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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3화 (3/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3화

3. 늦게 피는 꽃(3)

“알아야 하나?”

정재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려 보였다.

“알아야지. 네놈 목숨이 걸린 일인데.”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피 냄새가 진하게 나네.”

정재문의 검이 목덜미를 얕게 파고들었다. 아무리 플레이어 간의 싸움일지라도 명백히 법으로 금지하고 있건만 정재문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더 다루기 쉽겠지만.’

나는 흘러내리는 피를 쓱 훑고는 말했다.

“피 나네? 안 좋은 징조인데, 이거.”

“왜? 막상 피 보니 쫄려? 그러게 혓바닥을 곱게 놀렸어야…….”

“나 말고 너.”

“뭐?”

“나 말고 너한테 안 좋은 징조라고.”

“뭔 개소리를!”

흥분하는 정재문의 표정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무래도 우리 집안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이용하려고 하니,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웃어?”

“그래서 묻잖아. 네가 누구한테 칼을 겨눈 건지 알고나 있냐고.”

“대답했을 텐데. 나는 그딴 거 모르고 알 필요도 없는 사람이라고. 대한민국에서 검신의 부 길드 마스터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있지.”

“허, 들을 가치도 없군. 네가 무슨 3대 길드의 마스터라도 된다는 거냐?”

나는 조용히 검지를 들어 하늘 위를 가리켰다.

“그보다 위.”

“뭔 개소리를……!”

“…….”

“설마……!?”

“너는 지금 천가(天家) 직계의 목에 칼을 겨눴다. 이거 전쟁하자는 거 맞지?”

난데없이 날아든 말에 정재문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간 입을 뻐끔거리더니 황급히 검을 거뒀다.

‘천지훈에 의해 몰락되어 버리긴 했지만, 확실히 이 당시 천가의 위상은 대단했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천가의 기세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외국에서는 천가를 하늘이 내려 준 핏줄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천지훈이 천가의 파훼법을 갖고 중국과 손잡지 않았다면 아마 내가 죽기 직전까지도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으리라.

검신이라는 대형길드의 간부조차 이름만 듣고도 머리를 조아릴 만큼 천가의 위상은 대단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또 대답 안 하네. 이거 전쟁하자는 거 맞지?”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는데?”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자비를…….”

“싫은데?”

“제발 부탁드립니다. 원하시는 게 있다면…….”

바닥에 머리라도 찧을 듯 고개를 연신 숙여 대던 정재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뭐가 말이지?”

“저…… 혹시,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천도윤이다.”

“천도윤, 천도윤…… 아!”

정재문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무서운 속도로 표정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천가의 직계를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이 버러지 새끼가 어디서!”

“뭐?”

“가문에서조차 버려진 새끼가 누구 앞에서 입을 털어? 내가 천가 직계의 얼굴도 모를 줄 알았냐?”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정재문은 다시 한번 검을 뽑아 들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벨 듯한 기세였다.

아니 베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좆됐다.’

영감을 지키려다 엄한 내 목숨만 날리게 생겼다.

나에게 저런 공격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천가의 피를 물려받긴 했지만 내 모든 능력치는 잠겨…… 어?

“죽어!”

부웅.

매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늘어나더니, 점점 그 속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얼빠진 표정을 거둘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느려?’

정재문의 공격은 마치 슬로모션을 틀어 놓은 것처럼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장난치는 건 아닐 테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내가 바뀌었다.

“상태창.”

[천도윤]

특성: 천가(天家)의 피 (해금) - 전설

스킬: 활력 (해금) - 전설

단출하기 그지없는 상태창을 바라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평생 살며 바라본 내 상태창은 항상 [잠김] 상태였다.

활력이라는 스킬은 쓸 수는 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그저 온몸에 생기가 도는 정도의 효과만 낼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던 스킬이었다.

무려 전설 등급의 스킬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 번 죽고 난 후에야, 특성과 스킬이 모두 해금되었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특성과 스킬이 해금 중입니다. 진행률 7%……. ]

겨우 7%의 해금 진행률에도 저 녀석의 공격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니 천가의 피가 대단하긴 했다.

열을 올리며 미친 듯 대검을 휘두르는 정재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으로 전해지는 이 힘이라면 아마 저 녀석의 갈비뼈 정도는 쉽게 으스러뜨릴 수 있으리라.

주먹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할 때였다.

나와 정재문은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끼어든 이가 양쪽의 공격을 모두 잡아낸 것이다.

사내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넌 또 뭐야? 이 새끼야!”

정재문은 육중한 팔뚝으로 사내에게 잡혀 있는 대검을 뽑아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줘 움직이려 해도 사내의 손에 붙들린 검은 꼼짝하지 않았다.

당황한 정재문은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뉘슈? 왜 남의 싸움에 끼어드는 겁니까?”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재문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조금 전과는 완벽히 다른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끼어들 만하니까 끼어들었지.”

* * *

“뭐?”

정재문의 얼굴이 누르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나는 검신 길드의…….”

“그래서.”

“뭐라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당신 설마 검신 길드를 모르는 거요? 외국인인가?”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반응이 나오지?”

“천가에 대응하는 건가?”

“허, 이젠 개나 소나 천가를……!”

갑자기 나타난 사내는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두 마리의 용이 각인되어 있는 작은 물건. 그 안에는 오직 두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천가(天家)

작은 물건이었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천가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명패.

명패를 확인한 정재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럼 진짜……?”

