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12화
287. 광기가 물들었다 (2).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나.
에밀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후로 요한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런 소문이 퍼지는 것이다.
“저번 파티 이후 자작님께서 몇 차례 파티에 참석하셨지요?”
“하긴 했지.”
초청을 받아서 가기도 했고 일 때문에 참가하기도 했다.
물론 그때의 파트너로는 바그너 영지에 있는 엘마를 데리고 갔었다.
“그런 것 때문에 더 그러더군 요.”
“나한테 물어보는 사람은 한 명 도 없었는데?”
“만약 소문이 진짜라면 괜히 자 작님께 시비를 거는 꼴이 되니까 요.”
“껍. 쓸데없는 짓을.”
요한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어쨌든 에밀리에 대해서는 알았 으니 됐다.
그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럼 필로틴 제국 쪽에 대해서 는 내가 알아보지. 도둑 길드와 연 을 맺게 될 일이 생기면 올게.”
“부디 무운이 있기를 빌겠습니 다.”
양유위와 헤어지고 요한은 로디 악 기사단으로 향했다.
그가 들어오자 대기하고 있던 기 사는 당황했다.
“어!? 요,요한 자작님!?”
“유령이라도 봤냐? 표정이 왜 그래?”
“어어…… 저기 요한 자작님.”
“너도 그 이상한 소문 때문에 그 런 거냐?”
현재 사교계에서 은밀히 퍼지는 소문.
에밀리와 요한의 사이가 틀어졌 다.
그것 때문에 로디악 기사단에서 도 꽤나 걱정하고 있었다.
“아닙니까?”
“아니고 자시고 우리는 애초에 사귄 적도 없다니까?”
요한은 한숨을 푹 내쉰 후 주변 을 둘러보았다.
몇몇 로디악 기사단원들이 걱정 하듯 요한을 보고 있었다.
“뭘 보냐? 구경났어?”
그가 한번 으르렁거리자 다들 획 고개를 돌려버렸다.
간단히 그들의 시선을 돌려버린 요한은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에밀리 어디 갔는데?”
“우리 부단장은 왜 찾는 것이 지?”
안쪽에서 나온 것은 노년의 기사였다.
미하엘 발렌타인.
로디악 기사단의 단장이며 로드 만 왕가에 충성을 다한 자.
예전에 치안통제국 일로 본 적이 있던 그가 나오자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 이거 오래간만입니다. 미 하엘 단장님.”
“그래.”
꽤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가 인 사를 받아주자 요한은 씩 웃었다.
“제가 에밀리를 찾는 것에 뭔가불만이라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불만이라기보다는 의문이 생기 는 것뿐이지. 이유가 없잖은가.”
“이유야 얼마든지 있죠. 오래간 만에 봤는데 인사차 찾아왔다. 뭐 이정도면 되는 것 아닙니까?”
미하엘은 요한을 빤히 쳐다보았 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를 마주하던 요한이 어깨를 으쓱이자 미하엘은 몸을 돌렸다.
“따라오게나.”
그를 따라 로디악 기사단의 안으 로 들어갔다.
안쪽에 있는 뜰을 지나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의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끄으으으……!!”
“세 번만 더!! 세 번 만 더!!”
“아까부터…… 으윽……!! 세 번 이라고……!!”
“자세를 바로 해야 횟수로 쳐주 지!!”
익스퍼트가 마스터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니,정확히 말하면 훈련하고 있었다.
“뭡니까? 저거.”
“보면 모르겠나? 나마스 왕자님 께서 에밀리를 훈련하는 것이지.”
“근육을 단련하는 거군요. 음. 제 대로 가르치고 있네.”
커다란 역기를 든 채 에밀리는 힘겹게 앉았다가 일어났다.
그것에 만족한 나마스는 가열하 게 외쳤다.
“자! 잘했다! 이제 세 번만 더!!”
“아오!!”
결국 열 번을 더 하고 나서야 에 밀리는 역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축 젖은 머리칼 위로 수건이 을 라갔다.
