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4화
139. 오래된 자 (3).
귀족원장 자리가 가지는 명예, 그리고 연금과 더불어 권력까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이득 인 자리였다.
당연히 다른 원로들도 원장 자리 를 노린다.
“귀족원장 자리는 선출직이지요. 다른 귀족들에게도 추대되어야 하 니……“마고 후작과는 이야기가 됐어.
거기에 자네가 로만 후작까지 이긴 다면.”
바그너 백작가와 타이론 후작가.
두 거대한 가문의 지지를 받는다 면 다음 대 원장 자리도 예만이 차 지할 수 있었다.
“제가 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 십니까?”
“내가 귀족원장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 나?”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겠죠.”
‘이 사람은 로만 후작이 사령관 이 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었다.
성향은 둘째치고 눈만은 인정할 만 해/가진 욕심이 크긴 하지만 그것만 큼은 인정할 만했다.
요한이 대답하자 예만은 그를 빤 히 바라보았다.
“틀렸습니까?”
"제대로 맞췄네. 내가 보기에 로 만 후작은 기회를 노리는 승냥이야. 그렇지만 자네는……천천히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 예 만은 의아해했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단 말이 지…… 아주 거대한. 뭐랄까. 하늘 까지 치솟은 거대한 나무 같단 말 야.”
“그렇습니까?”
“그래. 고작해야 승냥이 따위가 자네를 이길 것 같지는 않아. 그러 니 나는 자네에게 걸겠네.”
이것은 예만의 거래 요청이다.
그를 마주하던 요한은 예만 후작 이 내민 손을 잡았다.
요한은 권력 따위에는 관심 없었 다.
어차피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권 력이든 뭐든 의미가 없을 테니 말 이다.
마왕 등장의 전조가 하나 둘 씩 시작될 때면 지금의 권력구조는 크 게 틀어지게 될 것이다.
‘그때는 알아서 길 테니…… 지 금은 웃으라고 해두지.’
“예만 원장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별말을 다 하네.”
웃으며 손을 놓아 준 예만은 주 위를 두리번거린 후 작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손을 잡은 거…… 자네에게 개인적인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될까? 물론 대가는 지 불하지.”
이건 예상 외의 말이다.
요한이 의아해하자 예만은 차분 히 말했다.
“얼마 전 우리 가문의 저택에 도 둑이 들었네.”
“도둑맞은 물건을 찾는 일은 다 른 사람에게 맡기시지요. 그건 제 전공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도둑질한 놈은 잡았어.”
"그래서요?”
"문제는 그 도둑은 의뢰를 받고 간 거란 말이지.”
“의뢰요? 누구의?”
“백왕 플로란스. 그녀의 의뢰를 받은 도둑이 내가 연구하던 자료들 을 건드렸지.”
연구하던 자료라는 말과 플로란 스의 이름.
두가지를 들은 요한은 아까 헤이 로나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잠깐만. 혹시 하시던 연구 가 오래된 자에 관한 연구입니까?”
“그걸 어찌 알았나? 사실 생명연 장의 비법을 좀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걸 훔쳐갔지 뭔가.”
요한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 다.”
설명을 요구하는 요한을 예만은 원장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화려한 귀족원장의 방에서 예만 은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만 원장의 가문이 관리하는 톨 기스 영지에 도둑이 들어다.
그런데 도둑은 돈 되는 물건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 대신 가져간 것은 오래된 자 의 자료들뿐.
다행히 영지를 빠져나가기 전 도 둑을 잡았고,심문을 통해 의뢰자 도 알아냈다.
차분히 사정을 설명한 예만은 차 를 홀짝거리며 떨떠름히 말했다.
“천하십강인 것은 두렵지 않은 데…… 타국의 사람이다 보니 추궁 하기가 난감하더군.”
“그건 그냥 도브다만 왕국에 요 청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 사람아.”
예만은 시큰둥하게 대답한 요한 을 달랬다.
"그저 하찮은 도둑에게서 다른 나라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고 어찌 추궁하겠나.”
"로드만 왕국의 백성 이름이 나 왔다면 바로 잡아들이셨을 거면 서……“이런 것이 바로 외교적 절차라 는 거네.”
