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화
201. 증거 있냐 (2).
[그래서?]
“그,그래서……수정구를 앞에 둔 로이스 자작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대곡창지대 네 곳의 농사가 완전 히 망해버렸다는 것을.
물론 모든 작물이 완전히 말라버 린 것은 아니 었다.
하지만 원래 예상했던 수확량의 삼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로만 후작에게서 게이돈 영지의 안전과 운영을 맡은 로이스 자작이 다.
그렇기에 그는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죽여…… 주십시오.”
목숨으로 사죄를 할 수밖에 없 다.
그가 고개를 떨어트리자 수정구 너머의 로만 후작은 곰곰이 생각했 다.
[이틀 후 복귀 예정이다.]“예.”
[성마 기사단. 그리고 전 대기 병 력에 전투 준비를 시켜 놓도록.]“예?”
로이스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수정구 너머의 로만 후작 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복귀하는 즉시 전쟁에 참여했던 병력과 함께 그대로 영지전을 시작 하겠다.]“하,하지만!”
[번복은 없다. 이상. 헤본은 준비를 해놓도록.]
이제 추수철이다.
추수철에 영지전을 펼치는 이들 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당장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추수철이 되면 수확물을 노리고 몬스터들이 영지로 침범한다.
대부분의 영지에서는 그 토벌을 하느라 병력을 쓴다.
그런데 지금 영지전을 펼친다니.
로만 후작을 따르는 다른 귀족들 의 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작님!”
로이스는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통신 마법은 끊어져 있었다.
결국 그는 신음할 수밖에 없었 다.
그의 옆에 서 있던 헤본 남작은 조심스레 말했다.
“어쩌면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 도 있습니다.”
“뭐?”
“지금 같은 시기에 병력을 빼기 힘든 것은 저희뿐만이 아닙니다.”
마고 후작.
그리고 윌카스트 백작과 연합하 고 있는 다른 귀족들 역시 마찬가 지다.
"아니 그래도.”
“꽤 많은 귀족들이 후작님께 충성 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이번 영지전은 단순히 백작가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윌카스트 백작을 창으로 삼고 있 는 마고 후작과 싸우는 것이다.
즉 이기기만 한다면?
마고 후작까지 쳐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명실상부한 로드만왕국 최강의 귀족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이 모자라지 않겠 나!”
“그 식량은 후작님을 따르기로 한 자들에게서 받아내면 됩니다.”
원래라면 전쟁에 기사와 병력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추수철에 영지전을 펼치 게 된다면 기사와 병사를 보낼 수 없다.
그러니 그 대신 식량을 보내라.
로만 후작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잠깐만. 그럼•"…“마고 후작과 월카스트 백작. 그 리고 발칙하게 그들을 따르는 중소 귀족들. 그들 역시 추수 준비 때문 에 정신이 없을 겁니다.”
즉 그들도 병력을 함부로 빼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이게 더 좋은 수 일지도 모릅니다.”
마고 후작이 보낼 타이론 기사단.
그리고 그의 병력 몇천 정도는 바그너 백작가에 합류할거다.
하지만 다른 귀족들도 병력을 보 낼 수 있을까?
헤본은 기껏해야 적들의 병략이 일만 정도라고 생각했다.
“전면전,그리고 단기 결전으로 간다면 저희가 유리합니다.”
단기 결전에 능한 펠론 백작은 없다.
하지만 로만 후작에게는 로이스 를 비롯한 다른 마스터가 남아 있 었다.
거기에 천하십강 천왕 카일로도 있지 않은가.
물론 헤고만 공국과 전쟁을 하느 라 그들의 피로가 쌓였을 것이다.
하나 적 중에서 신경 쓸 마스터 는 요한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이 있긴 합니 다.”
“뭔가?”
“캐슬 오브 로디악에서 들어 온 소문 때문입니다. 요한이 흑왕을 죽였다는 이야기가……그 소문은 로이스도 들었다.
하지만 로이스는 그것이 요한의 실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백왕이 그를 도왔기 때문에 흑왕을 잡은 것 아닌가.”
“그 백왕이 만약 영지전에 참가 한다면?”