“삼분 쉬고 다시 훈련을…… 어?”
그제야 눈치를 챘다.
나마스는 미하엘 옆에 서 있는 요한을 보고 흠칫 놀랐다.
“오래간만입니다. 왕자님. 여기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그래.”
“어? 저를 피하시는 겁니까?”
나마스는 요한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도브다만 왕국에서의 일 때문이 었다.
악마에 씌었다는 자책감과 수치 가 그를 더욱 좀먹고 있었다.
“아니 저랑 왕자님이 서로 적대 관계도 아닌데. 뭘 그러십니까?”
“……그,그런 게 아니라…… 그 게.”
조금 전까지 에밀리를 쥐잡듯 잡 던 나마스의 모습은 없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 며 말했다.
“일단 지금은 트레이닝 중이니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에밀리. 더할수 있지?”
에밀리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수건 아래에 있는 그녀의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할수 있습니다.”
요한이 왔기 때문일까?
그녀는 의지를 불태웠다.
“야. 근육 예쁘다.”
“그…… 그건 고맙군.”
나마스가 정말 제대로 훈련을 시 키는 것처럼 보였다.
짧은 반바지 아래에 드러나 있는 에밀리의 다리는 역동적인 근육으 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리 오러로 강화한다고 하더 라도 육체의 단련이 안 되어 있으 면 한계가 있지.”
“동감한다.”
미하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유저나 익스퍼트에 오른 자 들은 너무 오러에 기댄다.
물론 오러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 하다.
하지만 결국 그 오러를 쓰는 것 은 육체다.
그 육체의 단련을 등한시해서 어 떻게 강해지겠다는 것인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마스 왕 자님은 참 대단하시지.”
그 이론을 실제로 몸으로 체득하 고,자신을 따르는 성철쇄 기사단 원에게 전부 같은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전원을 익스퍼트로 끌어 올리는 기염을 펼쳤다.
“육체와 오러가 균형을 이루며 성장해야 마스터에 오를 수 있는데. 요즘 젊은 기사들은 오러만 단련하 니…… 쯧. 나 때는 말이지……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애초에 요한은 근육 하나 없는 몸으로 마스터에 올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코어를 통한 막대 한 오러로 이룬 것.
그렇기에 미하엘의 이론을 무시 할 생각은 없었다.
“……요즘 젊은것들은 쉬운 길만 찾는단 말이야.”
“진심으로 동감합니다.”
“어?”
미하엘은 요한을 보았다.
그 시선에 요한은 의아해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내 이론은 요새는 구닥다 리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라…… 자네는 반발할 줄 알았는데?”
“저도 근육은 항상 옳다고 생각 합니다.”
요한은 상의를 벗었다.
드러난 그의 몸은 예전과 달리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을 본 미하엘은 크게 웃었 다.
“하하하!!”
곧바로 웃음을 멈춘 그도 빠르게 벗었다.
노인으로 보이는 그 역시 근육질 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순식간에 연무장이 서로의 근육 을 자랑하는 자리가 되었다.
“……뭐 하십니까?”
어느새 훈련을 마친 나마스와 에 밀리가 다가왔다.
서로를 보며 자세를 잡고,근육 에 관해 토론을 하던 둘은 바로 악 수했다.
“내가 자네를 오해했군.”
“전 전부터 미하엘 단장님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언제 같이 닭가슴살이나 하나씩 뜯으며 같이 운동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나? 아니지. 세금 때문에 온 것 아닌가? 그렇다고 단련을 멈출 수는 없을 테니. 로디악 기사단의 훈련장은 항상 열어두겠네.”
그러니 언제든지 와서 같이 훈련 하자.
좋은 운동 친구를 찾았다.
요한은 그와 잡은 손에 힘을 넣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하하! 요새 보기 드문 훌륭한친구로군.”
미하엘의 외침을 들은 에밀리는 어이없어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린놈이 시건방지기 그지없다고 하셔놓고?”
“내가 언제 그랬나? 자네는 가서 씻고 오게. 왕자님. 고생 많으셨습 니다.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저도 왕궁으로 가야 하니……“음…… 그러지. 요한. 나중에 또 보자.”
