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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1화 (11/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1화

11. 스승(2)

“넌 쓰레기다.”

자존심 상하는 말이었지만, 반격할 기운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헉, 흐헉.”

턱이 틀어져 입조차 다물 수 없었다.

“한심한 놈.”

눈물 콧물을 꼴사납게 흘리는 단계는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육신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고, 단련장은 마치 학살이라도 벌어진 듯 피로 가득했다.

살점과 피가 사방에 튄 잔혹한 현장. 그 현장의 주인은 나였다.

바닥에 흩날린 것들은 모두 나로부터 파생된 것이었다.

“사, 살려…….”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천태백은 조금 전과 같은 행동을 했다.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영롱한 보랏빛을 지닌 액체 몇 방울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먹을 수 있으면 먹어 보거라.”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에 저 노인을 갈아 마시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였다.

조금만 피를 더 흘리면 진짜 죽는다.

팔과 다리는 모두 골절이 되거나 부러진 상태라 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허리와 무릎을 이용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부러진 갈비뼈가 장기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미친 또라이 같은 노인네! 사이코, 변태! 미친놈!’

예상치 못한 큰아버지의 등장. 잠깐의 신기함은 분노로 바뀐 지 오래였다.

패륜적인 생각이었지만, 목숨을 몇 번이고 빼앗으려고 하는 이에게는 아주 순화되고 정돈된 언어였다.

억겁 같은 시간이 지난 끝에, 겨우 바닥에 떨어진 액체 앞에 고개를 들이밀 수 있었다.

“흐으, 억.”

나는 고개를 처박고 그 액체를 핥았다.

피 맛과 함께 더러운 먼지 바닥의 맛도 함께 올라왔지만 상관없었다.

목숨이 우선이니까.

“허억, 허억…… 허, 허.”

마치 장난감이 재조립되듯 이상이 생긴 장기와 뼈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삼킨 그것은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엘릭서]였다.

‘미친 영감.’

장담하는데 저 영감은 제정신이 아니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면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조카를 진짜로 죽이려고 들다니…….

정확히 말하면 마지막 목숨줄을 간당간당하게 남겨 둔 뒤 다시 살리는 꼴이었지만,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었다.

“그, 그만!”

“무엇을 말이냐?”

천태백은 웃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몸은 순식간에 회복됐다곤 하지만 정신은 아니었다.

사선을 몇 번이나 넘은 현재,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천태백이 말했다.

“네놈 아버지가 너를 맡겼다.”

“저희 아버지가 저를 죽이라 이르셨습니까?”

나는 발끈해 소리쳤다.

“장차 천가를 맡길 인재로 키워달라 하더구나.”

“그 방법이 정녕…… 네? 방금 뭐라고…….”

잘못 들었나?

하도 맞았더니 이젠 환청까지 들리나 보다.

천가의 차기 주인은 천진오.

나의 첫째 형이었다.

물론 둘째 천지훈에게 살해당해 7년 뒤 세상을 뜨고 말지만 어쨌건 다음 가주는 천진오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천가를 맡기다니?

아니, 내가 너무 오버해서 알아들은 건가?

“너를 가주 후보로 두고 싶어 하더구나.”

“미친!”

“뭐라고?”

“아, 아닙니다.”

충격적인 말에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가문의 몰락을 막으려고 한 것은 맞다.

풀린 능력을 이용해 강해지려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주의 자리에는 눈곱만큼의 욕심도 없었다.

무엇보다 난 힘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가문의 시스템을 증오했다.

그런 자리 줘도 안 갖는다 이 말이다.

그런데 왜 멋대로…….

“동생이 그러더구나, 내년까진 너의 말처럼 흘러갈 거라고.”

연이어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충격이었다.

더 심한 욕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조급해 보이더구나.”

가시지 않던 정신적 피로감이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나는 분명 아버지에게 내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지 말 것과 차기 가주 결정 시기를 조금 늦출 것. 이 두 가지를 권했다.

후자는 지키지 않더라도, 전자만큼은 무조건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후자는 설령 천진오가 가주가 되어 천지훈이 복수의 칼날을 간다고 할지라도,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전자.

아버지가 일본에 가지 않는다면 그쪽에서 우리에게 올 것이라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일본으로 갈 경우 아버지는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가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다. 차라리 저들이 올 때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 두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에게 이른 방법이었다.

‘그런데 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판단이었다.

아버지는 결정했다.

그 무엇도 바꾸지 않겠노라고…….

그러니까 대체 왜!!

복잡한 마음에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부자간의 비밀이야기가 그리도 많으냐?”

“가문의 일입니다.”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껴서인지 천태백은 내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이따 죽읍시다.

지금은 이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처맞아 뒤지더라도 지금은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죽을 것을 알면서 적진에 뛰어들 생각이라니…….

‘후…….’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하나다.

다시 가문에 찾아가는 것.

찾아가서 물어보면 될 일이다.

그러나 다음 이어진 천태백의 한마디가 모든 계획을 산산조각 냈다.

“무슨 고민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비를 만날 생각이라면 그만두거라. 내년까지는 절대 너를 보지 않겠다 했다.”

“왜요?”

“낸들 알겠느냐?”

“…….”

한 가문을 이끄는 가주이니만큼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너를 키워 달라 했다.”

나직한 음성이었다.

큰아버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깊이 있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

“너희들의 사정은 모른다. 그 녀석이 너를 왜 맡겼는지도 모르고. 하나, 하나만큼은 알 수 있다.”

“그게 뭡니까?”

“우리가 천가라는 것.”

“그게 무슨……?”

“천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맥락을 벗어난 엉뚱한 질문이었다.

나는 일단 장단을 맞춰드렸다.

