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5화
215. 너 주려고 남겨놨다 (4).
로만 후작과의 영지전이 시작된 지도 한 달여가 지났다.
그사이 판세가 완전히 변해 있었 다.
처음에 예측된 것은 로만 후작의 승리였다.
하지만 성마 기사단의 패배.
그리고 이후 전면전에서의 패배.
이어지는 전투에서도 계속 패배 와 의미 없는 승리만을 기록할 뿐 이었다.
결국 로만 후작은 지속적으로 영 지를 잃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로만 후작이 전 병력을 끌어모아 둔 게이돈 영지의 직할령만을 남겨 두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전투만 남은 것이 다.
“내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되게 승냥이 같단 말이지.”
로만 후작이 계속 패배하자 그에 게 저항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중소 영 지의 영주는 투항을 했다.
마을에서는 월카스트 백작에게 세금을 내겠다 맹세했다.
포로로 잡힌 기사나 용병들 중에 항복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긍지를 유지하는 이 들은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안면 몰수한 것은 아니었다.
역부족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 까지 싸운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자신의 명예 와 충심을 증명하듯 스스로 자결까 지 했었다.
“공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 까?”
하인스가 묻자 요한은 퉁명스레 말했다.
“난 어떻게든 살려는 놈들이 좋 아. 긍지나 신념이 뭐가 중요하냐? 일단 살고 봐야지.”
투덜거리며 빵을 다 먹은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방을 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떨어진 곳.
크고 두꺼운 성벽을 자랑하는 게 이돈 성이었다.
“그나저나 저긴 어떻게 뚫으려 나.”
요한의 옆에 있던 하인스는 쓴웃 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지휘부에 서 요한의 회의 참가를 요청했었다.
"가시죠.”
“그래.”
“그래. 어째 안 부른다 했다.”
터덜터덜 걸어 지휘부에 들어가 자 꽤 많은 귀족들이 있었다.
“오! 요한!”
“어서 오게나!”
요한이 자리에 앉자 상석에 있던 마고 후작이 말했다.
"요한. 공성전이 너무 시간이 많 이 걸리는구나.”
“예.”
“로만 후작은 남은 병력을 게이 돈 성으로 모았다. 그곳에서 수성 전을 할 생각인 듯싶다.”
“그러겠죠. 그리고 계속 버티면 서 대기하다가 겨울이 오기를 바랄 겁니다.”
추운 겨울은 전투에 걸맞지 않다.
특히나 이런 식으로 바깥에 막사 를 꾸리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감기에 걸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 고,물자도 얼어붙어 쓰기 힘들다.
하지만 성을 방패로 싸우는 로만 후작군은 어떨까?
적어도 공성 측보다는 좀 더 유 리한 환경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방법이 없나?”
마고 후작의 질문에 요한은 볼을 긁적거렸다.
방법?
방법이야 있었다.
‘타로트가 썼던 방법을 써도 괜 잖긴 하지만……회귀 전 로만 후작은 마지막 전 투 때 게이돈 성을 방패로 싸웠었 다.
게이돈 성의 막강한 방어력 때문 에 타로트도 꽤나 골치를 썩였었다.
그때 해결했던 것이 바로 하수구 를 이용한 침투였다.
게이돈 성의 오물과 하수는 대부 분 해자로 흘러가고 있다.
그 말은 성에서 나오는 하수구를 통하면 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 야기다.
“하수구를 통한 공략은 어떻습니 까?”
요한이 제안하자 헤위안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그것에 대해서 말이 나왔었지. 밤에 내 부하들 몇몇이 그곳을 통해 들어가 봤지.”
“그래서요?”
“반도 가지 못하고 복귀했다네.”
커다란 성에서 내뱉는 하수는 독 이나 다름없다.
그런 독을 헤치고 올라간다는 것 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화를 하며 올라가면 되지 않 습니까.”
"해도 문제라네. 자. 성에 들어갔 다고 치세. 그럼 그다음은?”
저 두꺼운 성문 근처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 지 남아 있는 기사들도 다수 포진 되어 있었다.
“또 카일로도 성벽에 모습을 보 이고 있으니……정말 목숨을 걸고 들어가야 한다 는 이야기였다.
헤위안 자작의 설명이 끝나자 윌 카스트 백작은 요한에게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겠니?”
“음…… 그 외에는 그냥 정석적 인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요한도 침투 외에는 마땅한 방법 이 없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자 마고 후 작은 천천히 말했다.
