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84화 (284/369)

284화

"닉네임은 백화 찻잔. 예수 부처 같이 관대한 찻잔님이라 불러라 아그들아."

현대왕의 말이었다. 백화 찻잔은 꼭 대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처럼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참고로 방송이라서 얼굴도 비추지 않을 텐데 실제로 의자에 앉아 인사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 정도로 백화 찻잔, 한예나는 방송에 완전 초짜였다.

'민국이가 알려준 것들만 주의하면서 조심해야지….'

민국이에게 교육 받은 것을 토대로 잘 진행해볼 생각이었다. 만약 여기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괜히 민국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할 것 같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을 그렇게 때를 써가면서 배우기까지 했는데….

[오오오오오]

[여자다 여자 또 여자야!]

[헉헉 이쿠요, 다메, 다메 이쿠요 찡]

현대 왕의 위력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알려진 현모양처, 백화 찻잔이었다. 참고로 현대왕과 남고딩은 방송을 키자마자 각 방송에 무려 1만이 넘는 시청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총 2만에 가까운 시청자들, 사람들이 벌써 백화 찻잔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대단해… 민국이….'

예나는 새삼 감탄했다. 그저 시청자로서 볼 때와 방송을 만드는 합석자인 비제이로 함께 할 때는 엄연히 시선이 달랐다.

새로운 관점에서 상황을 보게 된 예나는 민국이 내심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그저 충격이 들 수밖에 없던 그의 또 다른 성격, 현대왕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 막장스러운 성격으로 이렇게 많은 팬층을 꾸려 모은 것 아니었던가?

"자, 백화 찻잔님. 자기 소개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 말고 말이지요 엣헴."

백화 찻잔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진 듯 조곤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평소 자신처럼 입을 여는 그녀였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예… 백화 찻잔이라고 해요."

순간 실명이 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멈춘 그녀였다. 백화 찻잔이라는 닉네임에 굉장히 익숙해질 필요성이 있었다.

[백화 찻잔 ㅋㅋㅋ]

[이름 보소 ㅋㅋ 푸헤헤헤헤헤]

쓸데없이 비웃는 현대왕의 시청자들이었다. 과연 웃음 소리도 현대왕과 닮았다.

"야 이 정형외과가서 코 성형 수술 받으러 왔다고 할 새끼들아. 백화 찻잔이 얼마나 예쁜 이름인데 어디 너희들 따위가 비웃어? 이 초콜렛에 밥 막아 먹을 놈들이."

[허허허허헐ㅋㅋㅋㅋ]

[수능 날 엿이나 먹어라]

시청자들과 오락가락 싸우는 현대왕이었다. 그러나 백화 찻잔은 비아냥거리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쉴드쳐주는 그를 보면서 또 한 번 감동을 느꼈다. 이를 지켜보던 남고딩이 한 마디했다.

"평소에 나랑 방송할 때나 그렇게 쉴드 쳐주지 그래?"

"엇흠, 내가 언제 우리 남고딩 찡을 욕한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빨래판이라고 놀린 적이 없다고 생각하면 양심의 가책이 없는 요주의 인물로 판단하고 경찰서에 신고해버린다."

"엇흠! 빨래판은 용의자와 피해자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도한 목격자가 사건을 진술할 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과 같은 이치로…."

"에라이!"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는 남고딩과 현대왕이었다. 그러나 또 그 말다툼이 아기자기하고 재미가 있어서 시청자들은 [ㅋㅋㅋㅋ]하고 웃는다. 그 웃음바다의 광경에 백화 찻잔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도 민국이랑….'

또한 한 편으로 방송에 대한 재미와 더불어… 남고딩처럼 현대왕과 함께 아기자기한 말다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백화 찻잔은 한 번 용기를 내서 다짜고짜 이렇게 소리쳐 보았다.

"현대왕 바아보…!"

그 소리에 순간 정적.

"……."

"……."

말다툼을 하던 현대왕과 남고딩이 침묵한다. 동시에 시청자들도….

[……?]

[?????]

[뭐야?]

하나같이 의혹을 갖고 채팅을 칠 따름이다. 백화 찻잔은 순간 자신이 잘못한 것인가 싶어 패닉에 걸려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 안절부절 못하는 예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 뜸을 들이던 현대왕은 어떻게든 맞장구를 쳤다.

