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1화
81. 야차(夜叉)(1)
도깨비방망이로 인해 실력이 대폭 향상된 박한별은 A급 던전을 간단히 클리어한 뒤, 던전의 입구를 향해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봤다.
“도윤 씨가 갑자기 웬일이지?”
“그러게요. 요즘 영 뜸하더니.”
박한별의 옆에 있던 김지선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김지선은 최근 천도윤 때문에 꽤 고생한 이력이 있다.
저번 가나 레이드로 인해 단숨에 전 세계의 이목을 받게 된 천외천. 그곳에 속한 박한별. 이를 알게 된 기자들은 우마 길드로 우후죽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단단히 대문을 걸어 잠근 천가에게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개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빠득.
이를 간 김지선이 천도윤을 향해 다가갔다.
“도윤 씨! 그동안 연락도 안 되고 대체 어디서…….”
한참을 쏘아붙이려던 김지선은 입을 헙 하고 다물었다. 베일 듯 날카로워진 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대체 무슨……?’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높아진 그의 격을 마주한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천도윤이 자신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자신의 마스터를 향해 다가갈 때까지도 김지선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눈을 가진 천도윤이 박한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마주한 둘.
먼저 입을 연 것은 천도윤이었다.
“도와주시죠.”
“두 번째 부탁인가요?”
박한별은 일전에 했던 약속을 상기시키며 물었다. 일 년에 두 번. 적다면 적다고 할 수 있는 계약 조항이었지만, 천도윤의 부탁은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난이도였다. 3명의 멤버로 등급 외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이번에는 무슨 부탁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박한별로서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뇨, 계속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건 계약 위반일 텐데요…….”
“우마 길드가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난데없이 날아드는 경고.
그 모습에 왈칵 표정을 구긴 박한별은 천도윤의 모습을 빤히 살폈다. 아무리 봐도 협박하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다는 건…….
짐짓 심각해진 박한별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죠?”
“일단 가시죠. 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천도윤의 얼굴을 바라보던 박한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그게 정말인가요?”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박한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도윤 씨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저희는 모두 죽고 말 거예요. 악마도 아닌 그의 수하로 인해 각국의 대표들이 전멸할 뻔했다니…….”
“예, 사안이 심각합니다. 그래서 한별 씨를 불러들인 거고요.”
“제가 뭘 할 수 있다고…….”
박한별의 자신감 없는 태도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믿을 수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리 소심한 태도라니…….
“한별 씨는 본인의 가능성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나는 박한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능력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오직 특성 하나만으로 온건하다 못해 꽤 멋들어진 길드를 세운 인물. 도깨비방망이의 주인. 아이템 하나 꼬나들었다고 야차라는 전설급 특성으로 진화해 버린 믿지 못할 재능을 가진 헌터.
그녀는 결코 한국이라는 좁은 무대에서 놀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을 믿으세요.”
내 말을 들은 박한별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정확한 뜻은 알지 못했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한마디였다. 작게 미소 짓고는 말했다.
“감사 인사는 조금 이따 받을게요.”
나는 어느새 도착한 가문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여기는……?”
“따라오세요.”
웅장한 천가의 경치를 구경할 새도 없이 나는 그녀를 잡아끌었다.
여기저기서 시선들이 날아왔다.
집안에 외부의 인물을 데리고 온 것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장면이었는데, 끌고 가듯 데려가는 모습이 썩 오해하기 좋을 장면이겠지.
그러나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은 저런 저급한 시선에 신경 쓰기에는 일 분 일 초가 급한 상황이다.
“도윤 씨, 대체 어디로 가는 건가요?”
한참을 걷던 박한별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소매를 놓은 뒤 말했다.
“여기요.”
나는 그녀에게 두 명의 직원이 지키고 서 있는 어두컴컴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출입 엄금]이라 적혀 있는 팻말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내가 박한별을 끌고 올 때부터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던 직원 두 명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흑운!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이곳은 가주님의 명으로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 크헉.”
“시끄러워, 시간 없으니까.”
경비 한 명이 눈깔을 뒤집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깜짝 놀란 남은 경비가 긴급상황을 알리는 호출벨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털썩.
경비는 성공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뒤를 돌아 박한별에게 말했다.
“가시죠.”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문의 이인자라는 사람이 이래도 돼요?”
“급해서 그래요.”
싱긋 웃은 나는 그녀를 낡은 건물 안으로 이끌었다.
거미줄이 사방에 처져 있고, 쥐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울리고 있었지만, 나는 발걸음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를 수 있었다.
인버스 타워의 입구에.
“여긴……?”
불길한 기운을 느낀 박한별은 인상을 찡그리며 검은빛이 새어 나오는 입구를 바라봤다.
“던전이군요.”
“네, 저희 가문에서만 사용하는 던전입니다.”
내 대답에 박한별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그럼 던전 브레이크는……?”
“특수한 던전이라 던전 브레이크는 일어나지 않아요. 게다가 일생에 단 한 번만, 출입이 가능하죠. 게다가 레이드 가능 인원은 단 한 명뿐입니다.”
나는 인버스 타워의 특징에 대해 줄줄이 읊어댔다.