“요한. 성문을 열 수 있겠나?”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하수 구를 거슬러 올라가라. 뭐 그런 말 씀이 십니까?”
“그래.”
마고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 른 귀족들은 난감해했다.
“마고 후작님. 아무리 그래도"•… 요한 공자도 귀족입니다. 귀족이 어 찌 저런 곳에 들어갈 수 있단 말입 니까.”
헤오만 백작이 손사래를 치며 말 리려 했다.
하지만 마고 후작은 뜻을 바꾸지 않았다.
“가능하나?”
“흠…… 한번 해보죠.”
“요한!”
윌카스트 백작은 다급히 요한을 불렀다.
더러운 것은 둘째치고 성에 잠입 하는 것이다.
그런 위험한 길을 그가 선택한 것이 월카스트 백작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요한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만한 다른 녀석들을 좀 찾아 보겠습니다.”
막사에서 나온 요한은 바로 광약 에게 향했다.
홀로 훈련을 하던 광약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은 하인스였다.
하인스도 마찬가지로 순순히 받 아들였다.
플로란스에게도 제안한 요한은 치유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계속된 공성전 때문에 부상을 입 은 병사들은 많았다.
그들 역시 귀족들의 소중한 재 산.
다친 이들 중에 치료할 수 있는 이들은 최대한 치료하는 것이 나았 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치유소에서 야스진은 다른 치유사들과 함께 있 었다.
“야!! 야스진! 이리 와봐!!”
그의 부름을 받은 야스진은 으스 대며 일어났다.
요한은 현재 반 로만 후작군에서 중심에 있는 자였다.
홀로 세운 공이 대단한 자.
그런 요한의 수족처럼 활동하는 야스진을 치유사들은 꽤나 부러워 하고 있었다.
그들의 선망의 시선을 받으며 야 스진은 요한에게 달려갔다.
“부르셨습니까!”
“응. 불렀어. 야. 일 하나만 하자!”
“하하하!! 당연히 해야지요! 법니 까!?”
“저기 들어가자.”
“……예?”
요한이 가리킨 곳을 본 야스진은 식은땀을 홀렸다.
그가 가리키는 곳.
바로 게이돈 성이었다.
지금 며칠째 공략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난공불락의 성.
“저기. 공자님. 혹시 저 성도 검 은 요새처럼 비밀통로가 있는 겁니 까?”
“없어. 그딴 거.”
"그럼 어떻게 갑니까?”
“하수구를 통해야지. 가는 도중 에 계속 정화해야 해.”
“어…… 그거 위험한 일은…… 아 니겠지요?”
그래도 요한이 함께 가는 곳일 터.
야스진은 일말의 기대를 걸며 말 했다.
하지만 그는 냉정히 대답했다.
“에이. 설마. 엄청 위험하지.”
야스진은 차마 하지 못한다는 말 은 꺼내지 못했다.
울상을 지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요한은 씩 웃었다.
“이번 일 잘하면 너 진짜 대박 나는 거야. 알지? 로만 후작 토벌 끝나면 내가 너 추천장 써준다니 까.”
"끄으응……“거기에 마고 후작님이랑…… 그 래. 기분이다! 이번 토벌대에 참가 한 귀족들에게서 추천장 서명 받아 줄게.”
“추천장에 서명은 하나만 있어도 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 모 르냐? 아무튼 꼭 와라. 알았지?”
야스진의 어깨를 더욱 강하게 두 들겨 준 요한은 웃으며 돌아갔다.
* * *밤이 되자 요한의 막사로 이번 작전에 참여할 이들이 들어왔다.
광약,플로란스,하인스.
그리고 울상을 짓고 있는 야스 진.
요한까지 포함하면 총 다섯 명이 었다.
‘이 정도면 애매하기는 하지만…… 못 하지는 않겠군.’
회귀 전에는 요한과 다키스트, 그리고 레인저 열 명과 치유사 한 명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수가 조금 모자라 기는 했다.
하지만 질은 훨씬 좋으니 충분히 할만하다고 요한은 생각했다.
“제가 이 작전에 함께해도 될 지……치유사인 야스진을 제외하고 실 력이 제일 떨어지는 것은 하인스다.
그가 떨떠름히 말하자 요한은 웃 었다.
“괜찮아.”
“차라리 레드바가 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생각해보기는 했는데. 이쪽에 첩자가 없다는 보장도 할 수 없거든.”
만약 첩자가 갑자기 날뛰며 지휘 관들을 공격한다면?
만에 하나 마고 후작이나 월카스 트 백작이 공격당하면 골치 아프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마스터 는 한 명 남는 것이 나았다.
