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
도노반 후작 가문은, 아니 도노반 공작 가문은 이베아 제국의 네 번째 공작 가문이 되었다. 맥켄지는 제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베타미 황제에게 상세히 고해바쳤다. 베타미 황제는 제 정치적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다져 줄 워린이 러트와 함께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처음 베타미 황제는 이 일을 조용히 묻을 생각이었다. 이 일이 새어 나간다면 제국은 전쟁 영웅을 잃는 것이었고, 이 더러운 치정 싸움이 다른 왕국에까지 전해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 일을 추진한 것은 베타미 황제가 아니었지만 자신은 직접 워린 에르베를 도노반 후작 가문에 귀속되는 것을 허락했다. 황제의 과실도 개미 오줌만큼은 있었다. 그래서 베타미는 페리 도노반을 조용히 불러 이 일에 대한 위로금과 입을 다무는 것에 대한 보상금을 제시했다. 페리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황궁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울분에 찬 페리의 말에 맥켄지가 정말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고민하다 황궁 바로 옆에 있는 스와포네 성에 방문했다. 그리고 맥켄지가 캔디스에게 조용히 말했다.
‘너, 나한테 갚을 것 있지.’
‘…에이, 들켰네.’
느물느물하게 웃으며 재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캔디스에게 맥켄지가 말했다.
‘갚아라.’
그 말을 끝으로 맥켄지는 미련없이 스와포네 성을 빠져나왔다. 캔디스는 일 분 일 초라도 이곳에 있기 싫다는 듯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도노반의 마차를 보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던 캔디스는 서둘러 시종들을 시켜 초대장을 찍어냈다.
스와포네 가문의 캔디스는 도노반 후작 가문의 내란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스와포네 성에서 사교 파티를 열었다. 평소 마당발이며 인기도가 맥스를 찍었던 캔디스의 파티 초대장은 당일 아침에 돌려졌지만 그의 초대장을 받은 귀족들과 캔디스의 친구들의 80% 이상이 당일 저녁에 있는 파티에 참석했다.
캔디스는 제 친구들과 귀족들을 모아 놓고 도노반 후작 가문에 일어난 처참한 일에 관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 처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그곳에 있던 귀족들이 재빨리 제 성으로 돌아가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했다.
불과 반나절 만에 이베아 제국은 물론, 외국의 왕국 또한 도노반 후작 가문에서 일어난 내란을 알게 되었다.
베타미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소문이 퍼진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음 날 방문한 페리가 전투적이지만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베타미 황제에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제게 어제 했던 말씀…….’
‘…….’
‘다른 귀족들이 알게 된다면, 재미있겠지요?’
남편을 잃고 제 패륜아 자식까지 잃은 페리는 한층 강해진 상태였다. 페리의 서슬 퍼런 눈빛에 베타미는 결국 두 손을 들어 올리고 황실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리고 전에 페리에게 제안했던 위로금과 보상금을 그대로 줄 것이라는 내용의 공증을 작성했다.
도노반 후작 가문은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작 가문으로 승격되었다. 페리는 임시 가주가 아닌 정식 가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후계자는 차남이었던 맥켄지 도노반이었다. 모두, 맥켄지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찢어진 채 어설프게 붙여져 있는 청사진의 마지막 조각이 남아 있었다.
맥켄지는 살인적인 업무량에 찌들어 책상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잉크에 전 손으로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결심한 듯 호수 같은 눈을 깊게 일렁였다.
* * *
공작 가문의 후계자가 된 맥켄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본래 러트의 사람이었던 것들을 모조리 잘라내고 도노반 리피팅 암즈 기사단 기사들의 사상 검증을 했다. 감히 자신을 배신하고 워린에게 붙었던 반동분자들은 ‘그 일’ 때 모두 죽였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또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면 그에게 붙을 여지가 있었다.
사상 검증을 끝낸 후 도노반 리피팅 암즈의 기사들은 반이 잘려나갔다. 맥켄지는 대대적인 홍보를 해 도노반 리피팅 암즈의 기사를 모집했고, 모집인원의 20배가 넘는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완전한 제 개를 뽑을 것이었기에 맥켄지가 직접 지원자들의 면접을 진행했다. 그래서 더 바빠졌었다. 안 그래도 ‘그 일’이 있기 전에도 맥켄지의 얼굴을 조식과 점심, 그리고 석식 시간에서부터 잘 때까지만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점심은 물론이고 석식도 같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와 사랑을 나눈 것도 ‘그 일’이 있기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예전같이 갑과 을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서로 동등한 형태의 눈높이에서 서로를 대했다. 너자는 이제 맥켄지에게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었고 좋으면 좋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처음 맥켄지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무언가를 요구했을 때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말만 잘해 준다고 하고 예전처럼 저를 막 대하며 짓누를까 봐. 하지만 맥켄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거면 되냐는 말만 하며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었다.
‘정말 괜찮은 걸까? 본인이 내뱉은 말이 있어 내가 요구하는 것을 마지못해 들어주고, 그런 내가 거슬려서 일부러 안 들어오는 게 아닐까?’
