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장 소문 그리고 만남
같은 시각. 라이안의 친구들과 할아버지들은 포스안 제국의 경계점에 도착해 있었다.
칸보리치 동맹국가의 마지막인 크리포드 왕국과 포스안 제국 사이에 있는 국경이었다.
그곳에는 눈으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줄이 서 있어서 그들 일행도 쉽게 지나갈 수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하지?”
헤인드가 지루한 듯 디로안에게 물었다.
“전쟁으로 인해 검문이 삼엄할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에드코르 제국이 미친 것인가? 히매인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패해 상당한 병력 손실을 봤을 텐데 얼마나 지났다고 포스안 제국을 건드리는지.”
“오리닌 황제가 미쳐가고 있다는 소문도 있더군.”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즈리스 남작이 헤인드와 디로안이 있는 곳으로 오며 말했다.
“이상한 소문도 있군.”
“이상한 소문이요?”
“며칠 전, 인두루인 제국의 황성에서 사람들이 몰살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네. 그리고 마시리온 황제는 수도 중앙의 호숫가에서 작은 배에 태워져 목이 잘린 채 죽어 있었다고 하더군.”
“설마요.”
헤인드가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
“소문일 뿐이니 진실은 아직 알 길이 없다네. 아무튼 검문은 빨리 받기 틀린 듯하네.”
줄이 너무 길게 서 있었다.
포스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고 전쟁 중인 그곳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인들이었다.
위험부담은 곧 큰돈과 관련되기 때문에 식량이나 무기를 판매한다면 큰 이문을 얻을 수 있었다.
전쟁을 한다면 아무리 식량이 많아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인들은 마구 들일 수는 없었다.
그런 상인들 중에 상대 국가의 첩자가 끼어 있을 지도 모르며, 그들이 무슨 기밀 사항을 빼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이상 걸릴 것 같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하군.”
그때 어딘가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엄마! 죽으면 안돼요. 흐흐흑. 죽지 마세요. 흐흐흑.”
그 소리에 라드이라가 주위를 쳐다보았고 울고 있는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헤인드는 그곳으로 다가가는 라드이라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라드이라는 10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 옆에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을 보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남자가 울면 못써요. 네 이름이 뭐니?”
아이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라드이라를 보며 매달렸다.
“아저씨,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가 많이 아파요. 흐흐흑.”
“괜찮단다. 이 아저씨가 너희 어머니를 치료해 줄 수 있단다. 너의 이름이 뭐지?”
“전, 진트라고 해요. 정말 우리 엄마를 살려줄 수 있나요?”
라드이라는 진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아저씨는 신관이란다. 잠시만 옆으로 비켜보렴.”
이미 아이의 어머니는 혼절해 있었다.
라드이라는 위급함을 깨닫고 서둘러 신성력을 일으켰다.
스아아아아.
라드이라의 손에서 밝은 섬광이 일어났고 그것은 주위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오. 신관님이시다.”
“아!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모두가 편안함을 느끼며 서로 라드이라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라드이라에게 다가갈수록 아팠던 무릎이나 두통이 씻은 듯이 낳는 듯했다.
라드이라의 손으로부터 흘러나온 신성력은 곧 쓰러져 있는 여성의 머리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곧 신성력의 빛이 사라졌다.
빛이 사라지자 주위 사람들은 왠지 아쉬움을 느꼈다.
“으음…….”
여성이 깨어나는 듯 신음소리를 냈다.
“엄마!”
진트가 자신의 엄마가 깨어나는 것을 보며 엄마를 불렀다.
아들의 음성을 들었는지 정신을 차리며 눈을 뜨던 여인은 진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트…….”
“엄마, 괜찮아요? 이제 안 아파요?”
여인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래, 이제 괜찮아졌구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여기 옆에 있는 신관 아저씨가 엄마를 치료해 줬어요.”
그제야 진트의 어머니는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는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신관님. 저는 진트가 이제 혼자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찌나 걱정이 많았었는지. 흐흐흑,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신관의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으려면 상당히 큰돈이 들었다.
그러하기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여인이었다.
“은혜라니요. 제가 한 것은 별로 없답니다. 앞으로 몸조심하시고 진트를 잘 보살펴 주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인이 라드이라의 손을 잡고는 감사의 인사를 반복하던 그때, 라드이라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진트의 어머니에게 쥐어주었다.
“이건.”
“손을 펴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시선이 많습니다. 그냥 앞으로 진트를 키우실 때 좋은 아이로 보살펴 주라고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전 이만.”
라드이라가 일어나며 미소를 짓자 그녀는 계속 라드이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라드이라가 원래 있던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진트의 어머니는 자신의 손에 들린 무엇인가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1골드였다.
진트의 어머니는 그 1골드를 가슴에 품고 계속해서 흐느꼈다.
이 세상에 라드이라와 같은 성자를 내려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늘에 기도하고 또 했다.
진트의 어머니는 서둘러 진트를 불렀다.
