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이 세상은 정말이지 굉장히 방대한 양의 드립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드립이란… 십대 이십대 층이 인터넷에서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말들로, 주로 인터넷 유명 유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생산되곤 한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 생성되는 드립들 중에는 민감한 정치에 관련된 드립, 혹은 웃기고 대중들이 따라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드립,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일찍 접하면 사춘기를 빨리 오게 할 만한 섹드립…. 총 세 가지의 드립들로 분류되었고, 주로 비제이들이 사용하는 드립으로는 웃긴 드립들이 다수였다.
"안젤리나졸리는 안졸리나…."
그리고 예나는 범생이 수준으로 공부에 몰두를 잘하는 타입이었다. 그녀 특성상 교내에서 성적 순위권에 드는 건 일상 다반사였고, 글자나 수리 같은 건 상당히 흥미를 가져 곧잘 해내곤 하였다.
그런 그녀가 글자에 속하는, 일종의 인터넷 용어 드립을 한꺼번에 배우려고 한다. 순식간에 두뇌에 삽입하려고 하니 과부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집중력은 어마무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구혜선을 구혜선 안 돼…."
"시드니에 가면 꽃이시드니?"
"썰렁썰렁 썰렁탕."
"파리에가면 파리가많니?"
이외에 '신지가 누구신지'라던가 '바비킴이 밥익힘'이라던가, '저 토끼가 오빠보고 토끼나'라던가 등등… 예나는 삽시간에 무수한 드립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용어들도 삽시간에 외우는 모습이었다.
"강려크하다… 파괴본능…."
평소 순수함의 대명사인 예나가 이런 식으로 인터넷 용어에 물든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예나는 불과 일주일만에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민국아…. 같이 방송해도 돼…?"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마음을 다지고 결전의 날이라 생각한 예나가 민국의 방으로 들어와서 그렇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막 방송을 키려고 준비하던 민국은 예나의 당도에 순간 깜짝 놀라더니 반문했다.
"어… 어어, 괜찮아 예나야?"
민국은 또 걱정이었다. 용기를 내긴 하지만 역시 그녀의 멘탈상 파뿌리 TV의 시청자들과 겨룬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방송이라는 건 시청자들과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저번처럼 상처를 받고 괴로워한다면….
"으응… 괜찮아. 한 번 다시 해보고 싶어."
"…그렇게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예나가 필사적으로 애원을 하니 차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마침 민국도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었고 말이었다.
'오늘은 은별이는 어려운가 보네.'
어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는지 오늘은 방송을 쉬기로 한 모양이었다. 고로 오늘은 예나와 일대일로 방송을 하는 셈이었다. 이윽고 컴퓨터를 키고 방송 접속 준비를 완료한 민국이 예나의 방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예나야."
"응 민국아… 다 준비했어."
하지만 거실에 나오자 예나가 먼저 구멍으로 기어나와 민국의 방에서 그리 소리치고 있었다. 민국은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예나를 바라보았다. 예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이내 고개를 끄덕인 민국이 말했다.
"그럼 방송 시작할게. 스카이 라이프부터 들어오는 거 알지?"
"으응."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민국과 예나. 이리하여 두 사람만의 알콩달콩한 빅재미(?)의 방송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예나가 뭔가 준비를 한 거 같긴 한데.'
컴퓨터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손에 쥐면서 민국은 그리 상념했다. 저번에 상처를 받고 난 뒤로 뭔가 준비를 하는 듯한 모습이긴 했는데….
'일단 시작해봐야 알겠구만.'
대충 짐작만 해두고 민국은 예나와 스카이 라이프에 동시 접속하여 서로 말을 오갔다. 그 후, 각자 파뿌리 TV 아이디로 파뿌리 TV에 접속… 방송을 시작했다.
"안녕들 하냐 이 시청자들아. 현대왕이다."
오늘도 대범하게 방송을 진행하는 현대왕이었다. 평소 컨셉이긴 했지만 이게 또 민국의 본질에 가깝기도 했기에 굳이 성격을 개조해서 불편할 일도 없었다.
[우우우우우]
[현대왕이다. 오늘도 욕 먹을 현대왕이 찾아왔다.]
"이런 돈가스 소세지에 사이다 말아먹을 놈들. 흠흠, 어쨌든 오늘도 합동 방송을 합니다."
[오오오오오!]
[여자, 여자인가?]
여자라면 환장하는 우리의 모태솔로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여자를 찾는 모습이었다.
