거리는 녀석의 피부가 박한별의 물리 공격을 대부분 흡수한 것이다.

녀석의 기묘한 특징에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빠르게 녀석을 쓰러트려야 하는데…… 그래야…….’

뒤에 있는 어인 녀석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문어 어인에게 공격할 방법은 날이 잘 슨 칼로 베어 내거나 공격 마법뿐이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손 위에 흑운의 힘을 끌어올려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스승님에게 배운 기술이자, 칼보다 더욱 높은 절삭력을 자랑하는 기술이었다.

나는 빠르게 회전하는 흑운의 힘을 이용해 녀석을 썰어 버릴 생각이었다.

충분히 회전하는 흑운을 바라본 나는 천천히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자신의 약점을 그리도 쉽게 노출 시키다니.”

그것이 저 녀석의 패착의 요인이 될 것이다. 싸늘한 시선으로 녀석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가공할 만한 힘을 끌어들여 다가가고 있음에도, 녀석의 표정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불안한 감정이 엄습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녀석이 웃기 시작했다.

“크큭, 크하하하하.”

“왜 웃지?”

“내가 약점을 괜히 말해 줬을 것 같나?”

“뭐?”

“크큭. 약점을 이용하는 것도 실력이지.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비릿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핑-!

관자놀이가 따끔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찰나의 순간, 나는 직감했다.

‘당했다!’

…….

힘을 끌어내려 했다.

영원 같던 찰나의 순간을 떼어 내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녀석의 힘이 더 빨랐다.

머릿속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빠르게 알 수 없는 힘이 뇌를 잠식하고 있었다.

‘안 되는데…….’

거부하려는 마음마저 안개 속에 갇힌 듯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했다.

“…….”

이젠 어떻게 되는 거지?

최면에 걸린 어인들과 함께 싸우다가 죽게 되는 걸까? 아니면 박한별과 피 튀기는 대결을 펼치다, 둘 다 크게 다쳐 죽게 될까?

온갖 잡생각이 들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끝내 그런 생각마저 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

그저 새하얀 도화지 속에 갇힌 느낌.

나는 아무 생각도, 아무 움직임도 펼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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