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189)

새로운 이벤트

초능력은 범용성이 적다. 다만 끝까지 단련할 경우 단순 무식하면서도 미친 듯한 데미지 효율을 보여주

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속성을 다루는 초능력자들은 나중에 캐스팅 시간도 없이 고위급 마법이랑

비슷한 데미지의 화염, 얼음, 뇌전을 씀뿡씀뿡 쏟아내니까.

반대로 마법은 응용력 하나로 먹고 산다. 마법을 끝까지 올리면 데미지 효율은 무공이나 초능력에 밀리

지만 온갖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연금술, 육체 강화, 속성, 소환, 이동, 봉인부터 저주까지 목록을 나

열하자면 백과사전을 따로 편찬해야 할 수준으로.

그렇기 때문에 PVE가 아니라 멀티 모드의 PVP에서는 초능력자들은 별로 쓰는 사람이 없다.

“악적놈아, 황보의 도를 받아라!”

“어디 있는거냐! 나와서 싸워라!”

바로 지금 같은 상황 때문에.

SNS를 이용한 사기 계약으로 아주 약간의 생명력을 받는다. 아주 약간의 생명력은 아주 약간의 마력이

되어 그 마력으로 지반의 흙을 물로 바꾸고, 다시 내 몸을 안개로 변신시켜 진흙탕 속으로 파고든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할 수 없는 행위지만 SNS에서 천만 단위를 넘어 누적 방문객 억 단위를 찍어가는 나

는 가능한 이야기. 타인의 쥐꼬리만 한 생명력도 마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흡혈귀 종족의 더러운 필승 전

략이었다.

그 결과가 이것.

“으아아악! 나와라! 나오란 말이다!”

“이 더러운 악적놈아! 어디에 있는 거냐!”

쿵쿵, 질척한 진흙더미가 되어버린 지반에 강렬한 충격파가 쏟아져 오지만 내게 직접 닿지는 않는다. 다

양성을 전부 포기하는 대신 강력함을 추구하는 초능력자들 답게 맨주먹으로 땅을 내리 치면 지면 아래가

함몰되고 칼을 던지면 수십m 깊숙히 처박혀 나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만 그게 전부.

‘물 속에 안개가 있는데 뭘로 찾을 건데~’

남궁창룡인가 하는 히어로 말고 주변에서 뭔가 잔뜩 왔지만 그게 전부. 탐지계 히어로는 나를 공격하지

못하고, 공격계 히어로는 나를 탐지하지 못한다. 입을 열어 내가 어디에 있다고 말해 봐야 나는 자유롭게

헤엄치는 상태라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 자리를 벗어난다.

“나와! 나오라고!”

“개자식아 어디, 저 쪽이 무너진다! 저쪽이다!”

‘꼬우면 마법 배우시던가~ 말투 컨셉 무너지기 시작하네.’

기초 연금술을 통해 지면 아래의 흙을 물로 바꾸면서 거대한 지하 호수를 만드는 마법사를 초능력자가 무

슨 수로 잡을까. 이래서 잠수함이 등장했을 때 전쟁 판도가 바뀐 것이다.

더군다나 능력이 좀 높은 등급이다 싶으면 대부분 무림인 컨셉을 잡은 녀석들이라 육체와 무기를 강화하

고 순수한 에너지를 발사하는 게 전부. 지들 딴에는 기(氣)의 발출이다 뭐다 하면서 추켜 세우며 대단하

다고 자부심을 가졌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간만에 하는 인성질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쟤들 쪽에 마법사가 하나라도 끼어 있었더라면, 형태 변환을 금지시키는 마법진 하나만으로 나를 땅 속

에 생매장시킬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나는 안개화가 풀리고, 꼼작 없이 두더지 마냥 땅굴을 파고 기어 다

녀야 하겠지. 아니면 연금술을 방해하는 마법사가 있으면 건물이 가라앉지도 않겠지.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위에서 울부짖으며 고함치다, 결국 넓어져 가는 침몰 범위에서 벗어나는 중국측 히어로들의 원한 섞인

저주와 욕설을 감상하며 천천히 모든 건물을 지하 호수 안에 수몰시켰다. 수십 m 깊이의 진흙 속에 가라

앉은 폐허 도시가 손쉽게 완성된 것이다.

‘음... 좀 너무 까불었나.’

아마 내 SNS에 댓글을 단 사람들 중 천 명 정도는 오늘 몸살을 앓겠는데. 그러고보니 살인 멸구가 편하다

고 목격자를 죽이라 했는데, 내 맨 얼굴 본 남궁 뭐시기가 그대로 돌아갔네.

뭐, 대악마들 일처리 솜씨나 볼까?

남궁창룡인지 남궁청룡인지 뭔가 있었는데요.

“일처리가 참 빠르시네요.”

없었습니다.

“하하, 이게 내가 중국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아니겠는가.”

촬영을 마친 소희와, 지역 하나를 통째로 가라앉게 만든 나는 밤이 될 무렵 소희와 함께 돌아왔다. 이 쪽

으로 시선을 자꾸 보내오는 소희에게 덤벼오는 히어로는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자 슬그머니 어깨에 팔을

감아 오는 소희가 귀여워서 다시 꽁냥거리며 놀아볼까 했는데.

[속보 – 남궁창룡, 패배하여 사망하다!]

[영웅연합 – 황보혜미 실종!]

[협객일람 – 남궁희령,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 응급실로 이송 중 사망.]