"후후, 그래 나는 바보지. 맞아 바보."

"…뭐야. 왜 저 여자 말에는 쉽게 쉽게 납득하고 받아주는데?"

사뭇 불만을 갖는 남고딩을 또다시 달래는 현대왕. 백화 찻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너무 감정이 앞서가서 그냥 줏대 없이 굴어버렸다.

뒤늦게서야 자신의 잘못을 자각한 예나는 곧장 일을 수습해준 민국에게 고마워했다. 물론 또다시 투닥투닥 말다툼을 나누며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보이는 민국과 은별의 사이가 부러워지는 그녀였지만 말이었다.

"……."

어찌 됐든, 현대왕과 남고딩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직까지 미숙한 방송 실력으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는 백화 찻잔의 방에도 시청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 것이었다.

본래 방송을 처음 시작하면 시청자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그 정도로 시청자들 한 명조차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들어오는 찰나 그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서 처절한 발버둥을 쳐야 하는데… 백화 찻잔에겐 그런 게 필요가 없었다.

현대왕과 남고딩이라는 거대한 스폰서로 인해 말이었다.

"자자, 백화 찻잔 방 들어가서 찻잔 님의 관점으로 내 방송을 한 번 봐라. 그래도 재밌을 테니까."

조력자 현대왕의 도움으로, 백화 찻잔은 여유로움 속에서 방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  *

"그럼 오늘 방송은 마인크래프트 사냥하기 입니다."

마인크래프트 사냥하기! 지난 번에는 마인크래프트로 남고딩 콩딱지와 함께 가족놀이 컨텐츠를 구성했었다. 물론 남고딩이나 콩딱지나 워낙 드립력이 뛰어난 비제이들이라 가족놀이 같은 단순한 컨텐츠도 맛깔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방송 초짜인 예나, 백화 찻잔이 끼어 있기 때문에 컨텐츠를 사냥하기로 고른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사냥하기가 아닙니다. 마인크래프트 맵에는 소부터 양, 돼지까지 여러 동물들이 존재합니다. 이 동물들 백마리를 누가 먼저 처치하느냐로 게임 대결을 펼치는겁니다."

요컨대 한 사람당 소, 양, 돼지를 골라서 백 마리를 잡는 셈이었다. 게임 스타트 카운트가 시작됨과 동시에 게임이 시작되면 곧장 먼저 백 마리를 잡는 게임! 이건 단순하기 때문에 예나도 이해하기 편할 것이었다.

[예나야, 마인크래프트 아까 알려줬던 거 기억하지? 거기서 조합하는 법들은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하면 돼.]

스카이 라이프 비제이 채팅방에서 백화 찻잔에게 채팅을 하는 현대왕이었다. 그런 현대왕의 배려에 채팅방에 접속한 찻잔이 그대로 채팅을 쳤다.

[응 고마워 민국아…]

현대왕에게 배운 대로 마인크래프트 조합법을 찾아보는 백화 찻잔이었다. 그래도 역시 범생이다운 그녀답게 배운 것은 곧잘 수행할 줄 알았다. 현대왕은 그 부분에 대해선 안심을 하고 게임을 속행했다.

"자, 그럼 시청자 여러분들은 누가 이길 지 투표를 해주시면 됩니다. 누가 이길 지 투표를 해서 맞힌 시청자 분들에겐 제가 엉덩이를 대고 앉았던 변기대를 선물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걸 누가 가진다고 그래?"

[저요 저!]

"……."

"저기 있구만 뭘."

할 말이 없어지는 남고딩이었고, 현대왕의 채팅방 시청자들은 [저요 저!]를 남발했다. 그런 현대왕의 채팅방에 남고딩은 혀를 내두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곳에 차마 민망해서 끼어들지 못하는 또 다른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백화 찻잔.

'나도 가지고 싶은….'

순간 자신의 변태성을 자각할 뻔한 예나였다. 아무쪼록, 다시 게임을 속행하면서 현대 왕은 카운트를 셌다. 현재 마인크래프트 맵에 비제이 세 명 모두 접속해서 게임 스타트만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

"자 그럼 시작합시다! 레디 고!"

"오늘 벌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겠네…."

