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원피스>
현대왕은 턱을 괴고 마이크를 톡톡 건드렸다. 그는 현재 방송 중에 있었다.
“흐아아암.”
[방송하는 비제이가 시청자들 앞에서 한숨 쉬네 ㅉㅉ]
[예의를 모르는 양반이구만?]
“제가 안 예의 좀 하지요.”
[드립력도 요즘 들어 떨어지고 방송도 성실히 하지 않고… 별로네요]
과연 막장 비제이답게 채팅창도 막장스러웠다. 현대왕은 보다 못해서 쓴 소리를 하기로 맘먹었다. 책상을 쿵 친 다음에 소리치는 그였다.
“야 이 병원에서 이유 없이 처방전 받아서 화장실에 버릴 자식들아. 왜 자꾸 드립력이 떨어졌다고 타령이여? 야, 그래 이참에 요즘 들어 논란이 되는 그 드립력에 대해서 토론이나 해보자.”
가뜩이나 할 컨텐츠도 없겠다, 현대왕은 드립에 관련하여 시청자와 토론이나 해보자고 작심했다. 요즘 들어 현대왕이 방송을 할 때마다 예전만 못하다며 비아냥거리는 시청자들이 난무했다.
초심을 잃었다는 둥… 방송을 너무 허술하게 한다는 둥… 하지만 그건 비제이로서의 막장 의식(?)을 가진 현대왕으로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의견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음식을 먹을 때 만날 먹는 반찬이 똑같습니까? 그 반찬만 추구하는 일편단심 성향의 사람이 아닌 이상 결국 다른 맛에도 끌리기 마련입니다. 저는 일류 최고급 요리사로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음식만이 아닌 여러 가지 음식을 선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반찬 꾸러미가 코앞에 있는데 한 가지 반찬만 대접한다면 그게 어떻게 손님을 향한 예절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오오…]
[감동! 현대왕 짱!]
“엣헴.”
현대왕의 논리 정연한 발언에 몇몇 시청자들이 감동한 듯 울먹였다. 하지만 반대의 의견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나머지 시청자들이었다.
[ㅉㅉ웃기네. 그냥 드립력이 예전보다 딸리는 거면서]
[핑계 골고루 하시는 듯. 어쨌든 요즘 현대왕 방송 재미없다!]
“와나, 이 진짜로 못 생겨서 못 생겼단 소리하면 자살할까봐 참게 만드는 양반들아. 내 드립에 에베레스트도 화산 굴뚝 만들고 지릴 정도인데 어디서 드립 평가질이야? 김연아보고 피겨 스케이트 못한다고 할 새끼들.”
오늘도 시청자들과 맞짱을 뜨며 방송을 진행하는 현대왕. 방송을 하는 비제이나 방송을 보는 시청자나 멘탈이 일반인을 뛰어 넘은지는 오래인지라, 욕설이 난무해도 서로에게 큰 타격은 없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비제이 현대왕과 현대왕 팬들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라 볼 수 있었다.
“응? 뭐냐?”
한창 시청자들의 부모 안부를 묻던 현대왕이었다. 진행 중이던 방송 창이 갑자기 종료되자 현대왕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슈밤, 흥분해서 마우스라도 잘못 눌렀나?”
실수해서 마우스를 잘못 누른 것인가 착각하는 그였다. 다시 한 번 방송을 키는 현대왕. 그러자 자동으로 나가졌던 시청자들이 금세 들어왔다.
정식 컨텐츠 진행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를 마중하는 시청자들의 숫자는 어연 1만명이 가뿐히 넘었다. 게이버니 게이트니… 여러 사이트에서 입소문이 올라 많이 유명해진 그였다.
[멘탈 붕괴해서 나가신 듯!]
[현대왕 이젠 도망치냐? 약한 녀석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피부색 새콤달콤 같은 놈들이. 입에 고추 물어버릴라.”
부드러운 대화들이 오가는 그때, 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뚝.
“어? 시방?”
현대왕은 또 종료된 방송을 보면서 의문을 표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마우스 커서를 방송 종료 버튼에 갖다 대지 않았다.
나불대는 시청자 중 한 명에게 벙어리를 먹이려고 마우스 커서를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시청자 이름으로 옮겨지던 마우스 커서가 지 혼자 방송 종료 버튼으로 향해버렸다.
“슈밤?!”
현대왕은 귀신을 본 것마냥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다시금 방송 시작 버튼을 클릭했다. 그리고 다시 방송이 시작되고… 나가졌던 시청자들이 이번엔 [아씨 ㅅㅂ]욕을 하면서 들어온다.
[졸렬하다 현대왕! 초심을 가져라!]
[이젠 아예 시청자들 전원을 내보내는 현대왕! 매정한 인간!]