“그냥 얘기하시죠. 천하십강이 무서워서 손 못 대시겠다고.”
“어허!! 나 예만 톨기스가 고작 천하십강 따위가 무서워서 이러는 줄 아나!?”
누가봐도 천하십강의 이름이 두 려 워보였다.
하지만 그는 딱 잘라 부정한 후 후 당당히 말했다.
그 대답에 요한은 어깨를 으쏙였 다.
“그럼 그렇다고 치고……"그렇다고 치고가 아니라 진짜로 그런 거네.”
다른 이들이라면 대부분 천하십 강과 관여되는 것을 꺼려 할 것이 다.
하지만 요한은 실제 천하십강인 율경과 싸웠다.
그런 만큼 그는 플로란스와 적대 관계가 되더라도 무섭지 않을 것이 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예만은 요한 에게 요청했다.
“아무튼. 할 수 있나?”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요한이 천하십강이라고 해서 두 려워 할리 없었으니 말이다.
‘마침 잘 됐군. 헤이로나를 통한 다면 플로란스와 접촉할 수 있을 테니까.’
이것을 빌미로 플로란스와 이야 기를 나눌 수 있다.
만약 헤이로나가 끝까지 거절한 다면?
그럼 예만의 일을 들먹이며 공식 적으로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되면 플로란스도 쉽게 빠져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요한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 보수 이야기로 넘어가죠. 뭘 주실 겁니까?”
“내 오래전에 구한 물건이 있지.
자네 혹시 요정의 관이라고 아나?”
“어? 그거 갖고 계십니까?”
“그렇다네.”
‘이야. 그 귀한 걸 예만이 가지고 있었단 말야??’
요정의 관은 요정의 숲에 들어가 기 위한 필수적인 물건이었다.
그것을 쉽게 얻게 되었으니 요한 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도 당 연했다.
‘요정의 관 구하러 헤고만 공국 에 갔어야 했는데. 잘됐다. 시간 벌 었군.’
“지금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게나.”
그는 금고에서 작은 관을 하나 꺼냈다.
푸른 보석이 세 개 박혀 있는 관 을 본 요한은 또다시 감탄했다.
“세 명 들어갈 수 있는 것이군 요.”
"그래. 자네가 원하는 사람 두 명은 알아서 데리고 가게나.”
의뢰뿐만 아니라 보상도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 다.
“좋습니다. 플로란스에 대한 일 은 제가 맡지요.”
“그거 고맙군. 혹시 이 일로 도 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하게나.”
“예.”
“그래서? 도브다만 왕국에는 언 제 갈 생각인가?”
지금 플로란스가 있는 곳은 도브 다만 왕국의 검은 숲이다.
그곳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거 부하며 현자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일단은 다른 왕국으로 가야 하는 것이니 출입신청 정도는 해줄 용의 가 있었다.
예만이 묻자 요한은 고개를 저었 다.
“굳이 갈 필요는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은 방문을 잡았다.
“플로란스가 직접 예만 원장님을 찾아와 사죄하게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천하십강이 자신의 앞에서 무릎 을 꿇고 사과한다.
그것만으로도 예만의 명성은 크 게 높아진다.
또한 자신을 견제하는 이들에게 경고할 수도 있었다.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요 정의 관 따위는 예만에게 큰 의미 가 없었다.
“그 정도면 통신 마법을 통한 대 화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겁 니다.”
무덤덤하게 대답한 요한은 방을 나섰다.
그가 나오길 기다리던 마고 후작 은 웃으며 물었다.
“예만 원장과 무슨 이야기를 나 누었냐?”
"손잡자더군요.”
“하. 그 늙은 여우가. 로만 후작 을 쓰러트리면 자기를 지지해달라 는 거겠지."
마고 후작이 투덜거리자 옆에 서 있던 윌카스트 백작은 쓰게 웃었다.
"하지만 도움은 될 겁니다. 적어 도 그자는 자신에게 힘이 되는 자 는 절대 적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예만 원장 은 로만 후작을 싫어합니다.”
요한까지 덧붙이자 마고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어쨌든 예만이 원장 으로 있는 한 귀족원은 우리 편을 들 거야.”
마고 후작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요한은 피식 웃었다.
