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새로운 국면 (6)
장수진은 올리버를 약 올리듯 쳐다봤다.
“뭐야? 너…….”
올리버는 이미 죽어있어야 할 장수진이 여기에 나타난 것에 황당했다.
심지어 그녀는 아무런 피해 없이 멀쩡한 상태였다.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고?”
장수진은 피식 웃으며 올리버를 같잖게 쳐다봤다.
“너보다 강하니까 살아있는 거지.”
“…….”
지잉-!
뒤이어 전일수, 백기완 대통령, 박이나도 같이 등장했다.
“어떻게 된 거지……?”
올리버는 상당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물어보면 우리가 친절하게 좋다꾸나 하고 대답해주겠다.”
전일수는 한껏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대답해줄게. 왜냐면 그래야 네가 더 빡칠 테니까 말이야.”
올리버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쳐다봤다.
“라일아. 그만 나와!”
“!!!!!!”
올리버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것처럼 심각하게 놀라고 있었다.
“안녕?”
warrior는 그를 쳐다보며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
“잭슨 이 미친 새끼……. 하!”
잭슨의 기억을 읽은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희대의 또라이다. 희대의 또라이야.”
잭슨의 최종 목표는 내가 아니었다.
사실 이 녀석은 올리버와 그 일당을 작살내려고 하고 있었다.
[녀석이 이렇게 한 이유…….]
디오 또한 기막혀하는 것 같았다.
너무 황당한지 말을 잇지 못한다.
“다 크리스틴 때문이지…….”
[진짜 엄청난 집착이네요.]
“그러게. 내가 크리스틴이라면 감동하기보다는 기겁할 것 같은데 말이야.”
이미 크리스틴이 죽은 상황에서 잭슨은 염세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크리스틴의 죽음에 대해 아무 조치도 안 했던 미국 정부에 대해 잭슨이 호의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나보다는 미국 윗대가리 놈들에게 더 적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잭슨이 라일 님을 이렇게 공격했던 이유는…….]
“죽고 싶었나 봐. 어차피 크리스틴이 없는 이 세상은 녀석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야.”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인가 보군요…….]
“일반화시키지 마라. 이 녀석이 모든 인간을 대표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 녀석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놈이야.”
나 역시 이 녀석을 이해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한 충격이 엄청난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그나저나……. 이 녀석. 올리버랑 그 일당들에게 이렇게 뒤통수를 치네? 크흐흐흐흐.”
[그러게요…….]
잭슨은 올리버가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올리버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 좋다고 그대로 능력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잭슨의 함정이었다.
사실 잭슨이 올리버에게 알려준 그 데이터 통로는 세계 데이터의 세계로 가는 통로가 아니었다.
그 세계는 잭슨이 만든 세계였고 올리버는 그가 남겨둔 데이터 자아를 받은 것이었다.
문제는 그 데이터 자아가 굉장히 초고밀도로 데이터가 응집되어 있었음에도 그만큼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무작정 데이터를 응집한다고 만사가 아니지. 정교하게 응집시키는 기술이 필요한데 잭슨 그 자식이 올리버에게 남겨준 자아는 굉장히 허술해.”
[맞습니다. 고밀도의 데이터 응집체이기 때문에 당장의 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그게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리고 무너지는 순간 녀석은 그냥 끝나는 거지.”
신나게 능력을 쓰면 쓸수록 그것은 제 수명을 갉아먹는 짓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은 당해주지 뭐.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의 능력은 올리버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괜히 싸웠다가는 피 볼 수도 있어.”
[하긴 그렇군요.]
디오도 내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일단은 내가 짜가 잭슨에게 당한 것처럼 속이자. 우리도 조작된 정보 정도는 보낼 수 있잖아.”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올리버가 가지고 있는 자아는 섬세한 조작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녀석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좋아. 그러면 우리는 녀석이 어떻게 나오는지나 지켜보자고. 그나저나…….”
순간 동료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할까?”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알아서 잘할 것입니다.]
디오의 말이 솔깃하기는 했으나 뒷감당이 두려웠다.
특히, 일수는 굉장히 서운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처리했다고 생각한 올리버가 이제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했고 동료들이 어떻게 대처할지도 궁금했다.
확실한 것은 동료들에게 이 순간은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었다.
“그래. 동료들에게도 숨기지 뭐.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그렇게 나는 일단은 숨어 지내는 걸로 했다.
역시나 올리버는 설쳐대기 시작했고 동료들은 내 연락만을 기다렸다.
내가 잘 살았긴 했나 보다.
다들 나를 엄청나게 걱정해주고 있었다.
너무 그러니까 미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일을 벌인 상태라 중간에 멈추기도 애매했다.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나는 계속 대기했다.
동료들은 미군과 잘 싸워주었다.
특히 전투기를 이용해 미군의 항공 모함을 박살 낸 박이나는 대박이었다.
그런 화끈한 면이 있는지 이번에 알았다.
이제껏 몰랐던 동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재밌긴 했다.
올리버는 좀 더 나중에 개입할 줄 알았는데 금방 개입해버렸다.
아무래도 동료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나 보다.
녀석이 개입한 순간 나 또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이 다치는 것까지 참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리버는 일수의 방어막을 해체한 다음 질량 변환을 해서 일수에게 묵직한 공격을 가했다.
“크윽!”
“하나도 안 아프면서 엄살은!”
“이라일!!!! 너 뭐야?!!!”
일수는 갑자기 내가 등장하자 깜짝 놀랐다.
“하하하하. 잠시 너희가 어떻게 하나 구경하고 있었지.”
