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189)

새로운 이벤트

다른 대악마들이 인간 사회에 녹아들고 인류를 멸망에서 멀어지게 만들기 위하여 회사를 세우고 제 위치

에서 사회에 이바지하듯, 사탄 또한 그리하였다. 먼 미래 저 높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내려와 인간을 심

판할 때, 아버지를 따르지 않는 인간들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인류를 지키는 것은 자신이 물려 받을 유산을 관리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목장 주인의

아들이 젖소의 여물을 챙기고 청소를 하며, 양치기의 아들이 늑대를 쫓아내고 양을 지키는 것과 같이.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악마.

죄악을 상장하는 이들이 도덕적이고 온전하게 생각하며 살아갈 리 있나?

처음에는 별 일 아니었다.

분노를 관장하는 사탄은 다른 대악마들과 달리 오롯하게 전장을 누비는 이였다. 이름의 근원 자체가 ‘대

적자’ 라는 단어에서 따 와, 신과 맞서 싸우는 괴물로 두려움을 받아 악마가 된 존재였기에. 하지만 초능

력이 발견되고 전쟁이 잦아드는 이 최첨단 시대에서 사탄이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

었다.

흥미를 잃은 사탄은 적당한 단체 하나를 골라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신의 영토에 몸을

웅크렸다. 탐욕의 재산과 비교하면 적디 적은 양이지만, 그래도 악마 군주인데 황금이 부족할 리 있겠는

가?

환경 단체가 선정된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사탄의 부하 중 뱃사람을 가호하는 악마가 있는데 어쩌면 그

녀석이 서류 작업을 할 때 손을 쓴 건지 의심이 가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고. 분노를 사그라트린 사탄은 다

른 대악마들의 연락도 끊고, 그저 자신이 지원한 단체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뉴스 댓글 하나를 보기 전까지.

[아니 ㅋㅋㅋ 저거 다 헛돈 쓰는 새끼들이라니까? 저런 단체 중에서 뒤가 안 구린 새끼들이 어디 있음? 퍼

포먼스나 쇼 보여준답시고 뒷돈 챙기는 게 100%임 ㅋㅋ]

창조주의 대적자인 사탄은 고작해야 네티즌의 댓글 하나에 분노하지 않았다.

[좋아요 9844 / 싫어요 214]

우매한 인간들의 헛소리일 뿐이니까. 다만 신경이 쓰였을 뿐이다. 아주 조금, 그러니까 정말로 조금, 오만

이 대한민국에 자리잡아 제작하기 시작한 드라마를 보다가 마지막 10분을 보지 못했을 때와 같이.

└ 맞음. 우리 사촌이 저기서 일하는데 이 새끼들 뒷돈 오지게 받아먹음

심심해서 그런 것이다. 스스로 합리화를 한 사탄은 자신의 계약자들을 점검하였다.

“진행하기로 한 프로젝트가 취소... 이유는 국제적 감정, 이건 또 뭐야, 요트 지원이라더니 유람선에 남자

애들이 잔뜩? 거기에 색욕 녀석이 조금 얽혀 있는 것 같은데?”

참고 참던 사탄이 진심으로 분노하게 된 것은 자신의 계약자가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 들었다는 사실이었

다. 악마의 계약하는 인간들이 늘 악마를 속여 먹으려 드는 사특하고 비열함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주는 황금으로도 모자라 인간들에게서 뇌물을 주고받는 것이 현실이라니.

술자리에서 사내아이의 술시중을 받으며 껄껄 웃는 늙은 여인 하나 때문에 묵시록의 붉은 용이 지상에 강

림할 뻔했다는 것은, 오직 악마들 만이 아는 이야기리라.

“묵시록의 붉은 용은, 그 잘난 신께서 강림해야 등장한다, 이거지? 이 개 씨발 새끼들 진짜. 그리고 색욕

이 개좆 달린 남창새끼가 지가 엮여 놓고 발뺌해?”

분노의 영토에서 몰래 황금을 긁어가려던 탐욕이 지옥문을 찢어발기며 기어 나가려는 거대한 붉은 용을

보고 기겁해서 나태의 군주를 유황불을 뿜어내려던 일곱개의 아가리에 처박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내일

의 태양 대신 지옥의 유황불을 온 몸으로 만끽했겠지.

“아무튼 사람 모양으로 활동하는 건, 인간 기준으로 활동하면 된다는 거 아니냐? 빨리 말해 씨발 년, 놈들

아!”

그리고 그 늙고 탐욕스러운 여인 하나가 감투에 취해 벌인 일이, 일곱 죄악의 군주, 지옥의 대악마 사탄이

브라질 출신 S급 초능력자 이사벨라로 변장하게 된 이유라는 것 또한, 오직 지옥의 악마들만 아는 사실이

었다.

쿵쿵쿵, 가느다란 삼지창이 허공을 휘저을 때 마다 파도가 꿈틀거린다. 부서진 배의 잔해가 아이서 커피

의 얼음이 달그락거리듯 휘몰아치며 요트 끝자락에 매달린 일본인 어부들이 히엑 히엑 비명을 지른다.

‘와 씨, 미쳤네 진짜.’

사탄의 힘에 감탄하는 것은 아니었다. 칠대 죄악의 마왕이라는 모드는 어느 시대에나 잘 어울리기 때문

에 흔해 빠진 모드 중 하나로 손꼽혔으며, 나는 다양한 악마 군주들을 봐 왔기 때문에 힘의 제약을 걸고 있

는 그녀에게 놀랄 이유가 있겠는가.

