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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38화 (38/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38화

38. 지각 변동(5)

-멈추거라.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죽을 테니.

천지훈을 향해 경고한 천태백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검은 말을 탄 채 천지훈의 목에 거대한 낫을 들이밀고 있는 망자의 형태가!

“…….”

죽음의 기운을 펄펄 풍기는 녀석은 놀랍게도 흑운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말은 곧…….

천태백은 얼굴에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흘흘, 재밌구나.”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알아차린 건…… 다섯 정도인가?’

흑운의 힘으로 온몸을 숨긴 저 녀석을 알아차린 놈은 천가 안에서도 많지 않아 보였다.

당장 목 위에 칼이 드리운 저 녀석조차 확실히 인지하고 있지 못한 걸 보니……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일이었다.

‘그나저나 도윤이는 이런 녀석을 대체 어디서…….’

녀석의 온전한 힘을 느끼는 것은 흑운의 사용자인 천태백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외형을 보면 데스나이트와 완전히 흡사한 모습을 지닌 녀석이었지만, 풍겨 오는 위압감과 힘만 본다면 그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장 뒤를 돌아 제자 녀석에게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혈육을 죽일 셈이냐, 라며 소리친 동생 녀석이 어느새 계단을 내려와 이쪽을 향해 오는 중이었으니까.

‘녀석도 많이 놀랐을 테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데……

천지훈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죽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천지훈의 말을 들은 천태백은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같잖았다.

애송이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손에 넘실대던 전격을 거둬드린 천지훈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며 천태백을 바라봤다.

“그러니 그만 살기를 거두시죠.”

어딘지 모르게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런 거였군.’

“크큭.”

천태백은 재밌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천지훈은 자신이 제자 놈을 지키기 위해 끼어들어 자신을 위협하는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제 목숨을 구해 준 지도 모르고.

“애송이 녀석…… 착각은…….”

천지훈의 눈썹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그게 무슨…….”

주제도 모르고 한발만 더 내디뎠다면 녀석은 분명 모가지가 날아갔을 것이라 말하려던 참, 천태백은 입을 다물었다.

“그만 힘을 거두어라.”

가주가 내려왔으므로.

“이미 거두었습니다.”

천태백은 다시 천지 분간도 못 한 채 껴드는 천지훈의 꼴을 눈앞에서 바라봐야만 했다.

천태산은 무슨 소리냐 묻는 듯한 얼굴로 천지훈을 바라봤다.

녀석의 얼굴에 당혹감이 물들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힘을 거두라고.”

천태산은 그대로 천지훈을 지나쳐 흑운에게로 향했다.

그제야, 천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흑운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천태산의 행동에 천지훈은 다시 한번 당황했다.

가주 천태산은 흑운마저 지나쳐 천도윤에게 향하고 있었다.

“힘을 거두래도!”

* * *

구오오오.

나는 당장이라도 천지훈의 목을 벨듯한 기세를 풍기는 암살이를 애써 진정시켰다.

‘스스로 나왔어……!’

나는 식은땀을 죽 흘리며 녀석을 바라봤다.

녀석은 내가 위험에 빠지자, 반지에서 빠져나와 적의 목에 낫을 겨눴다.

만약 천지훈이 한 번 더 나를 향해 전격을 날렸다면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천지훈의 목을 취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든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몸을 작게 떨었다.

기쁨, 불안감, 두려움이 한데 섞여 복잡한 감정을 만들고 있었다.

목숨이 위험할 때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는 사실은 기뻐할 만한 사실이었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녀석은 허락도 없이 반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는 곧, 앞으로 어떤 식으로 돌발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그랬다고는 하지만…….

나보다 강한 녀석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불안한 일이다.

바로 지금처럼.

‘들어와!’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거부합니다.]

‘들어오라니까?’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이 녀석은 위험하다 경고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녀석을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후에…….]

‘알고 있다고!’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녀석의 목을 취하겠다고 말합니다.]

“잔말 말고, 들어와.”

“…….”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녀석이 반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벌써 말을 안 듣기 시작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저 시선들.

암살이를 눈치챈 큰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아버지를 포함한 몇 명의 원로들. 경지에 오른 그들의 눈에는 암살이가 보이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심각한 고민에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나 고민을 지속할 순 없었다.

바로 저기.

아버지가 나에게 오고 있었으므로.

나는 천천히 다가오는 아버지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에 선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사부님을 바라봤다.

그러자 사부님은 고개를 끄덕하더니, 흑운의 힘으로 우리 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키는 검은 막이 완전히 완성되자,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분한 힘이더구나.”

“알고 있습니다.”

“…….”

“…….”

역시 어색한 부자지간이었다.

잠시 침묵을 끌던 아버지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알고 있느냐? 통제하지 못하는 힘은 쓰레기일 뿐이다.”

“그 또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정중히 대답하며 아버지를 똑바로 응시했다.

본론을 말하라는 뜻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아버지는 내게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

“30층에 들어갔느냐?”