너자의 잘생긴 얼굴이 음울하게 침전되었다.
물론 맥켄지는 자신이 지은 죄도 있으니 그랬지만, 원래 표정이 없는 자였다. 그는 눈알을 도룩도룩 굴리며 이것저것 요구하는 너자의 모습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맥켄지는 늦게 얻은 새색시를 둥기둥기하는 노인네처럼 너자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거기에 살인적인 업무량 때문에 맥켄지는 너자가 기다리다 지쳐 잠들 때쯤에 기어들어 와 지친 표정으로 너자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리고 너자가 깨기 전에 다시 일하러 나갔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너자는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행복하게 만들어 준댔으면서….”
“응? 머라고?”
너자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그의 앞에서 머리가 땋아지고 있던 욘이 고개를 돌려 너자를 바라보았다. 너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커다란 눈의 욘에게 환하게 웃어 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자, 앞에 보자. 덜 땋았어.”
“웅. 아라써.”
아직 10살의 욘은 제대로 된 발음을 하지 못했다. 너자는 아직 어려 혀가 짧은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리마는 그러지 못했다.
14살의 리마가 너자의 옆에 엎드려 책을 읽던 것을 멈추고 욘에게 말했다.
“야, 말 똑바로 하라고 했지.”
“…….”
“‘머라고’가 아니라 ‘뭐라고’라고.”
단호한 그녀의 말에 욘이 도움을 청하듯 다시 고개를 돌려 너자를 응시했다. 하지만 너자는 욘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을 부리부리하게 쳐다보는 리마의 눈빛에 차마 아이의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 너자는 서둘러 욘의 머리를 땋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욘의 머리에 고무줄을 묶을 때, 리마가 기다렸다는 듯 욘의 앞으로 다가가 아이의 어깨를 꽉 쥐었다.
“허, 너 지금 너자한테 이른 거야?”
서슬 퍼런 리마의 말에 욘이 겁에 질린 듯 웅얼거렸다. 리마와 욘의 기 싸움에 너자의 주변에서 뛰어놀던 아르와 로가, 준, 도아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구경꾼이 몰려온 것에 고양된 리마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게 혼나려고.”
“이… 이씨…!”
욘은 자신을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들을 흥미로운 눈으로 응시만 하는 구경꾼들에 대한 아니꼬움과 자신에게 어깃장을 놓는 리마 때문에 점점 열이 뻗쳤다. 게다가 화이트들의 영지는 코만치의 대지와 달리 너무 더웠다.
평소의 욘이었다면 리마에게 감히 대들 생각도 하지 않고 설설 기며 알겠다고 했겠지만, 몸을 쥐어짜 내는 것 같은 더위에 욘의 전투력은 맥스를 찍었다. 그래서 그는 저질러서는 안 될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욘이 고사리 같은 손을 주먹으로 쥔 뒤 리마의 어깨를 퍽 쳤다. 그리고 패기롭게 소리 질렀다!
“나한테 이래라 하지 마 절해라!”
남자애인 탓에 리마보다 나이가 적지만 그녀와 키가 비슷해 그의 주먹이 리마의 어깨에 제대로 꽂혔다.
“헉…!”
그들을 구경하고 있던 구경꾼들이 숨을 들이 삼켰다. 민머리 형제 패트와 메트 또한 아이들을 말려야 할까, 말까 고민을 했으나 그들의 보호자인 너자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보고 들썩이던 몸을 다시 직립했다.
리마가 제 어깨에 제대로 꽂힌 욘의 고사리 같은 주먹을 응시했다. 그녀의 듬직한 몸이 늑대처럼 앞으로 쏠렸다. 그녀의 오른손이 욘의 멱살을 제대로 쥐고 그의 몸을 땅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억! 하고 욘이 비명을 질렀다. 버둥거리는 욘의 몸뚱이에 리마가 올라탔다. 그리고 야무지게 주먹을 쥐고 욘의 얼굴을 사정없이 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해야지.”
퍽! 퍽! 퍽! 그녀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다졌다. 마찬가지로 민머리 형제 패트와 메트가 몸을 들썩였다. 이건 정말 말려야 하지 않을까? 과묵한 두 형제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때였다. 가드를 올려 리마의 주먹을 겨우 막은 욘이 너자에게 외쳤다.
“싸려 줘! 싸려저 너자!”
하지만 너자는 팔짱을 끼고 주먹다짐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니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욘을 보며 자상하게 말했다.
“네가 건 싸움이잖아.”
“싸… 싸려!”
“네가 책임져야지.”
민머리 형제 패트와 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신들도 어렸을 때 무지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래 봤자 여자애가 때리는 것이었다. 남자라면 여자의 폭력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했다. 민머리 형제는 아까보다 더욱 편한 자세로 그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그때였다.
“아이고! 싸우면 안 되지, 요 녀석들!”