“좀 여유가 생기겠군요.”
“여유는 무슨. 공국과의 전쟁만 끝나면 로만 후작은 바로 공격을 시작할 거다. 이길 수 있겠나?”
“그에 대한 대비는 해두고 있습 니다. 그리고 로만 후작이 저희와 바로 싸우기는 힘들 겁니다.”
‘왕가부터 상대해야 할 테니까.’
이번에 펠론 백작이 북방에서 싸 놓은 똥이 거하다.
그 관계를 되돌리고,또 왕가를 안심시키려면 로만 후작도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리고 그동안 나도 노는 것은 아니니까.’
꽤나 여유로운 요한을 향해 마고 후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쨌든 오늘 폐하의 환영파티에 는 참석하도록 해. 거기서 힘이 되 어 줄 귀족들을 더 모아야 할 테니 까.”
승패가 뻔한 영지전에서 귀족들 은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승패가 불확실하다면.
귀족들 중에는 자신의 이득을 위 해 나서 줄 사람은 분명 있었다.
"지난겨울 동안 힘이 되어 줄 사 람들을 꽤 모았으니. 괜찮을 겁니 다.”
“그래…… 그래야겠지. 그리고 이왕이면 왕가의 지원도 받으면 좋 겠는데.”
마고 후작은 슬쩍슬쩍 윌카스트 백작과 요한의 눈치를 살폈다.
“헤르듀크 왕자님을 지원해달라 는 요청은 사양입니다.”
요한 대신 월카스트 백작이 대신 말했다.
아무리 마고 후작의 후원이 있다 고 하더라도 후계권에 대한 개입은 별개의 문제였다.
“헤르듀크 왕자님은 꽤 괜찮은 사람이야. 요한. 너도 겪어봤잖냐.”
마고 후작은 요한에게 응원을 요 청했다.
하지만 요한은 딱히 응원을 해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후계자 계승권 경쟁에 끼어 들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쁜 사람이라고 한 적 없습니 다. 그럼 저는 볼 일이 있어서 먼 저 가보지요.”
요한은 슬쩍뒤로 물러났다.
“어디 가냐?”
“만날 사람이 있습니다.”
“저녁에 알지? 잊지 마라. 꼭 참 석해야 한다.”
마고 후작이 한 번 더 당부하자 요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그는 바로 음직였다.
느긋하게 걸어 도둑 길드까지 간 요한은 바로 양유위를 찾았다.
그의 방에서 양유위와 이야기를 나누던 레드바는 요한을 보자 흠칫 놀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그래. 아. 레드바. 고생했다.”
“별말씀을…“.
“아버지를 습격한 놈들은 누구 지?”
“바하의 검이라는 암살자 조직 놈들이었습니다. 윌카스트 백작님을납치하려고 했더군요.”
“그래?”
“예. 윌카스트 백작님과 공자님 의 마법서를 교환해 한몫 챙기려고 한 듯싶습니다.”
‘개들이 어디 있는 놈들이었더 라…… 아. 헤고만 공국 쪽이었지.’
회귀 전에 알았던 그들의 위치를 떠올린 요한은 머릿속에 있는 수첩 에 끄적거렸다.
‘이놈들은 나중에 다 찢어 죽이 는 것으로 하고……“저희가 윌카스트 백작님을 호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숨겨놨으니 걱정 마십시오.”
요한이 입을 다물고 생각하자 양 유위는 황급히 말했다.
귀족이 도둑과 연관되는 것은 보 기 좋지 않다.
괜히 그것 때문에 요한이 마음 쓸까 양유위는 걱정스러웠다.
그가 황급히 말하자 요한은 별다 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 그건 알아서 잘하렴.”
“……아. 예.”
"그나저나 내가 시킨 일은 잘하 고 있나?”
떠나기 전 시켜 놓은 일을 묻자 양유위는 책상을 뒤적거렸다.
“예. 그쪽도 전시라서 그런지 유 언비어가 잘 통하더군요.”
양유위가 해 놓은 보고서를 읽은 요한은 빙긋 웃었다.
게이돈 후작령 뿐만 아니라 주변 영지까지.
왕가에 대한 불만이 크게 높아졌 다는 보고서였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