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2화
82. 야차(夜叉)(2)
“도윤 씨…….”
박한별은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내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40층으로 내려가는 입구.
그곳은 확실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괜찮을 겁니다. 아래층이 오히려 더 안전할 수도 있어요.”
“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박한별을 바라보자,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보면 압니다. 들어가시죠.”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어두컴컴한 입구로 들어갔다.
“가, 같이 가요!”
박한별 역시 황급히 따라 들어왔다.
흑색 빛이 눈가를 뒤덮고, 점차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하자 황무지와 같은 척박한 땅과는 상반된 풍경의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죽음과 관련된 곳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평화로움을 자랑하는 그곳에는…… 악마들이 있었다.
주변을 확인한 박한별은 천천히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
그와 동시에 일렁이던 도깨비불이 꺼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한별 씨!”
“아, 예 죄송해요. 너무 놀라다 보니.”
박한별은 내가 준 마나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도깨비불의 화력을 올렸다.
그러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악마들이…… 평화로워 보이네요.”
대답을 바라는 것인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겉으로 보기에만입니다.”
나도 처음엔 그들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날아든 노파의 공격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시장에서 벌어지던 그 생각하기도 싫던 광경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같은 동족을 유린하고, 싸움을 붙이고, 죽음으로 내모는 모습. 이를 보며 킬킬대는 악마들의 얼굴은 말 그대로 악마 그 자체였다. 종족의 본성을 그대로 박아 놓은 듯한 모습.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 재생되자, 점점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윤 씨?”
이를 눈치챈 박한별은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일단 이리로 오시죠.”
나는 박한별을 시장으로 잡아끌었다. 시장 안은 내가 왔을 때보다도 더욱 북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40층에 사는 악마 중 절반 이상은 쓸어버렸을 텐데…….’
어째 악마들이 이전보다 더 많아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가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시장은 어느새 새것처럼 복구되어 있었다.
‘하긴, 그곳과 이곳의 시간은 다르니…….’
고개를 끄덕인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시장의 중앙부로 향했다.
여전히 투기장이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북적거리는 악마들을 뚫고 중앙에 도착하자, 투기장이 있던 위치가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미친놈들이!”
그곳에는 가드 라인이 그대로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곳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소리친 나는 점점 가까이 들어오는 투기장을 눈에 담았다. 그 당시 내가 내리친 번개로 인해 검게 그을린 모습 그대로의 땅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저기 뭐라고 쓰여 있는데요?”
박한별의 손짓에 나는 그녀의 손을 따라갔다.
투기장의 정중앙. 작게 쌓아 올린 흙 봉우리에 작은 팻말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다가가자, 알 수 없는 언어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 팻말을 빤히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암살이에게 물었다.
‘읽을 수 있겠어?’
[죽음의 군주 ‘암살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죽음의 군주 ‘암살이’가 ‘투기장 여는 새끼 있으면 뒤진다. -주인백-’이라고 쓰여 있다고 말합니다.]
암살이의 말을 들은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할매답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닙니다, 가시죠. 새로운 동료를 소개해 줄 테니.”
“동료요? 설마…….”
박한별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이곳은 말 그대로 악마들의 소굴. 이곳에 동료가 있다는 말은 곧 그 동료가 악마라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충분히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손을 들어 그녀를 진정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인간입니다.”
“인간이요? 그럴 리가…….”
“저희도 들어왔지 않습니까.”
내 대답에 박한별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믿기 힘들지만, 믿어 보겠다고 애써 노력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박한별의 태도에 작게 미소 지은 나는 40층에 존재하는 건물 중 가장 우뚝 솟은 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악마 제이 로베루스 백작이 사용했던 건물이지만, 지금은 영혼 수리공 김수민이 사용하고 있을 그곳을 향해.
* * *
“쫄기는…….”
천지훈은 잔뜩 긴장한 잭과 밀러를 바라보며 왼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너, 너!!”
잭은 핏발 선 눈으로 천지훈을 바라봤다. 그것은 밀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천진훈이 풍기는 기운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겁먹지 마라. 주인님의 부하들을 건드릴 생각은 없으니.”
자신보다 한참이나 약했던 천지훈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잭과 밀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천지훈이 내비치는 독살스러운 기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죽이지는 않으마. 대신 복종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눈알을 뽑아 버릴 테니.
천지훈의 눈빛과 기운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잭과 밀러는 천천히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치욕스러운 느낌에 잭의 얼굴은 한없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천지훈은 웃음을 터트렸다.
“큭. 천하의 아드리안 길드가…….”
그리고 이내 생각에 잠긴 듯한 천지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항상 궁금했었어. 가문의 핏줄도 아닌 놈들이 모여 만든 허접한 단체가 어떻게 천가보다 더 높은 명성을 지닐 수 있는지 말이야. 이제야 의문이 좀 풀리네.”
“…….”
“크크큭. 뭘 그렇게 노려보고 그래, 동료끼리. 싸우고 싶어? 남은 다리 한 짝도 못 쓰게 해 줄까?”
천지훈의 광기 어린 눈빛에 잭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아, 아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잭은 자신이 운영하는 길드를 깔보기 시작한 천지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개 같은 천가 놈들…….’