붉은 머리 기사 샬로메가 부리나케 뛰어와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욘을 리마에게서 떨어뜨리려고 할 때 너자가 손을 들어 올려 그를 만류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안 돼. 코만치에서는 둘 중 하나가 끝장나야 끝나.”
“…끝장?”
샬로메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험한 말을 하는 너자를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음, 쟤가 아직 제국어를 잘 알지 못하…….
너자가 리마에게 넌지시 말했다.
“리마, 제일 확실하게 끝장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잖니.”
그의 피드백에 리마가 그제야 깨달은 듯 아, 하며 오른발을 들어 욘의 중심부를 찍어내렸다. 욘의 처절한 비명이 도노반 공작 성의 정원을 비통하게 울렸다.
전투 불능이 된 욘의 위에서 리마가 가뿐하게 내려왔다. 팔짱을 끼고 샬로메의 뒤에서 관전하고 있던 이 성의 주인, 맥켄지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녀의 표정은 묘하게 불퉁했다.
보통의 귀족이었다면 야만인 새끼가 불온하게 자신을 바라본다며 길길이 날뛸 텐데 맥켄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다만 맥켄지는 리마를 흘겨본 후 자신을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너자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그사이 맥켄지의 키와 몸집이 커진 것 같았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맥켄지의 얼굴은 너자의 젖꼭지께에 있었지만, 이제는 맥켄지의 얼굴이 너자의 목덜미쯤에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작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맥켄지가 너자의 앞에 서서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너자는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은 그의 행동에 부끄러움도 잊고 그를 꽉 끌어안아 제 품에 감쌌다. 바로 밑에서 맡아지는 맥켄지 특유의 나무 향과 화학 향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맥켄지는 저를 끌어안은 너자의 품에, 너자의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지금껏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 이 몸을 제대로 품어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있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그를 제 침실로 끌고 가 그의 온몸에 입을 맞추고 그의 구멍에 제 자지를 꽂고 흔들고 싶었다. 그리고 엉엉 우는 너자를 억누르고 그가 좋아서 비명을 지를 때까지 정액을 싸 주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맥켄지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욕망을 삼키며 너자에게 말했다.
“우리 잠깐 나갈까?”
의외의 말에 너자가 맥켄지를 끌어안던 것을 멈추고 그를 응시했다. 맥켄지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잖아. 잠깐 바람 쐬고 오자. 꽤 덥지? 도노반 가문 소유의 호숫가에 별장이 있…….”
“나도! 나도 갈래!”
“나도!”
“나도 데려가!”
“나! 나!”
맥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근처에 있던 어린것들이 순식간에 맥켄지의 곁으로 몰려들어 똥강아지처럼 날뛰었다. 지금껏 그를 경계하고 싫어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호숫가라는 말에 흥분했다.
코만치의 초원은 사시사철 선선했다. 그들은 더위라는 것을 잘 몰랐다. 하지만 이베아 제국은 사시사철 더웠다. 내리쬐는 태양은 마치 바늘 같았고 마치 온몸이 익을 것 같은 온도는 사시사철 선선한 곳에 살았던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온도였다. 이베아인들인 그들에게는 당연한 온도였지만 말이다.
성안은 마치 찜통처럼 더웠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나무가 우거져 그나마 선선한 정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 와중에 맥켄지의 입에서 나온 ‘호수’라는 단어는 그들의 뇌리에 확 박혔고, 맥켄지를 싫어하고 꺼리는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맥켄지는 웃는 낯을 유지하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망할 애새끼들.’
* * *
도노반 공작 가문의 마차가 들판을 시원하게 달렸다. 본성에서 떠난 지 세 시간째에 드디어 목적지가 보였다. 별장은 깊은 숲속에 있었는데 사방이 나무에 둘러싸여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별장은 아기자기한 게 귀여웠고, 별장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호수는 마치 맥켄지의 눈처럼 청명한 푸른색을 발했다.
마차가 별장 앞에 서자 마자 어린것들이 늑대처럼 튀어나와 별장 앞의 아름다운 정원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락을 구하는 듯 발을 동동거리며 너자를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너자는 그런 어린것들을 이끌고 호숫가로 향했다.
어린것들은 잘 길들여진 개처럼 너자보다 앞으로 결코 먼저 튀어 나가지 않았다. 너자의 양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의 느릿한 발걸음을 따랐다. 마침내 그들이 호수 앞에 도착했다. 너자가 눈을 찡그리고 호수의 깊이를 잠시간 가늠했다.
맥켄지는 그들의 뒤를 천천히 따르며 너자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너자의 커다란 몸이 땅으로 숙어지며 그의 커다란 손이 제 바짓단을 접어 올리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헐렁한 바짓단이 너자의 무릎 바로 위까지 돌돌 말려 올라갔다. 그의 기다랗고 매끈한 하얀 두 다리가 시원스럽게 뻗어졌다.
맥켄지가 옆에 있는 샬로메와 그레머, 그리고 민머리 형제에게 넌지시 말했다.
“눈깔.”
그의 서슬 퍼런 말에 프로 사회인인 그들은 서둘러 눈을 흐리게 만들었다.
