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벤트
이 게임에는 완전한 무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레벨의 차이가 아무리 나도 정타로 맞으면 데미지가 있다.
데미지가 있다고 해 봤자 아파트 외벽에 초등학생이 딱밤을 때린 정도의 데미지? 그 정도야 용사나 마왕,
드래곤 같은 OP급 캐릭터들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데미지가 아니라면 어떨까.
예를 들면 저항력.
마법, 저주, 주술 등에 대하여 100% 저항하는 존재들이 있다. 반대로 물리력에 저항하는 녀석들도 있고.
레벨을 끝까지 올리고, 모든 아이템을 준비하여 최종 테크까지 완벽히 올린 유저조차 감히 대항할 수 없
는 괴물들. 다행히도 그런 괴물들은 쌍을 이루어 존재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데미지를 주지 않으면 된다고.
사악한 드래곤과 그를 무찌르는 용살자.
인류멸망을 꿈꾸는 마왕과 인류를 구원하는 용사.
무림과 황실을 노리는 천마와 대적하는 무림연합의 무인.
그런 괴물들은 유저가 백날 천날 이를 갈고 덤벼들어봐야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정도에서 끝난다. 살을
취하는 것도 말이 좋아서 살을 취한다 이러지, 심장을 주고 손톱을 취하는 수준의 딜 교환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니들끼리 싸워라. 나는 너희를 쓰러트리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누가 쓰러질지 결정하는 사
람이 되겠다. 이 게임을 하며 내가 취해온 방식이며, PVP 대회에서 딱 세명만 빼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방식이다.
체력 1%를 깎는 대신 상대방의 저항력을 깎아내리는 전투.
눈을 자주 깜빡이게 하는 저주, 눈꺼풀에 경련이 일어나는 저주, 눈물이 흐르는 저주, 눈이 매워지는 저
주, 시야가 흐려지는 저주, 눈물이 끈적하게 바뀌는 저주, 눈을 뜨기 힘들게 하는 저주. 눈을 노리는 수백
가지의 저주가 소희에게 쏟아진다.
“이 까짓 거!”
검을 한 번 휘두르면 절반의 마법진이 박살 나 사라지고, 소희가 인상을 찌푸리면 나머지 절반이 그녀의
자체적인 저항력에 혼자 파훼 된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수백개의 저주가 몇 초간 쏟아지며 아주 살짝, 아
주 살짝 그녀에게 파고들었으니까.
100%는 이내 99.99999999%가 된다.
“냐, 녀무햐거 아니냐교!”
혀가 마비된 상태로 울분에 차서 외치는 소희의 모습에 오늘 밤 어떻게 달래 줘야 할 지 고민을 하며 다시
마법을 불러온다. 마법진을 만드는 마법에 묶여서 저장된 수천개의 마법. 내 쪽으로 달려오는 소희에게
대사 저주를 건다.
종아리에 쥐가 나는 저주, 새끼발가락을 문턱에 찧는 저주, 발톱에 금이 가는 저주, 발목이 휘청이는 저
주. 균형감각이 사라지는 저주, 시야의 좌우 비율이 바뀌는 저주, 발을 내딛으면 계단에서 떨어지는 기분
이 드는 마법, 발 밑에 진흙 웅덩이가 생겨 양말이 젖는 저주.
99.99999999%는 99.99999998%이 된다. 8이 7로, 6으로 5로 조금씩 조금씩 깎여 내려간다.
변이까지 일으켜 평상시보다 강력하게 진화된 유저의 캐릭터가 전력으로 쏟아 부어도 고작해야 소숫점
열 자리 아래를 건드리는 처참한 전력의 차이. 하지만 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00%와 99.999가 싸우
면 100이 이기니까.
용사와 마왕의 싸움에서, 99가 될 것은 마왕이니까.
“누나, 5분 남았어!”
“하늘이 너! 잡히기만 해 봐! 이게 무슨 대련이야 괴롭힘 이지!”
오른쪽 양말이 빗물에 젖고, 왼쪽 바짓단이 진흙덩이에 붙은 상태로 흙먼지를 뒤집어쓴 소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새 저주 대부분을 떨쳐냈는지 멀쩡해진 발음으로 소리친 그녀가 달려든다.
나름 피까지 사용해서 전력으로 거는 저주인데, 고작해야 1분도 지속되지 않는 다니, 대체 이런 OP급 캐
릭터들은 무슨 생각을 만든 걸까. 그리고 저 OP 캐릭터도 이기는 세 명의 괴물들은 나랑 같은 사람이 맞
는 걸까.
사실 그 세사람도 NPC고 나는 PVP 승률이 100% 아닐까 하는 행복한 정신 승리를 해 본다.
“잡았, 어?!”
“누나, 누나한테 건 마법 말고 나한테 건 마법도 있지~”
후웅, 악에 받친 소희가 몸을 날려 나를 껴안지만, 당연히 그림자로 만든 분신. 먼지투성이가 되어 황무지
에 처박힌 소희가 바닥에 드러누워 허망하게 분신을 내려다보는 것과 동시에 울리는 알람 소리.
“한시간 끝~”
“아오... 거의 다 잡았는데.”
아슬아슬하지만 잡히지는 않았다. 수십m 치솟아 올라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궁궐도 보이지 않는 게 꽤
나 멀리까지 날아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소희가 점차 저주에 익숙해진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처음에는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해 직진조차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는데, 이제는 비행하는 나를 쫒아오
는 수준까지 되었다.
