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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2화 (2/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2화

2. 늦게 피는 꽃(2)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가족을 지켜 내지 못한 것?

아니.

천우진을 따라 적진 한가운데까지 쫓아간 일?

전혀.

바로 저 아래. 꼬장꼬장한 기세를 뽐내는 저 영감을 지켜 내지 못한 순간이다.

“이 미친 영감탱이가!”

“저, 저! 싸가지 없는 놈이!”

그래, 저 영감하고는 맨날 저렇게 박 터지게 싸워 댔었지.

매일 싸우고, 욕하고 미워하고 또 화해하고…….

참 지지고 볶고 많이도 부딪쳤던 사이였다.

매일 죽일 듯 서로를 물어뜯지만, 혈육보다 더 가족 같았던 관계.

나는 발아래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장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저 말은 내가 좀 심했네.’

‘아니 근데 저건 좀 아니지.’

‘저 미친 영감탱이가!!’

보면 볼수록 감정이 수십 번도 더 바뀌는 이유는 저 아래서 박윤식 영감과 언쟁을 벌이고 있는 자가 다름 아닌 나였기 때문이다.

10년이나 훌쩍 지나 버린 일이었지만, 저 날의 감정이 지금의 일인 듯 온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을 어떻게 내려 볼 수 있느냐?

그건 바로 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다 버린 가문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적진 한가운데 혈혈단신으로 쫓아간 사촌 형을 뒤따라가, 같이 콱 뒤져 버린 것. 그것이 나의 최후였다.

한마디로 말해 개죽음이란 말이다.

씁쓸한 기분에 입맛을 쩝 다실 때, 죽기 전 들었던 환청이 생각났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내 특성도 아닌 사촌 형의 특성 때문에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는 알림음.

참…… 턱도 없는 소리였다.

지금은 그저 살고 싶다는 욕망이 반영된 환청이 아닐까? 라는 추측만 해 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특성은 들어 본 적도 본 적도 없다. 있다고 쳐도 그런 귀한 특성을 천우진 그 머저리가 들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 보는 장면은 주마등.

그래 주마등이 틀림없었다.

저 장면도 곧 사라지고, 나는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겠지…….

그저 과거를 회상하며 천천히 죽음을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건 또 왜 이래?”

먼발치에서 관망하듯 보이던 시선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말소리만 간신히 들리던 시점에서 표정이 온전히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젠 어느새 손 닿으면 잡을 수 있을 만한 거리까지 좁혀졌다.

나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10년 전의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혼의 모습일 뿐이니 만질 수는 없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뻗은 손이 어느새 과거의 육신과 맞닿았다.

툭.

그러곤.

“끄아아악!!”

몸이 빨려 들어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윽!!”

버텨 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는 청소기 앞 먼지처럼 순식간에 10년 전의 육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

“이젠 하다 하다 연기까지 하는 게냐?”

어지러운 느낌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하자 눈앞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자 뿌옇게 물들었던 시야도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또렷해진 시야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영감이었다.

“바, 박윤식 영감?”

온전히 그를 인지했을 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미친놈이! 지금껏 나랑 박 터지게 싸워 놓고 뭐? 박윤식 영감? 이젠 정신까지 나간 게냐?”

“허……!”

“이, 이게! 스승 앞에서 헛숨을 들이켜?”

박윤식 영감은 FRP(강화 플라스틱)로 만들어진 몽둥이를 들고는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휘두르려는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내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무슨 짓이냐?”

“보고 싶었어, 영감.”

“진짜 정신이 나간 게냐? 매일같이 봐 놓고는…… 약 좀 사주랴?”

낯부끄러움도 없이 그를 끌어안은 나는 잠시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후회와 자책감 속에 살던 날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진짜 돌아왔어.”

“대체 뭐라는 게냐? 오늘 작업하기 싫어서 그런 게라면…….”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다시 한번 영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저만큼 나이가 들었으면 흐물흐물하고 축 처진 살갗이 느껴질 법도 한데, 박윤식 영감의 몸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1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인과 관계를 전혀 알 수 없던 시스템의 알림음.