천가의 막내 천도윤, 같은 팀인 천지훈. 둘 다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갈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분하게도 현재는 힘이 따라 주지 않는 상황이었다.
‘크윽! 내가 힘만 키우면……!’
“어떻게 하긴, 이젠 세상의 모든 헌터들이 우리를 노리기 시작할 거다. 주인님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대기한다.”
어느새 지위가 뒤바뀌어 버린 천지훈이 대답했다. 아드리안 길드의 잭과 밀러는 조용히 녀석을 바라봤다.
잭과 밀러는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놈이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주인님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니, 결국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네놈이 될 것이라고.
“아, 주인님이 너에게 이걸 전해 주라고 하더군.”
돌연 날아든 천지훈의 말에 잭과 밀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주인님과 소통할 수 있나?”
“크크크.”
천지훈은 가소롭다는 듯이 잭과 밀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곳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마지막 패가 사라진 잭과 밀러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천지훈을 바라봤다.
“크큭.”
비릿한 미소를 지은 천지훈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잭의 앞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툭.
녹색 액체와 검붉은 액체가 사방에 튀었다. 얼굴에 튀긴 검붉은 액체를 닦아 낸 잭은 아래를 바라봤다.
물건을 확인한 잭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는 악마의 신체가 떨어져 있었다.
두 쪽의 다리와 하나의 팔.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풍겨 나오는 육신이었다.
각각 다른 피부색의 신체를 마주한 잭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밀러!”
거대한 팔과 다리를 앞에 둔 잭은 뒤를 돌아 밀러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악마의 팔다리만 제대로 이식하면 네놈 따위는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마’라고.
복수의 씨앗을 불태우는 잭의 주위로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 * *
성에 들어온 우리를 반기는 이는 젊어 보이는 외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40층의 지배자, 김수민이었다.
김수민은 성에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나무라기 시작했다.
“빨리도 왔다.”
“이곳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은 다른 거 알잖아.”
내 변명 아닌 변명에 김수민은 손을 훠이 저었다. 그러고는 박한별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쪽은 여자친구?”
“아니야.”
“큭, 아니긴…… 어?”
김수민은 박한별을 바라보다, 그녀의 주위로 일렁이는 도깨비불과 등에 멘 도깨비방망이를 바라봤다.
“너 설마, 이 사람에게 준 거야?”
김수민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방망이의 원래 주인은 김수민.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녀에게 숨긴다 한들 숨길 수 있을 리도 없거니와 숨길 이유도 없었다.
내 대답을 들은 영혼 수리공 김수민은 흥미롭다는 듯이 박한별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초면에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지만, 김수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도깨비불을 만져 보기도 하고, 후 불어 보기도 하며 한참이나 관찰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김수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리며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찾았어?”
뜬금없는 질문. 나는 당황했다.
“대체…… 뭐를?”
그게 무슨 소리냐 묻기도 전에 김수민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여자, 어떻게 찾았냐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너 정말 모르고 준 거야?”
제대로 된 회포를 풀기도 전에 나를 몰아치는 김수민의 태도에 약간 열이 올라온 나는 소리쳤다.
“좀 알아듣게 설명해!”
그러나 김수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박한별의 양어깨를 잡은 뒤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깨비방망이를 받고 상태창이 바뀌지 않았나요?”
돌연 날아든 질문에 박한별은 입을 떡 벌렸다.
아무도 알지 못하던 사실을 처음 본 여자가 알아차렸으니, 놀라운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상태창을 엿본 상태였기 때문에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걸 어떻게……?”
놀란 박한별이 물었다. 김수민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나는 그녀가 더 놀라기 전에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원래 아이템의 능력…….”
“아니야!”
내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수민이 소리쳤다.
“나는 한 번도 특성이 변한 적이 없어.”
그녀의 대답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리가……!
그녀는 도깨비방망이뿐만 아니라, 도깨비감투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성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그렇다는 것은 오직 박한별만 특성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김수민은 단번에 그것을 알아본 것이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의아함을 내비치고 있을 때, 그녀는 짐짓 심각해진 말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도 찾지 못했는데…….”
“알아듣게 좀 설명해 봐. 아까부터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소리치자 김수민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 일가는 한평생 어떤 가문을 찾으러 다녔어. 그게 숙명이었지.”
갑자기 심각해진 분위기. 나는 그녀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세 가지 물건을 물려받았다. 하나는 도깨비방망이, 하나는 이 도깨비감투.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도깨비거적.”
“…….”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물건이 아니었어. 잠시 맡았을 뿐이지.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잘 보존하다 건네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었다. 선조부터 내려온 언약이자, 영혼의 맹세였어.”
나는 조용히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는 한없이 진중한 눈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벙끗거리던 김수민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
“그런데 몇 대에 걸쳐서 찾던 존재가 네 옆에 붙어 있었다니…….”
김수민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로 내 정신을 흩트려 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박한별이 김수민에게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 오랜 기간 찾고 있었던 존재라는 것.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여자, 우리 가문이 애타게 찾던 후예(後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