“진트야, 너는 지금 당장 조금 전 나를 고쳐 준 신관님의 이름을 알아 와야 한다. 그리고 너의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드리거라.”
“네, 알았어요.”
진트는 서둘러 뛰어가 라드이라의 옷을 잡아당겼다.
“으음?”
진트임을 알아본 라드이라가 다시 진트에게 따듯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진트구나. 어서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지 않고 왜 온 것이니?”
“신관 아저씨의 이름이 알고 싶어요.”
“내 이름? 흠. 내 이름은 라드이라라고 한단다.”
“라드이라. 알았어요. 라드이라 아저씨, 그리고 이거요.”
소년은 무엇인가를 꺼내 라드이라에게 내밀었다.
라드이라는 소년이 무엇인가 자신에게 주려고 함을 알고는 손을 내밀었고 소년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았다.
라드이라가 손을 펴며 무엇인지 확인했다.
“이것은.”
“제가 만든 거예요. 엄마가 꼭 신관아저씨의 이름을 알아야한다고 하면서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신관아저씨께 드리라고 했어요.”
진트가 준 것은 바로 목걸이였다. 동물의 가죽으로 보이는 줄에 나무로 조각한 말이 달려 있었다.
그것을 보며 라드이라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고맙구나.”
라드이라가 진트의 머리를 쓰다듬자 진트가 오히려 소리치며 엄마에게로 뛰어갔다.
“제가 더 고마워요! 잘 가요. 신관 아저씨!”
“후훗, 이름을 가르쳐 주었거늘.”
다시 진트가 주고 간 목걸이를 보며 생각하는 라드이라였다.
‘마음의 가치란 금화로도 매길 수 없는 것이지. 너무 비싼 것을 받아버렸어.’
그러면서 포근한 미소를 짓는 라드이라였다.
라드이라가 돌아오자 헤인드가 물었다.
“고쳐주었나?”
헤인드의 물음에 라드이라가 다른 말을 했다.
“아주 비싼 것을 받았어.”
“으음? 뭘 받았다는 거야?”
하지만 라드이라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 녀석, 점점 이상해지네.”
라드이라의 변화에 갈피를 못 잡는 헤인드였다.
* * *
포스안 제국의 수도 근처.
번쩍!
어느 한 구석에서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안이었다.
“여기가 포스안 제국인가?”
“자, 그럼 어디 친구들을 찾아볼까?”
잠시 걸음을 옮기려던 라이안이 다시 주춤거리며 멈췄다.
“근데, 어디서 찾아야지? 후우.”
뭔가 빠트렸다고 생각하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들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때 라이안에게 좋은 생각이 났다.
“좋아, 이참에 할아버지들의 위치를 인공위성으로 찾아보자고.”
연습도 할 겸 반지의 한 부분을 누르자 무엇인가 입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그곳은 터치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여기에 쓰면 되나?”
라이안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곳에 갈천혁의 이름을 썼다.
그러자 그곳에 그에 대한 자료와 현재 위치라는 것이 나왔고 라이안은 바로 현재 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바로 대륙의 지도가 나왔으며 그것의 좌표가 나타났다.
“이거 편리한 걸? 좋아, 다시 텔레포트!”
그렇게 또 갑자기 사라지는 라이안이었다.
라이안의 친구들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이 사실인지 궁금했다.
“자네들 저 말이 진짜일 것 같은가?”
“무슨 말이요? 그쪽에선 뭐라고 그러는데요?”
“조금 황당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말해주겠네. 조금 전 저쪽에서 말하는 소리를 유심히 들었는데, 글쎄 에드코르 제국에서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다크나이트를 내놓았다고 하는군. 그래서 포스안 제국의 일천사장이 죽고 이천사장이 중퇴라고 하는 것 같다네.”
“아니, 다크나이트요?”
“그것은 마물이 아닙니까?”
역시 어둠과 상반되는 것이 나와서 그런지 라드이라가 끼어들었다.
“그렇지. 마물이지. 그래서 지금 에드코르 제국이 마족과 손을 잡았다는 것 같군.”
“흠.”
“뭐, 소문일 뿐이라네.”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륙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 봅니다. 인두루인 제국의 일이 만약 에드코르 제국이 손잡은 마족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대충 맞춰보는 라드이라였다.
만약 이것이 정말로 사실임을 알았다면 더 심각했으리라.
그들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마차 위로 밝은 빛이 나타났다.
마차 안에서 마도서를 보던 에나는 자신이 있는 마차 위에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자 서둘러 마차에서 내렸다.
“루시, 나와요!”
“왜 그러죠?”
“어서요!”
루시까지 서둘러 데리고 나온 에나가 마차 위를 바라보며 실드를 전개할 준비를 했다.
공격마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빛과 함께 나타난 것은 바로 그들이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라이안이었다.
“으챠.”
마차 위에 내려선 라이안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고 곧 자신의 친구들을 보며 인사했다.
“어? 안녕, 나 왔어. 헤헤”
“라, 라이안!”
“너, 이 자식!”
“라이안 오빠!”