"어휴 여자밖에 못 찾는 사타구니 불성실한 놈들. 그래, 니들이 원하는 바로 그 여자다."
그리고 현대왕은 소개했다. 차마 한예나, 백화 찻잔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 지 꿈에도 모른 채.
"저번에 신입 비제이로 함께 한 적이 있던 백화 찻잔이다. 백화 찻잔님, 다시 인…."
'다시 인사를….'하고 말을 하려던 현대왕이었다. 동시에 여러모로 걱정이 태산 같아지는 현대왕이기도 했다.
저번 방송에서 반응이 영 시원찮았기 때문에 현재 백화 찻잔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못할 것이었다. 방송을 하는 사람이 방송에 대한 준비도 조금도 하지 않아왔다고 야유를 퍼붓던 사람들이 다수였으니까.
"이 배가 베이징 가는 배이징?"
"…앵?"
"구하라를 구하라. 사우디아리바이에 가면 누가 사우디? 우리 과자 먹으러과자. 3D를 보면 몸이 쓰리디?"
"……"
"너구리가 사는 곳은 경기도 구리! 가게에 가게? 배에서 배를 먹으니 배가 부르군?"
"어… 백화 찻잔님…?"
"내가 민담을 듣는데 누가 계속 뒤에서 민담? 자라야! 너는 한참 자라는 때니까 잠 좀 자라! 베트남은 침 베트남? 다비치는 왜 다 비치나?"
뜬금없는 말들로 자기소개를 하는 백화 찻잔이었다. 당연지사 시청자들은 [???]하면서 멘붕 그 자체였다. 물론 걔 중에서 일부는 백화 찻잔이 내뱉는 개그에 코드가 맞았기 때문에 [ㅋㅋㅋㅋ]하고 웃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극 소수의 일부만….
"안녕하세요… 베인이 칼에 베이면 문도가 문도 못 연다고 해요~ 백화 찻잔이에요…!"
"……."
"아참! 여러분 혹시 그거 아세요? 자카르타의 애완 동물은 자칼이에요…! 야스오는 세워줘야 스오기도 하구요!"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멘붕 상태였고, 그 중에서 유독 롤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몇몇 드립을 깨닫고는 [ㅋㅋㅋㅋ]하고 웃기 시작했다. 근데 또 웃긴 점이 있다면.
[뭐지? ㅋㅋㅋㅋ]
[어 은근히 웃기네 ㅋㅋㅋ 황당한 게 컨셉인가?]
의외로 먹혀 드는 게 현실! 그저 병풍에 가까웠던 이미지가 자기 소개에서 내뱉은 말도 안 되는 드립들로 순식간에 황당한 이미지로 변모하고 있었다. 당연히 비제이 세계에선 병풍보단 황당한 컨셉이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끌어들이기 좋은 매력이었기 때문에 효과는 만점이었다.
'설마 이게 예나가 준비한 개그들인가?'
비록 개그라고 하기 우스운 개그들이었지만 그래도… 노력한 결과 결실은 있었다. 반응이 꽤나 좋음에 현대왕이 맞장구를 쳤다.
"암! 참외를 먹으면 참외롭지!"
"자가용이 너무 자가용~ 안주는 더 안주나?"
"하하하! 여러분, 이게 바로 현모양처 스타일 백화 찻잔느님의 개그 솜씨입니다! 다들 박수!"
[짝짝짝짝]
[딸딸딸]
[우우]
결과적으로 좋은 반응이니 됐다. 다시금 이미지를 재생산한 덕에 처음부터 확실히 존재감을 뿌리면서 방송을 시작한 현대왕과 백화 찻잔이었다.
"오늘 게임은 백화 찻잔님과 함께 집 짓기를 하겠습니다!"
물론 오늘의 컨텐츠도 마인크래프트였다. 그래도 간만에 준비를 한 백화 찻잔과 함께 방송을 진행함으로서 현대왕은 부담감이 덜어졌다. 꽤나 좋은 반응을 선보인 것이다.
비록 다른 여자 비제이들한테 갈구듯이 행동하진 못해 현대왕의 평소 컨셉에서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그래도 백화 찻잔의 웃긴 드립들에 장단구를 맞춰주면서 많이 배려를 했더니 오히려 센스남이란 호칭도 듣게 되었다. 그렇게 오늘의 방송은 유난히 잘 끝난 듯싶었다.
"오늘 정말 잘했어 예나야."
"다행이다…."