“그럼…… 자자. 장비들 착용해.”
요한은 마법 장비들을 내밀었다.
성마 기사단원들을 쓰러트리고얻은 건틀릿이나 팔찌였다.
“하루에 한 번 클리어 마법을 쓸 수 있는 장비야. 하수구에서 빠져 나오면 바로 쓰라고.”
“하수구를 통과하는 동안은 어떻 게 합니까?”
“그건 여기 야스진이 힘들 때마 다 정화할 거야. 그 외에는 최대한 숨 참고 버티면서 가자고.”
요한은 야스진을 당겨 잡았다.
울상을 짓고 있던 그가 고개를 숙이자 요한은 상냥히 말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야스진을 어떻게 잘 끌고 다닐 수 있느냐지.”
“하아…… 자,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가자.”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최대한 빠르게 하수구를 통해 잠 입.
그리고 성문을 열고 도개교를 내 린다.
그 후 아군이 들어 올 때까지 시 간을 번다.
“이번에는 석상도 제대로 못 쓸 거야. 야스진도 있는 데다가 그쪽에 익스퍼트들이 확 깔렸을 테니까. 거 기에 성마 기사단도 있을 것이고.”
“카일로는 없습니까?”
광약이 검을 잡으며 말하자 요한 은 웃었다.
“아마도? 우리가 침투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공격이 시작될 테니 까…… 그곳에 가 있을 거야. 그 자식 상대할 틈 없어.”
“그렇습니까……“그래. 자. 작전에 대해서 뭐 질 문 있는 사람.”
딱히 복잡한 작전도 아닌 만큼 질문거리도 없었다.
다들 쉽게 납득하자 요한은 주머 니를 들었다.
“이게 뭡니까?”
하인스와 야스진이 의아해하자 요한은 주머니를 열었다.
안에 있는 것은 특이하게 생긴 가면이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간단한 방독면이야. 착용법은……“허…… 이건 또 언제 만드셨습 니까?”
"노는 동안 틈 봐서 만들었지. 헤갈이랑 아단이 고생했으니까 나 중에 가서 고맙다고 해라.”
요한이 시범을 보여주자 다들 한 번씩 착용해보았다.
꽤나 불편하고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이게 있으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쓰던 수준은 아 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요한은 간이 방독면을 툭 치며 말했다.
"자. 그럼 가보자고.”
* * *밖으로 나가니 야간전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야간 공성전을 지휘하게 된 메이 는 요한에게 다가갔다.
“공자님. 준비되셨습니까?”
“응. 됐어. 우리가 신호 알릴 때 까지는 좀 버텨줘야 하는데. 할 수 있겠지?”
“하하. 맡겨주십시오. 공자님께서 신호를 알리시면 바로 윌카스트 백 작님께서 출진하실 겁니다.”
“좋아. 그럼 시작하지.”
요한이 준비가 됐다는 것을 알리 자 마고 후작은 검을 들었다.
“로드만 왕가를 능멸하고! 귀족의 질서를 무너트리려 하는 로만 후작 을 쳐!! 정의를 바로 세우리라!!”
말은 잘한다.
이번 영지전은 결국 귀족끼리의 이권 다툼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정의니 대의니 떠들다니.
하지만 이런 말이라도 해줘야 나 름대로 명분이 생긴다.
요한은 팔짱을 낀 채 얌전히 상 황을 지켜보았다.
“와아아아!!”
메이가 지휘하는 군이 성벽을 향 해 달려갔다.
사다리와 공성차가 달라붙으려 하자 성벽에서 화살과 마법이 쏘아 졌다.
그것을 본 요한은 차분히 말했 다.
"가자.”
어둠과 소란을 틈타 해자로 내려 가자 야스진은 울상을 지었다.
“윽…… 냄새.”
“야. 귀족인 나도 버티는데 네가 그러면 어떻게 하냐.”
“하인스 단장님은 거의 쓰러질 것 같으십니다.”
“후각은 금방 마비되니까 참아.”
해자를 거슬러 사람 하나가 간신 히 들어갈 법한 동굴을 발견했다.
그곳을 확인한 요한은 입을 열었 다.
“야스진. 시작해.”
“바론님이시여. 더러움을 지워주 소서.”
정화가 시작되자 악취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요한은 방독면을 착용하며 말했 다.
“하수구를 통해 나가면 바로 싸 울 거다. 각오들 해둬.”
무덤덤하게 말한 요한은 아무렇 지 않게 오물이 홀러나오는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