그러한 소리를 들은 갈천혁과 혁마소도 미친 듯이 마차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들도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라이안을.
“라이안.”
“드디어 만났구나.”
라이안도 갈천혁과 혁마소를 보며 반가워했다.
“갈 할아버지, 혁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갈천혁과 혁마소는 라이안에게 다가갔고 그의 머리를 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로서는 이곳 세계에 와서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니 그 감정이 복받칠 만도 했다.
할아버지들과 같이 있는 라이안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루시 공주와 에나였다.
루시 공주는 라이안을 보자마자 바로 품으로 달려들고 싶었으나 에나의 마음을 들은 이상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 루시 공주의 마음을 알았는지 에나가 루시 공주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에나.”
루시 공주가 에나를 바라보자 에나는 밝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 공주는 천천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라이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오는 루시 공주를 라이안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가까워지며 포옹했다.
“보고 싶었어요. 루시.”
“저도 보고 싶었어요. 라이안.”
갈천혁과 혁마소는 서로를 쳐다보다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라이안과 루시 공주를 바라보았다.
둘은 동시에 손녀 며느리가 생긴다고 상상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만남의 기쁨을 만끽한 그들은 어떻게 하면 포스안 제국으로 들어갈지 고민했다.
갈천혁이 어색해 하는 이즈리스 남작을 라이안에게 소개했다.
“라이안아, 이쪽은 이번에 내가 제자로 거두게 된 이즈리스라고 한단다.”
라이안이 갈천혁의 말을 들으며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전 라이안이라고 합니다.”
“예, 전 이즈리스라고 합니다.”
이즈리스 남작은 50에 가까운 나이였다. 그런데 20살 정도밖에 안 된 라이안에게 존대를 하자니 어색했고 안 하자니 이상했다.
갈천혁과 혁마소도 조금 고민스러웠다.
“이거 둘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나…….”
갈천혁이 고민하고 있을 때 혁마소가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바로 끼어들었다.
“형 아우 하면 되겠구만. 뭐.”
이즈리스 남작도 왠지 그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갈천혁은 이즈리스 남작을 보며 뭔가 석연치 않은 듯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린 동생이 생겨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이즈리스 남작의 말에 갈천혁이 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혁마소가 이즈리스 남작의 뒤통수를 때리는 말을 했다.
“크그그극, 이놈아! 네가 동생이다! 크하하하”
“네? 무슨?”
영문을 몰라 하는 이즈리스 남작이 갈천혁을 쳐다보았다.
“흠. 외형은 저렇지만 라이안이 살아온 인생은 100년이 넘는단다.”
“크헉!”
이즈리스 남작이 눈을 크게 뜨며 라이안을 바라보았다.
라이안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즈리스 남작은 뭔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과 함께 암담함을 느꼈다.
갈천혁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자신도 혁마소의 제자인 아크포민 공작에게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는가.
* * *
그 시각 포스안 제국의 수도는 전쟁으로 인해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많은 마차들이 빠르게 움직였고 바쁜 듯 여기저기에서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포스안 제국의 대신성전이 잘 보이는 어느 한 여관의 2층 창문에서 팔짱을 끼고 대신성전을 내려다보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포스안 제국에 잠입한 칸드였다.
방 안에는 다른 세 명의 마족들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쿨럭! 쿨럭! 아이, 답답해!”
펠랜은 기침을 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신성력이 넘치는 곳인지라 숨쉬기도 힘든 이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마치 연기 속에 있는 듯 답답한 것이 당연했다.
펠랜의 말을 들은 칸드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라. 오늘 일을 시행할 것이다.”
베이모스가 칸드의 말을 듣고는 물었다.
“혼돈의 칼자루가 있는 위치는 알고 있는 것인가?”
“오늘 저녁 에드코르 제국의 첩자를 만나기로 했다. 그가 대신성전의 내부 지도를 주기로 되어 있다.”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지?”
“흠… 생각 중이다. 다들 의견을 말해봐라.”
칸드가 다른 세 명의 마족들을 둘러보며 물었고 펠랜이 대충 말했다.
“그냥 안 들키게 숨어들면 되는 것 아닌가?”
펠랜의 말에 바테르가 특유의 낮고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안쪽에서 그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고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펠랜의 물음은 바테르가 아닌 베이모스가 답했다.
“한쪽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그들이 몰려들었을 때 세 사람이 그 틈을 타서 들어가는 것은 어떤가?”
칸드가 베이모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다. 베이모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소란을 일으키는 하나가 너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내가 하지. 아무리 신성력 때문에 힘이 절감되었다 해도 쉽게 당할 내가 아니니까.”
“만약 사천사장들이 나온다면 크게 다치거나 소멸할 수도 있다. 신성력이 넘치는 곳의 팔라딘은 보다 강한 힘을 내기 때문이다.”
마족은 신성력이 넘치는 곳에서 힘이 크게 줄어들지만 팔라딘은 신성력이 넘치는 곳에서 두 배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이곳은 포스안 제국의 대신성전이 있는 곳이 아닌가.
