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21화
96. 처음이나 그렇지 (5).
“그럼 하피부터 잡으러 가지.”
“바로 길드의 전투원들을 준비하 겠습니다.”
바로 대답한 하마단은 에헤카틀 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경갑을 입고 검을 챙겨 들자 요한은 뒤를 보았다.
“너희도 수고했다. 유적 공략 보 상은 필요 없으니까 너희들이 나눠 가져.”
고블린들과 싸워가며 얻은 것들.
그것에 대한 보상은 요한에게 있 어서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요한이 양보해준다고 말하자 헤 로도톤은 망설였다.
“저... 공자님.”
“왜?”
“모험을 더 하시려는 겁니까?”
“왜. 같이 가고 싶나?”
속내를 눈치첸 요한이 허락할 듯 하자 헤로도톤은 살짝 주먹을 쥐었 다.
어쩌면 이 또한 기회일지 몰랐 다.
그가 입을 열려하자 에헤카틀이 먼저 말했다.
“헤로도톤. 모험가는 자신의 역 량을 알아야 한다고 했지요?”
에헤카틀은 상냥하면서도 엄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의 말에 헤로도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요한 공자님께서 계시다 고 하더라도. 지금 공자님께서 싸 워야 할 적은 강한 몬스터입니다. 당연히……그 여파에 죽을 수도 있다.
야민도 불안했는지 헤로도톤을 꼭 잡았다.
“요한 공자님.”
“뭐냐.”
결국 헤로도톤은 진지한 눈으로 요한을 응시했다.
“제가 참가해도 되겠습니까?”
“자기 목숨 버리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냐. 해. 해.”
차라리 하지 말라는 말이 더 좋 게 들리겠다.
헤로도톤은 시무룩히 고개를 숙 였다.
“그럼 결정됐군요. 여러분은 오 늘은 쉬시고 정비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항거하기 힘든 조언에 헤로도톤 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헤카틀이 그를 달래는 사이 길 드에서 두 명의 전투 요원들이 나 왔다.
그들이 요한의 곁으로 다가가자 요한은 에헤카틀에게 말했다.
“영주님께 인사드리고 오늘 떠나 려면 지금 가야 해. 오기 싫으면 넌 여기 있어.”
그의 재촉을 들은 에헤카틀은 헤 로도톤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헤로도톤. 그리고 미나,야민. 저는 여러분들이 크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그런가요?”
“오늘 요한 공자님과 함께 유적 을 탐색한 것도 큰 공부입니다. 그 러니……그것을 되새기며 오늘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해라.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 다.
아쉬워하며 셋이 물러나자 에헤 카틀은 다른 전투 요원들과 합류했 다.
“이제 됐습니다.”
"그럼 가지.”
요한을 필두로 하여 세 명의 길 드원이 길드를 나갔다.
폭풍처럼 들어왔다가 폭풍처럼 나가는 요한을 헤로도톤은 멍하니 응시했다.
“나도 정말 저렇게 될 수 있을 까……* * *당연하겠지만 하피와 드레이크, 수정골렘 정도는 요한에게 어려운 몬스터는 아니었다.
길드 전투원들의 지원까지 있는 만큼 상대하는 것은 더 쉬웠다.
그가 세 몬스터를 처치하고 돌아 오자 하마단은 얼굴 가득 환한 미 소를 지었다.
“이야〜 골치 아팠던 몬스터들을 처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 다!”
하마단은 활짝 웃으며 지부 건물 뒤에 놓인 세 몬스터 사체를 보았 다.
그것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하마 단은 요한에게 살갑게 물었다.
“저. 공자님. 몬스터 사체는 어쩌 실 생각이십니까?”
“하피의 깃털과 가죽은 잘 벗겨 서 바그너 영지로 보내.”
“드레이크는요?”
“심장과 이빨,발톱,비늘은 지금 갈무리해놓고.”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부위들은 어찌합니까?”
“길드에 시세대로 팔지.”
“감사합니다!! 저기…… 그럼 수 정골렘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골렘의 핵만 내가 받아가겠다. 나머지는 길드에 판매하고.”
수정골렘의 핵은 이미 챙겼다.
요한의 손에 들려 있는 붉은색 핵을 본 하마단은 기쁨에 몸부림쳤 다.
수정골렘은 몸 자체가 질 좋은 수정으로 되어 있다.
최상급 수정의 가격을 지불한다 고 하더라도 잘만 가공하면 더 비 싸게 팔 수 있었다.
아니,그것 뿐만이 아니다.