만약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나는 지금 과거로 돌아와 있다는 말이었다.

“허…….”

믿을 수 없으면서도, 또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후회하고 보고 싶었던 이 영감이 내 눈앞에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으니까.

‘아직 늦지 않았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것은 기회였다.

집안을 잃지 않을 기회.

천우진을 잃지 않을 기회.

그리고…… 눈앞, 혈육보다도 더 가깝게 지냈던 박윤식 영감을 잃지 않을 기회!

“영감 오늘이 며칠이야?”

“이놈이……! 닷새 후가 우마 길드 동상 마감일인데 그새 그걸 까먹어? 젊은 놈이 정신머리 빠져서는.”

“아, 맞다.”

전혀 알지 못하는 정보였지만, 일단은 맞장구를 쳤다. 더 이상 미친놈으로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무리하고 도색까지 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니 빨리 준비나 하거라.”

“알겠어.”

영감은 투닥거리던 싸움을 그만할 생각인지 나에게 작업 준비를 시켰다.

10년이나 지났지만, 작업하던 시절의 과정은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벌써 도색 작업에 들어가는 거라면 시간 여유는 넉넉했지만, 평상시와는 다른 내 태도에 당황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창고가 위치했던 곳을 향했다.

* * *

윤식 조형.

내가 17살 때부터 집을 나와 살고 있던 곳은 다름 아닌 이곳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떡하니 간판에 새긴 채 일을 하는 이곳은 FRP로 만든 조형물을 만들어 파는 업체였다.

대학교의 동상이라던가 각 길드의 상징물 등을 만들어 파는 1인 업체.

혼자 하는, 정확히는 나와 같이 둘이 일하는 업체였지만 손님이 끊인 적은 없었다.

그만큼 명인 박윤식이 만든 조형은 특별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완벽한 형태는 기본이요, 나무랄 데 없는 마감과 조화로운 도색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윤식이 만든 조형물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쌍 길드에 지어 준 쌍칼 동상은 길드원 전체에게 힘 스탯을 2나 올려 주는 버프를 제공했고 힐러 연합에 지어 준 성모마리아 동상은 연합원들에게 일정 기간 마나를 늘려 주기도 했다.

이렇듯 박윤식 명인이 만든 조형물은 하나같이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쉽게 말해 조건부 버퍼를 만들어 내는 미친 능력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손님을 골라 받아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창고에 들어온 나는 조금씩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해 보자면 천우진 그 인간의 특성으로 내가 10년 전으로 되돌아왔다는 건데…….”

10년 전이면 지금 나이는 스무 살. 그러니까 이곳에 온 지 3년째가 되는 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우마 길드의 동상을 제작할 시기면…… 박윤식 영감이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별 같잖은 것들이 날파리처럼 꼬이던…… 시발!

나는 준비하던 물품들을 모두 내팽개치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영감!”

“왜 이리 소란이냐?”

박윤식 영감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나를 노려봤다.

“영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잠깐만 따라와 봐.”

“진짜 오늘 뭘 잘 못 처먹었나? 빨리 꺼지지 못할까!”

작업장을 정리하고 있던 박윤식 영감은 잡아끄는 내 손을 넘치는 악력으로 뿌리쳤다. 흰머리와 수염이 얼굴의 반 이상을 덮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도 엄연히 플레이어였다. 힘에서는 결코 나에게 밀리지 않았다.

“아니,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된다니까? 잠깐, 잠깐만 나갔다 오자, 응?”

“가길 어딜 가? 손님 왔는데.”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뒤쪽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람한 체형의 남성이 서 있었다.

깔끔히 민 머리에 자신의 신체만큼 거대한 무기를 들고 있는 남자. 그를 바라본 내 눈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재문…….”

“꼬맹이, 나를 알아?”

모를 리가.

내가 천지훈만큼이나 증오하는 녀석인데.

“검신 길드 부길마 정재문.”

