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189)

새로운 이벤트

양복 아래에서 느껴지는 네모 모양의 단단한 무언가. 손 끝에 느껴지는 감촉에 슬슬 짐작이 가긴 했지만

아직도 벌겋게 달아오른 소희의 얼굴을 보니 집에 가서 열어 보려고 마음먹으니 소희가 슬그머니 입을 연

다.

“하늘아, 이거 받아.”

“이건 또 뭐야... 용돈?”

운전대를 잡은 반대편 손으로 건네진 두툼한 봉투.

벌게진 얼굴로 소희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 나간다.

“어머니가 너 맛있는 거나 사먹이라고 주시더라.”

그제서야 벌겋게 달아오른 소희의 얼굴과 도망치듯 떠나온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악마들이 주

는 돈과 음식으로 풍부하게 지내기 전, 우리들의 생활비는 내가 지하 도시에서 벌어온 것이 대부분이었

으니까.

먹고 살기 빈곤해서 내가 집안의 기둥이 된 것은 아니었다. A급과 B급으로 등록된 히어로 & 사이드 킥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둘이 먹고 살면서 여가 생활까지 넉넉하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우리 둘 다

돈에 연연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래도 그걸 자기 어머니한테 꼬집히면 아프겠지. 소희는 연상으로서, 여자로서의 책임감이 강하니까.

남성 인권 상향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남자들이 많아진 미래 시대라 해도 고정 관념은 어쩔 수 없다.

남자는 여자에게 씨를 주고, 여자는 남자에게 안전을 보장해 준다. 원시 모계 사회에서 그대로 발전한 이

쪽 세계관은 미련하게 보일 정도로 여성에게 부과된 짐이 많았다. 남성이 부성애를 무기 삼아 집 안에 침

입해오는 적에게 맞서 아이를 지키고 집안을 지킨다면, 여성이 싸워야 하는 영역은 집 외부의 모든 곳이

었으니까.

심심해서 읽었던 인터넷의 짧은 기사에서는 남자가 안전한 마을 쪽에서 농사를 할 때, 여성이 위험한 밖

으로 나가 열매 채집과 어업, 사냥을 담당했다는 글을 봤던 거 같은데. 아무튼 소희는 간만에 집에 왔다가

그 사실에 명치를 씨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뭐, 소희 어머니가 보기에는 A급 히어로가 B급 사이드 킥을 먹여 살리는 게 맞지. 집도 소희가 협회에서

구한 아파트에 내가 얹혀 사는 모양새고. 나이 차이도 도둑놈 소리를 듣는 건 둘째 치고 20대 후반 직장인

이 고삐리를 먹여 살리고 용돈도 주고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심지어 소희는 인기 드라마 조연으로 등장

까지 했으니까.

비꼬는 의미도 아닐 거고, 부양할 사람이 생긴 딸내미가 어엿하게 먹고 사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을 것

이다. 딸내미의 꿈을 반대하고 막아섰는데 끝끝내 S급 논쟁까지 나오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하면서도 착

잡한 기분이 들었을까?

지원금을 합친 것보다 내가 지하 도시와 악마를 핑계로 통장에 꽃아 넣은 돈이 억 단위라는 것을 제외하

면 말이지. 아마 그 점은 소희도 나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일 것이다. 애초에 같은 통장 같은 카드에

돈을 다 처박아 놓고 사니까.

물론 핑계는 있었다. 월 단위로 천 만 원씩 가져다 바치는 미치광이 악마가 있는데 고작 맥주 한 캔, 아이

스크림 한 통 마시면서 계획적인 소비를 할 리 있나? 우리 집에서 제일 비싼 사치품이 외국산 비싼 아이스

크림 큰 통이고, 우리가 했던 가장 커다란 사치가 호텔 데이트였다.

나야 뭐, 황제부터 마탑주 무림 맹주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사치는 다 겪었기에 관심이 없었고 소희는

푹신한 소파와 안락한 침대만 있으면 우리 집이나 하루에 천만원을 내야하는 특급 호텔방이나 그게 그거

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여성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 대충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상상이 간다.

침묵 속에서 차량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양 손으로 양복과 네모난

박스를 들고 있으니 소희가 관심을 보인다. 현관문을 열자 마자 양복을 대충 던져두고 박스를 열어본다.

“아, 잠깐만 하늘아? 내가 먼저 보면 안될까!”

부모님과의 대화 끝에 미묘하게 얼굴이 달아오른 소희의 얼굴이 결국 폭발했다. 네모 단단한 상자 속에

있던 것은 음탕한 정력제나 이거 받고 내 딸내미랑 헤어지라는 막장 전개도 아니었다. 여러 장의 얇은 종

잇장들과 앨범, 그리고 칩.

사진과 동영상 파일들.

“아 씨, 아빠는 진짜, 아니 잠깐!”

“와, 누나 되게 귀엽네요.”

5살짜리 소희의.

미래 사회에서도 자식 키우는 감성은 다 똑같은 건지 애지중지 모아둔 사진들. 코팅까지 되어서 년도별

로 계절별로 잘 정리된 사진은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는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소희는 종이 박스와 얇은 사진이 찢어질까 무서워 손에 힘도 못 주고 벌벌 떨며, 팬티바람으로

물총을 들고 정원을 뛰어노는 사진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자괴감과 착잡함 등 다양한 감정

이 씻겨 나가고 오롯하게 창피함만 가득한 빨간 얼굴이 된 소희를 보며, 소희가 미처 잡아채지 못한 단말

기용 칩을 그대로 내 손목 단말기에 장착한다.