“아니야 이 자식들아! 내가 버튼 누른 게 아니라 지 혼자 눌러졌어!”
[네 다음 핑계 ㅉㅉㅉ]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믿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대왕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히 방금 전… 현대왕이 의도한대로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조종당한 것처럼! 티익!
“뭐시여 이건!”
결국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의자에서 일어나는 현대왕이었다. 컴퓨터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컴퓨터에 보관된 야동 파일 뿐. 그 외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은 얼마 되지 않았다.
때문에 급작스레 혼자서 움직이는 컴퓨터의 모습에 현대왕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은 시청자들도 슬슬 의문을 표하는 모습이었다.
[왜 그려?],[뭔 일이지?]하면서 불안에 떠는 시청자들…. 하지만 문제에 얽힌 당사자 현대왕은 더 불안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흑마법사의 뒤를 잇는 새로운 존재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 내 컴퓨터에서 나타났단 말인가!’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상식 이외의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체험했던 인물이니까. 하지만 이건 상식선을 넘나드는 그런 비상식적인 일은 아니었다.
“야! 지금 마우스 움직이는 거 나 아니야! 누구야 이 새끼!”
[헐? 해킹인가?]
[해킹임! 현대왕님 해킹 당하신 듯!]
현대왕은 자기 마우스를 뜻대로 움직여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뜻대로 움직인들 곧장 뒤에서 조종하는 누군가가 현대왕의 마우스 조종을 가로챘다. 결국 전원을 눌러서 강제 종료를 하려던 현대왕이었다.
{멈춰라}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혼자서 움직인 마우스가 메모장을 눌렀고, 그 메모장에 누군가가 글귀를 적은 것이었다. 그것은 현대왕이 현재 진행하는 방송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대왕. 나는 네 컴퓨터를 해킹한 D-dos라는 놈이다]
“지랄하네! 등신새끼!”
현대왕은 다시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너의 숨겨진 야구 2004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나?}
“!”
하지만 재빨리 적히는 그 글귀에 현대왕은 놀리려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순간 전신에 땀이 나는 것을 느낀 현대왕이었다. 그는 머뭇거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너 이 자식, 정체가 뭐냐?”
{현대왕, 난 널 용서할 수 없다.}아주 정교한 맞춤법과 함께 메모장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현대왕과 토론 맞짱을 뜨기에 바빴던 시청자들은 급작스레 일어난 일에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판단을 끝낸 몇몇 시청자들은 신선한 일이 생겼음에 매우 흥미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너는… 너는 내 하나뿐인 신념을 망가뜨렸어… 그건 네가 날 범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너 여자냐?”
{남자다}
“정신병원가서 주사 맞고 와라.”
{야구 2004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나 보군.}
“제발. 인간으로서 그러지마라.”
{그래… 나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지키고 싶다}현대왕이 그동안 모았던 무수한 보물들이 모인 곳. 야구 2004. 만일 그 폴더가 순식간에 사라진다면… 현대왕은 은별에게 파일을 삭제 당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먹을 것이었다. 왜냐면 그건 은별이도 모르게 비밀리에 모아온…!
{현대왕… 넌 내 신념을 무너뜨렸다.}
“미친놈이… 대체 내가 너의 어떤 신념을 무너뜨렸다는 거냐?”
{정말 모르겠단 거냐? 나 말고도 너를 통해 정신적 충격을 입은 놈들이 한 둘이 아닐 텐데}현대왕은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이 또라이… 나와 맞먹는 또라이다.
{여기 시청자 채팅방이 보이나?}
[현대왕님! 저거 신고해요! 신고하면 잡을 수 있어요!]
[ㄴ신고해도 vpn쓰면 못 잡아 병신아 경찰이 수사나 해줄 것 같아?]
[ㄴ저런 거 보통 초딩들이 하는 거라 잡을 수 있거든 ㅉㅉ 한국 경찰 물로 보네]
[ㄴ저는 불로 봄]
{큭큭… 망가진 저 인간들이 보이나?}
“쟤네들은 원래 망가져 있었어 홍당무 같은 자식아.”
{이 자식, 아직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
“미친! 행동보단 말이 우선이라는 거 모르냐? 일단 나한테 불만인 것부터 얘기해!”
야동 파일이 있는 쪽으로 들어가려는 마우스의 행동에 현대왕은 경악하며 소리쳤다. 현재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들은 긴장한 눈빛으로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메모장에 다시금 글을 적는 그 녀석이었다.
{너는… 너는…}
“…….”
{솔로 부대를 배신했다….}
“뭐 이 새끼야?”
메모장은 또박또박, 아주 정갈나게 말을 이어갔다.
