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24화
74. 이 정도면 비벼볼 만하다.
(4)
다섯 번째 코어를 만들며 육체의 개변이 이루어졌다.
벽이 사라지고 근골이 뒤틀리며 육체로 강화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근육의 변화도 있 었고,아단은 그것을 정확히 파악 했다.
“그나저나 잘도 봤네. 몸 쓰는 직업도 아니면서.”
“빌헬미나 님과 함께 요리를 하 다 보니 관찰력이 좀 더 늘었습니 다.”
“할머니 밑에 있는 게 너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나보지?”
본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생활을 할 때뿐만 아니라 전투,그리고 마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한때는 상아탑의 로드였던 빌헬 미나다.
그녀에게 마법은 배우지 못해도.
그녀의 삶을 약간이나마 배운 아 단이었다.
그렇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예…… 도움이 되었지요.”
씁쓸히 중얼거린 아단은 지팡이 를 들었다.
이제 빌헬미나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요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 다.
대장간 안은 침묵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침묵이 깨진 것은 헤갈이 창 고에 보관해 둔 재료와 장비들을 들고 돌아왔을 때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은 미 스릴 괴를 넘겨주었다.
“시작하자.”
드디어.
미스릴 검을 만들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던 고로에 연료가 들어간다.
강한 불길이 고로에서 타오르며 열기를 내뿜자 요한은 차분히 말했 다.
“화력이 부족해. 연료 더 넣어.”
“예.”
마을에서 만드는 코크스로는 부 족했다.
그렇기에 타고다 상회에 요청해 얻어 온 최고급 코크스를 넣어가며 화력을 키운다.
그 안에 기름까지 넣어 열기를 더더욱 높인 헤갈은 요한을 보았다.
“시작하자.”
이 정도면 미스릴을 녹일 수 있 을 열기가 될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헤갈은 지난번 유적에서 가져 온 최고급 내화석통 을 꺼냈다.
그 안에 미스릴과 시약을 담고 집게로 집어 고로 안에 넣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알지?”
“예.”
이제부터는 세밀하게 불길을 조 정해야 한다.
그 과정은 헤갈뿐만 아니라 요한 도 긴장해야 했다.
조금만 실수한다면 미스릴의 마 력이 새어 나가버린다.
요한과 헤갈.
둘이 집중하기 시작하자 아단은 지팡이를 꽉 쥐었다.
“연료 더 넣어.”
불길이 흔들릴 때마다 요한은 담 담히 말했다.
너무 강한 화력은 오히려 해가 된다.
최적의 화력을 찾는 것은 그저 감각만으로 해야 하는 것.
요한은 드워프인 헤갈보다 더 예 민하게 불길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저물고 밤 이 되었을 때 유아랑은 바구니를 들고 걸어왔다.
“식사 왔습니다.”
“쉿……과자 집에 가서 빌헬미나에게 요 리를 받아 온 유아랑은 대장간 안 의 경건한 분위기에 감탄했다.
‘도대체 몇 시간이나 저러고 있 는 거야?’
요한도,헤갈도.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 다.
그저 계속해서 연료를 넣거나 물 을 부어 불길을 조정할 뿐 이었다.
“아단. 마법을 써야겠다.”
“알겠습니다.”
몇 시간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결 국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
지팡이를 든 아단은 주문을 외워 불길을 만들어 고로 안에 퍼부었다.
그 화력을 확인하며 고로의 상태 까지 살핀 요한은 흐른 땀을 닦은 후 말했다.
“됐어. 꺼내.”
“후우우우……천천히 꺼낸 통에서 미스릴을 뽑 아낸 헤갈은 감탄했다.
오랫동안 열을 받은 미스릴에서 강한 마력이 뿜어지고 있었다.
이 마력이 전부 사라지기 전,검 을 완성시켜야 한다.
“시작하자.”
“식사 안 하십니까?”
요한이 식사에 얼마나 민감한지 아는 아단이 물었다.
하지만 요한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너희끼리 먼저 먹어.”
“헉.”
무슨 일이 있어도 식사는 꼬박꼬 박 챙겨 먹는 요한이다.
그런 요한이 식사를 거절할 줄이 야.
