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39화
39. 죽음의 탑(1)
천지훈과의 대련 후 가문 내의 분위기는 많이 변해 있었다.
더 이상 나를 우습게 보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발, 진짜 혈통빨…….”
“미친놈아! 조용히 말해! 둘째 도련님이랑 대련한 거 못 봤어? 우리 진짜 좆될 수도 있다고!”
다급해진 2급 생도가 동료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거리던 생도는 상황 파악을 하고서는 동료의 손을 떼고 더 작은 소리로 물었다.
“설마 저번에 왔을 때 우리가 욕한 거 눈치챈 건 아니겠지?”
“나야 모르지. 야, 눈 깔고 가. 빨리!”
2급 생도 무리는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쓰게 웃었다.
나를 좋게 보는 시선 또한 없었다.
그저 굴러들어 온 돌. 혹은 타고난 핏줄로 노력도 없이 강해진 놈이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쯧…….”
나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멸시와 비아냥은 어느새 시기와 질투, 그리고 두려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이 더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곳곳에서 날아드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천우진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간 나는 곧장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쨍그랑-!
“미친놈이세요? 왜 컵을 던지고 지랄이야!”
“미친 건 너지 이 또라이야! 대체 뭔 짓을 벌인 거야 너!”
날카로운 녀석의 잔소리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가.”
“왜 뜬금없이 나타나서 일을 키우냐고 키우길! 당분간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잖아!”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래는 조그만 날갯짓에도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긴.”
천우진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씩씩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큰아버지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다.
누가 그날이 차기 가주 임명식인 줄 알았냔 말이다.
나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천우진의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보면 볼수록 신기해서.”
“내가 웃겨?”
탁자에 놓인 또 다른 유리컵을 집어 든 천우진을 말리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신기해서…….”
우리는 잠시간 아무 말이 없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천우진이었다.
“……고마워해라.”
“고맙긴, 지 때문에 죽은 건데.”
천우진은 내려놓던 컵을 다시 들어 올렸다.
“아, 알겠다고. 그나저나 알아봤어?”
“아니.”
“뭐 했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천우진은 발끈했다.
“뭘 뭐 해, 뭐 하긴! 네가 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놈들 찾으러 다녔지! 찾으면 밥 먹이고 어르고 달래가며 꼬시고, 그러면서 내 수련도 해야 하는데 할 시간이 있겠냐?”
“어휴, 널 믿은 내가 바보지.”
“진짜 뒤질래?”
녀석은 결국 남은 유리컵을 집어던졌다.
가볍게 피하고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아오!”
웃는 얼굴로 녀석을 나무라고는 있지만, 녀석이 누구보다 뒤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천우진은 나보다 더 가문의 몰락을 막기 위해 애쓰는 놈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왜 보자고 한 거야?”
“전해 줄 게 있어서.”
“전해 줄 거?”
천우식은 뒤를 돌아 자신의 침대로 향했다.
“그런 취향이었어?”
“죽고 싶으면 한마디만 더 해 봐!”
천우진은 뒤를 돌아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입을 헙 다물었다.
저 웃음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지나가던 개도 아는 사실이었다.
매섭게 나를 한번 쏘아붙인 천우진은 다시 침대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침대와 바닥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거 구하느라 고생 좀 했다. 끄응~!”
녀석이 꺼낸 것은 거대한 상자였다.
“이게 뭔데?”
“가주님께 전해 드려. 내년에 사용하시라고.”
“내년? 아……!”
천우진은 나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시기에 가문에 들러붙어 있기도 했거니와, 가문의 몰락 후 누구보다 가문의 정보를 세세하게 조사하던 녀석이었으니까.
아마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알고 있으리라…….
나는 무거워진 표정으로 천천히 상자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윽!”
역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뭐야 이게!?”
“사념의 망토.”
“그러니까 이게 뭔데……?”
“가주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잖아. 이것만 있으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어.”
아무도 몰랐던 시미즈가의 능력.
그 능력으로 인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후에 시미즈가가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능력이 세상에 밝혀지긴 했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그 능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파훼법이 있었어?”
“그래, 이거!”
나는 녀석이 들이민 망토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망토의 능력을 확인했다.
‘……미친!’
나는 놀란 눈으로 아이템을 바라봤다.
“이것만 있으면 가주님이 홀로 쳐들어간다고 해도 그 능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어.”
천우진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런 천우진을 보며 말했다.
“나도 가.”
“……뭐?”
“일본에 나도 간다고. 나뿐만이 아니라 스승님도.”
녀석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비밀로 하라고 하셨지만, 이 녀석에게만큼은 말해야 했다. 가장 믿을 만한 녀석이었으니까.
천우진은 버럭 소리쳤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가! 이 미친놈아! 약해 빠진 새끼가!”
“너도 못 봤구나?”
“보긴 뭘 봐!”
나는 대략 그날 있었던 상황에 대해 녀석에게 말해 줬다.
“그 말을 믿으라고?”
“내가 이겼다니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내가 진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열은 없는데…….”
천우진은 내 머리에 손을 짚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라고! 그러니까 저건 필요 없어.”
“미친놈.”
“아니 진짜라니…….”
“그럼 보여 줘 봐!”
“아오.”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천우진을 바라봤다.
녀석은 내가 보여 주기 전까지는 절대 믿지 않을 기세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손을 뻗어 흑운을 개방시켰다.
천우진의 방을 흑운이 완전히 감싸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암살이를 불러일으켰다.