너자가 천천히 호숫가에 발을 담갔다. 그는 뼛속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물에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이 제 허벅지 중간까지 다다랐을 때, 자신보다 앞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여기까지야! 이 바위 이상은 안 돼!”
그의 외침에 호숫가 바로 앞에 얌전히 있던 아이들이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재빠르게 물에 뛰어들었다. 코만치는 숲과 강 근처에 터를 잡은 민족이었다. 어린것들은 수영에 능숙했다.
너자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며 노는 어린것들을 감독했다. 너자가 헤엄을 치느라 바위 근처까지 온 로가의 몸을 돌리며 엄하게 말했다.
“로가, 여기 넘어오면 안 된댔지.”
“미안.”
“리마! 너 일부로 도아 머리 발로 찼지! 다 보여!”
“미안.”
정신없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너자의 곁에 메트가 휘적이며 걸어왔다.
“내가 애들을 보고 있을 테니, 너는 주인님께 가라.”
조용조용한 메트의 목소리에 너자가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손주들 등쌀에 놀러 오기는 했지만 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손주들의 노는 모습을 구경하는 노인네처럼 가만히 있는 맥켄지가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너자가 빠른 걸음으로 물을 헤치며 나무 밑 그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맥켄지에게 다가갔다. 맥켄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너자의 기척을 모르는 척하며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너자가 흠뻑 젖은 생쥐 같은 꼴로 맥켄지의 바로 앞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맥, 같이 놀자.”
“흠….”
맥켄지가 책을 덮고 너자를 응시했다. 너자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뒤로 쓸려진 채로 있었는데, 그게 남자답게 잘생긴 너자의 얼굴을 한층 빛나게 해 주었다. 거기에 음울한 표정이 아닌 즐거운 표정은 다시 봐도 짜릿했다. 그리고 물에 젖은 그의 꼴도 퍽, 아니 매우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다 벗는 것보다 물에 흠뻑 젖어 몸뚱이에 달라붙는 것이 더욱 야해 보일 때도 있는 법이었다.
맥켄지가 너자를 감상하느라 답을 하지 않자 너자가 착각했다.
“혹시… 수영할 줄 몰라서 그러는 거야?”
“…….”
너자의 물음에 맥켄지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이 짓궂게 변했지만, 아직은 맥켄지의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너자가 맥켄지의 손을 잡고 그를 이끌며 말했다.
“내가 알려 줄게! 덥잖아, 물에 들어가면 기분 좋아.”
어떻게든 끌고 가 같이 수영을 하고 싶다는 너자의 행동에 피식 웃은 맥켄지가 말했다.
“그래, 하자.”
“…응!”
맥켄지의 허락에 너자가 매우 기뻐하며 웃었다.
그 모습에 맥켄지의 허리께가 뜨거워졌다.
맥켄지가 물가에 서서 천천히 제 상의를 벗었다. 더운 탓에 얇은 긴소매 셔츠만 입어 그의 탈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를 감싸고 있던 하얀색의 셔츠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하얀색의 잘 짜인 그의 상체에 햇빛이 쏟아져 아찔하게 빛났다.
너자가 멍하니 제 팔뚝을 힐끗 바라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와 다른 깨끗한 흰 피부였다. 마치 상아를 깎아 조각해 놓은 듯한 그의 균형 잡힌 몸은 근육이 과하지도 적지도 않았다. 맥켄지가 고개를 숙여 하나로 질끈 묶은 제 머리를 한 번에 풀었다.
환상적인 플래티넘 블론드의 금사 같은 머리칼이 그의 허리춤에서 우아하게 일렁였다. 맥켄지의 적당하게 큰 손이 제 머리채를 한 번에 모아 돌돌 말아 올렸다. 마치 여인이 목욕하기 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 같은 모습에, 머리카락 때문에 가려졌던 그의 사슴 같은 기다란 목이 한눈에 보이는 것에, 너자가 시선을 재빨리 돌렸다.
“…….”
마치 아름다운 이를 훔쳐보는 간악한 이가 된 것 같았다. 너자의 창백한 피부에 열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바지도 벗을까? 바지를 벗으면…….
“갈까?”
너자가 앙큼한 생각을 하다 자신에게 돌려진 아름다운 얼굴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성적인 생각이 요만큼도 없는 이에게 음심을 품은 저 자신을 탓하며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썩어빠진 제정신을 갈무리하는 것이었다.
그 탓에 너자는 보지 못했다. 자신을 정욕이 깃든 눈으로 응시하며 제 아랫입술을 핥는 맥켄지의 모습을. 맥켄지는 서둘러 표정을 갈무리하고 너자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웃음을 짓고 그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어서 가르쳐 줘. 수영.”
너자는 자신을 보며 아찔하게 웃는 맥켄지의 모습에 한껏 달아오른 제 얼굴을 아래로 푹 숙이며 그의 손을 서둘러 잡았다.