둘이 아연실색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한과 헤갈은 계속해서 작업 에 몰두했다.
몇 번이나 두들기고,가열하고. 또 다시 두들긴다.
심지어 단조 도중에는 오러를 쓸 때도 있었다.
꽤나 힘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요한과 헤갈은 불평은커녕 필요한 말 외에는 꺼내지도 않았다.
너무 경건하고 긴장되서 보는 이 들이 더 지칠 지경이다.
그렇게 그들이 끊임없이 작업을 하는 동안.
결국 아단과 유아랑은 지쳐 선잠 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해가 뜰 때 쯤.
천천히 정신을 차린 둘이 일어났 을 때 어느새 미스릴 괴는 검의 형 태를 보이고 있었다.
밤새 내린 새하얀 눈보다 더욱 하얀 검신이었다.
아직 자루를 만들지 않아 블레이 드 부분만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유아랑은 알 수 있 었다.
‘명검이 다.’
미스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 니었다.
검 자체에 들어간 정성과 기술.
모두가 일류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함께 했는데 어찌 명검 이 아닐 수 있겠는가.
유아랑도 검을 쓸 수 있기에 둘 이 만드는 검의 가치를 알 수 있었 다.
저 검은 억만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땡강! 땡강!
그가 놀라는 사이 규칙적인 소리 가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요한과 헤갈은 말없이 블레이드 를 이리저리 살피고 담금질을 시작 했다.
그 마지막 담금질이 끝나고 나서 야 요한은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으으…… 죽겠다……“좀 쉬어.”
“알겠습니다……고작 하루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했을 뿐인데 몇 년은 늙은 것 같 다.
헤갈은 폭삭 삭은 얼굴로 바닥에 엎드렸다.
머리를 대자마자 그는 코를 골며 잠들어 버 렸다.
그 사이 요한은 달궈진 미스릴 블레이드가 식기를 기다리며 명상 을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명상을 끝낸 요한은 자루와 폼 멜,날밑을 만들어 시착용해보았다.
나름 만족한 그는 숫돌을 들어 미스릴 블레이드의 날을 갈았다.
“오러로 강화시켜서 가는 겁니 까?”
“이정도가 아니면 이 하나 나가 지 않을 테니까.”
다섯 번째 코어를 만들어 오러가 더 강화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러를 최대한 불어 넣어가며 날 을 세운 요한은 블레이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구름을 뚫고 내리쬐어지는 햇볕 에 비친 순백의 블레이드는 은은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좋아,이 정도면 요한이 보기에도 매우 훌륭하다.
그렇기에 요한은 들어와 빠르게 자루를 붙였다.
완성된 검을 요한은 그대로 바닥 에 내리 꽂고 주저앉았다.
“후아…… 힘들었다.”
“이거 굉장하군요. 잡아봐도 됩 니까?”
“얼마든지.”
유아랑이 검을 만져보는 동안 요 한은 남겨 둔 요리를 꾸역꾸역 퍼 먹었다.
꽤 많이 남아 있던 요리들이 빠 르게 줄어들자 아단은 바구니를 들 고 일어났다.
“더 받아 올까요?”
원래 많이 먹는 요한이다.
남은 음식만으로는 모자랄 것 같 아 아단이 묻자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자 집으로 간 그가 양손 가득 바구니를 들고 돌아왔을 땐 헤갈도 일어나 있었다.
그들이 다시 식사를 시작했을 때.
겨우 검을 보는 것을 멈춘 유아 랑은 탄식을 토해냈다.
“굉장한... 명검이군요.”
그의 나직한 탄성에 요한과 헤갈 은 씩 웃었다.
“그런데 마검이나 성검은 아닌 듯싶습니다만.”
한참 동안 검을 살피던 유아랑이 묻자 요한은 기름진 칠면조 다리를 북 뜯어 입에 넣고 대답했다.
“그냥 검이야. 검 본연의 기능만 살렸지.”
“미스릴인데 아깝군요.”
“그게 나아.”
대충 답해 준 요한은 다시 식사 에 집중했다.
먼저 식사를 끝낸 헤갈은 유아랑 에게 검을 받고 검집을 만들었다.
