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00화
100. 양양(1)
민망한 상황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트롤 한 마리가 B급 중에서도 최상위 전투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와 같은 수준의 실력이었습니다.”
“……!”
내 한마디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그중 나를 가장 아니꼽게 바라보던 30대 중반의 남성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고작 트롤이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웨어 울프나 미노타우르스는 최소 A급 이상의 실력을 가졌다는 소리인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현재 전국에 던전브레이크가 일어났지만 피해 상황은 아직 보고되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그들의 상태를…….”
헌터 협회 직원의 말을 들은 협회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내 말을 온전히 믿기는 힘들다는 말투였다.
“그 말이 사실인가?”
나는 인상을 구기며 대답했다.
“네, 방금 겪어 봐서 정확합니다.”
“명동은 피해 상황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그건 저와 이 친구가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흥!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상위 B급 헌터에 준하는 몬스터들 수십을 때려눕히고 상처 하나 없이 이곳에 왔다는 뜻인데,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헌터 협회 직원이 따지듯 물었다.
“왜 불가능할 거라고 믿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천가라도 최상위 B급 몬스터들 수십을 상대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둘 중 하나겠지,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애송이거나, 허언증 말기의 환자이거나.”
녀석은 힘을 전혀 배출하고 있지 않은 내가 만만해 보인 모양인지, 자연스레 말을 놓으며 소리쳤다.
“그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서서히 힘을 끌어올렸다. 아주 미약한 힘이었지만, 저 녀석에게는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을 정도의 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자, 주변 헌터 협회 직원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천가라며,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부터. 뉴스도 안 보고 사느냐고, 바가렐라가 인정한 천외천의 수장을 적으로 삼을 셈이냐며 그를 나무라는 사람까지. 모두 나의 편이었다.
따지던 직원은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는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자자, 그만!!”
상황을 중재한 것은 다름 아닌 고영환이었다.
고영환의 목소리가 장내에 깔리자, 놀랍도록 고요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고개를 돌린 고영환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인가? 자네가 말한 몬스터의 수준이 정말…….”
“예.”
망설임 없는 대답에 백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진위를 가리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물러서지 않은 채 그 눈빛을 마주했다.
“……자네.”
협회장은 여전히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과장님! 충북 청주지역 아밀 길드가 전멸이라고 합니다.”
“뭐?”
“김 부장님! 강원 양양지역의 일검 길드, 경기 북부 유니언 길드 모두 사망…….”
곳곳에서 피해 규모를 보고하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를 들은 비상 대책 위원회 직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느 것 하나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 없었다.
“그게 무슨……!”
“이제야 제 말을 좀 믿으시겠습니까?”
나는 달라진 그들의 눈빛을 하나하나 바라보다 말했다. 현 상황은 부정할 수 없는 국가 재난 상황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야 정상이라는 말이다.
“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복잡한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빠르게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상황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이제부터 도태되는 인간은 모두 죽고 말 터. 나 역시 꾸준히 강해지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그래야 따라잡히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웬만한 일은 웃으며 하자는 주위지만 도저히 웃을 수가 없는 상황이구먼.”
백호 고영환 역시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한마디에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한 직원들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대책이라……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이 있는가?”
고영환이 물었다. 나는 직원을 대하듯 묻는 모습에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은 묘하게 거스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레벨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지금은 힘들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수월해질 거라는 소리입니다.”
고영환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랭커 위주로 안전한 사냥을 후에, 레벨을 올린 랭커를 주축으로 저렙들을 안전하게 사냥하게 만드는 것이 관건입니다.”
“만약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속도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지면 어떻게 할 건가? 랭커들 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지면 말이야.”
고영환은 나의 의견에 날카롭게 질문을 해 왔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나도 생각했던지라,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위험하지만, 랭커와 초심자를 섞어야겠지요. 전력이 약해지는 대신, 레이드 팀의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겁니다.”
이에, 많은 헌터 협회 직원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들려오는 많은 사망 소식과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명 점령당하는 지역이 생겨나고 말 테니까. 몬스터들이 지역을 점령하고, 세력을 키우는 순간, 몇 배의 전력이 추가 투입되어야 탈환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경험을 많이 쌓은 초심자들은 그 누구보다 강해질 겁니다.”
“말도 안 됩니다. 많은 플레이어를 희생양 삼아 쌓아 올린 실력이 희생당한 플레이어들의 실력을 합친 것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던 헌터 협회 직원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협회장은 고민이 깊어진 듯 턱을 괸 채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그래. 첫 번째는 안전한 방법이긴 하지만, 시간이 기다려 줄 것 같지 않군.”
“회장님!!”
여기저기서 반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헌터 협회장이네.”
위압적이고 날카로운 눈매를 빛내는 고영환의 목소리에 모두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
“한국의 미래를 희생시켜 현 상황을 막을 순 없어. 그렇게 위험을 무마한다 한들, 한국의 생존이 길게 갈 것 같지도 않고.”