신성력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칸드는 아직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우선 전쟁에 참여한 사천사장의 수도 알아야 하며 대신성전의 경비 체계도 알아야 한다. 별수 없이 밤까지 기다렸다가 첩자를 만나는 수밖에 없군.”
칸드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알아들었다는 것을 안 칸드가 몸을 돌리며 앞으로 숨어들어가게 될 대신성전을 바라보았다.
야심한 밤이었지만 대신성전의 안은 상당히 밝았다.
그리고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대성관이 황제처럼 성좌에 앉아 있었으며 그 아래로 8개의 좌석에 성관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대신관들과 그 외 중요인물들이 속속히 들어오는 전쟁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며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제 우리나라와 에드코르 제국의 전쟁이 아닙니다. 마족과 손을 잡다니요!”
“그렇습니다. 마족들이 중간계에 나오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들이 크게 웅성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마족이 중간계에 와서 하는 일은 바로 마왕의 강림을 돕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드코르 제국이 그것을 돕는다는 것은 이미 그들은 인간의 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서 다른 나라에도 이 사실을 알려 그들을 공격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대신관들의 말을 들은 성관들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설마 에드코르 제국이 다크나이트를 전쟁에 내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큰일이오. 다크나이트로 인해 일천사장인 윌리엄을 잃다니.”
“흠… 이곳에서 싸웠다면 그렇게 죽을 윌리엄이 아니었소.”
대신성관이 있는 곳에서는 신과도 같은 힘을 내는 사천사장들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소드마스터 정도의 힘밖에 내지 못했으니 너무도 아쉬울 뿐이었다.
대성관이 그들의 말을 듣고는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모두들 진정하시오.”
대성관의 음성이 들리자 주위에서 소란스럽게 떠들던 대신관들이 말하던 것을 그치며 대성관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신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소.”
“신탁!”
“신탁이 내려왔단 말인가.”
장내는 또다시 시끄러워졌다가 대성관이 다시 손을 올리자 조용해졌다.
“신탁의 내용은 이것이었소. 혼돈의 신녀를 찾아 죽여라. 그러지 못한다면 중간계는 어둠에 둘러싸이리라.”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각자 고심했다.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한 대성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둠에 둘러싸인다는 것은 아마도 이번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아마도 마족들이 혼돈의 힘을 사용하여 마계와 중간계의 문을 열려고 하는 듯하오.”
대성관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성관들 중 깡마른 성관이 손을 들고 일어나서 뒤돌아 대성관을 향하여 허리를 굽혔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겠다는 뜻이었다.
대성관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시오.”
“감사합니다. 대성관님. 우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혼돈의 물건들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외의 혼돈의 물건은 아직 세상에 나온 적이 없었으며, 혼돈의 물건들은 운명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당긴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혼돈의 힘들이 서로 끌어당긴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혼돈의 칼자루로 혼돈의 신녀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지요. 그녀를 죽이지 못했을 때, 어둠에 둘러싸인다는 것은 곧 그녀를 죽이면 중간계가 어둠에 싸이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혼돈의 칼자루를 이용해 서둘러 혼돈의 신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관의 말을 들은 대성관이 심각하게 고심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리 있는 말이오. 하지만 혼돈의 칼자루로 혼돈의 신녀를 찾는다는 것은 조금 더 신중을 가한 다음 시행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건 그렇고 전쟁의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
대성관이 전쟁에 대하여 묻자 그와 관계된 대신관이 일어나 답했다.
“첫 번째 전투 이후 현재는 소강상태로 보여 집니다. 그리고 아직 이차적으로 다시 부딪칠 상황은 보여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피해는 어떤가?”
“우리의 가장 큰 피해는 우선 다크나이트로 인해 전사하신 제 일천사장 윌리엄 님을 잃은 것이며 약 200명의 성기사들이 전사하였습니다. 병사들 또한 10만 정도의 전사자가 나왔으며 타이탄의 손실은 4기입니다. 공성무기인 발리스타의 쇠뇌는 약 삼분지 일의 양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가 올라와 있어 서둘러 보급이 이루어지도록 조취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흠… 윌리엄…….”
윌리엄은 포스안 제국의 제일 성기사이기도 했지만 대성관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다.
대성관은 윌리엄이 죽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도자는 보다 냉철해야 했기에 평정심을 되찾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상대의 피해는 어떤가?”
“다크나이트의 출현으로 윌리엄 님이 전사하시고, 이천사장이신 메튜 님이 크게 다치는 바람에 전투는 얼마 후 공성전에 가깝게 이루어졌습니다. 상대 기사의 전사자는 약 250명 정도로 예측되며 병사의 전사자들도 20만 이상의 피해를 주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타이탄 8기를 격퇴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의 지휘체계는 어찌 되는가?”
