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4화
29. 스스로 만든 목줄 (2).
본격적인 생일 축하 파티는 밤에 시작된다.
그 전에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오후에 작은 파티가 열렸다.
하지만 파티장의 분위기가 달아 오르는 일은 없었다.
“허…… 이거 참. 어찌해야 할 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 겠소?”
파티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귀 족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 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일어난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 다.
“요한이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 는데……“그동안 아프다고 한 것도 사실 거짓말 아닐까?”
“윌카스트 백작이 가문을 위해서 장자를 병기로 키우고 있었다?”
누군가가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의견은 바로 부정되었 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소리 였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나 되는 소린 가.”
“그의 병을 확인한 게 몇 명인 데.”
“암. 아무리 윌카스트 백작이 수 완이 좋아도 그들 전부를 포섭하는 것은 말이 안 돼.”
백번 양보해서 초청까지는 가능 하다.
병을 봐주는 것도 가능은 했다.
하지만 그들을 포섭하여 세상을 속이게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 다.
요한의 절맥을 봐줬던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암왕이다.
그런 그가 고작해야 윌카스트 백 작에게 포섭당한다?
천하십강이 그렇게 쉽게 누군가 에게 포섭당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 다.
“그리고 요한이 병에 걸렸을 때 나도 직접 본 적이 있다네.”
그때 그들의 곁으로 헤위안 자작 이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자 모여 있던 귀족들 은 다들 그를 반겼다.
윌카스트 백작과 친한 헤위안 자 작이다.
아까 윌카스트 백작이 따로 헤위 안 자작을 불렀었다.
분명 뭔가 이야기를 나눴을 테 니,헤위안이라면 분명 답이 나왔 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서 오게나.”
“윌카스트 백작님께서는?”
“지금 마고 후작님과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네.”
모두가 모이자 헤위안 자작은 주 변을 둘러 본 후 조심스레 말했다.
“그나저나. 도르마나 백작가가 멸문하게 되었으니. 그 영지는 어 떻게 될 것 같은가?”
“그야……도르마나 가문의 영지와 인접한 곳에서 바로 움직여 그 영지를 차 지할 것이 뻔했다.
가주와 후계자가 죽은 이상 그 가문은 몰락의 길을 피할 수 없었 다.
물론 친인척 관계인 가문에서 소 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겠는가?
분명 가문에 고용되어 있던 이들 은 영지를 떠날 것이다.
지킬 자가 떠나기 시작하는 부유 한 영지다.
즉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인 땅 이 되는데 누가 가만히 두겠는가.
“영지전이 생긴다는 건가?”
“그래. 도르마나 가문의 철광산 에서 나는 철광은 아주 품질이 좋 고 귀한 것이야. 그 철광산을 손에 넣는다면……”
헤위안 자작이 넌지시 말하자 귀 족들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아니,도르마나 영지를 손에 넣 을 수 있다면 작위를 높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순식간에 파티장 전체로 흘러가 기 시작했다.
윌카스트 백작의 지령을 받은 헤 위안 자작이 파티장의 귀족들을 선 동하고 있을 때.
윌카스트 백작은 요한을 찾아 헤 위안 자작에게 부탁한 일들에 대해 서 설명했다.
“그래서. 헤위안 자작님과 다른 분들께서 분위기를 그리 주도하시 고 계시다는 겁니까?”
“그래. 아마 지금쯤 몸이 달아 있을 것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은 감 탄했다.
“나쁘지 않군요.”
“아무튼,다른 이들도 도르마나 영지를 노리게 될 테니…… 로만 후작도 안심할 수는 없을 거야.”
“그렇군요.”
“다만 아쉬운 것은 도르마나 영 지를 우리가 얻기 힘들다는 것이 다.”
윌카스트 백작은 아쉽다는 듯 쩝 찜 입맛을 다셨다.
도르마나 영지에 있는 철광산만 손에 넣는다면 병기의 제작에 앞설 수 있다.
그것은 곧 바그너 영지의 힘을강화할 배경이 되어 줄 것이다.