조금 밋밋한 형태의 검집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깔끔해 보인다.
검집에 검을 넣고 나서야 헤갈은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후우…… 드디어 끝났다.”
“고생했다.”
“공자님께서 더 고생하셨지요.”
희미하게 웃은 헤갈은 손을 보았 다.
이만큼 열정적으로 망치를 휘둘 러 본 적이 언제인가.
어쩌면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최고의 작품을 만든 것일지도 몰랐 다.
‘이게 끝이겠지.’
이제 대장장이 노릇은 끝이다.
다시 모험가 생활로 돌아가야 한 다.
하지만 드워프인 그의 피와 혼에 담긴 그 본능은 외치고 있었다.
이 맛을.
이 기쁨을.
다시 버릴 생각이냐고.
그 질문은 지금까지 갈등하던 헤 갈에게 답을 내어주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요한은 미스릴 검을 챙기고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간 고생했으니 쉬고 싶은 만 큼 쉬고 언제든지 떠나도 좋다. 이 제……미스릴 검을 만들기 위해 썼던고로를 보았다.
과한 화력을 계속해서 유지한 탓 일까?
아단의 마법으로 인해 완전히 열 기가 사라진 고로는 누가 봐도 한 계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천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아낸 요 한은 고로를 가볍게 베었다.
- 서걱.
바람을 가르는 일격에 고로가 반 으로 잘려나갔다.
그 안에 드러난 내화벽돌의 여기 저기에 금이 가 있는 것을 본 요한 은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너희는 자유다.”
“……저. 공자님!”
“뭐냐.”
눈밭에 선 요한을 향해 유아랑은 손을 뻗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아단도 그렇고,헤갈도 그렇고.
다들 떠나도 된다는 허락에 기뻐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유아랑 역시 마찬 가지였다.
“저기…… 그게. 그 검. 이름을 지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흐......w"a" .
“그거라도 가르쳐주셨으면……“글쎄. 딱히 생각하지 않았는 데……요한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 다.
깨끗한 하얀 눈은 세상을 백색으 로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미스릴 검과 같아눈으로 뒤덮인 세상과 검을 번갈 아 바라본 요한은 무덤덤하게 말했 다.
“이름은 뭔 이름이야. 그냥 미스릴 검이면 되지. 더 할 말은 없겠 지?”
“예……유아랑이 입을 다물자 아단이 나 섰다.
그는 절박한 어조로 외쳤다.
“공자님!!”
“왜 또?”
“저는 이곳에 남고 싶습니다. 모 험가 생활도 좋습니다. 하지만 ,,빌헬미나를 그냥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함으로써 성장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빌헬미나 님께서 돌아가실 때까 지만이라도……그녀가 외로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겨우 일어난 헤갈도 나섰다.
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명작을 만들어낸 그의 손은.
지난 몇 개월간 망치를 잡았던 그 손은.
벌써 망치를 놓기에는 부족하다 고 호소하고 있었다.
“바그너 영지에 남아도 되겠습니 까?”
유아랑 역시 동감했다.
정성스레 약초를 키웠다.
그 과정이 엘프가 가지고 있는 본능을 일깨웠다.
“좀 더 여기에서……처음에는 강제로 남았지만 이제 는 아니다.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청하자 요한은 피식 웃었다.
“모험가는 자유를 숭상하는 자라면서?”
“그렇습니다.”
셋의 표정이 밝아졌다.
요한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너희는 자유다. 남고 싶으면 남 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
말을 마친 요한이 눈길을 걸어가 버리자 헤갈과 유아랑,아단은 고 개를 저었다.
“거 참 좋게 좀 말씀하시지.”
“요한 공자님. 원래 저러시잖냐.”
“저런 거 하루 이틀이냐.”
매번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실상 은 부끄러워서.
남에게 좋은 말을 해줌으로써 나 태해지고 풀어지는 것을 막는 사람 이다.
당연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오해 였다.
하지만 셋은 그저 자신들의 생각 이 옳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항상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겠냐. 그럼. 우 리는 이제 당분간 뭐 먹고 살지나 얘기나 해보자고.”
아단의 말에 둘은 쓰게 웃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