그의 대답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맞습니다. 항상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죠.”
그에 고영환 회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설마…… 자네, 나를 시험한 건가?”
심각해진 고영환의 표정을 보며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어떤 결정을 한다고 해도 리스크는 결코 적지 않으니까요. 저는 전자의 선택이 더욱 마음에 들었을 뿐입니다.”
“흠…….”
고영환은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역시 많은 희생이 따르는 결정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울리지 않게 뜸을 들이는 고영환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노인네군.’
“왜 웃지?”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출발했으니까요.”
내 대답에 고영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천가가 움직였다는 말인가?”
고영환의 물음에 장내가 술렁였다. 천가는 원래 헌터 협회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었다. 서로 협력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영향력으로 봤을 때, 천가가 압도적인 상황이었다.
하여, 헌터 협회에서 천가에게 던전 브레이크를 막으라고 요청은 할 수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고영환은 나에게 그 요청을 하려던 참이었을 것이다.
“네, 일단 점령당할 가능성이 큰 오지 지역과 헌터 전력이 취약한 서울 경기 이외의 지역으로 보내 놨습니다.”
“자네가 말인가?”
“네, 이래 봬도 천가의 이인자입니다.”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고영환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목소리로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고맙네.”
그 묵직한 음성이 가슴을 울리는 기분이었다.
고영환의 표정은 마음속 짐을 한결 덜어 낸 듯한 얼굴이었다.
그만큼 천가의 전투력을 믿고 있는 모양.
나는 고영환을 향해 말했다.
“아닙니다. 앞으로는 플레이어들도 대폭 늘어날 겁니다. 협회장님은 그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클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당분간은 저희가 최선을 다해 틀어막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네.”
협회장은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은 수십 년을 단련한 사람의 손처럼 딱딱했다.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수련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멋진 손이군요.”
“자네만 할까.”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백호 고영환은 싱긋 웃으며 직원들에게 말했다.
“천가가 출동한 오지 지역을 제외한 다른 곳에 병력을 추가투입 하고, 실시간으로 보고할 수 있도록!”
“네!”
동시에 대답한 헌터 협회 직원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고영환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럼, 우리의 이야기를 해 볼까?”
나와 박한별이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말하려는 듯했다. 나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재빨리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나중에 하시죠. 당장 급한 것은 그게 아닌 것 같으니까요.”
“허허, 그런가?”
“이곳, 이곳, 이곳들을 제외한 가장 심각한 지역이 어디입니까?”
나는 핸드폰을 들어 실시간으로 보고된 지역을 찍어가며 고영환의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놀란 눈으로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한 곳을 찍었다.
“강원도 양양입니다. 이곳으로 들어간 헌터들은 생존자 없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가죠, 한별 씨.”
“네. 이미 준비 끝났어요.”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박한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나 역시 뒤를 돌았다.
이런 곳에서 탁상공론을 펼치는 일보다, 발로 뛰는 것이 내 성격과 훨씬 잘 맞는 일이었으니까.
거침없는 발걸음을 바라본 고영환이 다급히 우리를 불러 세웠다.
“잠깐!”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설마, 둘이 가려는 겐가?”
믿을 수 없다는 물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예.”
나와 박한별의 대답에 미간을 찡그린 고영환이 말했다.
“너무 위험하네.”
“아무리 위험해도 제 몸 하나 내뺄 정도는 됩니다. 여기 있는 한별 씨도 마찬가지고요.”
우리의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상대가 대악마나 오니들의 왕 정도가 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제 한 몸 건사할 능력은 갖추고 있었다.
“노파심에 하는 소리야, 조금이라도 병력을 갖추고 가는 것이 어떻겠나? 필요하면 협회의 병력을 내줄 수도 있고 말이야.”
“괜찮습니다.”
극구 사양하고 있음에도, 고영환은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이렇게 희생하는 가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나, 뭐라나.
고영환은 기어코 헬리콥터와 도주에 특화된 능력치를 갖춘 협회의 간부 하나를 붙여 주고 나서야, 우리를 놓아주었다.
“정말 한 명으로 괜찮겠나? 중대 하나 정도는…….”
“괜찮습니다. 어중간한 실력자는 짐만 될 뿐입니다.”
“그렇군…… 못다 한 이야기는 일이 수습되고 나서야 할 수 있겠구먼. 부디 몸조심하게.”
“예, 헬기 감사합니다.”
“…….”
나는 옆에서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직원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얼른 말을 덧붙였다.
“……이분도요.”
“허허, 그래. 어서 출발하게. 늦으면 피해 규모만 더 커질 테니까.”
‘지금 누구 때문에 늦어졌는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참아 냈다. 혹이 더 붙긴 했지만, 헬기를 빌렸으니 크게 손해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서둘러, 헬기 위로 올라섰다. 박한별이 올라서고, 뒤이어 헌터 협회 직원이 올라섰다.
“그럼 조심하게!”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강원도 양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