요한의 말대로 로만 후작과 싸우 게 된다면,좋은 장비는 얼마나 있 어도 모자란다.
그의 아쉬움 섞인 투정을 들으며 요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비 따위는 나중에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 오.”
“그,그러냐?”
“예…… 아무튼 그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로만 후작도 가만히 있 지는 못하겠군요.”
로만 후작이 차후 타로트 왕제를 후원하려면 많은 장비가 필요했다.
그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철광석을 빠르게 확보해야 했 다.
당연히 다른 귀족들이 도르마나 영지를 치기 전에 로만 후작이 그 곳을 먼저 치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게 걱정이구나. 그가 도르마 나 영지를 손에 넣는다면 그의 힘 이 더욱 강력해질 텐데.”
윌카스트 백작이 걱정하자 요한 은 빙긋 웃었다.
“그것도 다 생각해 놓은 것이 있 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래?”
“제 생각대로 일이 풀리면 로만 후작은 도르마나 영지에 손을 대지 못할 테니까.”
로만 후작과 적대하기로 마음먹 었을 때부터 요한을 신뢰하기로 했 다.
그러니 윌카스트 백작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그보다 아버지. 저는 이제 훈련 을 좀 더 해야겠으니 나가주시겠습 니까?”
“그래. 푹 쉬고 밤의 파티에는 꼭 참석하려무나.”
“그래야지요.”
월카스트 백작이 나가자 요한은 훈련을 시작했다.
늘 하던 것처럼 육체의 단련을 진행하면서도 요한의 머리는 생각 을 멈추지 않았다.
‘로만 후작은 난감할 수밖에 없 겠지. 도르마나 영지의 철광석이 없으면 타로트 왕제를 지원하기 힘 들 테니……,타로트 왕제가 움직이기 위해서 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좋은 장비가 있든,아 니면 병력을 충원하든 해야 한다.
하지만 병력의 충원에는 물자의 소요가 크•니 장비를 보충하려 할 것이다.
그것을 맡아야 하는 로만 후작에 게는 도르마나 영지가 필수다.
천천히 내려가는 검극을 보며 요 한은 씩 웃었다.
월카스트 백작의 공작으로 귀족 들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요한이 유노를 잡았다는 것은 이 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도르마나 영지를 누가 차지할 것 인가에 대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로만 후작도 바보가 아니니 그 정도는 당연히 눈■치챘을 것이다.
‘그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돌아가 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도르마나 영지 주변에 있는 귀족 중에는 로만 후작과 친한 귀족이 없다.
절반은 중립.
그리고 절반은 마고 후작을 따르 는 이들이다.
즉 로만 후작이 도르마나 영지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움직여야 한다 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 이 전부 아는 이야기였다.
‘그럼 로만 후작은 생일파티가 끝나는 대로 바로 복귀하겠지.’
로만 후작이 여기 남을 수 있는 시간도 오늘 뿐이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은,‘분명히 야오를 초조하게 만들 거다.’
로만 후작은 원한다면 내일 아 침,아니 오늘 밤이라도 당장 출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만큼이나 미끼를 던져놨다.
그런 만큼 로만 후작은 도르마나 영지의 철광산을 차지하기 위해서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야오는 반드시 온다.’
아까 전 그가 마법서를 보며 드 러낸 욕망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요한은 힐끔 탁상 위에 올려놓은 마법서를 보고 씩 웃었다.
-똑똑.
“들어와.”
“요한 공자님. 공자님께 친서가 왔습니다.”
“그래?”
“그런데 뭐 하십니까? 검만 들어 올리고?”
“훈련.”
만검(慢劍)이라는 수련법이 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검을 움직이는 훈 련이었다.
육체와 정신의 단련에 큰 도움이 되는 수련법이다.
다만 성장이 늦어 지금 이 대륙 에서는 잘 쓰지 않는 수련법이다.
코어로 성장이 가능한 요한에게 는 걸맞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맞지 않아 거의 사장된 수련법이었다.
그래서인지 야스진은 알아보지 못했다.