“특수한 조건이 있는 던전은 몇 번 봐서 알고 있지만, 이렇게 까다로운 던전은 처음이네요. 도윤 씨도 다녀왔나요?”
“네, 두 번이요.”
“방금 일생에 한 번밖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치매라도 걸린 거냐는 듯 나를 바라보던 박한별에게 나는 품에서 꺼낸 티켓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이것만 있으면 재출입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는 품을 뒤적거리다 또 다른 티켓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박한별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박한별은 의아한 얼굴로 괴이한 문자가 아로새겨진 검은색 티켓을 흔들며 물었다.
나는 흑색의 티켓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동반 출입증이요.”
암살이가 일전에 나에게 건넨 두 개의 아이템. 하나는 인버스 타워를 재출입할 수 있는 티켓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것.
[동반 출입증]이었다.
“세트 아이템 맞추러 가시죠.”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한별을 던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 * *
29층까지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죽음의 군주와 그의 머리 위에 올라탄 우마가 눈 깜짝할 새에 몬스터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마!!”
사실상 암살이의 머리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명령만 내린 우마였지만, 우마는 마치 자신이 다 한 일인 것처럼, 허리춤에 손을 올린 뒤 위풍당당한 모습을 내비치고 있었다.
“우마마!!”
그 허세가 가득 낀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박한별은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크흡!”
얼굴까지 빨개져서는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환하게 웃으며 우마에게 달려든 박한별은 도자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우마를 들고는 빤히 바라봤다.
귓가로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큭 웃고 말았다.
그리도 좋을까.
하긴, 애정하는 길드의 상징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그들의 재회를 감상한 나는 조용히 품속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30층부터는 산 자는 엄청난 페널티를 받게 되는 장소였다. ‘망령화’를 가능케 만들어 주는 사념의 망토를 꺼내든 나는 우마의 얼굴에 자신의 볼을 비비고 있는 박한별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도깨비불을 상시 유지하세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박한별에게 나는 마나 포션이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꽤 묵직하고 질 좋은 마나포션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박한별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건……?”
“투자입니다.”
질 좋은 마나포션은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헌터들은 자연히 마나가 차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사냥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박한별은 망령화를 사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도깨비불이 끊기는 순간, 엄청난 페널티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빠르게 40층까지 내려가 영혼 수리공을 만나는 것이 중요했다.
“가시죠. 시간 없습니다.”
나는 도깨비불로 자신의 몸을 모두 덮은 박한별을 확인하고는 30층으로 향하는 입구로 몸을 던졌다.
* * *
“끄아아악!! 죽여 버리겠어!!”
두 다리와 팔을 잃은 잭은 바닥을 미친 듯이 내리치며 소리쳤다.
“개새끼! 씨발 새끼! 좆 같은 새끼!”
내장을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새끼라며 울부짖는 잭의 옆에는 무표정의 밀러 와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킬킬대는 천지훈이 서 있었다.
“웃어?”
잭의 빨개진 눈이 천지훈을 노려봤다.
“크큭. 내 입으로 웃지도 못하나? 크흐흐흐. 내 동생이 그렇게 강하던가?”
“너 이 새끼!”
그 순간 참지 못한 잭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고는 금빛 광선이 섬광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아아앙-!
모든 것을 삭제할 듯 쏘아져 나간 광선은 검은 낙뢰에 부딪혀 소멸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잭의 눈이 흔들렸다.
분명, 자신의 광선을 맞고는 반쯤 몸이 날아갈 줄 알았던 천지훈이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인 탓이었다.
“크흐흐흐.”
녀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재밌다는 듯이.
그 광기 어린 모습에 잭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분명 얼마 전에 만났던 녀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왜 이 좋은 것을 이제 알았을까?”
녀석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와 있었다.
“벌레 같은 녀석들만 죽여서 바치면 되는데 말이야.”
혼잣말이 조금 더 커졌다.
“주인님이 강해지는 것만큼 나도 강해진다…… 크으. 아주 잃을 게 하나도 없는 장사야.”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모습에 잭과 밀러는 닭살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안색은 파리하게 질리고 말았다. 주인님을 처음 봤을 때 느끼던 아득한 공포감이 재현되기라도 한 듯 파도처럼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몸을 떨기 시작한 잭이 천지훈을 바라봤다. 분명 자신보다 한참이나 늦게 재물을 바치기 시작했으며, 녀석은 주인님의 눈에 든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이 정도의 무력이라니…….
잭은 믿을 수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혼자 생각하던 잭은 저도 모르게 녀석을 향해 물음을 내던졌다.
깜짝 놀란 잭은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음을 깨닫고, 천지훈에게 물었다.
“주인님에게 또 다른 힘을 받은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잭은 물어보면서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주인에게 바친 재물만 일만 명.
그 이상을 이렇게 단기간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지훈은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지 않은 채 중얼거릴 뿐이었다.
“음…… 강한 자를 바치면 어떻게 될까? 주인님도 더 강해지려나? 그럼 나도 당연히 강해지겠지?”
재밌겠다는 듯 킥킥대며 미소를 지은 천지훈의 얼굴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잭과 밀러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 번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