“우선은 대신관인 세하이 님이 전투를 지휘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수고했소. 모두들 잘 들으시오. 이대로 물러설 에드코르 제국이 아닐 것이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삼천사장과 성관 중 한 분이 그곳으로 가 지휘를 인도 받으시오. 그리고 앞으로의 상황은 더 두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오. 여기서 회의를 마치겠소.”
“주신의 은총이 포스안 제국에 머물기를.”
모두가 기도문의 한 구절을 외우며 회의를 끝마쳤다.
그들이 전쟁에 대한 문제와 혼돈의 신녀를 찾는 것에 고심하고 있을 때, 대신성전의 음침한 곳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곳을 빠져나오는 자가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은밀했으며 어둠과 동화되어 주위를 돌아다니는 경비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는지 그가 있는 곳의 양쪽에서 각각 두 명씩의 경비들이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제길.’
지금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자는 에드코르 제국의 첩자인 테르라는 자였다.
그는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사라기보다 은밀하고 조용히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에 가까웠다. 그는 에드코르 제국의 첩보과정을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한 자로서 이번에 에드코르 제국으로 돌아간다면 그 업적을 인정받고 남작위의 작위를 받을 수 있는 자였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있어서 좋지 못했다.
‘4명을 단번에 죽여야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친다면 나는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경비병들이 성기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만약 성기사였다면 그는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만 했다.
맨 끝의 경비병이 반대편 끝에 있는 병사를 알아보았는지 횃불을 움직이며 소리쳤다.
“어이!, 힐보. 거기는 아무 이상 없는가?”
“아, 빌리였군. 뭐, 언제나와 같지 않겠는가?”
그들은 서로 가까워졌고 어둠 속에 숨어 있던 테르는 뒤쪽에 있는 작은 나무와 풀이 있는 곳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가 숨기에는 너무 작았다.
단지 이들이 최대한 살피지 않기를 바라야만 했다.
경비병들이 서로 가까워졌으며 그들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보게, 빌리. 자네 이번에 딸을 낳았다고 하더군. 어떤가? 예쁘던가?”
“아니, 이친구가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쁘다네. 언제 한 번 놀러 오게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를 소개 시켜주겠네. 하하하”
“이 친구가 너무 자신만만해 하는군. 자네 그러다가 나중에 자네 딸이 자네 같은 남자를 만나면 어쩌겠는가?”
“흠… 그렇게 된다면 그 녀석을 때려 죽여야겠지.”
빌리라는 경비병은 자신의 부인을 음침한 곳으로 꼬여 싫다는 것을 억지로 강간하다시피 해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자였다. 다행히 지금의 부인이 그를 싫어하지 않았기에 괜찮았지 아니었으면 사단이 나도 크게 날 뻔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번에 딸을 얻게 된 것이었다.
테르는 죽을 맛이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눈단 말인가.’
아직도 이들이 테르를 보지 못해서 다행이었지만 만약 보게 된다면 칼부림을 피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려던 경비병들 중 빌리는 순간 옆쪽에서 무엇인가 반짝인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그곳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숨어 있는 테르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갔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이 순간이 빌리에게 있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일 듯 싶었다.
테르는 빌리가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앞으로 튀어나감과 동시에 검으로 빌리의 목으로부터 머리를 관통시켰으며 다른 손에 들려 있던 단검으로 그 옆의 경비병 심장을 찔렀다.
퍼석!
푹!
“컥”
“허윽!”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테르는 이제는 바로 앞에 있는 두 명의 경비병들을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테르의 검보다 그들의 침입자라는 외침이 더 빠를 듯싶었다.
“침……!”
테르의 검이 그의 목과 절반의 거리에 있을 때 이미 두 명의 경비병들은 소리치려 하고 있었다.
한 명의 목을 가르고 난다면 나머지 한 경비병이 마저 소리를 치리라.
테르는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평탄한 생활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음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서걱!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바로 옆의 동료가 목이 잘렸음에서 가만히 테르를 쳐다보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앞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테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쓰러지는 경비병의 뒤로 하나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인기척을 느끼다니, 보통 솜씨가 아니다.’
테르는 긴장하며 검을 고쳐 잡았다.
그런 테르를 보며 그가 조용히 말했다.
“우선 불부터 끄는 것이 좋겠군.”
테르의 앞에 나타난 자는 바로 칸드였다.
첩자에게 보다 빨리 정보를 얻기 위해 접선 장소가 아닌 이곳에서 그를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칸드가 손을 한 번 휘젓자 기름이 묻어 있는 횃불의 불이 순식간에 꺼졌다.
“누구시오? 왜 나를 돕는 것이오”
테르는 첩자였다.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었다.
“긴장하지 마라. 난 너로부터 정보를 들으러 왔다.”
“접선 장소는 이곳이 아니오.”
“알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이들의 외침으로 인해 얼마 가지 못하고 붙잡혔을 것이다.”
테르는 칸드를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겠소.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오?”
테르를 보며 칸드는 제법 철저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후후후, 난 이곳에 혼돈의 물건을 탈취하러 왔다. 됐는가?”
“당신이 맞군.”
칸드는 경비병들을 보며 그들의 몸 위로 무엇인가를 뿌렸다.