미하엘과 함께 나마스가 나가버 렸다.
연무장에 둘이 남게 되자 에밀리 는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세금 내러 수도에 왔다가…… 온 김에 좀 보고 가려고.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 냐?”
“기사 된 자가 단련을 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
에밀리는 수건과 짐을 챙겼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요 한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단련을 하기 위해서 아카데미 교관까지 찾아가?”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그게 중요해? 그리고 그거 잘못 하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거 알잖아?”
“알지……에밀리는 씁쓸함이 가득 담긴 어 조로 답했다.
그녀를 보던 요한은 피식 웃었 다.
“강해지고 싶은 것이라면 나를 찾아야 하지 않았냐? 대가만 지불 하면 책임지고 강해지게 해줄 수 있는데.”
율리아 영지에 와서 바그너 기사 단과 함께 훈련해도 된다.
아니면 바그너 영지에 가서 광약 이나 플로란스와 훈련해도 된다.
요한에게 요청한다면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것을 에밀리는 어려운 길을 골랐다.
“그건 곤란해.”
“뭐. 왕가의 호위 임무 때문에? 그건……“아니.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에밀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심을 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괴물이 되기 위한 훈 련을 하는 거야. 그런데 괴물에게 배울 수는 없지.”
“뭐?”
의아해하는 요한에게 에밀리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쓸어 만졌다.
“네가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어.”
바람이 불었다.
그녀의 젖은 머리가 흩날리고 있 었다.
에밀리는 들고 있던 가방을 뒤로 넘긴 채,요한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무슨 소리냐? 너 나 좋아하 냐?,’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 에밀 리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유O .»“하지만 괴물이 아닌 자가……괴물의 옆에 서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뭘까?”
에밀리는 쏙 몸을 돌리며 걸었 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 보던 요한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괴물이 되어야겠지.”
에밀리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 는 것은 전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 다.
하지만 이렇게 저돌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연애질할 여유가 없으니까……연애질이든 뭐든.
그것은 일단 마왕부터 쓰러트리 고 나서 해야 한다.
‘에휴. 자기가 하겠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그럼 난 헤르듀크 왕자님 부터 만나봐야겠군……지금은 아카데미가 방학 기간이 니 헤르듀크를 만나려면 왕궁으로 가야 했다.
요한은 그대로 로디악 기사단을 나왔다.
바깥에는 마차에 타고 있는 나마 스와 미하엘이 있었다.
“왕궁으로 가실 거면 저도 좀 같 이 가시죠.”
“음? 왕궁에는 왜?”
“헤르듀크 왕자님을 좀 만나야 해서……“자네가 왜?”
“허 참. 제 동생 선배님께 인사 드리러 가는 겁니다.”
핑계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프란츠가 아카데미 내에서 헤르 듀크의 파벌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프란츠의 형으로서 파벌 의 수장에게 인사를 가는 것.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바그너 후작가가 헤르듀크 왕자 님을 지원하는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마고 후작님께서는 그랬으면 하시지만.”
“그래?”
미하엘은 힐끔 나마스를 보았다.
그 시선 때문일까?
나마스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 다.
“내 눈치는 살피지 말고 그냥 할 말들 있으면 해라.”
“그럼 사양 않고 하죠. 미하엘 단장님. 근육량을 좀 늘리고 싶은 데 뭐가 좋습니까?”
“괜찮은 약이 있다던데……“약 말고. 역시 근육은 훈련을 통해 단련시켜야 하는 것 아니겠습 니까?”
“그렇지! 요새 젊은것들은 말이 지! 약이나 마법,오러의 도움만 받 으려고 해서 문제라니까!”
나마스가 허락하자 요한과 미하 엘은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듣던 나마스는 살며시 입 을 열었다.
“훈련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나도 하자. 일단 미하엘 단장. 난 하체보 다는 등 근육이 더……그렇게 궁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 서는 근육 단련법에 대한 열띤 토 론이 시작되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