“음……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합니까?”
그는 탁자 위에 두툼한 초대장 뭉치를 내려놓았다.
“읽어.”
“제가 읽어도 됩니까?”
“그래.”
초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 만 하는 요한을 향해 야스진은 한 숨을 쉬었다.
“어디 보자. 텔위 백작가의 라디 아 텔위 영애의 친서입니다. 친애 하는 요한 공자님. 따사로운 햇살 이……“미사여구 빼고.”
“오늘 저녁 파티 때 댄스 상대가 없다면 상대해주겠답니다.”
“다음.”
“아돈 백작가의 호만 공자의 친 서입니다. 폴라이드 기사단에 들어 오라는군요.”
“폴라이드 기사단? 그건 또 어디 야?”
“아돈 백작가에 소속된 기사단입 니다. 꽤 유명한 곳입니다만.”
“갖다 버려.”
“레도마이어 백작 부인께서 오늘밤 만나잡니다.”
“찢어버려.”
그 외에도 다른 친서들을 야스진 이 읽어주었다.
하지만 요한은 어떤 친서에도 크 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들 신기해하기만 할 뿐 요한에 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이 마스터라는 것이 알려지니 상황이 반전되었다.
마지막 친서마저도 댄스 상대를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전부 읽은 야스진은 친서들을 공손히 모았다.
“전부 초청장입니다.”
“다 갖다 버려. 별 의미 없는 얘 기들뿐이군.”
그의 심드렁한 반응에 야스진은 떨떠름히 물었다.
“어쩌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후우우……천천히 검을 내리고 훈련을 끝낸 요한은 무뚝뚝한 어조로 대꾸했다.
“어쩌시려고 그런다.”
“농담도 참.”
“야스진. 네가 원하는 것은 추천 서 아닌가?”
날카로운 시선에 오금이 저려 왔 다.
요한이 다른 귀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 기분이 좋았다.
괜히 자기도 높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줄해졌다.
하지만 요한의 한마디에 그는 바 로 자신의 위치를 찾았다.
“내 일만 끝나면 추천서는 내가 써주도록 하지.”
“가,감사합니다.”
“그러니 괜히 나서지 마라. 전에 내가 뭐라고 했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치유사이 니 치유사 노릇을 열심히 해야겠지 요.”
어째 요 근래 군사는커녕 치유사 보다 하인 노릇을 더 하게 되었지 만.
요한의 말대로 야스진은 추천장 만 받으면 된다.
특히나 요한처럼 주변에 화제를 불러오는 사람의 추천서라면 반드 시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만큼 야스진은 그의 반응에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까지 공자님을 모셔 야 합니까?”
“보채지 마라. 왜. 빨리 사제가 되고 싶은가 보지?”
“그야……“노 페인 노 게인. 추천장 얻는 것이 어디 쉬운 줄 아나.”
야스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 은 그에게 젖은 수건을 던졌다.
“그리고 오늘 저녁 파티에는 너 도 참석해.”
“제가 가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만……“이런 파티에 참석하는 건 너에 게도 나쁜 것은 아니야. 몰라?”
“그야 당연히 알지요.”
사제는 고위층과 잘 어울려야 한 다.
그런 만큼 귀족들에게 얼굴도장 을 찍어두면 좋다.
지금 요한은 타이론 영지에서 가 장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니는 사 람.
그의 시중 역할을 맡는다면 다른 귀족들과도 자연스레 엮일 수밖에 없었다.
요한과 일면식이 없는 이가 말을 걸려면 시중을 통해야 하니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야스진에게 큰 기 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럼 가봐.”
“예.”
씻기 위해 요한이 욕실로 들어가 자 야스진은 머뭇거리다 밖으로 나 갔다.
“그런데 난 뭘 입고 가야 하지?”
야스진은 자신의 허름한 치유사복을 살짝 잡았다.
이런 옷을 입고 파티에 참석했다 간 크게 경을 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주 싼 것이라도 예복 을 하나 구매해야 한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주머니를 꺼냈다.
“돈 엄청 깨지겠군……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