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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35화 (35/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35화

35. 지각 변동(2)

‘이 개 같은 원로 새끼들! 그리 처먹었으면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천지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시발! 이게 말이 돼?’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원로 지지율은 분명 자신이 더 많을 터였다. 그런데 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아버지의 발표는 더욱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흑운의 후계자가 저놈이란다.

어디서 거지꼴로 나타나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놈 말이다.

쓰레기 중의 쓰레기 천도윤.

천지훈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 * *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내가 차기 흑운이라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체 왜……!?

흑운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남몰래 가문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방패였다.

말하자면 천가의 비밀병기.

그런데 왜, 수십 년 동안 숨겨 왔던 가문의 비밀을 만천하에 공표하냔 말이다!

틀림없는 자충수였다.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가주님!!”

“절대 안 됩니다.”

“말도 안 되는 결정이십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흑운?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자를 데려와 흑운이라고 하면 저희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지훈이도 아닌 저놈…… 아니 천도윤을 후계자로 삼다니요!”

거센 항의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닥치거라!”

날아든 목소리는 다름 아닌 천태수였다.

가주 천태산과 치열한 가주 쟁탈전을 벌였으며,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가주와 반목 중인 천태수.

그가 가주의 편을 들고 있었다. 원로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거든, 닥치거라…….”

무언가 말하려던 원로들은 입을 헙 다물었다.

천태수가 이리 다급하게 말한 적은 없었다. 원로들은 단순히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끌끌, 내버려 뒀으면 알아서 정리했을 것을.”

“항상 너무 과하십니다.”

가주에게도 절대 굽히지 않는 천태수의 공손한 모습. 원로들의 입이 벌어졌다.

반면, 경고를 내뱉은 천태수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

그는 가주와 흑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조용해진 행사장을 바라본 천태산이 입을 열었다.

“한 번쯤은 들어 봤겠지.”

“…….”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운은 천가를 수호하는…….”

“끌끌, 됐다.”

천태백이 천태산의 말을 끊었다.

가주의 말을 끊을 수 있는 자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흑운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천태산의 말을 끊은 것이다.

그럼에도…… 가주 천태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모두가 경악했다.

가주 천태산이 이런 결례를 눈감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또 흑운의 위치를 잘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모두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시선이 흑운 천태백을 향해 있었다.

그런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단 위로, 천천히.

터벅.

터벅.

느리지만 그 걸음은 확실히 가주에게 나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멈춰 섰다.

가주가 앉아 있는 곳.

바로 옆자리였다.

천태백이 공표하듯 소리쳤다.

“모를 것 같아 말해 주마. 여기가 내 위치다.”

천태산은 다시 한번 묵인했다.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경악 어린 시선이 행사장 전체를 채웠다.

“그리고 저놈이 앞으로 이 자리에 설 것이야.”

천태백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미친 영감!’

나는 한순간에 꽂히는 뜨거운 시선을 감당해야만 했다.

처음 만났을 땐 못난 놈이라며 갑자기 주먹을 날리더니, 여기 도착해서는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지 않나, 이제는 자기가 흑운이라고 아주 광고를 한다.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어찌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원로들을 포함한 모든 가문의 사람들이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대체 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문장이었다.

수십 년을 숨겨 온 정체를 한두 명에게도 아닌 가문 전체에 공표했다.

-그리고 저놈이 앞으로 이 자리에 설 것이다.

게다가 입지가 낮다 못해 바닥을 치는 나를 일부러 추켜세우기까지 하는 모습이다.

명확한 의도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

머릿속이 혼잡해졌다.

‘대체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얻는 것이…….’

있다!

나는 눈을 밝혔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대답이었다.

나의 경고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

굽히지 않는 길…….

패도를 걷겠다는 답.

아버지 그리고 큰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리자, 오소소 닭살이 올라왔다.

흑운의 정체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아버지가 얻는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첫 번째는 이것이었다. 현재 가장 가까운 비극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일본과의 전투로 인한 예정된 죽음.

아버지는 그것을 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작정하고 전력을 발표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으로 죽음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득까지 취하겠다 외치는 것이었다.

우리에겐 이런 패가 있으니, 자신 있으면 덤비라는 선전 포고였다.

상상치도 못한 방법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취할 두 번째 이득에 대해 생각했다.

두 번째는 썩은 부위를 도려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흑운의 존재는 이제 가문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분명,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는 자들이 속출할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이 점을 노렸다.