“…….”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걸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 안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 고민됐던 탓이다.

“내가 그렇게 일렀거늘…….”

아버지는 침묵의 뜻을 조금 오해하신 모양이었다.

노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애써 변명을 하기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죽음을 보았느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 냈다.

“저놈도 그곳에서 만난 것이고? 몇 층까지 내려갔느냐?”

보기 드물게 아버지는 인버스 타워에 관한 질문을 번개처럼 쏟아 냈다.

결국, 나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29층까지 들어간 게 답니다.”

“나를 속이는 것이냐?”

“진실입니다.”

“그럼…….”

아버지는 암살이가 들어 있는 검은 반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제 능력입니다.”

짧게 대답하자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철용 아저씨에게 내 능력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쉽게 납득하는 눈치였다.

어쨌든,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만을 바랐지만, 결국 바램일 뿐이었다.

“그럼 이 녀석은 대체 어디서……!”

“아버지.”

“……알겠다. 더는 묻지 않으마.”

아무리 혈연이고 같은 가문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능력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점을 아버지께 상기시켜 드렸다.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장막까지 쳐 놓을 정도라면 모르긴 몰라도 고작 인버스 타워에 관한 질문만 하려고 부른 것은 아닐 터였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본에 같이 가자꾸나.”

“어디요?”

“일본말이다.”

아버지의 표정으로 보아 절대 농담으로 건넨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일본에 같이 가자고 한다면…….

한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아버지!!”

나는 소리쳤다.

누누이 말했었다.

그곳에 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그래서 흑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이라, 생각했다. 비밀 병기를 밝힘으로써 적에게 혼란을 준 뒤, 시간을 벌어 적의 공격에 대비하려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네가 본 미래와 지금의 난 다르다.”

대체 뭐가…….

미래를 알려 준 지 고작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바뀌어 봐야 얼마나 바뀌었겠는가.

아버지는 마치 내 마음속이 보인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네놈도 많이 바뀌었지.”

“아이가 키가 크는 것과 어른이 키가 크는 것은 다른 법이지요.”

나는 반박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말했다.

“네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혼자 갔을 테지. 그편이 더 빠르고 확실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아버지는 일본에 철용 아저씨와 단둘이 적진에 잠입했었다.

결국 성공하진 못했지만, 아버지를 상대했던 시므즈가와 카토가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어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뭐 아버지를 잃은 우리 가문도 쇠퇴의 길을 걸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번에는 너와 흑운을 데려갈 생각이다.”

“저를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운. 즉, 큰아버지는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저는 힘을 되찾은 지 고작 몇 달입니다.”

“그런 녀석이 뇌룡을 이겼지.”

“제가 진 싸움입니다.”

나는 옆구리를 만지며 말했다.

여전히 녀석에게 받은 피해가 몸 안에 누적되어 있었다.

아직도 입안이 썼다.

“위험한 힘일지라도 결국 너의 힘이다.”

“통제하지 못하는 힘은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통제하면 되지 않느냐?”

“그럴 생각이긴 합니다만, 아직…….”

“그럼 되었구나. 아직 시간은 있다.”

말을 뚝 끊고는 결론을 내어 버리는 아버지를 본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 보면 볼수록 스승님과 닮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체념한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승산은 있다고 보십니까?”

“너만 성장한다면.”

후…… 이 양반이.

“흑운의 존재는 반드시 외부로 새어 나가겠지.”

“노린 것 아닙니까?”

“맞다. 너는 적이 어떻게 움직일 거라 생각하느냐?”

“전력을 분석하겠지요. 그리고 더 철저히 계획을 세울 겁니다.”

“진부한 대답이구나.”

나는 발끈했다.

“그럼 어떻게…….”

“하나, 정답이다.”

나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우린 그 점을 노릴 것이다.”

“그게 무슨……!?”

뜬금없는 말에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네놈도 봐서 알지 않느냐? 흑운은 가문을 지키는 수호자보다는 검에 가깝다는 것을…….”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큰아버지의 성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첫 만남에 다짜고짜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뿐이면 괜찮았다.

큰아버지는 내가 죽어 가는 와중에도 웃고 있었다.

‘진짜 사이코패스, 또라이인 줄 알았지.’

각설하고.

호전적이고 잔인하고 거친 성정을 가진 것이 바로 흑운 천태백이었다.

흑운(黑雲)은 확실히 범용성이 넓은 속성이자, 공격에 특화된 능력이었다.

조금 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수준 높은 흑운은 존재마저 지울 정도로 긴밀했다.

“너도 조금 전 너의 소환수 정도는 되어야 할 거야. 죽기 싫다면 말이지.”

아버지는 이미 나와 같이 가는 것을 확정해 놓고 말을 했다.

물론 녀석을 뛰어넘을 만큼 성장할 예정이긴 하지만 이렇게나 서두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더욱 철저히 조사하고 가는 것이 낫지 않나? 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겁니까?”

아버지의 충격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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