요한이 길드에 판 것들 전부 가 공하여 비싼 재료로 만들 수 있었 다.
상당한 수익이 되는 일이니 하마 단은 요한에게 거의 엎드릴 기세로 감사를 표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수정골렘의 가장 좋은 부분은 가공해서 영주님께 보내드 려. 인사는 해야지.”
“당연히 그래야지요!”
싱글벙글 웃던 하마단은 길드로 들어갔다.
잠시 후 길드의 해체원들이 나와 몬스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해체는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볼일이 있으면 보시고 오시지요.”
“그래. 수고들 해라.”
‘이제 여기서 할 일은 끝났 고……모험가 길드에서 나온 요한은 힐 끔 길가를 응시했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어 길가에 남아 있는 더러운 눈들도 조금씩 녹아가고 있었다.
아직 밤은 쌀쌀하지만 봄의 기운 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작물이 자라고 생명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슬슬…… 드라이어드를 부화시 킬 때가 되었네.’
요한은 이번에 얻은 수정골렘의 핵과 드레이크의 심장을 떠올리며 씩 웃었다.
초록이 꽃피는 계절인 봄은 영지 를 지닌 귀족들에게 고달픈 시기다.
겨울을 나느라 소모된 식량을 배 분하여 영지민과 농노들에게 나눠 주기도 해야 했고.
파종을 위한 종자를 나눠주기도 해야 했다.
또한 농지의 개간에도 개입 해야 한다.
그뿐인가?
봄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한 몬스 터의 토벌도 해야 했다.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그너 영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 o o......”
윌카스트 백작은 며칠째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계속 야근까지 해가며 간신히 서 류 정리를 끝냈을 때.
그를 보좌하던 하온달은 쓴웃음 을 지었다.
“여기 네가논 마을 쪽의 업무 일 지입니다.”
“하아…… 뭔 서류 작업이 끝이 없나.”
피로한 눈을 꾹꾹 누른 윌카스트 백작은 다른 자리에 앉아 있는 아 단에게 물었다.
“아단. 묘간 마을 쪽 서류는 어 찌 됐지?”
“끝났습니다.”
마법사들은 머리가 좋다.
그런만큼 이런 서류 업무에도 재 능을 보인다.
요한과의 계약이 끝난 아단은 원 래라면 바그너 영지를 떠났어야 했 다.
하지만 빌헬미나를 위해 그는 남 게 되었다.
자의로 남게 된 만큼 스스로 돈 을 벌어야 하는 상황.
그런 아단에게 좋은 제안이 찾아 왔다.
바쁜 시기만이라도 도와달라는 윌카스트 백작의 요청이었다.
그 요청에 혹해 들어왔다 잡힌 아단은 초췌한 얼굴을 쓸어 만졌다.
“이거 프란츠 공자님이나 요한 공자님이라도 계셨다면……일이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아단이 아쉬워하자 윌카스트 백 작은 씁쓸히 대답했다.
“이제 요한이 복귀한다고 하니 다들 조금만 힘내자고. 요한이 오 면 몬스터 토벌이라도 부탁을 할테 니.”
그때 였다.
“백작님!”
"하인스!? 무슨 일이냐?”
설마 이 바쁜 시기에 몬스터가 나타난 것일까?
윌카스트 백작이 청강검을 잡으 며 일어나자 하인스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요한 공자님께서 복귀하셨습니다!”
“오…… 오오!? 그래!? 어서 불......
“이미 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요한은 윌카스 트 백작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 사했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그래. 고생 많았다. 별일은 없었 지? 프란츠는?”
“프란츠는 잘 입학했고…… 별일 은 없었습니다.”
“그래? 다행이구나……“그리고 오다가 몬스터를 발견해 토벌을 끝냈습니다.”
가뜩이나 바쁘고 인력부족인 상 황이었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그 토벌을 위 한 인력 소요가 상당했다.
인력부족으로 골치 아픈 이때 요 한이 큰 문제 하나를 해결해주었다.
윌카스트 백작은 뿌듯해하며 요 한을 끌어안았다.
“장하다. 내 아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위치는 하인스에게 말해뒀으니 참고하시죠.”
“수고했다!!”
“그리고 다들 바빠 보이시는데 다른 지역의 몬스터 토벌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겠니?”
어찜 이리 든든할 수가.
윌카스트 백작은 요한의 손을 꽉 잡았다.
“네가 있어 내가 이토록 마음이 놓이는구나. 아,혹시 무리했다가 절맥이 다시……“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저는 가보지요.”
