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사들의 요새 (11/45)

투사들의 요새

뽀글 뽀글 뽀글!

하얀 물거품이 몸을 감쌌다. 절벽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몸을 찍어 눌렀다. 어떻게 해 볼 새도 없이 바닥까지 가라앉고 말았다. 수압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나는 여태껏 내 허리를 꽉 붙잡고 있는 오크 놈의 눈을 손가락으로 푹 찔렀다.

비명 대신 공기 방울을 부글부글 토해 내며 오크가 떨어져 나갔다.

오크는 절벽에서 떨어진 폭포의 물살에 떠밀려 수면을 향해 둥실 떠올랐다.

나는 아이언 피스트와 족쇄의 무게 때문에 바닥에 가라앉은 상태로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다.

물밑 땅을 걸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붉은빛 비늘을 가진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들었다.

모습이 낯익어 자세히 살펴보니 연못에서 나의 옷을 잘근잘근 씹어 먹던 바로 그 물고기였다.

물고기 떼는 눈을 감싼 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오크에게 달려들었다.

수백, 아니 수천 마리에 가까운 식인 물고기 떼의 습격에 오크가 무음의 비명을 질렀다.

오크에게서 뿜어져 나온 붉은 안개가 참혹한 현장을 덮었다. 발버둥 치던 오크가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다.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허연 오크의 뼈가 물고기 떼 사이로 두둥실 떠다녔다.

물고기들은 마치 장난을 치듯 오크의 해골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가지고 놀았다.

물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던 해골이 내 쪽으로 날아온 순간 물고기들이 나의 존재를, 즉 새로운 먹이를 발견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물고기들이 다시 무리를 만들었다. 유리알처럼 깨끗한 물속에 시커먼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천둥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악몽을 품고 시커먼 구름이 다가왔다.

나는 얼른 몸을 움직였다.

아이언 피스트와 족쇄 때문에 수영은 불가능했다. 최대한 빨리 발을 놀려 뜀박질을 시도해 봤지만 수압과 물의 저항 때문에 걸음에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몇 발자국만 더 옮기면 땅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거리에 도착했을 때 식인 물고기 떼가 잽싸게 헤엄쳐 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수면 너머로 아른거리는 물 밖의 풍경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뒤로 도망칠 수도 전진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서서히 숨이 막혀 왔다.

뽀글!

입에서 공기 방울 하나가 새어 나온 순간 물고기 떼가 달려들었다.

맨 앞에서 무리를 이끌고 있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물고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물살을 갈랐다. 하지만 주먹이 만들어 낸 그 물살 때문에 오히려 물고기를 맞힐 수가 없었다.

물살에 휩쓸린 물고기가 바람에 휘날린 낙엽처럼 팽글팽글 돌아 뒤쪽으로 밀려났다. 자세를 바로 한 물고기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다시 달려들었다.

사방팔방으로 팔과 다리를 휘저었다.

달려들던 물고기들이 물살에 휩쓸려 흩어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진형을 짜고 달려들었다.

물속에서의 싸움이었다. 나에게 승산이 있을 리 없었다. 나의 주먹질은 죽음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발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도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수, 숨이…….’

몸을 움직였더니 가뜩이나 모자란 공기가 더 빨리 소모되었다. 허파가 고통을 호소했다. 반사적으로 숨을 쉬자 콧속으로 물이 들어왔다.

숨이 막히자 자연스레 동작이 굼떠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고기들이 달려들었다.

대부분은 물살을 일으켜 날려 버릴 수 있었지만 대여섯 마리의 물고기가 물살을 뚫고 들어와 옆구리와 어깨, 종아리와 엉덩이를 물었다.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마치 잉크처럼 점점이 퍼져 나갔다.

피를 보고 흥분한 물고기들이 사납게 날뛰었다. 허리케인처럼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달려들 기회를 노렸다.

그때였다.

숨이 목에서 턱 막혔다.

한계였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팔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토록 바라던 기회를 식인 물고기들은 놓치지 않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물고기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물고기들의 톱니 같은 이빨이 나를 물어뜯으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순간 잊고 있었던 그, 것, 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성공과 실패를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무조건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사히 몇 발자국을 걸을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몇 발자국만…… 단 몇 발자국만 전진할 수 있으면 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 나는 외쳤다.

‘라이트닝 볼트!’

번쩍!

반지에서 은색 빛줄기가 방출됐다.

쾅!

빛줄기는 물에 닿는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물속으로 녹아들었다.