“나와!”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반지로부터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데스나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흑운의 힘을 두르지 않은 녀석의 온전한 형태.
암살이를 확인한 천우진은 경악했다.
쿠오오오오오.
암살이는 낫을 들어 올리고는 위협적으로 천우진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뭐 해! 내 동료야! 그만해!”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조금 전 주인님을 공격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당장 녀석의 목을 취해…….]
“들어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녀석을 빠르게 불러들였다.
점점 갈수록 호전적으로 변하는 것이 영 불안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앞을 보니, 공포에 질린 천우진의 표정이 보였다.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감이 뛰어난 녀석이니, 얼마나 강력한 녀석인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았겠지.’
녀석은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조금 미안해졌다.
나는 단지 자질구레한 설명보다는 한 번 보여 주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한 것뿐이었다.
나는 넋이 나가 있는 녀석을 불러 세웠다.
“정신 차려!”
“너, 너…….”
“이젠 말까지 더듬냐?”
“너 뭐야, 대체! 이건 또 뭐고!”
나는 천천히 녀석에게 내 능력에 대한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마와 암살이를 얻게 된 과정부터 인버스 타워에서 있었던 일까지 모두 설명해 줬다.
내 말을 모두 들은 천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녀석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속에 숨겨 왔던 말을 결국, 참지 못하고 뱉어 냈다.
“그러니까 이 망토 나 줘.”
“왜 이야기가 거기로 새, 미친놈아!”
어느새 정신이 번쩍 든 천우진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차피 여러 명이 가니까 필요 없잖아!”
“필요 없긴 왜 없어! 한 명이라도 사용해야지!”
“아, 알겠어. 알았으니까, 그럼 빌려줘! 내가 아버지 가져다드릴 테니까, 그전에 조금만 쓰자.”
“이거 완전 미친놈일세.”
“미친놈 할 테니까, 제발.”
나는 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듯 천우진에게 매달렸다.
천우진은 진짜 정신 나간 사람을 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우, 또라이!”
“어. 또라이 할게, 제발!”
천우진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이 있겠지. 맘대로 해.”
“아싸!”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냄새가 펄펄 풍기는 사념의 망토를 집어 들었다.
“할 말 없지? 난 간다!! 당분간은 연락 안 될 거야!”
소리친 나는 서둘러 천우진의 방을 빠져나왔다.
“야야! 야!!”
멀리서 들려오는 천우진의 말을 무시한 채.
* * *
빠르게 달려 내 방에 도착한 나는 천천히 사념의 망토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낡은 망토.
나는 다시 한번 조금 전 확인한 상세 내용을 점검하기 위해 망토를 집어 들었다.
망토에 새겨진 상세 내용은 이러했다.
[사념의 망토]
등급: 유니크
효과: 마나 +200, 스킬 ‘망령화’, ??
설명: 죽은 자의 사념이 깊게 베인 망토입니다. 망토를 입으면 ‘망령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장 바라마지않던 능력.
정말 뜻밖의 수확이었다.
뿌듯한 표정을 지은 나는 주머니 안에서 암살이에게 건네받은 두 개의 아이템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작고 낡은 양피지 조각.
빛바랜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경계 출입 허가서-죽음]
* * *
에일듯한 삭풍이 공간을 채우는 곳.
메마른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작은 풀잎마저 존재하지 않는 삭막한 공간…….
검붉은 안개가 지옥을 연상케 하는 곳.
그곳에 내가 서 있었다.
[‘망령화’의 효과로 육체의 구성이 허물어집니다.]
[영혼이 심각하게 훼손되면 영영 복구할 수 없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섬뜩한 문장에 현재의 위치가 슬슬 실감 나기 시작했다.
“후…….”
깊게 숨을 내쉬자, 하얀 연기가 눈을 가렸다.
“춥네.”
물속을 부유하듯 둥둥 떠다니는 느낌은 굉장히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여기가 30층이라는 말이지?”
나는 스킬 망령화와 경계 출입 허가서를 이용해 인버스 타워 30층에 들어와 있었다.
“다시는 못 올 줄 알았는데…….”
인버스 타워의 출입은 평생 오직 한번. 솔로 플레이만 가능한 곳이었다.
암살이가 허가증을 건네고 천우진이 사념의 망토를 건네기 전까지는 이곳에 또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잘된 거지 뭐.”
느리게 흐르는 검은 강물을 바라봤다.
이곳은 시간은 바깥의 시간과는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바로 저 강물처럼.
암살이의 말을 빌리자면 여기서의 한 달이 밖에서의 하루 정도라고 했다. 그 말은 곧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이 넘쳐 난다는 소리였다.
심장이 조금씩 뛰고 있었다.
“나와!”
나는 반지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암살이를 불러들였다.
검은 먹구름이 공간을 감싸고…….
눈앞에 있음에도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고요한 기운을 풍기는 데스나이트가 나타났다.
데스나이트 암살이는 죽음의 경계 30층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훑었다.
캬아아악!!
내 영혼을 갉아먹기 위해 빠르게 접근하던 수많은 망자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이내 암살이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암살이는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낫을 크게 휘두르더니, 기운을 내뿜었다.
콰과과-!
다양한 모습의 망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허…….”
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암살이를 바라봤다.
“너 진짜 여기서 대장 먹고 나왔구나?”
녀석은 쑥스럽다는 듯 앙상한 뼈로 뒷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