“뭐하는 것이오?”
“시체를 숨겨야 하지 않는가?”
테르도 그것이 걱정이었다.
시체를 이곳에 놔두면 다른 경비병으로부터 들키게 될 것이었고, 시체를 옮기자니 움직임이 느려 발각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칸드가 시체 위로 무엇인가를 뿌리자 시체들이 얼마 안 있어 검은 연기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해서 가지고 왔는데 유용하게 쓰이는군.”
테르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너희 인간들은 모르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며 테르 역시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테르는 알 수 있었다.
“당신이 그 소문의 마족이로군.”
정보를 넘겨주어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던 테르였다.
“그렇다.”
테르는 고민했다.
‘대륙의 모든 인간들을 위해서라면 난 이 정보를 이자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라면 정보를 넘겨야만 한다.’
테르는 후자를 택했다.
아직은 어떠한 일도 안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로 현재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칸드가 테르를 보며 말했다.
“우선 이곳을 피해야 하니 팔을 잡겠다. 저항하지 말도록.”
칸드가 테르의 팔을 잡자 그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다시 모습을 나타낸 곳은 다른 세 마족이 있는 여관의 2층이었다.
테르는 그들을 보고는 심상치 않은 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데리고 왔네? 이자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인간이야?”
“그렇다. 얼마나 좋은 정보를 알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자 테르는 자신이 무슨 구경거리가 된 느낌이었다.
“당신들도 모두 마족인가?”
테르의 물음에 칸드가 답했다.
“굳이 알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필요한 정보만 이야기하도록.”
“흠…….”
칸드를 쳐다본 테르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포스안 제국의 지도층은 에드코르 제국이 마족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고 있소. 앞으로 다른 나라에도 그것을 알려 에드코르 제국을 압박하려는 듯하오. 그리고 이것이 대신성전의 지도요.”
테르는 자신의 품 안에서 자신이 직접 그린 지도를 주었다.
“지도의 위로 각각의 숫자가 적혀 있을 것이오. 그것이 각 층의 지도를 나타내는 것이오. 그리고 내가 갈 수 없었던 단 한 곳이 있소. 바로 3층의 중앙이었소. 거기 그려지다가 만 곳이 바로 그곳이오. 난 그곳에 혼돈의 물건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소. 아마도 확실할 것이오.”
칸드가 테르의 설명에 따라 지도를 살펴보았다.
“잘 그려져 있군.”
“그리고 대신성전에 잠입하려거든 오늘이 아닌 내일로 미루시오. 지금 사천사장 중 일천사장이 죽고 이천사장이 중퇴라고 하오. 내일 삼천사장과 성관 한 명이 국경으로 떠난다고 하니 혹 당신들이 들켰을 때 보다 안전할 수 있을 것이오.”
“좋은 정보로군.”
칸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리닌 황제가 아주 잘해주고 있군. 그건 그렇고 치카도 이제 일을 마무리했겠군.’
자신들이 혼돈의 칼자루를 훔치기 전에 인두루인 제국이 먼저 움직여 에드코르 제국을 친다면 곤란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적기였다.
대신성전에 있는 강한 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빠져나간다면 자신들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더 수월해지기 때문이었다.
칸드는 다른 세 명의 마족들을 보며 말했다.
“들은 대로 대신성전에 침입하는 것은 내일로 미룬다.”
칸드의 말에 세 마족은 인상을 찡그렸다.
왜냐면 이곳에 하루를 더 있는다고 생각하니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 * *
마족들이 하루의 시간을 더 미루고 있을 때 라이안 일행은 이제 겨우 국경의 검문소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야 들어갈 수 있겠군요. 혀, 형님.”
“그러네.”
이즈리스 남작은 아직 라이안에게 형님이라는 말이 어색했다.
라이안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즈리스 남작이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하니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갈천혁의 제자라고 한다면 이제는 가족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하기에 위아래는 존재해야 했고 라이안이 이즈리스 남작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나마 이즈리스 남작에게 다행인 것은 라이안의 친구들에게는 존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헤인드와 디로안이 이즈리스 남작이 자신들에게 존대를 하려고 하자 그것을 뜯어말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라이안의 친구들이므로 이즈리스 남작에게는 형님의 친구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와 같이 지내는 것이 자신들도 편하다고 하여 그들에게는 이전과 같이 대하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바뀐 것이라고는 갑자기 나타난 라이안을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밖에 없었다.
국경을 넘는 검문은 삼엄하다 못해 철저했다.
국적이 에드코르 제국으로 되어 있다면 통과는 금지였으며 다른 나라라고 해도 몇 시간 동안 그들이 관리하는 곳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 나라에 직접 국경을 넘으려는 자의 신분이 확실한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라이안 일행의 차례가 다가왔다.
병사는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신분증과 방문 목적을 말하시오. 미리 말해두지만 에드코르 제국의 국적을 소지하고 있다면 통과할 수 없소.”