내게 이름을 댄 히어로들의 부고 소식이 호텔 로비의 TV에서 속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몰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인부들과 로봇들뿐. 초능력자들은 가라앉는 건물 잔해를 디디고 뛰쳐

나가 안전한 곳으로 전원 대피했는데. 물론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살인을 꺼려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가 생각보다 넓어서 마나가 부족했을 뿐이지.

아무튼 그렇게 대충 보내 버린 히어로들이 전원 사라졌다. A급 히어로면 아이돌, 톱스타, 천만 배우 이상

의 취급을 받는데. 더군다나 가문 이름까지 지껄이던 녀석들인데 쓱싹 사라진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일

이 아닐 수 없다.

“뭐, 골치거리도 사라졌겠다, 연회를 즐기시게나! 자네들을 위해 음식 목록을 조금 조정했으니 걱정 말

고.”

“연회를 열거면 너희 ‘악식’ 애들은 데려오지 말아줄래?”

알콜 냄새가 훅 나는 커다란 잔을 들어 올리는 폭식과, 작은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는 김샛별의 모습을 보

니 할 말이 없었다. 김샛별은 되게 허당 같았는데 폭식은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흑막 보스 같아서 갭이 너

무 큰데.

악마들은 술잔을 마주치며 지들끼리 사업 협력 이야기를 시작하고 소희는 그때 그 구더기 치즈의 쇼크가

컸는지 오감을 집중하면서까지 음식을 살펴본다. 진지하게 음식을 탐색하는 소희를 내버려 두고 홀 내부

에서 게임 이벤트를 진행시켰다. 호텔 자체가 거대하고 다른 사람들도 없다 보니 밖에 나가지 않고 호텔

로비만 돌아다녀도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겠네.

중국 사자탈 모양의 잡몹을 잡아 SNS에 올리니 조회수와 마나가 차오르는게 느껴진다. 다른 때보다 격

렬한 반응에 슬쩍 살펴보니 중국어로 된 욕설들이 꽤나 많다. 대충 옆 지역에서 영웅이 죽는 슬픈 사건이

있는데 이런 하찮은 게임 포스팅이나 해야 하냐는 댓글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욕설과 패드립, 섹드립을 난무하며 도배하는 중국인들과, 중국인 하면 일단

싫어하는 한국인 게이머들이 댓글로 싸움이 붙는다. 번역기를 돌린 서양쪽 게이머는 오리엔탈리즘이니

뭐니 하며 감탄이나 하고 있고.

결국 저 도배된 댓글들도 내게 생명력을 조금씩 나눠주는 매개체가 되니 어그로가 끌리면 좋지. 신고를

먹고 삭제되더라도 그들이 좋아요, 댓글 입력 버튼을 꾹꾹 누른 사실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누나, 또 오리야?”

“어제 먹어보니까 맛있더라고.”

홀에서 벗어나 로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호텔 홀로 돌아오니, 소희가 북경 오리의 껍질을 육포처럼 씹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발라낸 살점을 전병에 얹어 쌈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는 소희에게 먹여주

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진다.

“뭘 봐요?”

“자네는 참 독특하군.”

어느새 다가온 폭식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죠.”

“나쁜 뜻은 아닐세. 살기를 거두어 주면 좋겠군. 도시 하나를 수 시간만에 붕괴시킨 남자가 저토록 가정

적이라는 것에 조금 놀랐을 뿐이야.”

소희가 슬그머니 테이블에서 일어나니, 폭식이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생각해보니 내가 피해자의 영혼을 흡수한 것은 지옥 마법의 일종이니 눈치를 챌 수밖에 없구나. 악마들

과 다르게 소희는 내가 사람은 하나도 죽이지 않고 건물만 무너트렸는데, 악마들이 사람을 전부 죽였다

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지면 아래로 빨려 들어가 죽었으니 아무리 예민한 용사의 감각이더라도 내게

서 살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까.

‘보호받는 기분, 나쁘지 않아.’

자연스럽게 테이블에서 일어나 두 악마들의 시선을 가리는 형태로 내 앞에 선 소희의 등이 그렇게 듬직할

수 없었다. 실제로 싸우면 이쪽의 승산이 더 높다는 점이 더욱 더 든든하고. 내가 도망 다니는 동안 소희

가 둘 중 한 명은 성검으로 확실히 썰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앓던 이가 빠진 홀가분한 마음에 조언을 하나 해 주려고 했을 뿐이네. 칠대 죄악이 무엇인지 알고 있겠

지?”

“그야 식탐이랑 교만, 나머지 다섯이... 나태, 분노, 시기, 색욕, 탐욕. 이렇게 다섯 아닌가?”

“나머지 다섯 중 분노를 조심하게나. 다른 악마들과 다르게 종잡을 수 없는 행위를 많이 하거든. 우리가

그대들에게 계약을 권유하고 일거리를 나누었다 해서 다른 악마 군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

다네. 특히 자네들은 빛의 기운을 은은하게 풍기고 있으니... 분노를 조심하게.”

“...충고 감사히 받죠.”

애매해진 분위기에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호텔 최상층으로 안내되었다.

“확실히 분노가 제일 위험할 것 같긴 해.”

“왜 그렇게 생각해?”

악마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다고 생각해서일까, 소희가 조금 날 선 반응을 보이기에 설명을 해야겠다.

“일단 들어와서 물어봐, 누나.”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거 아니지?”

베갯머리 송사로.

[작품후기]

주인공의 능력이 늘어나는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양판소식 기초 마법만 쓸거에요. 단지 사기 계

약으로 MP만 존나 늘려둔거죠.

12시 예약 연재를 걸고 3주만에 외출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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