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8화
133. 싫으면 관두고 (3).
그가 물러나자 마고 후작은 웃으 며 말했다.
“그럼 수도에서 보지.”
“예.”
“그래도 오늘은 쉬도록 하게. 율 경이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 말이 야.”
“따르지요.”
헤르듀크,마고 후작과의 대화가 끝나자 요한은 방으로 돌아갔다.
‘슬슬 아공간 주머니도 확장해야 겠는데.’
현재 요한이 가진 아공간 주머니 는 여섯 칸짜리다.
그중 두 칸은 천 마리 검은 염소 를 쌓는 방법과 에드몬드의 연구일 지를 넣어두었다.
다른 한 칸은 디아볼로스의 뿔.
그리고 또 한 칸은 미스릴 검을 수납했다.
거기에 다른 한 칸도 마력 결정 이 들어가 있었다.
남은 것은 단 한 칸뿐이었다.
‘여섯 칸이면 그래도 여유는 있 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자라구만.’
하지만 어쩌겠나.
아공간 주머니는 여섯 칸짜리도 상당히 귀하다.
‘열 칸짜리가 어디 있는지는 알 지만 너무 멀고. 그냥 아쉬운 대로 여덟 칸짜리라도 구해야 하나.’
요한은 블링크 부츠와 드래곤 스 케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드래곤 스케일을 얻어 시간적 여 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가 고 민되 었다.
‘훈련과 아공간 주머니라……갈등이 된다.
곰곰이 생각을 하던 요한은 아공 간 주머니에 드래곤 스케일을 넣었 다.
‘파룬에게 의뢰해보고 없다고 하 면 찾아봐야겠군.’
타고다 상회는 많은 물품을 구비 하고 있다.
그곳이라면 여덟 칸 이상의 아공 간 주머니를 보유하고 있을지도 몰 탔다.
‘만약 있다고 하면 돈을 주고서 라도 사야겠군.’
물론 현재 가진 돈으로 부족할지 도 모른다.
하지만 돈이야 어떻게든 벌 수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여차하면 마고 후작에게 빌려도 되지 않겠는가.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 고……부츠를 벗어 블링크 부츠를 착용 했다.
마법이 걸린 부츠답게 조금 큰 부츠는 한순간 요한의 발에 딱 맞 게 변형되었다.
정리를 끝낸 요한이 훈련을 하려 고 일어났을 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 똑똑.
“들어와.”
부츠에 감싸진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던 요한이 답하자 문이 열 렸다.
“공자님. 사령관께서 찾으십니 다.”
“그래? 바로 가지.”
타로트의 방에 도착한 요한은 바 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오길 기다리던 타로트는 망 설이지 않고 곧장 말했다.
“마고 후작과 헤르듀크가 오늘 오후에 떠난다고 하더군.”
“예.”
“같이 떠날 생각은 없나?”
“보내주신다면야 저는 좋습니다 만. 임무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자네가 잡은 몬스터의 수는 레인저와 병사들이 한 달 동 안 잡은 것보다 많아.”
“그렇다고 하더라도 약속은 약속 이죠.”
‘남은 시간 바짝 잡아가면서 훈 련이나 해야지.’
요한이 심드렁히 대꾸하자 타로 트는 어깨를 으쏙였다.
"자네가 남아준다면 나야 나쁠 것은 없다만……요한이 몬스터 토벌을 해주면 타 로트에게도 나쁠 것은 없다.
그런데도 그가 보내주려 하자 요 한은 의문을 품었다.
“저한테 뭐 따로 부탁하실 일이있으십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이지만.”
“뭡니까? 한번 들어나 보죠.”
“사람을 하나 만나줬으면 싶다.”
“누굴?”
“아마 일주일쯤 후에 수도에 도 착할 것으로 생각되는데……타로트는 말꼬리를 흐렸다.
“도브다만 왕국의 토도 엘도만 백작. 그를 만나 다오.”
“엘도만?”
엘도만이라는 성을 들은 요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이로나 엘도만의 아버지?”
“그래. 자네도 만나봤겠지? 헤르 듀크에게 듣기로 헤이로나가 수도 에 와 있다더군.”
“그런데 제가 왜 그자를 만나야 합니까?”
“내가 그에게 빚이 있기 때문이 지.”
"빚이요?”
“그래. 그자에게 말해주게나. 케 리만을 자네가 쓰러트렸다고.”