* * *
너자와 맥켄지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당연히 커다란 키를 가진 둘이었기에 아이들이 있는 곳보다 더욱 깊은 곳에 몸을 담갔다. 너자는 가슴 아래까지 올라온 물에 시원함을 느꼈다. 그도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근래에 몹시 더워진 이베아 제국의 날씨에 힘든 상태였다.
너자는 제 양손을 붙잡고 자신을 멀거니 올려다보는 맥켄지를 보며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살짝 올라간 저 입꼬리에 입술을 맞춰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방이 뚫린 곳에서 그런 남사스러운 짓을 할 수는 없었고, 너자는 뻔뻔스럽게 맥켄지에게 먼저 입을 맞출 성격이 되지 못했다.
너자는 욕망을 꾹꾹 눌러 담으며 제 양손을 잡은 맥켄지의 하얗고 예쁜 손을 강하게 잡고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당신을 끌 거야. 그럼 당신은 그냥 내가 따르는 대로 가만히 몸을 맡기면 돼. 하고 싶으면 양발을 저어도 좋아.”
마치 아이들을 다루는 듯한 말투와 목소리였다. 항상 억눌린 채 싫다는 말만 해 왔고 눈치를 살살 보며 쭈뼛쭈뼛 말하던 너자였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짓을 알고 두 번 다시 자신과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 상처 받은 목소리로 자신을 거부했었다. 그런데 이토록 부드러운 말씨라니.
자신과 너자의 사이가 무척 가까워진 모양이다. 맥켄지는 순간 온몸을 휩싸는 소름에 얼굴을 물속에 처박으며 달아오르기 시작한 얼굴을 식혔다. 하지만 그런 맥켄지의 모습에 너자는 몹시 당황했다.
“맥! 맥! 얼굴! 숨!”
방금까지 유려하게 했던 제국어와 다르게 단출하기 짝이 없는 단어였다. 이렇듯 너자는 당황스러우면 문맥을 파괴하며 예전처럼 어수룩하게 말을 했다. 그때였다. 맥켄지가 맞잡은 너자의 양손을 빼내었다. 너자가 별안간 손이 떨어지고 밑으로 가라앉은 맥켄지에 기겁을 하며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흐…!”
차가운 물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허리춤을 쓸었다. 아마 이곳에는 맥켄지와 자신밖에 없으니 이 손길은 맥켄지의 것이겠지.
맥켄지의 양손이 제 허리춤을 쓸다가 제 등허리를 가볍게 쓸었다. 너자가 몸을 웅크리며 팔을 밑으로 휘저었다. 그리고 손에 걸리는 피부를 강하게 잡아 물 위로 끌어 올렸다.
푸, 하고 맥켄지의 아름다운 얼굴이 물기를 머금은 채 올라왔다. 매끈하고 하얀 피부에 노을을 만들기 시작한 주홍색의 햇빛이 그의 얼굴에, 그의 너른 어깨에 부서졌다.
마치 노을의 요정 같은 그 모습에 너자가 걱정했다고 화를 내려고 했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너자가 마치 잃어버렸던 주인을 맞은 개처럼 애절하게 낑낑거렸다. 너자의 입에서 무심코 투정이 나왔다.
“키스….”
멍하니 말을 내뱉던 너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미쳤다, 미쳤어! 애들이 있는데! 아니, 이런 남사스러운 요구를 하다니! 너자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그의 시선을 피하려고 할 때, 맥켄지의 뜨끈한 양 손바닥이 너자의 양 볼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거침없이 입을 맞췄다.
“으응….”
너자는 입술에 느껴지는 맥켄지의 부드러운 입술 감촉에, 이윽고 제 입술의 틈 사이로 파고든 맥켄지의 혀에 잠시 움찔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자와 맥켄지의 혀가 질척하게 섞였다. 근 두 달 만에 섞는 혀였다. 처음에는 머뭇거렸던 너자 또한 아찔하게 느껴지는 그의 혀에 도취되어 정신없이 혀를 섞었다.
맴맴거리는 매미 소리가 어느새 정적이 내려앉은 호숫가에 조용히 울렸다. 정신없이 혀를 섞는 그들의 위로 노을이 부서졌다.
아이들과 나머지 떨거지들은 맥켄지가 너자와 함께 물속에 들어간 후 알아서 퇴장한 상태였다. 그들은 이미 별장에 들어가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턱이 아릴 때까지 키스를 하던 그들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너자의 속눈썹에 물기가 어린 것을 맥켄지가 입술로 닦아 주었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듯 너자의 눈, 코, 볼, 귀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하고 싶어.”
“…….”
마치 조르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너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너자의 젖꼭지가 기대감과 차가운 물 때문에 바짝 섰다. 맥켄지의 오른손이 너자의 얼굴에서 내려가 그의 가슴에 안착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활짝 펴 너자의 한쪽 가슴 전체를 애무하듯 주물렀다. 그리고 한참을 주물러 너자의 두툼한 가슴이 발갛게 일어날 때쯤에 손바닥을 떼서 흥분감에 바짝 선 너자의 젖꼭지를 꼬집었다.
“아…!”
