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20화
95. 처음이나 그렇지 (4).
“잘했어. 괜히 내려왔다간 큰일 나지.”
사과하는 모험가들을 요한이 달 래주자 헤로도톤은 침을 꿀꺽 삼켰 다.
“공자님. 미나가 아까 이 밑에서 엄청난 악의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혹시 악마가 있었던 건가요?”
« o ”
요한이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미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하얗게 질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간 요한은 손을 내밀었다.
“넌 왜 그러고 있는 거냐?”
“요한 공자님……“……응?”
어째 상태가 이상했다.
아까 살벌하게 말하고 내려갔으 니 자신에 대한 공포심이 커져 있 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나의 눈에 담겨 있는 것은 존경심뿐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반짝거리는 눈으 로 응시하자 요한은 당황했다.
“너 왜 눈 그렇게 뜨냐?”
“저희를 위해서 내려오지 말라고 하셨던 겁니까?”
정확히 말하면 요한을 위해서였 다.
그들이 내려와 봤자 타이론트가 소환하는 소환수들의 랭크만 올라 갈 뿐이니까.
요한은 그저 쉽게 끝낼 수 있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그게 무슨……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모 험가들은 요한에게 경의를 보이고 있었다.
“초심의 유적 지하 삼 층에 악마 가 있었다니……이곳에 있는 모험가들은 대부분 초보자들뿐이다.
그런 이들이 악마와 어떻게 싸우 겠나.
다들 요한이 자신들을 위해서 경 고를 하고 혼자 싸운 것이라 생각 하고 있었다.
“그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 요한 공자님께서 내려가신 것 아니십니까?”
“어…… 뭐 그런 셈이지.”
외법서에 관해서 설명하는 것보 다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요한 공자님께서는 혹시 묵시록 의 구원자 아니십니까!?!”
“아니야. 오해다.”
그녀의 강한 외침을 들은 모험가 들은 술렁거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모험가 중에 상당 수가바론 교의 신도들이다.
그렇기에 묵시록의 구원자에 대 해서도 알고 있었다.
묵시록의 구원자.
바론 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영웅 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어.”
“마스터 정도 되는 분이 왜 이런 초심의 유적에 오셨겠어?”
“숭고한 사명이라도 가지고 계셨 던 것 아닐까?”
“아까 게일로즈 같은 악당들을 쓰러트리신 것도 그렇고……다들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었 다.
그들을 향해 요한은 인상을 찌푸 렸다.
“쓸데없는 소리들은 하지 마라. 하이마스 주교께 확인까지 받았으 니까.”
뚱하니 말한 요한은 성큼성큼 걸 었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본 헤레도톤 과 야민,미나는 허겁지겁 그를 쫓 았다.
“공자님!”
“뭐. 왜. 뭐. 나 구원자 아니라 고.”
“아,아뇨. 그게 저기…… 이제 초심의 유적을 탐험하는 것은 끝입 니까?”
헤로도톤의 질문을 받은 요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아. 그리 고 이 유적의 주인을 쓰러트렸으니 이제 몬스터가 계속 나올 일은 없 을 거야.”
‘모험가 길드에서는 좀 골치 아 파하겠군.’
초심의 유적에서 나오는 고블린 을 이용해 모험가들을 훈련켰었다.
하지만 고블린을 무한히 생성하 여 유적을 지키던 타이런트가 소멸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초심의 유적에 나 오는 몬스터라 해봐야 슬라임.
아니,슬라임조차도 그 수가 줄 어들어 종국에는 모두 없어질 것이 다.
‘길드는 골치 아프겠네.’
그동안 이곳을 초심자의 훈련용 으로 잘 써먹어 왔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 물 건너가게 생겼으니 길드 입장에서는 안타까 운 일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 고……다른 모험가 길드의 지부들도 초 심자들의 육성에 자금과 노력을 투 자한다.
지금까지야 초심의 유적 덕분에 날로 먹었을 뿐이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겠군.’
요한은 모험가 길드의 하마단이 난감해할 것을 떠올리며 키득거렸 다.
“요한 공자님! 소식은 들었습니 다!”
요한과 헤로도톤 일행이 길드에 복귀했을 때.