“오호, 내가 좀 유명하긴 하다만…… 버릇없이 내 이름을 딱딱 불러 대는 꼬맹이 녀석은 또 첨이네. 이름을 알고 있다면 나에 대한 소문도 들어 봤을 텐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은 목을 까딱거리며 관절 소리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미친개 혹은 검신 길드의 탕아라고 불리는 이자는 모두가 마주치기를 기피 하는 자였다.

우리 천가처럼 피에서 피로 이어지는 가문의 형태가 아닌 능력자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조직.

길드.

그중에서도 꽤 이름 날리는 조직이 바로 ‘검신’이었다.

정재문은 당장이라도 나를 해코지할 것처럼 손을 뻗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오?”

그 손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박윤식 영감이었다.

“아, 반갑소, 영감. 소문 듣고 찾아왔소. 당신이 그렇게 조형물을 잘 만든다고.”

“그렇소만.”

박윤식은 별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넘치는 것 또한 저 영감의 성격이었으니까.

“겸손하지 않아서 좋네. 우리 검신 길드를 상징하는 동상을 하나 만들고 싶은데, 최대한 빨리 가능하겠지? 값은 뭐, 싸게 해 주면 좋고.”

시장바닥 흥정하듯 값을 후려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정재문의 언행에 박윤식 영감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꺼져라.”

“뭐?”

“흥정할 거면 꺼지라고. 난 내 작품의 값어치만큼 정확히 돈을 받는다.”

“……그래. 얼마를 원하는데?”

갑자기 겁도 없이 날아든 욕설에 정재문은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박윤식은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

“십억.”

“미쳤군.”

“이십억.”

“……영감, 오래 살고 싶지 않소?”

“네 녀석보단 오래 살 테니, 걱정하지 말 거라.”

“……진짜 죽고 싶은가 보군.”

정재문은 등에 멘 거대한 대검을 꺼내 들었다.

육중한 검에 어울리지 않게 가벼워 보이는 검의 무게였다.

“1억. 기한은 이번 달까지.”

“미친 건 네놈 같은데, 애송이.”

“한 번만 더 지껄이면 혓바닥을 뽑아 주지.”

정재문은 당장이라도 행동을 취할 것처럼 영감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그 모습에 나는 급히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에야, 박윤식 영감의 말발과 기세, 노련미로 정재문이 한발 물러가긴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다.

앙금이 남은 정재문은 머지않아 앙갚음을 하고 만다. 그날이 내가 영감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테고.

“아이, 영감님. 아까부터 낮술을 자시더니 많이 취했나 보네. 거, 미안합니다. 우리 영감님이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너 내가 호구로 보이냐?”

젠장, 안 통하네.

쉽게쉽게 넘어가면 좋으련만…… 생각해 보면 변명이 너무 허술하긴 했다.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일반인들에 비해 월등했다. 거기에 상대는 대형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다. 술 냄새 하나 못 느낄 리가.

정재문이 뽑아 든 검은 당장이라도 나와 영감을 양단할 기세였다.

평소라면 나는 참았을 테고, 영감은 성을 참지 못하고 정재문을 나무라며 내쫓을 테지만, 그리해서는 안 된다. 확정된 미래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나?’

이 당시 나는 가문에 환멸을 느끼며 다시는 천가의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 다짐한 시기였다. 어떠한 도움도 간섭도 받지 않으며 오직 내 힘으로만 살아가겠노라 다짐했던 시기라는 말이다.

그 결과 평생 나약한 놈으로 살다가 개죽음당해 버리긴 했지만…… 당시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러나.

‘그건 그때의 생각이고…….’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져야 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가문이었지만, 전체가 사라지니 마음이 썼다. 영감이 당할 때는 가슴이 찢어졌고. 천우진이 죽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비약을 섞자면 이 모든 것은 내가 힘이 없어서였다.

힘을 키울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지금. 몇 가지는 바꿀 수 있다.

천천히 정재문에게 다가선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누구한테 칼을 겨누고 있는 건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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