이즈리스 남작이 병사에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증서와 공동통행증을 병사에게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병사가 이즈리스 남작을 보더니 라이안과 다른 일행을 둘러보았다.
“바로이탄 왕국의 이즈리스 남작님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공동통행증의 진품 여부를 확인한 후 지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네.”
병사가 돌아온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는 더 높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같이 왔다.
“안녕하시오. 전 이곳 검문소를 책임지고 있는 저스틴 남작이라고 하오.”
“이즈리스 남작이오. 반갑소.”
저스틴 남작은 이즈리스 남작을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공동통행증이 진품임은 확인했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분도 알아야겠소. 평소 같았으면 공동통행증 하나로 당연 통과였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라오. 이해해 주시오.”
“흠… 알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이즈리스 남작은 잠시 마차 쪽으로 다가가 말했다.
“모두 잠시 나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즈리스 남작의 말을 들은 일행이 모두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을 보며 이즈리스 남작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우선은 통과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았다.
라이안의 친구들은 용병패로 신분을 증명할 수 있었지만 갈천혁과 혁마소 그리고 루시 공주는 증명할 것이 없었다.
이즈리스 남작이 말하는 것을 보고 있던 저스틴 남작이 다가와 그들에게 말했다.
“모두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시오.”
라이안의 친구들은 모두 자신들의 용병패를 보여주었다.
전부 히매인 왕국에서 발행한 용병패였지만 에나의 용병패는 인두루인에서 발행한 것이라 잠시 에나를 자세히 쳐다보는 저스틴 남작이었다.
그리고 라이안을 쳐다보는 저스틴 남작이었고 라이안은 조금 곤란함을 느꼈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보이시오.”
“휴우… 그것이…….”
라이안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꺼내기가 껄끄러웠다.
라이안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용병패였다.
문제는 그것이 대륙에 단 한 명만이 소지하고 있는 특급 용병패라는 것이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오! 신분증을 보이라 하지 않소!”
저스틴 남작이 소리치자 검문소 쪽에 있는 병사들 몇 명이 그곳으로 걸어왔다.
라이안은 하는 수 없이 품을 뒤져 용병패를 잡았다.
“이걸 보여줘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품에서 금빛의 둥근 패를 꺼내 그것을 저스틴 남작에게 넘겼다.
저스틴 남작은 처음 금빛이 보이기에 눈앞에 있는 자가 어설픈 수작으로 뇌물을 건네나 싶었다.
하지만 건네받은 물건을 확인한 저스틴 남작은 눈을 치켜뜨며 그것과 라이안을 번갈아 봤다.
“이, 이것은……!”
저스틴 남작이 놀라워하자 라이안이 설명해 주었다.
“히매인 왕국에서 발급 받은 용병패입니다.”
저스틴 남작도 용병패에 쓰여 있었기에 그것은 알고 있었다.
단지 그가 놀라고 있는 것은 특급 용병패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그 역시도 특급 용병패를 소지한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정, 진정 당신이 검은 사신이란 말이오?”
“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더군요.”
“이럴 수가… 검은 사신이 이리도 어린 사람이었다니.”
그때 이즈리스 남작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외형은 젊어 보이시지만 제가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분입니다. 살아온 세월도 이미 100년이 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119년이지.”
라이안의 말에 점점 입이 크게 벌어지는 저스틴 남작이었다.
다가오던 병사들도 저스틴 남작이 건네받은 특급 용병패를 알아보고는 놀라워하고 있었다.
“검은 사신이다.”
“진짜 검은 사신이란 말인가?”
“검은 사신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그들의 말은 점점 근처에 있던 상인들에게로 퍼져 나가며 주위를 시끄럽게 했다.
라이안은 자신의 할아버지들은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쪽에 계신 두 분은 저를 길러주신 저의 할아버지들입니다. 저분들은 아직 신분증이 없는데 어떻게 통과할 수 없겠습니까?”
저스틴 남작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자 했다. 그리고 바로 라이안을 보며 말했다.
“혹시 헤르시안을 보여줄 수 있는지요? 당신이 검은 헤르시안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신분 하나만으로도 통과해 줄 수 있습니다. 왜냐면 당신은 우리의 적국인 에드코르 제국의 가장 큰 적임을 알기 때문이오.”
에드코르 제국의 수십만 군사들을 죽인 검은 사신이었다.
검은 사신이 첩자일 리 없는 것은 당연했으며 그의 일행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보는 이들의 눈이 너무 많은데… 휴… 어쩔 수 없지요.”
라이안은 괜한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음을 알고 잠시 뒤로 몇 걸음 걸었다.
그리고 곧 마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강식장갑!”
츠아아아악
철컥. 철컥.
촤르르르륵.
라이안의 옷 여기저기에서 금속이 튀어나왔으며 그것들은 순식간에 라이안의 몸 전체를 감쌌다.
묵 빛의 섬뜩해 보이는 강식장갑을 본 저스틴 남작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검은 사신임을 알고는 황홀해 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몇 기의 타이탄과도 맨몸으로 맞서 싸운 무적의 전사가 있다고 생각하니 몸 여기저기에서 찌릿찌릿한 소름이 돋는 듯했다.