증강현실 홀로그램이 거실 한 가운데를 차지한다. 화들짝 놀란 소희가 내 위로 올라타며 덮쳐오지만 이

미 단말기를 찬 오른손은 쭉 빼서 홀로그램은 정상적으로 등장했다. 5살보다는 조금 더 키가 큰 것 같은

어린 소희. 홀로그램의 위 쪽에는 ‘우리 공주님 운동 꿈나무’ 라는 문자가 살포시 등장한다.

‘끼야앗! 이얍!’

어린이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기괴한 기합을 외치며 팬티만 입고 자기 몸뚱이보다 큰 곰인형의 팔에 관절

기를 거는 소희의 모습이.

“아, 진짜, 아... 무슨, 진짜.”

삐져 버린 여자를 달래주는 것은 참으로 쉽다. 그 점 하나는 남녀 역전 세계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

다. 사실 삐진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서 방구석에 처박힌 거지만. 소희네 아버지가 사진이 취미인지 5살부

터 중학생때까지 전부 기록되어 있었고, 그걸 싸그리 내게 보여준 게 살짝 충격인 모양이었다.

하긴 교복입은 졸업사진 정도면 몰라, 밥 먹기 싫다고 팬티바람으로 도망치는 동영상이나 운동을 하다

잘못 맞아서 코피 줄줄 흐르는데 별로 안 아프다고 씩 웃는 사진은 보여주기 싫을 만했다. 그러니까 안방

에 처박혀서 냉수로 세수를 계속 하고 있는 거지.

10살 어린 남자와 가족 몰래 동거를 한 것, 민짜에게 손을 댄 것, 가족들이 막아서 되지 못하였던 히어로

가 결국 되어버린 것. 다양한 것들이 소희의 머리 속에 있었지만 이제 깔끔히 씻겨 내려갔을 것이다. 가족

과의 어색함도 어느 정도 사라졌을 것이고.

그러니까 가장 창피해 보이는 데이터 칩을 잘 보이게 위에 정리해 뒀겠지. 이쪽 세상 남자들은, 아저씨는

너무 무서운 것 같아. 년도 별 계절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왜 가장 먼저 손에 잡힌 칩이 5살이나 15살이 아

니라 8살이겠는가.

“누나, 자?”

“아니. 다 봤어?”

아직까지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소희가 침대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었다. 충분히 이불 킥을 할 각이었

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침대 위에 올라간다. 편하게 드러누워 히어로 커뮤니티를 보는 그녀의 등 뒤에 그

대로 접근한다.

품 안 가득 들어오는 부드럽고 탄탄한 등과, 양손이 파묻히는 행복한 감촉. 그럼에도 소희는 한 번 움찔거

리더니 그 자세 그대로 계속 웹 서핑을 한다. 소리를 빽 지른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사진 때문에 창피하

기도 하니 바로 반응을 보이기도 뭐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리라.

“뭐 재밌는 거 있어?”

“아니, 별로. 그때 같이 봤던 방송에서 나왔던 사람이 결국 4구역 갔다는 거 말고는 큰 뉴스가 없네.”

“아, 그때 그 바다 위에서만 강해진다는 사람?”

“응. 4구역 부산지구는 무역항이고, 5구역 제주지구는 관광지니까 능력 특성상 사람을 구하는 것 보단

재해를 막고 화물을 정리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본인이 그 쪽으로 지원서를 냈다고 하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손은 그대로 꿈틀거리며 부드러운 살덩이를 만끽한다. 딸각 소리와 함께 프론트

훅이 풀려나가고 가벼운 반팔티를 흔드는 묵직하면서 부드러운 가슴. 슬며시 벗겨낸 브래지어를 치워내

도 소희는 평범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고보니 우리, 출동 명령 안 내려 온지 꽤 오래 되었네. 사건이 일어나길 바라는, 흐으, 건. 좀 나쁘지

만.”

“그러게. 나는 명색이 히어로인데 범인은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네.”

커다란 살덩이를 마음껏 가지고 놀다 그대로 손을 아래로 내린다. 특이한 것 없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 소

희의 숨결이 조금씩 거칠어지고, 품 안의 체온이 살며시 달궈지는 게 느껴진다. 마치 온탕에 들어온 것처

럼 침대에 열기가 가득해지기 시작한다.

가슴에서 잘록한 복근을 지나, 괜사리 오목하게 들어간 배꼽을 손가락으로 빙글 문질러 본다. 큽, 하고 숨

을 들이 마시는 소희의 호흡에 맞춰 얼굴을 뒷목에 들이댄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코 끝을 간질이는 걸

느끼며 그녀의 심장 박동과 호흡에 맞춰 목덜미에 숨결을 내뱉는다.

“그래서, 누나?”

“음... 그래서 뭐, 으음... 내 말이 맞았다는 거지. 그 사람 말고 다른 두 명도 자기 갈, 길 찾아 히어로 협회

등록한거구우~”

배꼽에서 조금 더 아래로, 탄탄하기 그지없는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다 그대로 반바지 고무줄을

밀치고 들어가, 밋밋한 단색의 속옷을 살살 문질러본다.

[작품후기]

오늘은 저녁에 일이 있을 것 같아 낮에 미리 올립니다.

평균 기온 30도에 체감 35도 날씨에 할머니 댁 짐꾼으로 팔려가거든요

다들 몸관리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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