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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2화 (12/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화

12. 스승(3)

나의 현 상태를 알게 된 천태백은 엘릭서가 아깝다는 이유로 더 이상 목숨을 위협할 만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설렁설렁한 것은 아니지만…….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기분이구나.”

여전히 인신공격과 독설은 지속되고 있었다.

천태백이 가장 먼저 알려 준 것은 어이없게도, 걷는 법이었다.

“걸어 보거라.”

단련장으로 들어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딱!

어느새 가져온 죽도로 머리를 가격당했다.

“아!”

“엉망이구나.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자존심이 한없이 구겨졌다.

무려 스무 살이다. 그것도 30살까지 살아본 20살!

다 큰 성인에게 걷는 법을 가르치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보법이나 가문의 비전 무공이 아니고요?”

그동안 신체 능력이 따라 주지 않아 배우지 못했던 가문의 주옥 같은 비전들을 물려받을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린가!

“흥, 네놈은 아직 배울 단계가 아니다.”

‘가문에 가면 10살짜리도 배우고 있는 건데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말을 겨우 삼켰다.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걷는 게 다 똑같은 거 아닙니까?”

“네가 그러니까 애송이라는 거다.”

진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대들었을 것이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아버지는 무기가 모여 있는 한쪽 구석으로 가 무언가를 들고는 단련장의 정 중앙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천천히 걸어와 보거라.”

“네.”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천천히 발을 뗐다.

“피해 보거라.”

“예?”

정확히 왼쪽 눈을 향해 날아온 무언가.

고개를 돌려 그것을 피하자,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일었다.

“크윽!”

화살이었다.

활도 지니지 않은 채 두 손가락만을 이용해 던지는 화살은 총알에 빙의라도 한 듯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막지 말고 피해야 한다.”

큰아버지의 단호한 음성이 들리고, 다시 쏘아져 나온 화살은 오른쪽 옆구리를 노려왔다.

빠르긴 했지만 집중하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크윽!”

피하는 방향에 맞춰 다른 화살이 날아왔다.

오른쪽 옆구리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허리를 틀면 오른쪽 어깨와 왼쪽 옆구리에 동시에 화살이 박혔다.

왼쪽, 오른쪽, 위, 아래 어느 쪽으로 피하든 마찬가지였다.

비록 오래되고 낡은 화살인 데다, 특성 ‘천가의 피’를 가능한 만큼 모두 짜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짜증 나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뭐 하느냐? 어서 걸어오지 않고.”

바닥을 보니 내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경로를 이탈해 더 멀어져 있었다.

특성만 믿고 몸으로 받아 가며 나아가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것은 나나 큰아버지 둘 다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 많던 화살이 동날 때쯤 큰아버지가 다가왔다.

“이제 알겠느냐? 너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천태백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전 공격과 걸음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전히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의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 천태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해 보거라.”

솔깃한 제안에 나는 얼른 바닥에 널브러진 화살을 모조리 주었다.

“진짜 후회 안 하시죠?”

“죽일 수 있으면 죽여도 된다.”

“에이, 제가 어떻게 큰아버지를 죽입니까?”

피 한 방울이면 충분합니다.

많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인상 한 번 찌푸리는 정확한 공격.

그것이면 된다.

의지를 다진 나는 화살을 손에 집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화살을 던지려는데…….

“이거 왜 이래?”

힘을 주자 화살대가 부러져 버렸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천가의 피 특성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허탈하게 내 손과 부러진 화살대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끌끌, 기회를 줘도 먹지를 못하는구나.”

“아, 잠깐만요.”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

초조해진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한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거다!”

썩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다.

가져온 것은 주먹 크기의 철공이 수백 개는 담겨 있는 박스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단련장을 뒤져 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이것도 괜찮으십니까?”

묵직한 철공을 위로 던졌다가 받으며 도발하듯 묻자 천태백 역시 화답했다.

“물론이다.”

복수의 시작!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 따위는 없었다.

처음 날린 곳은 당연히 왼쪽 눈이었다.

천태백은 고개를 돌려 가볍게 피했다.

그러나 내가 노린 것은 바로 그다음 수!

피하는 쪽을 예상하고 날린 공은 이미 내 손을 떠난 뒤였다.

‘멀리 안 나갑니다, 큰아버지.’

통쾌한 복수의 시작을 알리며 연타를…… 뭐야?

큰아버지는 회심의 공격까지도 여유 있게 피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아무리 빠르다한들 틈이 나지 않는 궤도였다.

나는 계속해서 공을 날렸다.

피하는 예상 경로에 맞춰 정확히 공을 던졌음에도, 천태백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공을 빗겨 갔다.

거기에 조금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내가 던진 공은 위력을 더해 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공이 마치 N극과 N극이 만난 것처럼 서로를 피해 갔다.

“이게 어떻게?”

내 지척까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리는 큰아버지를 보면서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넋이 나가 있는 나를 보고 큰아버지는 말했다.

“균형이다. 균형을 잃지 않으면 불가능한 자세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 전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으니 반박할 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흐트러진 자세에서 한 번 더 꺾기는 기괴한 동작.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안정감이 있어 보였던 그 장면은 솔직히 말하자면 경이로울 정도였다.

“매 걸음 완벽한 균형을 지켜라. 그 한 끗 차이가 너의 목숨을 살릴 것이다.”

명언 제조기 마냥 멋들어진 말을 내뱉는 큰아버지에게 반발심이 일기도 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태백의 실력은 ‘진짜’다.

하늘과 땅의 실력 차이.

흑운(黑雲)

그 전설의 주인이 정말 천태백이 맞다면 실력 또한 아버지 못지않을 터였다.

‘세계 어디서나 통할 수 있어.’