파지지지직!

강력한 전류가 물고기 떼를 덮쳤다.

나의 몸에 이빨을 박아 넣으려던 물고기들이 깜짝 놀란 듯 파득거리다 배를 뒤집고 죽었다.

수천 마리의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전류가 공격한 것은 물고기뿐만이 아니었다.

라이트닝 볼트가 시전되는 순간 강렬한 전기 충격에 일순 심장이 박동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으며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저절로 입이 벌어지면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기절하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러곤 물고기의 장벽을 뚫고 한 발, 한 발 물 밖에서 아른거리는 나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푸하!”

마침내 수면 위로 머리가 빠져나왔다.

“후하! 후하!”

잔뜩 쪼그라들었던 허파가 맹렬한 기세로 팽창했다.

첨벙첨벙!

나는 납덩이를 단 듯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여 뭍으로 빠져나왔다.

물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땅에 대자로 누워 탐욕스럽게 공기를 먹어 치웠다. 먹어도 먹어도 호흡이 진정되지 않았다. 전기에 감전된 몸이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한참 만에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삐거덕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물 위에 식인 물고기의 시체가 시커멓게 둥둥 떠다녔다.

물가로 떠밀려 나온 물고기를 주워 뜯어 먹었다. 한 입씩 먹고 버려도 배가 부를 만큼 죽은 물고기가 많았다.

억지로 배를 채우고 나무에 기대 한숨을 돌렸다.

그때였다.

“낚시 한번 요란하게 하네.”

머리 위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깨닫는 순간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누구냐!”

나무 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부스럭!

휘익!

쿵!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리더니 서글서글한 인상의 뚱뚱한 남자가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참인가?”

뚱뚱한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누구냐?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라이트닝 볼트의 충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는지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최대한 여유로운 얼굴로 뚱뚱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의 상태를 알았는지 피식 웃었다.

“그 질문은 내가 하고 싶은데. 넌 누구냐?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나에게 다가왔다. 눈빛이 만년설처럼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굳이 지금 대답해 줄 필요는 없어. 차차 알게 될 테니.”

“멈춰라.”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클라리스 왕국 출신의 투사 트아르다. 얼굴을 보니 아직 여자 맛도 모르는 애송이 같은데 어쩌다 이런 곳까지 흘러왔지? 아니, 어째서 이쪽에서 헤매고 있는 거지? 대체 어느 투기장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빌어먹을 곳이군. 최소한 요새까지는 데려다 줘야 하는 게 규칙일 텐데. 규칙도 지키지 않는 투기장인가 보군.”

트아르란 이름의 뚱보가 계속 다가왔다.

“멈춰라.”

나는 한 번 더 경고했다.

“같은 처지끼리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자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을 거 아냐? 어? 몰라? 모르는 눈친데. 이런 이런! 네가 있던 투기장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빌어먹을 곳이네.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안 알려 주다니.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운 좋은 소년. 이 형님께서 이곳에 관해 친절히 설명해 줄 테니. 하하하!”

트아르는 계속 다가왔다.

주먹에 꽈악 힘을 주었다. 여전히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상대는 투사였다. 몇 등급의 투사인지는 모르지만 풍기는 기운으로 봐서는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계획했던 것보다 빠르지만 나는 다크섀도우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쿵!

쿵!

아이언 피스트를 벗어 땅에 내려놓았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트아르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는 땅에 움푹 박혀 있는 아이언 피스트를 흥미로운 얼굴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버림받은 투사들의 섬이지.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투기장에서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놈들만 모이는 곳이야. 물론 나는 예외지만. 오해를 받고 끌려왔거든.”

트아르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었다. 그는 순수한 호의를 가지고 나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었다.

카렌이 나를 팔아넘긴 이 섬에, 나에게 호의를 보내는 인간 따위가 있을 리 없다는 믿음이었다. 이것은 믿음을 넘어 절대적인 확신이었다.

게다가 트아르 본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이 섬은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놈들만 모인 곳이라고.

트아르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최악이 맞았다. 아니, 최악이 되고자 했다. 최악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기에.

그러니…….

방심을 유도해 나를 죽이려 했건, 나에게 호의를 품고 도와주려고 했건, 어느 쪽이든 자신의 안목을 탓하길 바란다.

나는 마나를 일으켜 다크섀도우를 꺼냈다.

트아르의 눈빛이 일변했다. 다크섀도우를 소환함과 동시에 달라진 나의 기세를 느낀 것이다.