“그 사람이랑 케리만이 무슨 상관이 있길래 그런 겁니까?”
회귀 전에는 이런 정보 따위 듣 지 못했었다.
요한이 대놓고 묻자 타로트는 씁 쓸한 어조로 말했다.
“십 사년 전쯤. 토도 백작이 검 은 요새에 온 적이 있었다.”
“그렇습니까?”
도브다만 왕국에서 필로틴 제국 으로 가려면 로드만 왕국의 검은 요새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 만큼 그가 왔다는 것도 이 상할 것은 없는 일이다.
“그때 토도 백작은 아내와 함께 필로틴 제국으로 가고 있었지.”
"그래서요?”
“그때 케리만의 습격을 받았다. 그 때문에 토도 백작의 아내가 죽 었지.”
“어? 그게 정말입니까? 백작이라 면 호위병력이 꽤 있었을 텐데?”
“답은 간단해. 그때는 백작이 아 니라 자작이어서 호위병이 그리 많 지 않았거든.”
“그렇군요. 그런데 그거랑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케리만에게 죽은 사람들은 많다.
요한이 케리만을 죽여줬다고 해 서 일일이 그것을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의아해하는 그를 향해 타로트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가진 창 때문이지. 그 창은 엘도만 가문의 창이야.”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제 겁니다.”
케리만이 사용하던 창은 요한이 노획해서 쓰고 있었다.
꽤 좋은 창이라 누군가에게 줄 생각은 없었다.
그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인 타로 트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여섯 칸짜리 아공간 주머니로는 모자라지 않나?”
아공간 주머니를 획득하면 그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한다.
요한도 예전에 왕국에 보고를 하 고 등록을 해놨다.
알고자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 는 부분이라 요한은 그가 알고 있 음에도 딱히 대수롭지 않아했다.
“모자라긴 합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토도 백작이 말했지. 자신의 창 을 찾아주고 케리만을 죽여주는 자 에게는 가문의 보물을 주겠다고.”
“그게 뭡니까?”
“열 칸짜리 아공간 주머니.”
타로트의 대답에 요한은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열 칸짜리 아공간 주머니를 바로 얻을 수 있다면 훈련이고 뭐고 가 야 한다.
요한이 방으로 돌아오자 떠날 준 비를 마친 마고 후작은 웃으며 말 했다.
“자네는 남겠지? 야스진은 어떻 게 할 생각인가?”
“복귀할 겁니다.”
“응?”
아까까지만 해도 남는다던 요한 이다.
그가 돌아간다고 하자 마고 후작 은 당황했다.
“왜?”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토도 엘 도만이라고 하십니까?”
구석에서 기사들과 돌아가는 길 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헤르듀크 는 피식 웃었다.
“타로트 사령관께서 말씀하신 건 가?”
“예. 어? 그걸 어떻게 아십니 까?”
“그야 토도 백작에 대해서는 내 가 말씀드렸으니까. 수도에 며칠 머무르고 떠난다고 하셨지.”
다른 나라의 귀족이 오랫동안 머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헤르듀크가 설명하자 요한은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가지 않으면 만나기 힘들다는 거군요.”
“도브다만 왕국에 간다면 만날 수 있겠지.”
바그너 영지에서 도브다만 왕국 까지는 석 달이 넘게 걸린다.
못 갈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갈 만한 거리도 아 니다.
“그런데 그를 만나서 뭘 하려 고?”
마고 후작의 질문에 요한은 구석 에 챙겨 둔 창을 들었다.
"이게 엘도만 가문의 창이라더군요. 갖다 주려고 합니다.”
“공짜로?”
“그럴 리가. 열 칸짜리 아공간 주머니 준다는데요.”
“와…… 열 칸짜리? 그 귀한 것 을? 자네 횡재했군.”
“그러게 말입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요한이 말하자 마고 후작은 그의 등을 툭 쳤다.
“북방에 와서 꽤 많이 벌어가지 고 가는데. 뭐 나오는 것 없나?”
“그래. 그래. 내가 요청하지 않았 다면 자네가 이런 횡재는 하지 않 았을 것 아냐.”
헤르듀크와 마고 후작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그들의 요청에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참나. 뭘 원하십니까?”
“아카데미의 교관들이 자네를 만 나고 싶어 하지.”
“아. 그런 거라면야.”
그 정도라면 시간을 많이 빼앗기 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프란츠 때문에라도 교관 들을 만나는 것이 나았다.