주위에서 라이안이 강식장갑을 장착하는 것을 보며 소리쳤다.
“검은 사신이다!”
“와아! 진짜 검은 사신이다!”
“히매인 왕국의 영웅! 검은 사신이시어!”
근처에 히매인 왕국의 국민도 있는 듯 라이안을 히매인 왕국의 영웅으로 칭했다.
라이안은 곧 강식장갑을 해체하고 저스틴 남작에게 물었다.
“너무 소란스러워졌네요. 이제 통과해도 되겠습니까?”
저스틴 남작은 멍한 정신을 바로 잡고는 말했다.
“네, 당연합니다. 들어가시지요. 검은 사신이시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조금 시끄러웠지만 어쨌든 무사히 검문을 통과하게 된 일행들이었다.
검은 사신의 등장은 검문을 기다리는 줄의 뒤쪽까지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검문소를 통과한 라이안 일행에게 더욱 큰 소리로 들려왔다.
헤인드가 그러한 것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야, 이거 공동통행증보다 라이안의 용병패가 더 효과가 좋은데?”
헤인드의 말에 디로안이 입을 열었다.
“지금 포스안 제국과 에드코르 제국이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라이안의 이름이 보다 크게 부각되는 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저들이 만약 라이안과 타이탄이 싸우는 모습을 봤다면 반응은 이보다 더욱 심했을 거야.”
디로안 역시 라이안이 자신의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갈천혁도 그런 라이안을 보며 한마디 했다.
“라이안이 이곳에 있는 동안 상당히 큰 명성을 떨쳤나보구나.”
갈천혁의 말에 라이안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할아버지들의 명성도 만만치 않은 걸요, 뭐.”
“우리가?”
혁마소도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물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했기에 명성을 떨쳤다고 하는 것이냐?”
혁마소의 물음에 라이안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에드코르 제국이 히매인 왕국을 치기 전 의문의 두 그랜드마스터가 나타나 에드코르 제국 진영을 초토화 시켰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그거 할아버지들 아닌가요?”
“그건 우리가 너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랬던 것인데…….”
“그런 적이 있었지… 그것의 소문이 그렇게 퍼졌을 줄이야.”
“그때 저는 지하에서 함정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때 못 만난 것이 신기하네요.”
라이안의 말에 혁마소가 화를 냈다.
“그 깡통로봇의 농간이었지. 쳐 죽여도 시원찮을 것 같으니.”
혁마소의 말에 갈천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자네가 그러니 나까지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이제 자네와 같이 다니면 안 될 것 같으이.”
“네 이놈! 지금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내가 언제 자네 편이었다고 그러는 겐가? 자넨 마교고 난 정마라네. 허허허”
“쳇!, 역시 정파나부랭이들의 위선은 어쩔 수 없군.”
토라져도 단단히 토라진 혁마소였다.
그들이 다투는 것을 웃으며 지켜보던 라이안이 루시 공주에게 물었다.
“루시, 신성력을 판별하려면 어디에 가야 되죠?”
“신성력을 판별하려면 대신성전으로 가야 해요. 주신이신 라피네 신님을 받드는 곳에서만이 그것이 가능하지요. 라피네 신님은 이곳 차원의 모든 신성력을 만드신 분이시니까요.”
루시의 말은 맞는 얘기였지만 좋은 부분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주신 라피네 신은 신계 말고 마계도 만들었으며 수많은 마족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만든 라피네 신은 중립이라 볼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악한 마족이라 해도 인간과 같은 자신의 자식이었다.
라이안은 모두에게 물었다.
“혹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
“난 이곳에 처음 온다네.”
“나 역시 마찬가지라네.”
헤인드와 디로안은 포스안 제국이 처음인 듯했다.
“흠…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 없는 것을 보니 역시나 모르는 것 같네. 그럼 하는 수 없지.”
라이안은 반지를 눌러 홀로그램을 나타냈다.
라이안의 반지로부터 나오는 홀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역시나 에나는 그것이 마법인가 싶어 마나 디텍트로 알아보려 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라이안은 포스안 제국의 국경과 수도를 적었고 그 방향과 거리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금방 나왔다.
“마차의 속도를 약 40킬로로 봤을 때 2일의 시간이 걸리는군. 그렇다면 중간에 쉬고 어쩌고 하면 넉넉잡아 3일은 걸리겠어.”
“어떻게 그것을 그렇게 정확히 알 수 있죠?”
에나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이것은 내가 이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과학이라는 문명이야. 이곳에서도 마법을 일종의 학문으로 생각하듯 그곳도 마찬가지이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무척이나 편리함을 주기도 해. 다른 세계의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처음에는 숨기기만 했던 라이안이었지만 이제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다.
“자, 출발하자고.”
그들은 서둘러 마차를 탔고 포스안 제국의 수도로 이동했다.
포스안 제국의 수도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