“자, 잠깐 기다…….”

기다리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어!

휘익!

퍽!

주먹을 트아르의 복부에 꽂았다.

“음?”

주먹에 실은 힘이 상대의 몸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두꺼운 지방 안쪽에 단단한 벽이 느껴졌다. 몸 안의 거대한 힘이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고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뚱뚱한 남자는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실력자였다.

“진정해! 나는 네놈을 요새까지 데려다 주려고 그러는 거다!”

요새?

트아르의 목적을 알았다. 하지만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어설프게 끝낼 수는 없었다.

호엔레른 백작가의 마나 수련법과 나의 목을 노렸던 카렌의 일격을 통한 깨달음을 시험해 볼 순간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러곤 마나를 쏟아부었다. 더불어 트아르의 배에서 느껴지는 방탄력도 강해졌다.

마나와 마나의 대결.

갑자기 많은 양의 마나를 끌어 올린 탓에 몸이 찌릿찌릿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의 공격은 성공을 거뒀다.

다크섀도우가 칠흑 같은 빛을 뿜었다.

쾅!

트아르의 배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컥! 어, 어떻게 나의 마나벽을 뚫었지……?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 마나는 조금 특별하거든.”

시험은 성공했다.

치료 목적으로만 사용하던 마나를 조금이나마 다크섀도우에 실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많이 미숙하고, 주먹에 실을 수 있는 마나의 양도 적었다. 하지만 조만간 점점 더 많은 마나를 주먹에 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더욱더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육체의 강함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나의 강함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무한에 가까운 마나라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주먹을 휘둘렀다.

휘익!

퍽!

주먹이 배에 꽂혔다. 이번에는 아무런 장애 없이 고스란히 힘이 전달되었다.

“컥!”

트아르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돌출되었다. 입가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마나로 만든 방어벽이 깨지면서 내상을 입은 듯했다.

나는 기절한 트아르를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 물가에 버려둔 채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사사삭!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섯 사람이었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박차며 나무 위를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바람이 달리는 것처럼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휘익!

휘익! 휘익!

그들은 나뭇가지를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러곤 나를 향해 다짜고짜 단검을 집어 던졌다.

슈슈슉!

단검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굴렀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단검이 푹푹 꽂혔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른 후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습격자들이 내 주위에 한 명씩 떨어졌다. 순식간에 나를 포위한 습격자들이 검을 꺼내 나를 겨눴다.

“움직이지 마.”

“…….”

습격자 중 한 명이 트아르에게 뛰어가 목에 손을 대었다.

“아직 살아 있어! 잠깐 기절한 모양이야!”

트아르의 생사를 확인한 습격자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습격자들의 얼굴에도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다행인 줄 알아라. 만약 트아르가 죽었다면 네놈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만 궁리했다.

하지만 궁리하고 또 궁리해 봐도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풍기는 기운을 보아 하니 다섯 명 모두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놈들이었다.

트아르에게 했던 것처럼 기습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정면 대결은 무리였다.

“네놈도 우리와 같은 투사가 분명한데 어째서 트아르를 공격한 거냐?”

“…….”

“어쭈?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보네? 어째서 트아르를 공격했냐고 물었잖아. 귀가 먹었냐? 이 꼬챙이로 좀 뚫어 줄까?”

습격자가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냥 없애 버리자. 트아르를 공격한 놈이잖아. 뭔 말이 더 필요해?”

“그래도 최소한 이유는 알아야 하잖아.”

“이유를 알면 용서해 줄 거야?”

“물론 그건 아니지. 크크크!”

나를 포위하고 있던 네 명이 씨익 웃으며 동조했다.

짙은 살기가 퍼져 나갔다.

나는 집어넣었던 다크섀도우를 꺼내기 위해 마나를 일으켰다.

“콜록! 그, 그만해!”

정신을 차린 트아르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입가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닦은 후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내 실수야. 좀 더 천천히 다가갔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오는 신참이라 좀 흥분했나 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마터면 네가 죽을 뻔했잖아?”

“저놈의 경고를 무시한 내 잘못이야. 나이가 어려 보여서 방심한 거지. 설마 내 마나벽을 부술 만큼 센 놈일 줄이야. 나도 이제 갈 때가 됐나 봐. 싸움은 나이로 하는 게 아니란 걸 깜박 잊고 있었어.”

트아르는 나를 쳐다보았다.