길드의 분위기는 꽤나 좋지 않았 다.
유적에서 있었던 일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고블린도 더는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요한 때문이라는 것을 알 았으니 하마단으로서는 속이 좋을 수 없었다.
“벌써? 빨리도 들었네.”
“초심의 유적에서 고블린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래.”
요한은 힐끔 헤로도톤을 보았다.
아까 요한이 말해줬던 것을 지나 가던 다른 모험가에게 말해주었다.
딱히 숨길 것도 아니었기에 요한 은 무덤덤했다.
하지만 헤로도톤은 괜히 얘기했 나 싶어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런……예상했던 것처럼 하마단은 절망 했다.
그를 향해 웃으며 요한은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힘내라고. 그럼 다음에 또 보세. 볼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만.”
“이렇게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 까!”
하마단은 울컥하며 요한을 잡고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했다.
몸을 돌리고 나가려던 요한은 발 걸음을 멈춘 후 천천히 고개를 돌 렸다.
“나보고 어쩌라고. 모험가가 유 적탐사를 끝낸 것이 잘못된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길드에 있는 모험가들은 요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초심의 유적이 고블린만 나오는 특이한 유적일 뿐이다.
다른 유적들 같은 경우는 그냥 내버려뒀다간 유적 내의 강력한 몬 스터가 바깥으로 나와버린다.
당연히 유적의 핵심부를 처리하 여 몬스터의 발생을 막아야 했다.
그런데 그것을 모험가 길드에서 나무란다?
그럼 누가 유적에 들어가겠는가.
몇몇 모험가들이 싸한 눈으로 자 신을 응시하자 하마단은 당황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말해봐. 그런데 잘 말 해야 한다.”
요한은 근처에 있는 규정집을 들 어 옆에 놓았다.
두꺼운 규정집을 본 하마단은 침 을 꿀꺽 삼켰다.
로미단 영지의 모험가 길드 지부 장인 호세에게 얼핏 들었었다.
요한은 규정을 완전히 외우고 있 다고.
그가 규정을 들먹거리면 하마단 도 할 말이 없었다.
“이번 일로 페널티 줄 셈이면 모 험가 길드 본부에 민원 넣어주지.”
"그,그럴 리가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하마단이 머뭇거리는 사이 에헤 카틀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초심의 유적을 쓸 수 없 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알아내야 한 다.
당황한 하마단을 뒤로 당긴 그녀 는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요한 공자님. 초심의 유적 지하 삼 층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규정상 말해 줄 필요는 없지.”
그의 답에 에헤카틀을 비롯한 다 른 모험가들은 실망했다.
요한이 내려간 이후 초심의 유적 에서 엄청난 악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 악의는 유적 바깥까지 치솟아 서 신전의 신관들까지 걱정하며 찾 아 올 정도였다.
그런데 요한은 그곳에서 살아 돌 아왔다.
그런만큼 그가 뭘 한 것인지 다 들 궁금했었다.
모두의 실망감을 느낀 요한은 웃 으며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래도 다들 궁금해할 테니까 가르쳐주지.”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성해포 에 감싸진 길죽한 것이 나왔다.
성해포가 풀리고 안의 내용물이 드러나자 모험가들은 자신도 모르 게 무기를 잡았다.
“헉!”
“엄청난 마기다……몇몇은 디바인 마크까지 꺼낼 정 도였다.
삽시간에 모험가 길드 내부가 긴 장으로 가득 찼다.
카운터에 놓인 뿔에서 흘러나오 는 막대한 악마의 기운에 에헤카틀 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이게 뭡니까?”
“디아볼로스의 뿔.”
“디아볼로스……? 자,잠시만 기 다려주세요!!”
의아해하던 에헤카틀은 흠칫 놀 탔다.
길드 사무원의 책장에서 두꺼운 성서를 꺼낸 그녀는 빠르게 성서를 뒤졌다.
그리고 어느 페이지에서 멈춘 그 녀는 부들부들 떨며 기겁했다.
“폭력의 디아볼로스!! 지옥의 칠 대 군주!! 암흑시대에 봉인된 폭력 의 결정체!!”