예나는 민국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무사히 좋은 호평을 받는 방송을 했음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리고 민국의 칭찬에 내심 기분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이윽고 민국이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자, 예나는 그 손길을 잠시 느끼다가 말했다.
"민국아…."
"응?"
"그래도… 역시 민국이가 도와줘서 잘 된 거라고 생각해. 정말 고마워 민국아…."
늘 고맙다는 이야기를 항상 하는 예나였지만 그래도 항상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런 예나를 빤히 쳐다보던 민국이 곧 씨익 미소 지었다.
"고맙긴 뭘. 다음에도 또 같이 하자."
"으응…."
그렇게 오늘 간만에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마친 두 사람이었다. 이윽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눕는 예나였다. 천장을 보고 누운 예나는 잠이 오지 않는 눈동자로 천정을 바라보았다. 자꾸만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방송이… 이렇게 재밌는 건 줄 몰랐어….'
프로 의식을 가지고 하는 정도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방송에 대한 매력을 느낀 예나였기 때문에 오늘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뒹굴거리며 자려고 노력하던 끝에… 결국 예나는 잠에 들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리고 천천히 컴퓨터가 있는 쪽으로 향하는 예나였다. 털썩하고 의자에 앉으면서 컴퓨터를 키는 그녀. 위이잉…. 이윽고 컴퓨터가 작동하자 마우스를 딸칵딸칵거리더니 파뿌리 TV에 접속한다. 한참 후… 결국 참지 못하고 새벽에 방송에 접속하는 그녀였다.
* *
"흐아암."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대학생은 겨울 방학 봄 방학이 거의 동시에 찾아오다 보니까 방학 기간이 매우 길었다. 고로 이제 겨울 방학이 끝나가는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서민국은 여유롭기 그지 없었다. 기지개를 피면서 거실로 나온 민국은 화장실에서 가볍게 세수를 한 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예나에게 빌려준 책이 있던 거 같은데 그거 돌려 받으러 가야겠는걸.'
그리고 민국은 구멍 앞에서 똑똑 노크를 하면서 예나를 불렀다.
"예나야, 혹시 지금 있어?"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방에 없나."
아무도 없는데 함부로 들어가기도 뭐해서 그저 구멍 안에 얼굴을 들이밀던 민국이었다. 그러자 돌연 이상한 웃음 소리와 함께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앵?'
"흐흐흐흣… 집 앞 마당의 암탉이 새벽마다 우는데 왜 우냐니요…. 그건 사랑의 음란함에서 나오는."
'…….'
뭔가 알고 있는 목소리이긴 했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내뱉어선 안 될 대사를 내뱉는 듯한 느낌이었다. 민국은 안 좋은 촉에 따라서 천천히 구멍 안으로 몸을 옮겨 보았다. 그러자 이윽고 예나의 방에 드러난 것은….
"아기는 어떻게 낳냐니,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그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해요… 정말… 부끄러운 말을 여자가 하게 하려고 하다니, 음탕한 남자예요…."
"……."
"으음… 신음소리요? 정말 야해라…. 하지만 저도 요즘 인터넷 뒤적거려서 유명한 신음소리들 좀 알아요…. 아앙이나 으앙, 하응이나 그만, 더 이상은 멈춰 같은 거…."
"……."
"저보고 해보라고요? …하, 하응…."
"……."
"아응아응… 하응… 그만… 더 이상은 멈…."
"……."
방송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고 몰두하던 예나였다. 돌연 그녀도 뭔가 인기척을 느낀 모양이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시선이 구멍 쪽의 민국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
"……."
"미, 민국아……."
예나의 눈밑에는 다크써클이 짙게 그을려 있었다. 아무래도 밤새도록 방송을 해온 모양이었다. 예나도 자신이 그제야 방송에 했던 멘트들을 떠올렸는지 곧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어… 음, 예나야…."
"……."
"음… 그러니까…."
은별이가 했다면 모를까… 평소 순수하기 그지 없던 예나가 인터넷 용어들에 벌써 더럽혀졌음에 민국도 뭔가 충격이 있어 할 말이 없었다. 예나도 그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는지… 곧 글썽글썽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으아아아아앙…!"
"헉! 예, 예나야!"
"으아아앙… 민국…아 흑!… 미안해애애애애!"
"어어, 어어어어어?!"
그리고 민국이 말리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리면서 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가버리는 예나였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예나의 모습을 목도한 예나의 가족들이 '왜 그래?!','무슨 일이야?!'하면서 걱정하는 소리까지 들려올 지경이었다. 민국은 이마를 부여 잡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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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