“정말 거의 다 잡긴 했으니까... 내일부터는 조금 난이도를 올릴 거야.”
“더 올릴 난이도가 있다고?!”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소희의 손목을 잡아 다시 허공에 지옥문을 열어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저주에 익숙해져 가니 이제는 축복을 섞을 생각인데, 왼발에 저주를 걸고 오른발에 축복을 걸어 이동의
밸런스를 망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무작정 때려 붓다 보면 용사의 신체는 저주라고 무조건 거부하
지 않고, 축복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 똑똑한 적응력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지난번에 그런 용사한테 당해봤었으니까.
오백 만원을 선불로 받고 판타지 버전 통일 제국을 이룩하려는 데이터에서 미치광이 용사가 튀어나와서
는, 성 하나를 덮어버릴 마법 폭격을 몸으로 흡수하더니 전부 이로운 효과로 바꿔버리는 것을 보았으니
까. 결국 판매용 데이터를 완성하기 직전 제국의 병력이 반 토막이 나서 거래가 미뤄졌었다.
“적응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때려 칠 수도 없고...”
“그치? 누나한테 다 도움이 된다니까~”
소희의 손목을 놓고 그 팔을 양 손으로 꾸욱 잡는다. 한 손으로는 팔을 얽히게 해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다른 손을 올려 그녀의 팔꿈치 쪽을 붙잡아 매달린다. 걷기에 불편한 자세지만 한창 성장중인 용사의 육
체가 고작 여리여리한 몸뚱어리 하나 견디지 못할 리 있나?
그대로 욕실로 그녀를 잡아서 이끈다.
집 안을 관리하는 로봇이 청소하고 준비해둔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욕조. 정화 마법으로 몸에 붙은 이물
질을 전부 제거했다 하더라도 온수에 들어가 근육을 풀어주는 행위는 소희도 나도 꽤나 선호하는 일이었
다.
샤워 대신 정화 마법으로 몸을 한 번 씻어낸 뒤 그대로 욕조에 들어간다. 발 끝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감
각. 일반인이라면 피부가 벌겋게 익어서 찬 물을 콸콸 넣어야 하겠지만, 피부 거죽이 질기다 못해 단단해
진 우리에게는 딱 좋은 정도였다.
“으, 살겠다... 거긴 다 좋은데 먼지가 너무 많아.”
“그래서 훈련 장소로 잡은 건데.”
바로 욕조에 들어간 나와 달리, 길어진 머리카락을 샤워기로 한 번 적시고 나서 그녀가 들어온다. 자연스
럽게 내 등 뒤쪽으로 들어온 그녀가 첨벙거리며 등 뒤에서 나를 껴안는다.
“그런데 네가 쓰는 저주들, 너무 소박한 것들 아니야? 그런 저주는 누가 만들었을까.”
육체는 지치지 않았겠지만 정신이 피곤할 테니, 포상의 의미로 소희의 손을 가만히 놔 둔 상태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내 손보다 조금 커다란 소희의 손이 내 어깨로 올라오더니 슬그머니 내 피부를 어루만진다.
“누가 만들었다, 같은 거창한 건 아니야. 자그마한 불행을 불러오는 저주에서 그 부분만 집어내서 만든
거지.”
물론 그 ‘누군가’는 하루 24시간중 20시간을 마법진 커스터마이징 모드를 플레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돈 받고 마법을 파는 수학자 출신 게임 폐인 아저씨지만. 그걸 말할 수 있을 리 있나. 그 아저씨한테는 참
신세를 많이 졌는데.
“마왕이라는 존재는 인류를 침략해서 정복, 군림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전부 죽여버리려고 오는 존재거
든. 그러니까 이런 악의성 짙은 저주를 계속 겪다 보면... 누나, 듣고는 있지?”
“응, 어? 응...”
“아휴, 정말.”
부드럽지만 든든한 손바닥이 슬금슬금 자리를 옮긴다.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와 뜨거운 물 속에서 내
물건을 부드럽게 잡아 쥔다. 뜨거운 물과 대비되어 시원하게 느껴지는 손아귀.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혈
액이 자동적으로 아래로 쏠린다.
“흐음... 누나아...”
슬그머니 등을 기대고 어깨 너머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욕조의 열기로 발갛게 달아오른 뺨, 욕망으
로 이글거리는 눈동자. 거센 숨결이 목덜미를 슬그머니 훑으며 사라진다. 그 뜨거운 눈동자 속에 담겨 있
는 감정의 일부는 분명히 승부욕과 정복욕이리라.
내가 남자가 되어서 여성에게 보호받고, 연약한 것 취급당하며 은연중에 나의 패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
는 소희의 모습에 가슴이 부글거렸던 것처럼, 그녀 또한 내게 닿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가슴 속 깊은 곳에
서 뜨거운 감정이 올라오고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얌전히 나의 몸을 가지고 노는 그녀에게 내 몸을 맡겼다.
기분 좀 풀어줘야겠는데.
[작품후기]
토론식 수업인데 교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마이크를 키면 음성이 멈추는 기적의 싸이버 강의.
토론(음소거)
진짜 대환장파티네요. 인터넷 유머글 보면 교양 수업으로 스포츠 댄스 신청했다가 노트북 앞에서 춤추게
생겼다는 사람도 있고. 마이크 켜진 줄 모르고 야쓰! 하는 소리 생방송 진행한 사람도 있고 교수 욕하다
걸린 사람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