“도련님도 진짜였지. 너는 그걸 무시했고.”

사내의 음성은 싸늘했다.

“저 녀석은 가문에서…….”

“버려지셨지. 그런데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아무리 가문에서 버려졌다곤 하나 검신 길드 따위에게 천가의 직계가 살해당했다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사내가 말한 뜻을 정확히 알아들은 정재문은 식은땀을 쭉 흘렸다. ‘버려졌다곤 하나 너희 같은 피라미가 건드릴 분이 아니다.’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4대 길드 중 하나였던 페어리 길드가 뇌룡 천지훈을 잘못 건드렸다가 하루아침에 증발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였다.

“제, 제가…….”

“뭐라고?”

“제가 무례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정재문은 눈앞 사내에게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내가 아니라 도련님에게 해야지.”

“죄송합니다.”

정재문은 다시 한번 천도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자신을 내려다보던 천도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의 일은 비밀이다.”

“알겠습니다.”

“또한…….”

덧붙이는 말에 정재문은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오늘 일은 비밀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목숨만은 살려 준다는 말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이대로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천가 직계의 목에 칼을 겨눴지 않는가?

최소한 팔 한 짝은 떨어져 나갈 것을 각오해야 했다.

* * *

‘재수 옴 붙었네. 시발.’

조용히 살라던 마스터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괜히 시비 털고 다니다가 이런 봉변을 당할 줄이야.

천가의 직계가 경기도 촌구석 조형 집에 눌어붙어 있을 줄 누가 알았냔 말이다.

정재문은 한편으론 억울했다.

“복수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거야.”

“다, 당연합니다.”

“만약 저 영감이 다치거나 내가 다치면 모두 너의 책임으로 알겠다. 알겠나?”

“그, 그건……!”

시발! 영감이 교통사고가 날지, 자신 같은 놈이 또 나타나 행패를 부릴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천도윤이 말한 조건은 말이 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24시간 호위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천도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투로 물었다.

“싫어?”

“아닙니다.”

“좋아, 그럼 가봐.”

“가, 감사합니다.”

“빨리 가라. 마음 바뀌기 전에.”

* * *

발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뛰어가는 정재문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던 사내에게 내가 말했다.

“고맙다.”

사내가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우욱, 남들 앞에서 꼭 너를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하냐?”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입이 귀까지 걸려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천우진.

그가 거짓말처럼 살아서 내 눈앞에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야 할 거야, 천우진.”

“천우진? 너 앞으로 나한테 형이라고 부른다고 하지 않았냐?”

장난기 넘치는 저 표정.

진짜 천우진이 맞았다.

“다, 닥쳐라! 진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애써 억누른 채 고개를 돌렸다.

영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러 다가가자 박윤식 영감은 손을 휘휘 저었다.

“가문의 사람이 온 것은 처음이 아니더냐. 이야기나 하고 오거라. 작업 준비하고 있을 테니.”

“고마워, 영감.”

별말 없이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영감이 참 고마웠다.

영감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문을 증오하는 내가 가문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상황을 타파하려고 했던 모습에 조금 감동받은 것 같기도 하고…….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는 천우진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말했잖아. 우리한텐 다음이 있다고.”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듯 소리치자, 천우진은 귀를 막으며 대답했다.

“귀 떨어지겠다. 조용히 좀 말해.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까.”

“…….”

잠시 뜸을 들인 천우진이 입을 열었다.

“나는 천가의 피 외에도 두 개의 특성을 더 가지고 있었어.”

“늦게 피는 꽃, 영원한 동반자…….”

“알고 있네. 바로 그거야. 늦게 피는 꽃은 내 능력의 발현을 늦춘 기간만큼 죽음의 순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야.”

“그럼 그동안 그 서러움을 받고 자랐던 게 다…….”

“그래.”

“병신.”

“……이제부터 형이라고 불러라.”

“응, 꺼져.”

다소 유치한 말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먼저 손을 든 것은 나였다.

아직 궁금한 것이 차고 넘쳤다.

“아니, 근데 왜 나까지 되돌아온 건데.”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묻자 천우진은 놀리던 입을 멈추고 대답했다.

“영원한 동반자. 내가 영원한 동반자로 지정된 사람은 나와 특성을 하나 공유할 수 있어.”

“그럼, 그때 피를 마시게 한 게…….”

“그래, 동반자로 지정하기 위한 과정이지.”

이제야 의문이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으며, 천재로 칭송받던 저 녀석이 왜 그런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해.

“징하다, 어떻게 10년을…….”

“미래의 일을 모두 알고 돌아가면 잘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지.”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천우진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그래서 그렇게 무시 받으면서도 실실거렸던 거구나? 병신처럼.”

“말끝마다 계속 병신병신 할래?”

이제야 이 녀석의 행동들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가문에서 무시 받고 쫓겨날 때까지 늘 실실거렸던 녀석. 확실히 이 녀석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야비한 새끼.

나한테까지 비밀로 하다니.

아니꼬운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그 움직임은 어떻게 된 거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천우진의 표정을 보자 나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평생 잠겨 있던 특성과 스킬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는 곧 나도 천가의 사람들처럼 움직이고 싸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서러웠던가. 별 같잖지도 않은 스킬에 일반인과 다름없는 움직임. 가문 사람들의 끝없는 조롱까지.

이젠 많은 것이 바뀔 차례였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봉인됐던 능력이 풀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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