짧은 부자상봉을 마친 요한은 곧 장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 것을 보며 윌카스트 백작은 빠르게 서류를 살폈다.
“하온달! 요한에게 가야 할 곳을 설명해주도록!”
“예!”
지난겨울 요한은 몬스터 토벌을 시행하며 자신의 힘을 알렸다.
그는 마스터답게 혼자서도 몬스 터 토벌을 해내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런 만큼 지금 몬스터 토벌을 보내도 혼자 알아서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인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으니 여유가 생겼다.
빠르게 서류를 정리해 인력배치 도를 바꾼 윌카스트 백작은 서류를 아단에게 넘겼다.
“확인하고 바로 작업 시작을 맡 기게. 병사들도 전부 치안과 내부 공사 쪽으로 돌려.”
“알겠습니다.”
한시름 던 윌카스트 백작은 의자 에 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믿을 건 자식뿐이구나.”
윌카스트 백작과 만남을 마치고 나온 요한은 곧장 과자집으로 향했 다.
과자집에서는 늘 허기를 자극하 는 향기가 흘러나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주방에 있던 빌헬미나는 국자를 내려놓았다.
허둥거리며 나온 그녀는 요한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수프 자국이 남아 있는 앞치마를 벗어 내려놓은 그녀는 요한을 부드 럽게 안아주었다.
“어서 오려무나. 어이구. 얼굴 좀 봐. 반쪽이 다 됐네…… 배고프지? 밥부터 먹자.”
“하하. 예.”
물론 요한이 굶지는 않았다.
복귀 도중에도 사냥까지 해가며 하루에 다섯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하지만 빌헬미나의 눈에 요한은 언제나 비쩍 마른 안타까운 아이였 다.
“일단 빵부터 먹고 있으렴. 이 할머니가 금방 차려줄 테니까. 알았지?”““예.”
빌헬미나가 가져온 커다란 바구 니에는 먹음직스러운 빵이 잔뜩 들 어 있었다.
그가 식전 빵을 꾸역꾸역 먹는 사이 빌헬미나는 순식간에 커다란 오믈렛을 만들었다.
그 오믈렛도 순식간에 먹어버린 요한의 앞에 사슴고기 찜이 나왔다.
“며칠 전에 윌카스트 백작님이 가져다주셨단다. 어휴. 감사드려야 지.”
“그런가요? 음…… 이거 맛있다.”
푹 익은 사슴고기는 입안에서 사 르르 녹아내렸다.
약간 달콤하며 깝짜름한 소스가 사슴고기의 진한 풍미를 더욱 높여 주고 있었다.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많이 먹 으렴.”
“알겠어요. 그런데 그간 별일 없 었죠?”
“후후. 내가 무슨 별일이 있겠니. 가끔가다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외에는 없었단다.”
요한이 빌헬미나를 친할머니처럼 대하는 것은 이제 영지민들이 다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빌헬미나를 함부로 대 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 배고플 때 찾아가면 배 터지도록 먹여주는데 어떻게 싫어 하겠는가.
다른 영지에서는 영주나 영주의 부하들이 방해하지만.
바그너 영지는 그것도 없기에 영 지민들은 빌헬미나를 꽤나 좋아했 다.
“이것 보렴. 얼마 전에 영지민들 이 이런 것도 가져다주었단다.”
빌헬미나는 자신을 걱정하는 요 한을 달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리고 바구니에 소중히 담아 놓 은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었다.
잘 그린 빌헬미나의 초상화,깨 끗하고 작은 꽃신.
할머니들이 입을 법한 펑퍼짐한 치마와 옷.
투박한 장신구와 깨끗한 천들.
아이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엉 성한 압화(壓花)까지.
모두 정성이 담긴 선물들이었다.
"좋으시 겠네요.”
“후후후. 그렇지. 사람들이 아주 잘 대해준단다. 거기에 윌카스트 백작님도 좋은 분이시고.”
“다행입니다. 할머니께서 바그너 영지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 네 덕분이란다. 아. 고기 더 있으니 먹을래? 오들렛도 더 줄 게.”
“예. 잘 먹을게요.”
다른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도 좋 다.
하지만 빌헬미나에게는 역시 요 한이 먹는 모습이 최고였다.
비쩍 말라 걱정은 있는 대로 시 킨다.
그래도 먹는 것은 제일 잘 먹는 다.
챙겨주는 사람으로서는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먹어. 많이. 너 주려고 챙 겨둔 것들 많아.”
그의 접시에 두 번째 오믈렛을 올려놓은 빌헬미나는 요한을 향해 활짝 웃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