“쓸데없이 겁을 줘서 모양새가 이렇게 되었군. 일단 사과하지. 하지만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야. 나는 너를 요새까지 데려다 주려고 한 것뿐이야. 다른 뜻은 없었어.”

“요새가 뭐지?”

마침내 내가 물었다.

습격자들이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설마 진담은 아니겠지?”

“적무도까지 끌려왔으면서 요새도 모르다니. 투기장 놈들이 그런 것도 안 알려 줬을 리 없는데.”

“진짜 요새를 몰라?”

“모른다.”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나의 굳어진 표정을 봤는지 트아르가 얼른 끼어들었다.

“이놈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몰라. 투기장 놈들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은 채 이놈을 요새 반대쪽에 떨궈 놓은 것 같아.”

“서, 설마…….”

“아무리 투기장 놈들이 무책임하다고 해도 적무도에 올 정도의 투사에게 그런 짓을 하겠어?”

“요 며칠 숲에서 난리가 났잖아. 갑자기 왜 그러나 싶었는데 혹시 이놈 때문인가?”

여섯 명의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자세한 건 요새에 가서 들어 보면 알겠지. 그만 가자고. 숲에 오래 있어 봤자 좋을 것 하나 없으니. 역시 이놈의 기분 나쁜 살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네.”

“아직 사냥도 못 했잖아. 근데 그냥 가자고?”

“왜 그냥 가? 여기 이렇게 먹을 게 널려 있는데.”

트아르가 물가를 가리켰다.

대부분은 물살에 밀려 떠내려갔지만 아직도 수백 마리에 달하는 물고기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뭐하고 있어! 음식이 떠내려가잖아! 얼른 가서 줍지 못해!”

트아르가 소리를 지르자 다섯 사내가 허둥지둥 달려가 포대 자루에 물고기를 주워 담았다.

이 기회를 틈타 도망치려 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사내들은 교묘하게 포위망을 형성한 채 물고기를 줍고 있었다. 도망갈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포대 자루 두 개에 물고기를 가득 담은 후 사내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트아르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의 눈빛이 요구하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칼리온이다.”

“칼리온이라. 어쨌든 우리와 함께 가야겠다.”

트아르가 내게 말했다.

“만약 거절한다면?”

“뭔가 착각하나 본데, 이건 제안이 아니야. 협박이다.”

여섯 명의 사내가 순식간에 나를 에워쌌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네게도 좋은 일일 거다. 원래대로라면 억지로 데려갈 필요도 없는데 네 경계심이 너무 강해서 이렇게 데려가는 것뿐이다. 일단 따라와서 요새를 보면 따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거다. 네가 약한 놈이었다면 그냥 버리고 갔을 거다. 하지만 실력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반드시 데려가야겠다. 우리에겐 실력 좋은 투사가 필요하거든. 인재는 늘 부족한 법이지.”

나는 트아르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벗어 놓은 아이언 피스트를 챙긴 후 잠자코 그의 뒤를 따라갔다.

트아르를 쫓아가는 내내 어떻게 하면 도망칠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저기가 바로 우리들이 사는 곳이다.”

트아르가 먼 곳을 가리켰다.

멀리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요새였고, 그래서 나는 탈출 가능성을 조금 더 낮춰야 했다.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통솔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산채란 뜻이었다.

“가자!”

트아르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요새는 내가 떨어졌던 폭포가 만드는 강의 물줄기를 따라 하류 쪽으로 걸어 내려간 곳에 있었다.

산적의 산채처럼 보이는 투박하고 거친 모양의 요새였다.

“문 열어!”

트아르가 소리를 질렀다.

성벽 위에서 경비를 보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삐쭉 내민 뒤 인상을 썼다.

“잡아 오라는 멧돼지는 어디 가고 옆에 있는 꼬마는 누구야?”

“숲에서 방황하고 있는 걸 내가 주웠어.”

“숲에서 방황하고 있었다고? 왜 꼬마가 숲에서 방황하고 있어? 투사면 이곳으로 와야 하는 거 아냐?”

“투기장 놈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그것보다 얼른 문 안 열어? 언제까지 밖에 세워 놓을 참이야?”

“열면 될 거 아냐! 성질머리하곤.”

경비의 머리가 성벽 안으로 사라지고 얼마 후.

촤르르르!

끼기긱!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나무 문이 위로 올라갔다.

“들어가자.”

긴장해 있는 내 등을 트아르가 가볍게 떠밀었다.