{난 너 같은 또라이 새끼라면 그 누구도 사귀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너 같이 넷상에서도 막장스러운 놈이라면 현실에서도 답이 없을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난무했고 너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다.}
“…….”
{그리고 난 그런 너의 방송을 보면서 항상 나를 위로했었지. 적어도 너보단 나을 거라고. 너보단 내 인생이 비참하지 않을 거라고!}
“호옹이.”
{근데 그게 아니었어! 넌… 넌 왜 나랑 다른 거지…? 어째서… 그 또라이 같은 놈이 어째서! 내가 이상형으로 뽑는 남고딩이랑 사귀냔 말이다!!!!!}느낌표 한 개로는 감정 묘사가 별로라 생각했는지, 다섯 개를 붙이는 메모장이었다.
{남고딩은 내꺼인데! 그녀의 뽀얀 피부도! 그녀의 뽀얀 몸매도! 모조리 다 내꺼인데!}
“너 남고딩 얼굴 알고 있냐?”
{모르지만 그렇게 생겼을 테니까.}
“이 새끼. 백안인가?”
하지만 해킹을 당했어도 얼굴까지 알려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보통 해킹은 좀비 PC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윈도우 XP의 경우에는 실제로 상대방의 얼굴까지 일일이 체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안이 발달하면서 요즘의 좀비 PC로는 윈도우 8의 보안을 완전히 뚫을 수 없었다.
윈도우 업그레이드를 하길 심히 잘했던 것이었다.
“그냥 진솔하게 말해서 내가 질투난다 이 소리 아니냐?”
{아니다}
“질투네 이 새끼. 여러분! 이 새끼 지금 나한테 질투하고 있대요 푸헤헤헤헤!”
현대왕은 그냥 대놓고 놀리자고 생각했다.
“난 네 이상형이라는 여자랑 만날 손잡고 데이트하는데! 말다툼하면서 애교 부리는 거 보고 앙탈 부리는 거 보는데! 나보고 만날 서방님이라 하고 주인님이라 한다? 예전에는 메이드 복도 입어준다고 했었지 푸헤헤헤헤헤헤헤! 깔깔깔!”
미친 듯이 놀려대는 현대왕이었고, 메모장은 잠시 동안 글을 적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채팅창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면서 웃음을 터트리거나, [저거 큰일 날 것 같은데 ㅋㅋㅋㅋ]하면서 웃고 있었다.
시청자들의 수는 어느 덧 1만 5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항상 이슈가 될 법한 사건이 터지려고 하면 입소문이 금세 나서, 현대왕에게 호감이 없는 시청자들도 들어오기 일쑤였다.
막장 방송의 힘이랄까?
{부셔버리겠다}
“부수긴 뭘 부순다냐. 애초에 너처럼 남이랑 자기 자신을 비교하는 놈은 남고딩에게 사랑 받을 자격도 없어 자식아. 차라리 그 지랄을 떠느니 해킹할 수 있는 실력으로 돈이나 벌겠다.”
더 이상 못 들어주겠는지, 마우스 커서가 어디론가 움직였다. 잽싸게 움직인 그것은 현대왕의 숨겨진… 야구 2004 폴더를 발견하는데 다다랐다.
현대왕이 눈을 휘둥그레 뜨는 가운데, 마우스 커서는 야구 2004 폴더 오른쪽을 클릭하여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용량이 너무 크다며 영구 삭제를 요청한다는 메시지 창이 켜졌다. 현대왕이 소리치면서 마우스를 놀렸다.
“야 이 개색놈아!”
하지만 마우스에 무슨 장치라도 걸어두었는지, 그것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메모장에 글귀가 적히기 시작했다.
{명령이다 현대왕}
그자의 말이 이어졌다.
{남고딩과 헤어져라}
야동 파일을 건 대 위기가 찾아왔다.
“조까.”
현대왕은 그냥 강제 종료를 눌렀다.
"영롱한 자식."
서민국은 포멧 CD를 꺼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포멧을 하는 게 가장 나을 것이었다. 물론… 포멧을 하게 되면 그의 신비의 보물들은 전부 사라지게 된다. 과연 그럼에도 서민국은 그것을 선택할 것인가?
"진정한 보물이란, 한 곳에만 두는 게 아니야."
그런 명언을 지껄이며 서민국은 서랍 밑 칸을 열쇠로 열었다. 딸칵. 구멍이 열리면서 민국은 '후후'하고 조소를 머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야구 2005 <- 2004 합체판)
이란 종이가 적혀 있는 USB였다. 컴퓨터에 담긴 내용물과 더불어 신작까지 들어 있는 USB! 은별이의 항시 컴퓨터 검사로 인해 따로 준비해두었던 절호의 무기였다.
"마음 속에도 숨겨두는 것이지."
그리 말하며 포멧을 하는 서민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