“응? 하고 싶어.”
소름 돋는 쾌감에 너자가 신음을 내지르자 맥켄지가 마치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까치발을 들어 너자의 귓가에 촉, 촉 하고 입 맞추며 졸라댔다. 그에 너자가 결국 양팔을 들어 맥켄지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하고 싶… 아!”
너자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맥켄지가 물속으로 들어가 너자의 허리춤을 잡아채 재빠르게 헤엄을 쳤다. 너자는 별안간 맥켄지의 팔에 허리가 잡혀 물버들 쪽으로 향하는 자신의 몸뚱이를 보며 멍청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속았다는 듯 외쳤다.
“뭐… 뭐야! 헤엄칠 수 있었잖아!”
억울하다는 듯 외치자 맥켄지가 너자를 물버들에 등을 기대게 한 뒤 물에서 나와 제 얼굴을 양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못 한다고 하지는 않았잖아.”
그랬다. 수영할 줄 아느냐고 물어봤는데 맥켄지는 못 한다는 말 대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까 가르쳐 달라고 했다! 너자가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가…가르쳐 달라 했다!”
꽤 당황하고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너자의 문법이 아까보다 더욱 악랄하게 파괴되었다. 맥켄지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너자가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했다, 네가! 가르쳐 달라!”
그의 외침에 맥켄지가 푸흐흐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가르쳐 달라 했지. 하지만 못 한다고는 안 했잖아.”
“…이…!”
결국 너자가 부끄러움에 몸을 돌렸다. 맥켄지가 너자를 데리고 간 곳은 발이 땅바닥에 닿고 물이 허리께에 닿는 안전한 지대였다. 너자가 물버들의 거칠한 표면에 이마를 닿고 나무를 끌어안았다. 부끄러워서 뭐라도 쥐고 있어야 마음에 안정되는 듯해서였다.
그때였다. 뒤에서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던 맥켄지가 그의 뒤로 바짝 붙어 시원하게 드러난 너자의 굵은 목에 입을 맞췄다. 힉… 씩씩거리던 너자의 입에서 가녀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맥켄지는 그 가녀린 신음에 고양된 듯 뒷덜미는 물론 어깨로 가는 곡선의 피부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췄고 간혹가다 이를 드러내 콱 깨물었다.
“아… 응…!”
“쪽….”
맥켄지가 정신없이 너자의 등과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그의 등이 붉은색 울혈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으로 헤엄쳐 가 물버들 바로 앞에 있는 꽤 평평하고 넓은 바위에 그를 건져냈다. 물 위로 올려진 너자가 당황스러워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마찬가지로 물 위로 올라온 맥켄지가 너자의 등에 입질하며 손을 내려 허리춤의 단추를 단숨에 풀고 속옷과 함께 밑으로 거칠게 내렸다.
너자는 순간 엉덩이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감촉에 퍼뜩 놀라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맥켄지가 자신의 엉덩이를 꽉 부여잡아 양옆으로 벌리는 것에, 그리고 자신의 구멍에 느껴지는 뜨겁고 말캉한 혀의 감촉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자지러졌다.
너자가 이를 악물고 덜덜 떨었다. 민감하고 여린 곳을 사정없이 쑤셔대는 맥켄지의 혀의 감촉이, 추잡하게 울리는 침 소리가 너자의 정신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너자의 허리가 점점 밑으로 숙어지고 엉덩이를 뒤로 뺀 자세가 되어 갔다.
맥켄지는 어느새 꼿꼿하게 선 너자의 자지를 주무르며 자신의 입과 혀를 더욱 깊숙이 묻었다. 꽉 닫혀 있던 너자의 구멍이 어느새 움찔거리며 녹진히 풀려 있었다. 맥켄지는 알고 있었다. 뻐끔거리는 너자의 구멍 속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맥켄지는 너자의 자지를 주무르는 손에 더욱 속도를 더하며 남은 한 손의 검지로 그의 구멍을 살살 긁었다.
“으응… 으… 아…!”
너자의 애끓는 신음에 맥켄지가 참지 못하고 손가락에 힘을 줘 한 번에 뚫어냈다. 두 달간 관계를 가지지 못해서인지 손가락 하나는 겨우 들어갔지만, 손가락에 느껴지는 내벽은 뻑뻑했다. 맥켄지는 그의 구멍을 풀어 주기 위해 손가락으로 푹푹 쑤시며 꽉꽉 물어대는 곳을 혀로 핥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너자의 숨넘어 가는 음 소리가 들려왔다. 제 손에 있는 너자의 자지가 크게 꺼떡였다. 그리고 제 손등 위로 미적지근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너자의 구멍을 쑤시는 손가락과 그의 혀는 멈추지 않았다.
크고 넓적한 바위 위에 개처럼 엎드려 헉헉거리고 있던 너자의 몸이 자지러졌다. 아아아! 시러! 그… 그만… 아! 맥켄지는 참지 못하고 너자의 구멍에 넣었던 손가락을 거칠게 빼냈다. 그리고 재빨리 자신의 속옷과 바지를 허벅지까지 벗어내 아까부터 아프도록 발기한 자신의 것을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리고 제 좆 대가리로 너자의 구멍을 마구 비비다가 힘을 줘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으… 아…! 뜨거워, 커…!”