요새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이변을 느꼈다.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너무 산뜻한 기분이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요새의 문을 통과하는 순간 숲 전체에 퍼져 있던 은은한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왜 그래?”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걸음을 멈추자 트아르가 물었다.

“살기가…….”

“살기? 아! 그렇군. 살기가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나 보군. 하하하!”

트아르를 비롯한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 요새는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어. 그래서 숲의 살기가 침범하지 못해. 붉은 안개도 여기만 끼지 않지.”

트아르의 말처럼 붉은 안개는 요새 성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끈적한 살기가 묻어 있지 않은 공기가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적무도에 도착한 이내 계속 짓누르던 압력이 갑자기 사라지자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팽팽하던 긴장이 갑자기 느슨해진 탓이었다. 흡사 함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방심하지 않고 긴장감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요새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트아르를 제외한 나머지는 식량 창고로 간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은 사람은 트아르 혼자였지만 역시나 도망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니, 요새가 있다는 트아르의 말이 사실임이 밝혀진 이상 다른 말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요새의 박력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홀로 숲 속을 헤매며 도망치던 터라 같은 인간을 보니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요새의 분위기는 활기와 생기로 가득했다. 음습함이 없었다. 좀 더 있어도 괜찮을 듯싶었다.

요새의 첫인상은 겉모습처럼 산적의 산채 같았다. 나무로 만든 통나무집과 돌로 만든 석조 집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르그르그르!

나무, 돌 따위를 실은 수레를 근육질의 남자들이 말 대신 끌고 있었다. 수레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바위를 들고 가던 사내가 내 앞에 우뚝 멈췄다. 그러곤 바위 옆으로 고개를 기울인 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트아르! 그 꼬마는 뭐야? 신참인가?”

“신참이야.”

“오랜만에 온 신참이군. 내 이름은 보다니스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하하하!”

보다니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성큼성큼 사라졌다.

“저 오지랖 넓은 놈은 아르센 제국 출신의 투사지. 힘만 센 멍청이지만 저래 봬도 나보다 등급이 높은 A 등급 투사니 친해지면 요새에서 생활하는 데 제법 편할 거야.”

갑자기 트아르가 뭔가 생각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너는 등급이 뭐지?”

“C 등급이다.”

트아르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나를 획 돌아봤다.

“C 등급? 정말이냐?”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있나?”

“……젠장. 쪽팔리게 아래 등급한테 지다니.”

정말로 창피한지 트아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한참을 끙끙거리던 그가 내 어깨에 턱 손을 올린 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넌 B 등급이다. 알았지?”

그 모습이 너무 심각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나 확답을 받은 후에야 트아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늦게 물어봐서 다행이군. 하마터면 그놈들이 다 알 뻔했잖아.”

‘그놈들’이란 아마 식량 창고로 사라진 다섯 남자일 것이다.

“따라와.”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물론…… 이 요새의 대장이다.”

트아르가 요새 안에서 가장 크고 높은 5층으로 된 석조 건물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베네딕트가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트아르가 요새에 관해 이것저것 설명을 했다.

투사들의 요새는 해적왕 휴 루스가 세운 해상 왕국, 세이렌의 왕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적들이 만든 왕국답게 세이렌의 왕성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경선에 지어진 성처럼 투박하고 실용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니, 국경선에 지어진 성보다 더 심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버금갈 만큼 촌스러웠다.

모든 집이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돌로 된 집은 과거의 유물이었고, 통나무로 지어진 집은 세이렌의 왕성에 자리를 잡은 투사들이 만든 것이었다.

왕이 머물렀다는 곳조차 직사각형 모양의 네모 집이었다. 크기만 5층 높이로 클 뿐 모양은 다른 집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가까이서 본 왕궁은 무척이나 낡은 상태였다.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하얀색이었을 벽은 금이 가 있었고, 게다가 시커먼 얼룩으로 더러웠다. 왕궁 안으로 연결된 층계 계단 역시 멀쩡하지 않았다. 군데군데 부서진 흔적이 많았다.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는 겉과 다르게 왕궁 안은 깨끗했다. 그리고 환했다.

요새가 가지고 있는 산적들의 아지트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꽤나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투기장에서 보았던 라이트 마법을 담은 아티팩트도 천장에 박혀 있었다.

똑똑!

베네딕트의 거처는 5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누구지?”

문 너머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트아르입니다.”

“들어오게.”

나는 트아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에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창문 너머로 요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의 주인은 창문 옆에 위치한 기다란 의자에 누워 있었다.

“무슨 일인가?”

