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그 자식의 정체 (1)
“…그 새끼다.”
굉장히 작은 데이터의 흐름이라 하마터면 눈치 못 채고 놓칠 뻔했다.
이번에야말로 그 새끼가 누군지 밝혀낼 차례였다.
“디오. 시작하자.”
[네.]
조금만 방심해도 놓칠 것 같았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데이터의 흐름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왔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밀워키네.”
계속된 연습으로 인해 데이터 읽기 능력이 상당히 발달된 상태여서, 녀석이 흔적을 많이 지웠음에도 난 곧잘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애송이 녀석이 나를 많이 우습게 본 것 같다.
“이 데이터가 온 곳으로 바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그 녀석을 볼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놈 낯짝을 보는 건가?
지잉-!
나는 내 몸을 컴퓨터 데이터로 변환시켰고, 곧바로 디오는 그 데이터의 흐름이 온 통로로 나를 보내주었다.
“으아아아악!!!!”
20대처럼 보이는 남자가 나를 보고 기겁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진짜 귀청 떨어질 뻔했다.
나는 곧바로 그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잡았다. 이 새끼.”
“뭐, 뭡니까?”
그 남자는 상황 파악을 못 한 것처럼 보였다.
“뭐긴 뭐야? 너 잡으러 이 몸이 직접 여기에 온 거지. 그동안 재미 좀 봤냐?”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설마……. 속은 건가?”
“뭘 속아요?”
“닥쳐. 새끼야.”
나는 녀석을 집어 던진 다음 데이터 감옥에 가뒀다.
그다음 나는 그 앞에 켜져 있는 컴퓨터를 확인했다.
컴퓨터에는 별거 없었다.
단지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warrior’가 쓰여 있을 뿐이었다.
“디오. 이 자식 신상 털어서 보여줘.”
[알겠습니다.]
곧바로 디오가 보내준 정보를 확인했지만,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냥 평범한 컴퓨터 전공 대학생이었다.
이전까지 기록을 조회해봐도 별다른 것은 없었다.
나는 그 남자를 쳐다봤다.
녀석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만 있었다.
이렇게 끝나기에는 뭔가가 이상했다.
분명 그 미세한 데이터 흐름이 오는 곳은 여기였다.
그 흐름이 단순히 나를 검색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냥 나를 검색하는 데이터였다면 흐름이 정교하지 않고 거친 느낌이었겠지만, 아까의 그 흐름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느낌이었다.
마치 인위적으로 가공된 듯한 흐름이라고 할까?
“뭔가 이상해…….”
나는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녀석을 노려봤다.
“사, 살려주세요. 제게 왜 이러는 겁니까?”
녀석은 눈에 눈물까지 맺히며 애처롭게 나왔다.
[라일 님.]
갑자기 디오가 나를 불렀다.
[컴퓨터 화면을 보십시오.]
“…….”
컴퓨터 화면에는 어느새 warrior가 아니라 다른 글이 쓰여 있었다.
[엉뚱한 놈 잡고 뭐하냐? 병신아.]
“하아…….”
깊은 빡침이 올라와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곧바로 글을 쓴 데이터를 추적해봤으나 또 그 새끼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의 IP주소가 나올 뿐이었다.
“후후. 이 모든 게 너무 계획적인데?”
“어서 절 풀어줘요.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그 남자는 데이터 감옥을 쾅쾅 때리며 내게 시위해댔다.
[심장박동, 몸의 떨림, 혈압 등을 확인해 본 결과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
나는 코웃음을 친 다음 녀석을 노려봤다.
“야. 너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거짓말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며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낸 다음 그 얼빵한 녀석에게 물었다.
녀석은 긴장됐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알고 있는 거 싹 다 말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체 당신은 누굽니까? 갑자기 쳐들어 와 놓고서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까 네가 검색한 warrior다.”
“…….”
이미 알고 있던 건지 그렇게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분석해본 결과 방금 그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친절하게 디오가 또 확인 사살까지 해준다.
이 새끼 보소.
“당신이 warrior라고요?”
“그래.”
“이제 당신은 순간이동까지 할 줄 아는 겁니까?”
“딴소리하지 말고 묻는 거에나 대답해. 알고 있는 거 빨리 싹 다 안 불어?”
“대체 뭘 불라는 겁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릅…….”