아까 손가락으로 푼 것은 턱도 없었다. 두 달 만에 하는 관계는 빡빡하게 닫힌 너자의 구멍을 제대로 뚫어내지도 못했다. 맥켄지는 애가 닳았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상관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쑤셔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기 싫었다.
맥켄지가 제 좆 대가리를 구멍에 쑤셔 넣는 것을 멈춘 뒤 개처럼 엎드린 너자의 몸을 뒤집고 그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고통에 찔끔 나온 너자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고, 자신을 울멍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너자에게 그가 좋아하는 미소를 보여 주었다.
너자는 우는 것도 멈추고 요염하게 웃는 맥켄지를 멍청하니 응시했다. 너자는 자신의 바지와 속옷이 완전히 벗겨지는 것도 몰랐다. 맥켄지는 넋이 빠진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너자에게 코를 찡긋이며 웃어 주고는 약간 벌어진 너자의 입술에 제 입을 맞추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너자의 몸이 조금씩 이완되기 시작했다. 맥켄지는 혀를 섞어 키스를 해 주며 양손으로 너자의 온몸을 쓸어 주었다. 너자가 키스에 정신이 팔려 노곤해할 때쯤에 제 자지를 부여잡고 풀린 구멍에 가져다 댄 뒤 단번에 밀어 넣었다.
“……!”
자신의 입안에서 너자의 비명 소리가 울려댔다. 맥켄지는 눈을 감은 채로 인상을 찌푸리며 반쯤 들어간 제 자지에 힘을 줘 한 번에 박아 넣었다.
“맥, 매…. 아…!”
견딜 수 없는지 너자가 고개를 돌려 맥켄지와 자신의 입술을 떼어냈다. 하지만 신음이 흐르는 너자의 목소리에는 고통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맥켄지가 씩 웃으며 너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너자의 허벅지를 제 양팔에 끼워 넣었다.
너자는 번쩍 들리는 제 양 허벅지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맥켄지를 응시했다. 무거울 텐데… 멍청한 생각을 하던 너자의 머릿속에 더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찔꺽, 찔꺽, 퍽, 퍽, 자지가 구멍을 찌르는 외설스러운 소리가 호숫가를 울렸다. 노을이 지던 호숫가는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너자는 자신의 구멍에 힘차게 들어오는 맥켄지의 흉기 같은 자지에 자지러지며 고개를 저었다.
미칠 것 같았다. 아픈데, 밑이 타는 것같이 뜨거운데…….
“조하… 좋… 맥…!”
“하… 후… 나도 좋아….”
제가 느끼는 곳을 사정없이 찍어 내리는 그의 자지가 너무 좋았다. 그의 좆 대가리가 그곳을 짓이기듯 푹 찌를 때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쾌감이 느껴졌고 그의 좆 대가리가 뒤로 물러가 떨어질 때는 그게 너무 아쉬워 저도 모르게 구멍에 힘을 줘 그의 자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에 맥켄지가 미칠 것 같다는 듯 허벅지를 끼고 있던 팔을 풀어내 너자의 양 볼을 거칠게 쥐고 입을 맞췄다.
아! 으! 아아! 좋아! 맥켄지의 입안에서 너자의 쾌락에 전 앓는 소리가 부서졌다. 맥켄지의 고운 이마가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의 허리 짓이 더는 거칠어질 수 없을 만큼 거세졌다.
너자가 비명과 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눈물을 질질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하게 쑤셔 오는 맥켄지의 자지에 눈을 까뒤집으며 몸을 휘었다.
“…….”
맥켄지도 자신의 것을 잘라 먹을 듯 조여대는 너자의 구멍에 참지 못하고 정액을 쌌다. 두 달 동안 금욕적인 생활을 한 것은 맥켄지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배는 많은 양의 정액이 너자의 구멍 안을 가득 메우다 못해 조금씩 밖으로 새어 나왔다.
정신이 나갈 만큼 환상적인 사정이었다. 맥켄지가 진한 탈력감에 너자를 품에 끌어안고 몸을 옆으로 누였다. 너자는 아까보다는 좀 줄어들었지만, 마찬가지로 흉기 같은 맥켄지의 자지가 돌려지는 느낌에 다시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런 너자에게 맥켄지가 사랑스럽다는 듯 피곤에 전 얼굴에 입술을 맞춰 대며 말했다.
“사랑해.”
“…….”
“사랑한대두?”
조르듯 말하는 맥켄지의 고백에 너자가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내가 더 사랑해.”
“정말 사랑해, 너자.”
“나도 정말 사랑해, 맥켄지.”
너자의 말을 끝으로 둘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맥켄지가 너자를 끌어안으며 어느새 말라 약간 촉촉해진 너자의 짧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할 말이 있어.”
“응.”
