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11화
111. 변화(1)
“저놈들을 죽여라!!”
“이 개자식들이, 영주를 죽인 파렴치한 놈한테 홀려서는 대체 뭐 하는 짓들이냐!”
“영주는 원래 죽어 마땅한 자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네놈들이다. 죽어라!”
“미친놈들! 당장 멈추지 않으면, 이 로만 백작이 용서치 않으리라!”
“어디 해 보거라!”
무장한 동족들이 서로를 찌르는 참상. 그 끔찍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가 흩날리고, 얼마 전까지 같은 구역에 살았던 이들이 서로를 향해 삼지창을 겨누었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은 상황.
이어 어딘지 모르는 이질감이 살갗에 느껴졌다. 션의 편에 서 싸우는 어인들. 그들의 눈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께름칙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은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듯했다.
“네. 이상합니다.”
박한별의 물음에 짧게 대답한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퀭하게 풀려 있는 눈.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디에 홀리기라도 한 듯 탁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마,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박한별 역시 주위를 둘러봤다. 반대편 어인들과 상반되게 모두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어딘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눈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때였다.
“도윤 씨, 저기!”
박한별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조금 전 도망쳤던 션이 반대편 진영을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었다.
“위대한 혁명을 막는 자는 모두 적이다! 죽여라!!”
결투에서 꽁무니 빼며 도망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비추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 웃겼지만 내 눈이 향한 곳은 션이 아닌 그의 옆이었다.
허공을 향해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어인. 가재의 형상을 한 어인이 웅얼거릴 때마다, 가까이 있던 어인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죽여라!!”
“다 죽여 버려!!”
아마도 이것이 이 상황의 원인이자, 저 녀석의 능력인 것 같았다. 멀쩡한 어인들을 선동하고 세뇌시키는 정신 교란계 능력.
정신 방벽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능력이 아니었다.
나는 의기양양한 션의 모습을 보며 작게 읊조렸다.
“녀석이 자신만만해하는 이유가 있었군.”
세뇌와 최면을 통해 어인들을 선동시키고, 완강한 어인들을 모조리 죽여, 해저 도시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 그 치졸한 계획은 벌써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반동분자 새끼들!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네놈들이 아틀리안을 더럽히고 있는 걸 정녕 모르는 것이냐!”
“흥, 더럽고 낡은 사상으로 지금껏 아틀리안을 망친 건 당신들이야!”
확실히 션의 세력이 우세했다. 션의 세뇌에 놀아난 젊은 어인들은 젊은 피와 힘을 이용해 대항하는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쪽 진영으로 넘어와라! 함께 새로운 아틀리안을 만들자!”
“너희들은 지금 속고 있다! 왜 그걸 모른단 말이냐!!”
여전히 소통은 불가능하고 진전이 없는 상황.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렇게 멍청한 녀석들이 많아서야, 어차피 망할 도시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금 본인의 의지보다는 최면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니까. 나는 조용히 박한별에게 말했다.
“저 녀석 처리할 수 있겠어요?”
박한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 뭘로 보고.”
자신감 넘치는 대답과는 달리, 박한별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녀를 가로막는 수천의 어인에게 겁먹었다기보다, 타겟의 미지의 힘에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한별 씨 실력이라면, 녀석이 한별 씨에게 최면을 걸기도 전에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싱긋 웃어 보이는 나에게 박한별이 말했다.
“알아요. 일단 다녀올게요. 그동안 도윤 씨는 뭐 하시려고요?”
“저도 갈 겁니다.”
“네?”
“저는 저 녀석을 처리해야죠.”
나는 가장 높은 첨탑 위에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 션을 가리켰다.
“그럼, 지금 당장 갈까요?”
“네, 션이 이상한 방어막을 그쪽에 쓸 수 없게 만들겠습니다. 그동안 처리해 주세요.”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박한별은 화륵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나 역시 청화의 도깨비불을 이용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종교 시설로 보이는 첨탑 위.
션은 목이 터져라, 조종당하고 있는 어인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가 평소보다 훨씬 더 크고 열정적이게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투지를 불태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션은 오직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어깨를 베고, 상처 입힌 쓰레기 자식을!
‘이쯤 되면 올 때가 됐는데…….’
션은 볼썽사납게 도망친 조금 전 모습을 회상하고는 이를 갈기 시작했다.
“감히……!”
그리고 생각했다. 녀석이 이곳에 나타나는 순간, 백배 천배로 갚아 주고 말 것이라고.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해.”
이를 바득 간 션은 자신의 옆에 대놓고 세워 둔 대역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상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를 없애기 위해 녀석은 우리를 저지하려 들겠지. 그 인간은 반드시 이곳을 찾으러 올 것이다.”
션의 말에 대역은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자신을 죽이러 온다는데, 떨지 않을 라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닌 저 녀석을 먼저 공격하는 순간, 녀석의 목숨은 내 것이나 다름없지, 크큭.”
사악한 션의 웃음을 본 대역 어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록 션이 공격을 막아 주겠다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이었다.