“너……. 진짜 악취미야. 내가 너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일수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내게 따지기 시작했다.
“미안.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이라는 말도 있잖아.”
“개소리 집어치워라!”
역시 통하지가 않는 변명이었다.
일수는 상당히 화가 나 보였다.
할 말은 없다.
나 같았어도 열받았을 거다.
일단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래도 이렇게 널 구하러 왔잖아. 올리버 녀석 봐봐. 너에게 제대로 공격을 가한 줄 알고 우쭐해 하고 있잖아.”
“야! 잠깐!”
일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다.
“근데 우리가 이러고 있는데 왜 올리버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냐?”
내가 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올리버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일수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저 녀석은 내가 왔는지도 모르고 우리 목소리도 안 들려.”
“뭐?!!!”
일수는 경악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넌 또 어떤 식으로 발전한 건데? 진도 좀 따라갈 수 있게 천천히 좀 업그레이드해줄래?”
“그러게……. 또 이렇게 성장해버렸네? 이게 다 올리버 덕분이긴 하지.”
나는 씨익 웃으며 일수에게 다 설명해주었다.
“먼저 올리버 녀석이 나에게 조작된 정보를 보내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한번 따라 해 봤지. 이미 내가 데이터 변환에는 도가 텄기 때문에 조작된 정보를 보내는 것은 금방 익힐 수 있었어. 하다 보니 사람의 감각에다가도 조작된 정보를 보낼 수 있게 되어버렸네?”
“하하하하…….”
일수는 기막힌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올리버 저 녀석은 네가 그냥 땅바닥에 쓰러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을 거야. 내가 녀석의 오감 전부에 잘못된 정보를 보내고 있으니까 말이야. 사실 우리가 뭔 짓을 해도 녀석은 전혀 알 수 없어.”
“넌 정말……. 괴물이 되어버렸구나.”
일수는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졌다.
“뭘. 일단은 저 건방진 녀석이 어떻게 하는지나 지켜보자고.”
올리버는 이어서 장수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장수진은 올리버에게 발차기를 맞고 날아갔다.
“꺄악!!!!”
“너나 일수나. 아프지도 않으면서 비명은 왜 그렇게 질러?”
“뭐?!!!! 라일 님!!!!”
수진이는 일수랑 똑같은 반응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자초지종은 바로 설명해주었다.
수진이는 나를 재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왜?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여라’라는 말도 있잖아.”
“하!”
내 말에 수진이는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뭐야? 그 반응은?”
“지금 그걸 납득하라고 하는 소립니까?”
수진이 또한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미안하다…….”
이럴 때는 빨리 사과하는 게 낫다.
괜히 핑계 대 봤자 관계만 안 좋아질 뿐이다.
“후우……. 뭐 라일 님께서 다 뜻이 있었겠죠.”
다행히 수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냥 넘어갔다.
“근데 솔직히 서운하긴 해요. 다음에는 이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알았어.”
“근데 저는 그렇다 쳐도 이나 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 엄청 화낼 거 같은데요.”
“…….”
사실 그게 제일 걱정되었다.
게다가 올리버 저 녀석은 박이나를 타겟으로 삼았고 박이나는 두려워 떨고 있다.
몰카치고는 좀 빡셌다.
“어떻게 되겠지……?”
일단은 계속 관찰해보기로 했다.
역시나 백기완 대통령은 정의의 사도답게 올리버를 막아섰다.
하지만 그도 그만 당해버리고 말았다.
“대통령 님!”
“라일 씨!!!!”
백기완 대통령은 바로 나를 격하게 포옹해주었다.
“대…… 대통령님?”
“라일 씨. 역시 살아있었군요. 걱정했었답니다.”
대통령은 나를 더 힘차게 끌어안았다.
“컥! 숨 못 쉬겠어요. 자, 잠깐만요!!!”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한 복수인지 대통령은 나를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각하! 잘하고 있어요. 저놈은 좀 혼나야 한다고요!!”
“자, 잠깐만요!!!! 이제 박이나 씨를 구해야 해요!!!”
박이나의 데이터 쉴드가 풀리고 있었고 미군들이 그녀를 공격하려고 했다.
나는 황급히 백기완 대통령의 품에서 벗어나 그녀를 구해주러 갔다.
“꺄아아아아악!!!!”
박이나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질렀다.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그녀를 공격하려는 미군들은 모두 전기 공격을 맞고 쓰러져버렸다.
“…….”
박이나는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멋쩍게 인사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고여있었다.
“라일 씨!!!!”
박이나는 소리를 지르며 내 가슴을 주먹으로 힘차게 때렸다.
괜히 피했다가는 더 원망을 살 것 같아서 그냥 맞아주었다.
물론 고통은 없게 하면서.
근데…….
진짜로 맞았으면 엄청 아팠을 거 같다.
“진짜 너무해요!!!”
박이나는 계속해서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폭행 아니야?
“미안해요. 이나 씨. 올리버를 상대하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더 큰 원망을 듣기 전에 박이나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올리버의 자아가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고밀도의 응집체라 능력이 뛰어나서 조심할 수밖에 없던 것은 특별히 강조했다.
박이나는 여전히 나에게 서운해하는 것 같았지만 이해해 주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마요.”
“네.”
“하아…….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네요.”
박이나는 한 번 더 나를 힐끗 노려봤다.
“이제 어쩔 거야?”
일수는 나를 도와주고 싶었는지 여기에 끼어들어 주었다.
고맙다 일수야.
역시 너밖에 없다.
“어쩌긴. 녀석을 족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