“나는 도노반 공작 가문의 후계자야.”
맥켄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너자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자도 나지막이 생각하기는 했다. 맥켄지는 이베아 제국의 귀한 사람이었고 그 귀한 가문을 이을 후계자였다. 후계자란, 후계자를 생성할 의무가 있었다.
지금껏 따끈히 달아올랐던 너자의 몸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맥켄지가 일을 하느라 도노반 성을 떠났을 때 시녀들이 했던 말이 있었다. 큰 주인님이 지금은 남자 노예를 끼고 있지만 언젠가 후계자를 생성할 영애를 맞아 후계를 볼 거라고. 그러면 성의 주인은 영애가 되는 것이고 남자 노예는 정부로 살아갈 거라고.
이때가 지금인 듯싶었다. …나를 정부로 두고, 후계자를 낳을 영애를 데려온다는 말을 할 거라서 이렇게 잘해 주었나? 그건 영애에게도 예의가 아닌 일이었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 맥켄지가 커다랗고 시커먼 남자 정부 대신 새로 들인 영애를 사랑하게 될지. 너자의 잘생긴 얼굴이 음울하게 침전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자는 맥켄지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할 거야.”
“…….”
“내 말 듣고 있어?”
맥켄지의 말에 너자가 눈을 꽉 감았다. 정말 듣기 싫었다. 하지만 맥켄지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래… 버리지만 마라. 우리 애들만이라도 데리고…….
“리마를 후계로 삼을 거라고.”
“…어?”
생각지도 못한 맥켄지의 말에 너자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에 너자의 구멍에 있던 맥켄지의 자지가 크게 흔들리며 빠졌다. 너자는 자신의 구멍에서 흐르는 정액을 미처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맥켄지를 응시했다.
맥켄지가 멍청하니 입을 벌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너자를 보며 자신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코를 아프지 않게 잡고 흔들며 말했다.
“이상한 생각 했니?”
“…….”
간단하게 말하는 맥켄지였지만 리마를 후계자로 올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일단 귀족들의 비웃음 어린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별 상관이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천박하다고 손가락질받았던 가문이었다. 돈으로 귀족 작위를 산 천민 출신 귀족, 도노반 공작 가문. 안타깝게도 근본 없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해도 더는 타격받지 않았다.
다만 페리를 설득하는 게 힘들었다. 페리는 처음 맥켄지의 계획을 듣고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제 귀를 씻어내며 그를 나무랐지만, 두 달간의 끈질긴 설득과 거래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맥켄지가 단 마지막 조건에 무너지고 말았다.
‘재혼하세요. 재혼하시고 자식을 보시면 그때 리마를 차석으로 내리고 어머니의 자식을 후계로 밀어드리지요.’
페리는 맹랑하기 짝이 없는 아들의 말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지만 맥켄지의 마지막 조건은 공증을 통해 서류로 남겨 놓았다.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리마의 의사였다. 맥켄지는 삼 일 전에 리마를 은밀히 불러 말했다. 내 후계가 되라고.
맥켄지의 미친 소리를 들은 리마가 비꼬며 말했다.
-당신 미쳤군요. 살아남은 코만치 부족 중 당신에게 제일 증오를 품고 있는 게 납니다. 그런데 이 가문을 내게 준다고? 제정신인가요?
제국어를 배운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리마의 말은 완벽했다. 맥켄지는 제 감이 틀리지 않다고 느꼈다. 저 애는 정말 똑똑하고 독하다. 후계자가 되어 가문을 굴릴 만한 여자였다. 지금도 이렇게 똑똑하고 독한데 장성하면 더 독해지고 더 똑똑해질 것이다.
맥켄지가 말했다.
-내가 제정신인 건 네가 알 것 없어. 나한테는 후계자가 필요해.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네가 제일 적당한 후계자야. 나는 너자를 다시는 잃기 싫어.
-지금 너자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자신을 보는 리마에게 맥켄지가 나른하게 말했다.
-네가 이 가문을 이끌면 이 가문을 파산시키든, 다른 가문에 팔아 버리든 그것은 네 자유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
-하지만 내 어머니와 나, 그리고 너자가 죽은 뒤에 그렇게 하렴. 너, 너자와 네 친구를 길바닥에 나앉게 하고 싶지는 않지? 아, 만약 어머니가 새 남편을 데려오고 자식을 보게 된다면 너는 차석으로 밀리는 거다? 대신 도노반 리피팅 암즈의 지분을 반 주지.
그의 말에 리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맥켄지에게 손을 뻗었다.
맥켄지와 리마의 손이 강하게 맞닿았다.
맥켄지의 말을 들은 너자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닌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 그런 너자에게 맥켄지가 손가락을 뻗어 너자의 눈가에 거슬리게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쓸었다. 너자의 잘생긴 눈썹이 울먹였다. 귀여워. 맥켄지가 조용히 생각했다.
그리고 밤하늘같이 까만 눈에 기어코 눈물을 담은 너자의 눈에 입 맞추며 말했다.
“내가 책임진다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