"후후후, 츤고딩 양. 벌칙이란 게 피할 수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어디 오늘은 한 번 츤고딩 양의 노래 소리를 한 번 줄기차게 들어봅세다!"

참고로 오늘의 벌칙은 웃긴 노래 부르기였다. 현대왕의 도발에 남고딩은 웃음 지었다.

"…호호~ 저번에 벌칙 받았던 거 금세 까먹으셨나 봐요 현대왕 님~ 어디 한 번 이겨보려면 이겨보세요. 이겨 봐라 이겨봐~."

"크윽, 내 언젠간 저 여인을 침대 위에서 정복시키고 마리라."

그런 갖갖이 드립들이 오가는 와중에 입을 굳게 다물었던 백화 찻잔이었다. 일단 마인크래프트 기초를 배운 그녀답게 나무부터 캐기 시작하는 백화 찻잔. 동시에 현대 왕에게 질문도 한다.

"저… 현대왕 님."

"아, 네네. 백화 찻잔 양. 무슨 일이시죠?"

백화 찻잔 앞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남자가 되는 현대왕이었다. 그런 현대왕의 태도가 못 마땅한 듯 혀를 내두르는 남고딩이었으나, 일단 방송이었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저……."

"……."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무언가 말을 하자니 떠오르는 말이 없다. 드립도 뭔가 배워둬야 할 수 있는 법인데 이게 문제였다. 그런 백화 찻잔의 문제를 현대왕도 느꼈는지 그 대답에 한참동안 침묵했다.

[뭔가 이 비제이 어색하네]

[신입이라 그런가? 그냥 좀 봐주면서 보죠]

[목소리 귀여운데 뭘 ㅎㅎ]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방송 비제이라면 기본적인 준비는 하고 시작해야지]

[닌 똥 쌀 때 준비하고 하냐?]

[미친 놈들 작작해라 팍 각성하기 전에]

이런저런 채팅들이 올라오는 실정. 그리고 그런 채팅창을 자연스레 볼 수밖에 없는 백화 찻잔의 운명. 당연지사 시청자들의 불만에 멘탈이 약한 백화 찻잔은 뭔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민국과 취미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도전한 방송이었지만, 이 방송이란 것도 취미로 하기엔 남고딩과 현대왕이 너무나도 프로인지라 산넘어 산이었던 것이다.

[에이 재미없어]

'…….'

그렇게 첫 번째 예나의 방송 컨텐츠는 종료되었다.

벌칙은 민국이 받게 되었다. 애초에 방송을 살리려면 민국이 벌칙을 받는 게 가장 좋기도 했고 말이었다.

사실상 마인크래프트를 처음하는 초짜 백화 찻잔이 벌칙을 받는 게 당연했지만, 그랬다간 백화 찻잔이 따돌림을 받는 분위기가 될 것 같았다. 은별도 딱히 그런 악화일로로 가는 분위기는 원치 않았기 때문에 민국이 대신 벌칙을 받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니까, 쉽지 않다고 했잖아…."

"……."

예나의 절망 어린 얼굴을 보면서 투덜거리다가 고개를 돌리는 은별이었다. 예나는 오늘 이래저래 시청자들에게 불평불만을 받으면서 멘탈이 산산조각이 난 실정이었다.

애초에 얼굴이 안 보이다 보니까 막말을 하는 놈들도 장난 아니게 많았다. 그 중에는 쓸데없이 자기 분을 풀기 위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놈들도 잔뜩이었다.

그곳에서 버티고 살아남으려면 맨 정신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남고딩과 현대왕이 프로였던 것이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처음으로 강은별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는 한예나였다. 민국은 절망 어린 예나의 등을 다독이면서 물었다.

"예나야, 정 힘들다 싶으면 안 해도 되니까."

"아니야 민국아…."

"응?"

하지만 그때였다. 절망 어린 예나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고개를 올려 얼굴을 보인 그녀의 모습에 민국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나는 어느 덧 두 눈동자에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나… 꼭 해볼게…."

"……."

"꼭 해볼게."

이대로 무너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민국과 함께 취미를 공유하여 강은별처럼 즐거운 담소를 나눌 것이다. 오로지 그것을 목표로 한예나는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멀찍히서 '예, 예나야?'하고 민국이 불렀지만 예나는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곧장 자기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컴퓨터를 키고…!

'드립.'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드립이라고 치는 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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