헤본 남작은 만약의 가능성을 제 시했다.
물론 극히 낮은 가능성이다.
백왕 플로란스는 타인과 쉽게 관 계하지 않는다.
도브다만 왕국에도 아주 가끔 힘 을 빌려주는 정도.
그 외에는 나서지 않는다.
“플로란스가 나설 일은 없겠지. 하지만 나선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천왕이 있다.”
“만약의 경우이지만 광약이 나설 수도 있습니다.”
“광약이?”
“예. 어쩌면 요한은 소드 댄싱의 전승자일지도 모릅니다.”
광약은 떠돌이다.
오로지 강해지기 위해 싸우는 승 부사.
그런 그가 제자를 받았다는 생각 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요한이 쓰는 검술은 소드 댄싱이 라는 광약의 특별한 검술이었다.
그것으로 율경을 쓰러트린 이상.
어쩌면 그가 요한을 도울 가능성 도 있었다.
“광약의 소재를 찾아봐라. 정보 길드에 문의해 봐.”
“정보 길드,그리고 도둑 길드에 문의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광약은 요한의 절맥을 치료하기 위해 한번 로드만 왕국에 온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합니 다.”
헤본 남작의 설명에 로이스는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준비를 해둬야 겠군. 광약도 요한을 돕는다는 가 정은……. 일단 해둬.”
투왕 광약.
백왕 플로란스그리고 마스터 요한.
나머지는?
바그너 기사단이라고 해 봐야 떨 거지들에 불과했다.
마고 후작의 타이론 기사단이 숙 련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성마 기사단을 당 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펠론 백작님을 따르던 기사들도 이번에 성마 기사단에 합 류했다.”
그 외에도 요한을 치고 싶어 하 는 이들은 많다.
그들을 전부 끌어모은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었다.
“어차피 저희 농사는 망했습니 다. 그러니 관리 병력까지 최대한 뺀다면……그러기 위해서는 로만 후작이 복 귀할 때까지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토벌해놔야 한다.
그리고 피해를 입지않은 영지에 특별세를 도입하여 많은 자금을 비 축해놔야한다.
로만 후작이 해놓으라는 준비가 무엇인지 로이스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몬스터 토벌은 내가 직접 나서 지. 그리고 헤본.”
“예.”
“타고다 상단과 다른 상단에 연 락하여 식랑올 최대한 많이 구매하 도록. 그리고 도둑 길드에 문의해 서 바그너 영지의 정보를 최대한 받아내고.”
저번에 첩자들이 깡그리 청소가 된 이후.
바그너 영지에 첩자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곳의 정보를 얻어내 려면 도둑 길드를 통할 수밖에 없 었다.
“알겠습니다.”
로이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번 일의 흉수는 발견하지 못했나?”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다 만……“다만?”
“모험가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작물이 이렇게 말라붙은 것이…… 드라이어드의 양분 흡수와 흡사하 다고.”
“……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로이스는 입을 쩍 벌렸다.
* * *바그너 저택의 안뜰.
요한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명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래에서 파룬은 힘 겹게 팔굽혀펴기를 했다.
“끄…… 어어억…… 배…… 백.”
요한을 등에 올리고 백 개째의 팔굽혀펴기를 마친 파룬이 축 늘어 졌다.
그의 위에서 일어난 요한은 차분 히 말했다.
"훌륭하네. 야. 어떠냐? 기구들 은?”
“후우우우••… 좋긴 좋다. 저거…•-요한이 헤이로나에게 의뢰해 만 든 운동장비들.
그것들의 효율은 꽤나 좋았다.
파룬도 여름부터는 그 장비들을 활용하며 훈련을 했다.
“이제 한 일 년 다 돼가나?”
“ -O 9 으O•”
"훌륭하다.”
요한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 생각은 요한만 하는 것이 아 니었다.
“대단하십니다! 도련님!”
헬리안은 두 손을 모으며 눈을 반짝였다.
지금 파룬과 작년의 파룬을 본다 면 누구라도 놀랄 것이다.
너무 살이 쪄서 걷기도 힘들어 보이던 파룬이었다.
그런 파룬의 배에 복근이 드러났 다.
아니 그뿐인가?