베네딕트는 창문 너머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참입니다.”

“신참? 요 근래 배가 들어왔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베네딕트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트아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냥을 나갔다 숲에 있는 걸 발견해 데리고 왔습니다.”

“숲에 있었다고?”

부스럭.

흥미가 생겼는지 그제야 베네딕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나를 위아래로 찬찬히 쳐다봤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처럼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이름이 뭔가?”

“칼리온……입니다.”

반말을 하려다 트아르가 눈을 부라리고 쳐다보는 것을 보고 뒷말을 붙였다.

베네딕트가 다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나 역시 베네딕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목구비가 선명한 얼굴이었다. 눈썹이 짙었으며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에 비해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다.

거기다 짧은 머리카락이 더해져 더욱 나이를 추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려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쉽게 깔볼 수 없는 그런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근육은 적당히 보기 좋을 만큼만 붙어 있었다. 호리호리하지만 탄탄해 보이는 몸이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안경이 반짝 빛났다. 그 안경 너머에 날카로운 눈동자가 있었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베네딕트다. 아르센 제국에 있는 바스티앵 투기장 출신이고 등급은 트리플 A지.”

“바스티앵은 아르센 제국, 아니 대륙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투기장이야.”

트아르가 작은 목소리로 부연 설명을 해 줬다.

하지만 나에게는 대륙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투기장 바스티앵보다 다른 단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트리플 A.

투기장에서 실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

말로만 들었던 트리플 A의 투사가 눈앞에 있었다.

트리플 A 등급을 실제로 본 나의 소감은 한마디로 말해 실망이었다. 생각보다 강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타르 왕국의 페르트 투기장에서 왔습니다. 등급은 C등…….”

“B 등급입니다. 저와 같죠. 하하하!”

트아르가 친근한 척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어색하게 웃었다. 어깨를 잡은 손에 꾸욱 힘을 주며.

“B 등급이라…….”

베네딕트는 잠깐 생각한 후 말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요새가 아닌 숲 속에 있었던 거지?”

나는 투기장에서 있었던 일과 적무도에 와서 일어났던 일들을 개략적으로 말했다.

베네딕트는 시큰둥한 얼굴로 묵묵히 내 말을 들었다. 듣고 있는 건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만큼 무관심한 얼굴이었다.

“왜 요새로 안 데리고 온 건지 모르겠군. 투기장에 뭐 밉보인 거라도 있는가?”

“글쎄요.”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카렌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기에 잠자코 있었다.

“어차피 이곳에 첩자가 올 리도 없으니 호구조사는 이 정도로 마치고. 트아르, 자네랑 같은 등급이라니 데리고 다니면서 잘 교육시켜 줬으면 좋겠군.”

“네! 맡겨만 주십시오. 하하하!”

트아르가 가슴을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밤이 되었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은은한 빛을 뿌렸다. 요새 외곽을 순찰 중인 투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이 어지럽게 일렁거렸다.

나는 나의 집으로 할당받은 집으로 향했다. 내가 할당받은 집은 세이렌 왕국의 유물인 낡은 돌집이었다. 역시나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끼이익!

만든 지 얼마 안 된 나무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트아르는 이곳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나는 순진하지 않았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가구 하나 없었다. 따라서 수색은 금방 끝났다. 암살자가 숨어 있을 공간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창문을 밟고 뛰어올라 지붕 위로 올라갔다.

사방이 막힌 집 안보단 사방이 탁 트인 지붕 위가 만약의 경우 도망치는 데 더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붕 구석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차가운 바닥이었지만 제법 아늑했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 더욱 편안한 느낌이었다.

나를 노리고 있는 숲에서 벗어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곳에는 오크도 없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오크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경우도 있지만 일단은 휴식이 먼저였다.

하지만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트아르와 이곳의 대장인 베네딕트와의 대화를 떠올려 봤을 때 당장 나를 해코지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적무도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마음이 편했다. 오크의 습격을 염려하지 않고 잠자리에 누웠다.

살기가 없는 밤공기를 마시며 밤하늘을 쳐다봤다.

저 하늘을 보며 감격했던 기억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불안으로 설레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모두 남의 일처럼 멀게 느껴졌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나는 왜 이렇게 변해 버렸을까.

물론 정답은 알고 있었다.

황제가 되고 싶다던 빌어먹을 몽상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카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재주껏 살아남아.

카렌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냐.

살아남아 주지.

나는 보름달 안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휴멜과 카렌의 허상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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