“잘도 아네.”
“디,디,디아볼로스를 쓰러트리 신 겁니까!?”
“쓰러트렸다기보다는 지옥으로 돌려보냈지.”
요한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듣는 이들에게는 아무렇 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만약 디아볼로스가 유적에서 나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거나 악마에게 씌었을지도 모른 다.
두려워하던 모험가들이 성호를 긋고 디바인 마크를 꽉 쥐자 에헤 카틀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초심의 던전에 디, 디아볼로스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거기까지 내가 보고해야 할 의 무는 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결과만 놓고 말하자고. 폭력의 디아볼로스는 지옥으로 돌아갔어. 그게 다다.”
요한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하마 단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가 상대한 것이 악마였다면.
그것도 대악마에 속하는 존재라면 더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럼 뭐…… 이걸로 끝내야겠지 만.”
요한은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 있 는 하마단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여기가 피해를 본 것 또 한 사실이지. 그렇지 않나?”
"그,그렇긴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가 힘없이 대꾸하자 요한은 웃으며 말 했다.
“그 보답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예?”
“처리하지 못한 의뢰가 있다면 몇 가지 정도는 내가 해주지. 어 때?”
시무룩해 하던 하마단은 눈을 빛 냈다.
초심의 유적을 잃은 것은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것을 잡고 있 을 여유는 없었다.
폭력의 디아볼로스를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강자인 요한이다.
그가 의뢰를 맡아준다면 사양할 필요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마침 공자 님께 맡기고 싶었던 의뢰가 있습니 다.”
하마단은 잽싸게 의뢰요청서를 뒤적거렸다.
그중 지금까지 손을 대지 못했던 의뢰서를 꺼내 들었다.
수십 장은 될 법한 의뢰서를 살 펴보며 하마단이 고심을 하다가 두 장을 내밀었다.
“하나는 하피 처치고…… 오. 이 건……"드레이크 처치입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룡인 드레 이크가 자리를 잡는다면 영지의 피 해는 커진다.
거기에 꼴에 용족이라고 은급 모 험가들도 힘겹게 싸워야 하는 몬스 터였다.
“하피와 드레이크는 하늘을 나는 몬스터이지요. 그 둘의 처치에는 저희 길드에서도 지원을 나갈…… 왜 그러십니까?”
의뢰서를 바라보던 요한은 하마 단이 들고 있는 의뢰서 뭉치를 향 해 손을 내밀었다.
“줘봐.”
“예? 아. 예.”
의뢰서들을 차분히 살피던 요한 은 한 장의 의뢰서를 추가로 뽑았 다.
“요한 공자님. 그건……야도무 영지 북쪽에 있는 수정광 산의 수정골렘 처치 의뢰였다.
석달 전에 수정광산의 안쪽에서 던전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잠들어 있던 황금 시대의 수정골렘이 나타났다.
그 수정골렘이 인부들을 해치고 거기에 수정의 채굴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수정은 마법사뿐만 아니라 연금 술사나 점술사들도 애용하는 도구 다.
당장에라도 수정을 채굴해야 하 는 마당에 벌써 석 달이나 채굴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황금시대의 골렘은 어지 간한 모험가들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괴물.
그렇기에 석달째 수정광산은 폐 쇄되어 있었다.
“수정 골렘의 몸은 단단해서 오 러가 실린 검으로도 큰 피해를 주 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러 블레이드는 통하 지.”
“설마 공자님!? 이것도 해주시려 는 겁니까!?”
하마단의 표정이 밝아졌다.
안 그래도 수정골렘 처치 의뢰를 맡아주는 이들이 없어 그도 난감하 던 처지였다.
하피와 드레이크,거기에 수정골 렘까지.
지부를 괴롭히던 더러운 임무가 한꺼번에 사라지게 생겼다.
“이 세 개의 의뢰. 내가 받는다. 보상도 당연히 내가 가져가겠지?”
“그거야 당연하지요. 길드 차원 에서의 추가 보상도 있습니다.”
“됐어. 그럼.”
‘드레이크 비늘은 이래저래 써먹 을 곳도 많고…… 최상급 수정도 필요했으니까. 잘됐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