움직일 때마다 출렁이던 살은 거 의 찾아볼 수 없었다.
“요한. 고마워.”
“돈값 하는 거지.”
“아니. 그게…… 늘어진 살들도 네가 준 약을 꾸준히 먹어서 그런 지 많이 사라졌어.”
“그러라고 만들어 줬는데 줄어들 어야지. 자. 그럼 시작해볼까?”
요한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가 펴자 파룬은 움찔했다.
살이 많이 빠지면서 자신감이 넘 쳐나게 된 파룬이다.
그 때문인지 요새는 타고다 가문 에 정혼서나 친서도 자주 오고 있 었다.
얼마 전에는 일반 기사와 대무에 서 이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는 요 한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 었다.
옛날에는 암시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이것이 그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한다.”
가슴에 손을 올린 요한은 오러를 퍼부었다.
그 충격에 튕겨 나간 파룬은 가 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끄어억…… 그억.”
“어때? 버틸만하냐?”
게이돈 영지에서 테러를 마치고 복귀한 이후.
요한은 때가 됐다며 매일 몇번씩 파룬의 심장에 오러를 퍼부었다.
그리고 드디어.
“으…… 응!!”
파룬은 자신의 심장에 있던 오러 가 요한의 오러를 밀어내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오러가 활성 화가 된 것이다.
“돼,됐다!! 됐다!!”
파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가 발을 구르며 기뻐하자 헬리 안은 눈물까지 흘리며 달렸다.
둘이 끌어안고 좋아하자 요한은 피식 웃었다.
“고생한 건 난데 왜 둘이 끌어안 고 좋아하냐?”
“어,어어어H 그래! 요한! 고마 워! 고마워!!”
“유저가 됐으니 제대로된 검술만익히면 입학시험 정도는 쉽게 통과 할수있을 거야.”
그 말은 파룬이 아카데미에 갈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고.
또 헬리안이 칼리안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헬리안은 왈칵 눈물을 쏟아버렸 다.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파룬이 달 래는 사이 요한은 주섬주섬 정리를 시작했다.
“야. 이제 볼일 다 봤으니까 너 희도 집에 가라.”
“어......어?”
파룬과 헬리안은 눈물과 콧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돌렸다.
당황한 그들에게 요한은 심드렁 한 태도를 보였다.
“검술은 타고다 상단의 것을 배 워. 너희 가문에도 뭔가 있을 거 아냐.”
“요한? 왜 그렇게 냉정히……“계약은 끝났잖아. 살 빠지게 해 줬고 유저 만들어 줬어. 설마 소드 댄싱까지 가르쳐 달라는 건 아니겠 지?”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저번에 본가에 들렀을 때 가문의 검술서를 받았다.
따로 요한에게 검술까지 배울 염 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떠나는 것은 아니 라고 생각되었다.
"아,아니 그래도……“이제 곧 영지전 있을 거다.”
"영지전이라니!? 무,무슨? 로, 로,로만 후,후작과!?”
“그럼 누구랑 싸우겠냐. 헬리안. 타고다 가문에서 얘기 없었어?”
있었다.
영지전이 벌어지기 전에 복귀하 라는 이야기였다.
헬리안이 우물쭈물거리자 그녀를 본 파룬은 대충 눈치를 챘다.
하지만 파룬은 차마 간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요한. 난…… 난 널 친구…… 는 아니더라도. 은인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심드렁한 태도에도 파룬은 밀리 지 않았다.
전이었다면 주눅이 들었을 것이 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을 구원해 준 사람.
그렇기에 말할 수 있었다.
“타고다 가문의 후계자로서. 난 바그너 백작가를 지지할게.”
“네가 뭘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 지만. 뭐 알아서 해라.”
굳이 지지해준다는데 뭐라고 하 겠나.
요한은 대충 손사래를 치며 돌아 가 버렸다.
그대로 뒤뜰에 남은 채.
파룬은 입술을 깨물었다.
“헬리안. 아버지께 연락해야겠어.”
“도,도련님. 설마……“……타고다 자작가도 전쟁에 참 여한다.”
그는 눈을 빛내며 위풍 당당히 저택 바깥으로 걸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