흑운의 존재를 이용하려는 외부 세력을 파악해 거꾸로 타고 올라와 그와 연관된 자를 처단하겠다는 결단이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천태수에게 어떠한 제재조차 가하지 않던 아버지가 조금 전 원로의 죽음에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결심한 것이다.

썩어가는 고름을 이제는 도려내겠노라고…….

그리고 마지막…….

가문을 망(亡)의 길로 이끌 천지훈에 대한 견제였다.

차기 가주 천진오에 대한 반감을 건재한 자신의 위치로 틀어막고, 거기에 더해 흑운까지 끼얹어 반란의 희망을 초장에 잘라 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

이 모든 것을 단 하나.

흑운의 존재를 공표함으로써 해냈다.

나는 감탄했다.

전력을 오픈한 셈이니, 리스크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얻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분명 머리로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왠지 나는 찝찝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이후는 조금 뒤 알 수 있었다.

살의를 전혀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뿜어 대는 저 새끼의 얼굴을 본 순간…….

천지훈은 결코 가주의 자리를 포기할 놈이 아니다.

* * *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것 같이 노려보는 천지훈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다시 살아나고 처음 보는 천지훈의 얼굴.

구역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후.’

아직은 아니다.

무엇보다 녀석은 지금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죄를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가문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에서 녀석을 공격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화를 억눌렀다.

“그래도 참을 게 따로 있지.”

나는 천천히 천지훈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면 갈수록 녀석은 짙은 살의를 내뱉었다.

나는 그 모든 적의를 온몸으로 받으며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천지훈의 옆에 섰다.

“너……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잔뜩 일그러진 천지훈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동생인데, 말이 심하네.”

“뭐?”

천지훈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나는 녀석을 향해 더욱 다가갔다. 그러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흑운의 후계자. 가주님을 뵙습니다.”

원수의 옆에서, 그리고 나를 무시하던 가문 놈들의 앞에서…… 나는 선언했다.

내가 네놈들 위에 서겠노라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겠노라고!

“차기 가주 천진오. 가주님께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천진오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버지의 결정을 받아들임으로써 차기 가주직을 확정 지었다.

“…….”

“와아아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중간에 멀뚱히 서 있는 천지훈. 녀석의 표정은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 똥 씹은 표정이겠지.

사람들은 나의 행동에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는 경악했고, 누군가는 못마땅해했으며, 누군가는 분노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지 못했다.

가주가 인정했으며 당사자인 흑운조차 지명한 인물이었으니까. 이곳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박수와 환호 소리가 누그러질 때쯤 천지훈이 소리쳤다.

술렁이던 행사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를 바라보던 천태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것을 말이냐?”

“둘 다입니다.”

“차기 가주의 자리와 차기 흑운의 자리 말이냐?”

무거워진 천태산의 음성에 공기가 차게 식었다.

“네, 저 둘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천태산의 음성에 노기가 서렸다.

“나와 흑운의 결정이다!!”

그러나 천지훈은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문을 위해서는 더 나은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가문을 위해서?’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저 녀석의 입에서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내 눈에는 성탄절에 아무 선물도 받지 못한 어린이의 생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구나.”

천태산의 말에 천지훈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금세 웃는 얼굴로 말했다.

“천가의 주인은 그 누구보다 강해야 합니다.”

천지훈의 발언에 첫째 천진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가주의 대답에 금세 표정이 풀어졌다.

“약점도 없어야 하지.”

가주의 반박에 천지훈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

천지훈의 속성 뇌(雷). 강력한 만큼 약점도 많은 능력이었다. 절연체와 피뢰침은 구하기 쉬운 재료 중 하나였으니까.

“약점은 극복한 지 오래입니다.”

“오만하구나.”

“증명해 보이라면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

천태산은 침묵했다.

그에 천지훈은 자신감을 얻고는 더욱 자신의 생각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가장 강한 자가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가문은 결국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천가다.”

“압니다. 그러나 강한 것은 저희 가문만이 아닙니다. 만약 작정하고 외부 세력이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때는 저희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녀석……!’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역시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 무언가 알고 있다!

기우일 수도 있다. 과한 추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리해진 감이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은 철용과 아버지 그리고 미래를 알고 있는 나 정도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알아내야만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외부 세력이 쳐들어오다니? 무슨 정보가 있는 게냐?”

예상치도 못한 직설적인 질문에 녀석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로써 나는 확신했다.

이 녀석…… 위험하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전부터……

가문을 팔아넘길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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