‘저 정도면 자가 발전인데?’

카메라 앞에서 연설을 하다, 자기가 한 말을 곱씹다가 분노한다. 화가 나서 난간을 깡깡 치다가 비명을 지

르는 일본인 어부가 짜증나서 다시 한 번 분노한다. 십자가 걸듯 매달아 놓은 어부 중 하나가 신이시여~

하고 울먹거리자 감히 자신의 앞에서 신을 들먹였다고 또 다시 분노한다.

단순히 분노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의 악마 답게 자신의 분노를 힘으로 바꿔 먹고 있었다.

분노하고 분노하고 분노할수록, 그녀가 ‘염동력자’ 라는 이름으로 꺼내든 힘이 더욱 더 강해진다. 이제는

삼지창 끝자락에서 시작된 해류가 돌고 돌아서 용오름을 만들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가 탄 작은 보트로

는 접근하기 힘들어진 상황.

“저기 가서 싸우면... 이슈 하나는 제대로 되겠는데?”

“생각해 보니까 여기 일본 영해 아니야? 우리 여기서 이러다가 히어로 잘리는 거 아니지?”

악마의 계약이고 뭐고 중요한 것은 소희를 히어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조금 되었지만, 우리

가 타고 있던 보트의 선원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랍니다!’ 라고 외치고 호다닥 사라

진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하며, 파도 없이 잔잔한 바도는 푸르고 아름다운데 그 아름답고 잔잔한

하늘과 바다 사이에 침몰한 어선을 믹서기처럼 분해하는 용오름이 떡 하니 존재한다. 취재를 나온 배도

겁을 먹고 얼어붙어서 사탄이 외치는 분노의 연설을 열심히 중계하고 있었다.

“이 개 시팔새끼들아! 인공 고기가 100g에 1436.4원이 안되는데 굳이 살아 있는 동물을 잡아 처먹겠다

고 여기까지 아득바득 기어 나와? 이 후레 새끼들! 가정 교육을 병신TV 앞에 붙은 광고가 해줬냐? 프리미

엄 결제해서 스킵 했지 아주?!”

용오름 너머로도 들리는 쩌렁쩌렁한 외침은 이내 내용 하나 없는 원색적인 욕설이 되었다. 이게 분노의

악마인지 패드립의 악마인지 모를 사탄의 욕설은 인터넷 세상에서 어지간한 욕설은 다 관람한 내게도 신

선한 충격을 가져오고 있었다.

악마의 지원을 받은 성능 좋은 번역기가 1달러인지 1유로인지 모를 화폐 단위를 실시간 환율로 번역함과

동시에, 그녀가 내뱉는 패드립도 한국어로 찰지게 번역해 주고 있었으니까.

욕설의 수위가 높아지자 뉴스 채널은 황급히 생중계 화면을 끊고 앵커들과 전문가들이 쏼라쏼라 떠드는

화면으로 바뀌었고, 곱게 양복을 차려 입은 빼빼 마른 노파가 뭔 전문적인 그래프를 들고 와서 설명을 하

기 시작해서 꺼버렸다.

“신이시여? 니들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하느님도 내려오다가 여기가 아직 소돔과 고모라인줄 알고 다시

올라가겠다!”

용오름이 점차 굵어지더니 여러 갈래로 분열한다. 그제서야 왜 색욕과 탐욕이 사탄을 잡으라고 보냈는지

이해가 된다. 과몰입에 분노 조절 장애. 어선도 다 부쉈고 어부도 다 잡았으며 고래들은 도망친 지 오래인

데 화가 난 걸 주체하지 못해 용오름이 점점 더 커져간다.

“저기 보스, 이제 그만... 으악! 파편 튄다 엎드려!”

“선실 안으로 튀어!”

이사벨라 옆에 있던 선원들이 젖가슴을 출렁이며 뛰쳐 들어간다. 요트 난간에 매달린 어부들은 이제 눈

깔이 뒤집혀서 기절 직전의 표정으로 꺽꺽거리다 용오름에 의해 튀어 오른 바닷물에 뺨을 얻어 맞고 있

고.

용오름의 소리가 시끄럽다 하더라도 강화된 우리의 육체에는 저들의 배 위 상황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저쪽의 악마도 우리를 발견했을 텐데 눈이 뒤집혀서 그런지 반응은 딱히 없었다. 다만 용오름이 더욱 더

거대해 졌을 뿐이지.

삼지창을 들고 수 십 갈래로 갈라지려는 용오름 속에서, 짧은 핫팬츠만 입은 까무잡잡한 미녀가 서 있는

것은 마치 19세용 게임 일러스트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것도 잠시, 소희가 내 옆에서 빛의

날개를 활짝 펼친다.

“일단, 우리끼리 싸워보고 안 되면 악마들 부르자.”

“괜찮겠어?”

“뭐... 카메라도 있겠다 유명세 타면 좋은 거 아니겠어?”

직업 의식인 건지, 아니면 용오름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으니 특종에 간이 부은 건지. 카메라맨이 용오

름에 휘날리는 제 머리카락도 주체 못하고 촬영을 계속 하고 있으며, 마이크를 든 남성 앵커는 바닷물에

화장이 번졌음에도 마이크를 이사벨라의 요트 쪽으로 들이 밀고 있었다.

방송에는 중계되고 있지 않는, 참신한 패드립을 한가득 담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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