그런 분이 기초부터 잡아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천태백에 대한 반발심과 인정하기 싫은 욕구.

그 모든 것을 잡아먹고도 남아도는 갈망이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천가의 핏줄인가?’

그게 아니라면…….

현실 자각일지도 모른다.

* * *

나는 뺨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고.

전설 등급의 특성과 스킬이 해금되고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천태백, 그러니까 큰아버지를 보고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세상은 넓다.

그만큼 강자도 넘쳐 난다.

그리고 그 강자들이 언제 어디서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

돌연, 걱정해야 할 것은 작은형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공격도 생각해야 하고, 첫째 형도 생각해야 한다.

작게는 나를 시기 질투하던 방계의 인간들도 있었다.

쉽게 말해 어딜 가더라도 적이라는 소리다.

인정하기 싫지만,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강해져야 한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으면 누구보다 강해져야 했다.

가문, 천우진, 그리고 박윤식 영감까지!

“…….”

생각을 바꿨으니, 태도도 바뀌어야 했다.

“스승님.”

“…….”

“다시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박윤식 영감에 이은 두 번째 스승이었다.

* * *

걷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심력을 소모했다.

1초를 수십 번으로 나눈 순간까지 모든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해야만 했다.

이것을 습관화시키는 것이 첫 번째 목표.

그렇게 걸음걸이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약 일주일이 걸렸다.

두 번째는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닌, 동작을 취할 때까지도 완벽한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이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옆구리 피할 때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너무 많이 치우쳤잖아!”

조금만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벼락같은 호통이 단련장을 메웠다.

이 훈련은 모든 근육을 안정적으로 잡아줄 수 있는 코어 근육을 같이 단련하면서 이루어졌다.

“끄응!”

“이것도 못 버티느냐?”

“이게 사람이 버틸 무게입니까?”

“이놈이 이제 편해졌나 보지? 대들기까지 하고.”

머리 위로 죽도가 날아들어 왔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시간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두 시간 지났잖아요.”

“오 분 더 해라. 괘씸해서 안 되겠구나.”

“시발.”

“뭐?”

“아닙니다! 오 분!!”

플랭크 자세로 허리 위에 특수제작한 철근을 산더미처럼 쌓은 상태였다.

오직 균형을 맞추는 코어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미친 짓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효과는 뛰어났다.

첫날 했던 ‘화살 피하기’.

이젠 20m 앞까지는 여유롭게 피할 실력이 되었다.

그리고도 약 한 달이 지나자, 큰아버지를 터치할 수 있었다.

“이제야 성공하다니…… 쯧쯧.”

“칭찬은 안 해 주십니까?”

“뭘 잘했다고!”

역시나 인색한 큰아버지의 표정을 보며 내심 서운해하고 있을 때였다.

[큰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특성 ‘천가의 피’ 해금률이 10퍼센트 늘어납니다.]

[현재 ‘천가의 피’ 해금률 -> 50퍼센트]

“오!!”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해금률이 무려 10퍼센트나 올랐다.

오직 몸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만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조급함을 느끼던 시점에 단비 같은 선물이었다.

“왜 그러느냐?”

갑자기 난리를 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천태백이 물었다.

“해금률이 10퍼센트 올랐습니다. 아마 무언가 깨달음이 있어야 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 잘됐구나. 이제 수련 강도를 조금 더 올릴 수 있겠어.”

“괜히 말했네…….”

툴툴거리는 말투였지만 내심 바라 마지않던 것이었다. 이젠 정말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할 때였다.

‘……그나저나 활력의 해금률은 그대로네…….’

아마 활력 역시 깨달음이 있어야 해금률이 오르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가자꾸나.”

“네? 어딜요?”

큰아버지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집.”

“아!”

어느새 깜깜한 새벽이 다가와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깊은 어둠에 벌레들이 우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너무 빡세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내일은 가문으로 오거라.”

“네?”

“네가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어린 시절 맞고만 자랐다고.”

저녁 시간 이후에는 온종일 붙어 있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 상태였다.

‘내가 그런 이야기까지 했던가?’

“근데 그거랑 가문으로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

“머저리 같은 놈. 내 체면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니냐?”

“네?”

챙기던 짐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 천태백을 바라봤다.

큰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지금껏 봐 왔던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하게.

“갚아 줘야지. 두 배로.”

* * *

한편 천가 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막내 도련님의 특성이 드디어 풀렸다는 소문. 그리고 잠김 상태가 풀리면서 등급은 전설 단계에서 무려 두 단계나 떨어졌다는 소문.

어디서 나온 괴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얼마 전 막내 도련님이 가주님을 직접 봤다는 게 전해지면서 소문은 꽤 신빙성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문은 한창 수련 중인 어린 생도들에게도 전해졌다.

18~23세 사이의 뛰어난 실력자들이 모인다는 1급 생도 전용 수련장.

그곳에는 덜덜 떨며 얼어 있는 2급 생도가 두 손을 모은 채 무엇인가를 보고하고 있었다.

“네, 그래서 곧 가문으로 돌아오신다고…….”

“막내 도련님, 그 쓰레기가? 그나마 봐줄 건 특성 등급 하나였는데 그마저도 떨어져서 온다고?”

직계에 대한 모독.

가문의 어른들이 들었으면 그냥 넘어갈 만한 소리가 아니었지만, 수련관에 있는 생도 중 그 누구도 거부감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네.”

2급 생도의 대답에 1급 생도들은 대부분 웃고 있었다.

웃음의 의미는 환영이 아니었다.

“크큭, 오랜만에 손맛 한번 제대로 보겠어.”

“그러게…… 크크크.”

그곳에는 음흉하게 웃는 방계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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