‘그놈을 한계까지 갈구게 하려 면……적당히 뇌물이라도 가져다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요한이 쉽게 승낙하자 헤르듀크 는 오히려 놀랐다.
“왜 그러십니까?”
“네가 그렇게 간단하게 허락할 줄은 몰랐다.”
“아카데미의 교관이라면 저도 관 심이 있으니까요. 아. 복귀하면 폐 하께서 주최하신 환영파티가 있다 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그거 끝나고 가도록 하지요.”
“교관이 될 생각은 없나? 내가 자리를 소개해줄 수 있는데.”
요한이 아카데미의 교관에 관심 이 있다고 하자 마고 후작은 웃으 며 말했다.
요한이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었 다.
마스터에 가진 지식도 꽤 있다.
거기에 댄스나 예절 같은 교양도 상당하다.
아카데미의 교관으로서 충분히 걸맞은 인재라 할 수 있었다.
“요한이 아카데미의 교관이 되기 에는 나이가 걸리지 않겠습니까?”
“마스터 앞에서 나이 따지는 놈 은 그냥 목 자르는 게 낫지요.”
거기까지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데 헤르듀크와 마고 후작은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들을 물끄러미 보던 요한은 고 개를 젓고 짐을 챙겼다.
“그래서. 어때?”
“안 합니다.”
최대한 달려서 선점할 것은 선점 하고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런데 뉘신지도 모를 애들을 가 르친다?
회귀 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 금으로썬 절대 사양해야 할 일이다.
"그런가……요한의 거절에 마고 후작은 시무 룩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짐을 다 챙긴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난 후 외쳤다.
"야스진!!”
“예!!”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야스진은 싱 글벙글 웃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냐? 같이 웃자.”
“검은 요새 식당 관리인과 친해 졌습니다.”
“그래 축하한다. 그래서?”
"덕분에 사슴고기 생햄을 잔뜩 얻었습니다. 하하.”
야스진은 커다란 주머니를 보여 주었다.
암염으로 염장을 하고 향신료를 먹여 훈연까지 한 것이다.
꽤 깝짤하지만 빵에 끼워 먹는다 면 그것만으로도 잔뜩 먹을 수 있 었다.
그가 보인 주머니에서 생햄 조각 을 잘라 입에 넣은 요한은 감탄했 다.
“어? 이거 맛있네.”
“그렇죠? 거기에 치즈도 꽤 받았 습니다. 이정도면 공자님도 만족하 실 것 같았습니다.”
뿌듯해하는 야스진을 향해 요한 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훌륭하다. 역시 내 마음을 잘 아는구나.”
“제가 공자님 마음을 모르면 누가 알겠습니까?”
야스진은 일부러 마고 후작과 헤 르듀크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어디로 될 줄 모르는 요한의 성 격을 잘 파악하고 모시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고 후작과 헤르 듀크에게 점수를 딸 수 있었다.
“그 방법 있으면 나도 좀 알았으 면 싶구만.”
“하하하. 별것 아닙니다.”
야스진이 예상했던 것처럼 헤르 듀크는 신기해하며 다가갔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요한 은 햄을 하나 더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깝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 에 가득 맴돌고 있었다.
“이거 진짜 빵도둑이네.”
탁자 위에 놓인 빵을 뜯어 안에 생햄을 듬뿍 넣은 요한은 우걱우걱 빵을 씹었다.
순식간에 커다란 빵 하나를 해치 우자 마고 후작은 감탄했다.
“그렇게 먹은 게 다 어디로 가는 건지.”
“열심히 쓰느라 그렇죠. 많이 움 직이면 빠집니다.”
"하이데도 요새 몸이 불어난 것 같다며 투덜거리더만. 언제 한번 와서 봐주게."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빵을 하나 더 먹으 려던 요한은 순간 손을 멈췄다.
그가 문을 바라보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메이가 들어왔다.
“왕자님,후작님. 떠날 준비가 되 었습니다.”
“그래? 그럼 가지.”
요한이 자루를 들며 일어나자 메 이는 의아해했다.
그가 알기로 요한의 복귀는 아직 며칠 더 남았다.
그때 알아서 온다던 그가 따라간 다고 하는 것이 이상했다.
“어라? 공자님도 가십니까?”
“그렇게 됐다. 가는 길 잘 부탁 하지.”
요한이 웃으며 말하자 메이는 심 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식량을 좀 더 챙겨야겠군요. 다 시 오겠습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