어깨 깊이 남은 상처, 까맣게 그을린 녀석의 등. 허겁지겁 달려오던 모습까지. 션은 어느 것 하나 믿음이 가질 않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믿을 것이라고는 자신의 등 뒤에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는 ‘진짜’ 최면술사였다.
한 번. 많아 봐야 두 번의 공격만 버티면 최면술사 라미르가 그 인간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을 살려줄 터였다.
대역은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공격 한 번만 버티면 돼. 한 번만. 인간이 아무리 강해 봐야…….’
화륵-!
“응? 이건 뭐…….”
투쾅-!
그러나 대역 역할을 하던 가재 어인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션이 옆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거대한 방망이를 든 여인이 서 있었다.
쓰러진 대역. 션은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인 여성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그리고 생각해 냈다. 저 여자의 정체를!
자신이 중앙박물관에 도착했던 순간, 이상한 보따리 안으로 몸을 숨겼던 여자였다.
‘저 여자가 왔다는 건…….’
긴장감을 끌어올린 션이 온몸에 방어막을 둘렀다. 전신을 감싸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적의 공격이 어디서 날아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곧이어, 지축을 흔들 만한 강한 공격이 들어왔다.
투쾅!
역시, 맨몸으로 받아 내기에는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방어막을 두르지 않았다면, 절명했을지도 모르는 공격.
오싹함을 느낀 션은 곧장 뒤를 돌아봤다.
공격을 날린 자는 역시 아까 그 녀석이었다.
흉흉한 기운을 흩날리는 인간을 보며 션은 생각했다.
‘넌 뒤졌어!’
작게 신호를 보내자, 바닥에 은밀하게 숨어 있던 진짜 최면술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당신 진짜 정체가 뭐예요?”
어느 순간부터 천우진과 함께 다니게 된 천지현은 기분이 이상했다.
“대체 몇 번을 물어보는 겁니까?”
“아니,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잖아요. 이런 보물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낸다는 게.”
천지현은 자신의 앞에 반짝이고 있는 아티팩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묻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젓는 천우진에게 한 발짝 다가간 천지현이 단호하게 물었다.
“진짜 미래에서 오기라도 한 거예요?”
이번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한 완강한 태도였다. 그러나, 그 꼿꼿한 태도는 이내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한 번만 더 물으면 저희의 동행은 여기까지 인걸로 알겠습니다.”
천우진의 최후의 통첩 때문이었다.
천지현은 분한 표정을 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천우진과 다니면서 얻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천가의 이름을 등에 업고도 얻기 힘든 히든피스들을 천우진은 밥 먹듯이 찾아냈다. 무려 다섯 개의 아티팩트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신화급 에고 소드까지 얻어 냈다.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믿기 힘든 상황.
앞으로 무엇을 얻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와의 연을 끊어 버리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천지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알겠어요.”
사실, 지금의 천지현은 천우진에게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천우진 덕분에 강해졌고, 그 덕분에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정체가 뭐냐며 떼를 쓰는 것보다는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이 예의였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얄미운 천우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조용히 입을 다문 천지현의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본 천우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네요.”
“…….”
“그렇다고, 너무 꽁해 있지는 말고요. 제가 저의 정체만 묻지 않고 비밀만 지켜 준다면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드린다고 했잖아요. 그게 어려워요?”
틀린 말 하나 없이 조곤조곤 말하는 천우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천지현은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뭐 해요. 당신보다 약한데.”
“지구에 저보다 강한 존재는 거의 없어요.”
“저보다 강한 존재도 거의 없겠죠.”
“……그것도 그러네요.”
큭 하고 웃어 보인 천우진은 인제 그만 가자며 천지현을 재촉했다.
이번에도 천우진은 얻은 아이템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무심했다. 마치 아티팩트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거들떠보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
이 점이 천지현이 천우진을 수상하게 여기는 점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는 녀석. 수상해도 너무 수상한 녀석. 그러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큰 도움을 주는 녀석.
천지현은 도무지 천우진을 파악할 수 없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하…… 진짜.”
천지현의 심경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그녀의 에고 소드 오로치의 검이 캬악거리기 시작했다.
오로치의 독을 흡수하고 비로소 완전체의 모습으로 변한 오로치의 검은 평소에는 하얀 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천지현의 명령에 따라 공격을 가할 것처럼 살기를 흩뿌리는 오로치의 검. 천지현은 강력한 힘을 가진 천우진이 이를 파악하기 전에 얼른 오로치의 검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천우진의 뒤로 따라붙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건가요?”
천지현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천우진이 대답했다.
“마지막 아티팩트를 찾으러 갈 겁니다.”
“마지막이요?”
천지현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천지현은 천성이 무인이자, 살수였다. 아직 그녀는 강해지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욱 강력한 힘을 내고 싶었고, 천우진을 꺾고 싶었으며, 가능하면 세계 최강의 자리도 노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벌써 마지막이라니…….
아쉬움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천우진이 싱긋 웃기 시작했다.
“아마 마지막 아티팩트를 손에 넣으면 지현 씨는 몰라보게 강해지실 겁니다.”
결연함까지 느껴지는 천우진의 목소리에 천지현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