“저희 가문입니다.”

“한심하긴…….”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천가가 걷는 길은 패도(霸道)다.”

“패도…….”

“힘으로 천하를 얻고 모든 것을 취한다.”

나는 이제야 천태백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더럽고, 짜증 나지만 천가가 추구해 온 방향이며…….

하나의 진리.

“천가에게는 천가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천가의 방식이라…….”

천태백의 말을 곱씹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어쩐 일인지 그 녀석도 수련을 떠났더구나.”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아버지는 삶을 포기한 게 아니다. 오히려…….

‘됐다. 이거면…….’

삶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지 않는 이상 희망은 있었다.

한가지 결심을 끝마친 나는 진중한 태도로 천태백에게 물었다.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이제야 사람 같은 눈깔을 뜨게 됐구나. 말해라.”

“정녕 이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까?”

나는 방바닥에 흩날린 피와 살점들을 가리켰다.

“나도 한 가지만 물어보자꾸나.”

“말씀하십시오.”

“천가의 피 등급이 대체 무엇이냐? 얼마나 약하면 이 정도 공격도 못 받아 내냔 말이다. 약해서 쫓겨났다는 소리는 들었다만 이 정도일 줄은…….”

천태백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치 위대한 천가에 이런 쓰레기는 있을 수 없다며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리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이 아저씨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이토록 무심한 큰아버지라니…….

“전설 등급입니다.”

“개소리! 움직임을 보면 딱 에픽 등급과 다를 바 없다.”

천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특성 [천가의 피].

그러나 같은 천가의 피에도 급이 있는 법이었다.

직계는 대부분 유니크, 그 이상의 등급이었으며, 방계는 직계와 멀어지면 질수록 피가 옅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간혹 직계 중에서도 에픽 혹은 그 이하의 특성을 물려받는 이도 있었지만, 이 같은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큰아버지는 황당한 나의 대답에 ‘네가 아직 덜 맞았구나?’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 특성은 20년간 잠겨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는 절대적으로 약한 쓰레기다. 솔직히 말해라! 내 눈은 속일 수 없으니.”

큰아버지는 당장이라도 공격을 날릴 기세였다.

나는 그가 행동하기 전, 황급히 대답을 끝마쳤다.

“정확히 말하면 제 특성은 풀리는 중입니다.”

처음으로 천태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풀리는 중이다?”

“특성과 스킬이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고, 해금 중이라는 이야깁니다.”

천태백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아귀가 맞아떨어진다는 표정이었다.

“몇 퍼센트나 풀렸는지 혹시 알고 있느냐?”

“40퍼센트입니다.”

시스템이 정확한 수치를 표시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오차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군.”

순간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짧은 대답에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감정이 베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큰아버지를 응시했다.

천태백은 웃고 있었다.

마치 나를 반쯤 죽여 놓고,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진귀한 엘릭서를 바닥에 떨어뜨릴 때 짓던 그 표정. 그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아주 폐기물 급은 아닌 듯하구나. 그 쓰레기 스킬과 쥐똥만 한 능력으로 나를 공격해 보거라.”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한 가지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맥이 탁 풀려 버린 모습이었지만, 조금 누그러진 기운에도 천태백이 내뱉는 기운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말해 보거라.”

“이곳, 안전합니까?”

아버지가 천가를 비우셨다.

그것도 나를 만난 직후!

가문 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거기에 남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몇몇은 벌써 천정일에 대한 소문을 날랐을 것이고, 그것은 첫째 형과 둘째 형 모두에게 들어갔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의심 많은 형들이 감시를 붙이지 않을 리 없었다.

“끌끌, 아예 무식한 놈은 아니구나. 그놈들 말이냐?”

천태백은 몸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2번도 채 울리기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다, 상황은?”

-문제없음.

뚝.

짧고 간결한 대화였다.

“들었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멀뚱히 큰아버지를 바라봤다.

대체 뭘 알아야 하는 거냐?

내 표정이 멍청해 보였는지 큰아버지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너를 감시하던 녀석들은 지금쯤 이 녀석의 환각을 보고 있을 게다.”

천태백은 자신의 핸드폰을 툭툭 치며 이야기했다.

“아…….”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는 없는 단계였다.

미리 손써 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영감을 만나기 전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이미 보고가 들어갔을 수도 있다.

만약 큰형이나 작은형이 직접 온다면…….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 내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천태백이 말했다.

“내가 왜 흑운(黑雲)이라 불리는지 아느냐?”

큰아버지는 그대로 뒤를 돌아 입구를 향해 나갔다.

“따라오거라.”

“예.”

큰아버지를 따라 나간 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흐릿하게 보이는 얇은 막.

정체 모를 회색 막이 단련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터지지 않는 비눗방울을 만지듯, 막이 일렁였다.

“이 안에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우릴 발견하지 못한다.”

큰아버지의 능력인 듯했다.

흑운(黑雲).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별명은 이 능력에서 파생된 별명임이 틀림없었다.

마치 암살을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능력.

큰아버지에게 유독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비로소 설명됐다.

처음 큰아버지를 마주한 순간, 눈앞에 있음에도 전혀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옆에 있는 지금도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알았으면 이제 들어가자꾸나.”

능력을 보여 준 큰아버지는 뒤를 돌아 다시 단련장으로 들어갔다.

두근.

심장이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는 시크하게 뒤돌아 들어가는 큰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 아니었다.

옅은 회색으로 일렁이는 파동.

두근.

“빨리 들어오거라.”

“예.”

들려오는 재촉에 나는 해야 할 일을 얼른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활력’에 새로운 속성을 추가하겠습니까?]

[추가 가능한 속성 – 흑운(黑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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