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녀석은 전기충격으로 인해 발광하며 그대로 자신의 침대에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주제에 여전히 꿋꿋하게 나오는 녀석이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멋모른다고 해야 할지.
“난 네가 아는 것을 불 때까지 계속 지질 생각이거든. 되도록 빨리 부는 게 너한테 더 좋지 않을까? 난 정말 진심으로 너를 죽여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야.”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라고요!”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녀석은 다시 시원한 비명을 질러대며 쓰러졌다.
이제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어때? 계속할까? 아니면 그냥 솔직하게 말할래?”
“몰라, 모른다고….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고!!”
녀석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나왔다.
[눈물은 아파서 나는 눈물입니다.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디오의 말이 없었다면 정말 믿었을지도 모르는 연기력이다.
굉장히 고통스러우니까 그것을 빌려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나 보다.
“애석하게도 내가 속고 싶은데 속아줄 수가 없다. 내 파트너가 계속 네 신체를 분석하면서 네가 거짓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실을 말해주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거든.”
“…….”
녀석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말하기 싫어? 그러면 또 전기 맛 좀 봐야지.”
“자, 잠깐만요!!!”
녀석은 다급하게 외쳐댔다.
“마,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것 좀 그만하세요!”
“진작에 그랬으면 좋았잖아.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난리야?”
“……라이언 뱅크에서 저한테 접근해왔어요.”
호오라.
흥미가 확 생기기 시작했다.
방금 확인해본 결과 라이언 뱅크에서 이 자식에게 접근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둘 중 하나다.
이 자식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기록을 지웠거나.
만약 기록을 지웠다면 그 새끼가 그런 것이겠지.
일단은 녀석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계속해봐.”
“저에게 USB를 하나 줬고 그걸 컴퓨터에 꽂기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녀석은 자신의 컴퓨터에 꽂혀 있는 검은 USB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 USB를 뺀 다음 분석을 시도했다.
분명 평범한 USB는 아니었다.
안에 세계 데이터가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새끼도 데이터 쉴드와 비슷한 장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계속 USB를 유심히 살펴봤다.
“흐흐. 재밌네?”
답이 나왔다.
난 그 USB를 들고 녀석을 다시 쳐다봤다.
“왜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너일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대충 써먹다가 버릴 말이 필요해서 아무나 고른 게 아닐까요? 저야 돈만 받으면 상관없으니까 하겠다고 한 거고요.”
“그래?”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어?
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괘씸해서 전기로 더 지져주었다.
“사, 사실대로 다 말했는데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사실대로 말 안 했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겠어?”
“너무 그 인공지능만 믿으시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괴롭혀도 되는 겁니까?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추앙하지만 결국 그 실체는 이렇군요.”
이게 내 인내심 테스트를 하네?
나는 녀석에게 대뜸 다가갔다.
“뭡니까?”
짝!!!!!!!
“…….”
타격이 꽤 셌는지 녀석은 정신이 잠깐 나간 것처럼 보였다.
“입 달렸다고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돼. 그러다가는 이렇게 뺨이나 처맞는다고.”
“당신 정말 미치셨습니까? 힘없는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겁니까?”
짝!!!!!!
“커헉!”
“아직도 정신 못 차렸지?”
나는 USB를 녀석에게 던졌다.
“라이언 뱅크에게서 받기는 개뿔. 내가 지문까지 분석할 줄은 몰랐겠지? 거기에 묻어있는 지문이 죄다 네 것인데 어디서 약을 팔아?”
“!!!!!!”
녀석은 내 말에 화들짝 놀랐다.
“지금 네 표정을 보면 누가 봐도 딱 네가 거짓말하다가 들통났다는 걸 알 수 있겠다.”
“다, 당신…….”
“그리고 내 안에 인공지능이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건 인터넷에 공개가 안 된 정보인데 말이야.”
“그, 그건…….”
녀석은 당황한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대답 못 하겠으면 내가 대신 말해줄게. 그건 바로 네가 세계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놈이라는 거지.”
“크흑! 네놈.”
그 녀석은 곧바로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건방진 새끼가 지금 누굴 노려보고 있는 거야?”
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녀석은 또 전기충격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놈은 아마존에서 나를 공격했던 그 새끼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정체가 탄로 난 상황에서 굳이 내 공격을 맞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그 녀석에게 힘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칫!”
녀석은 곧바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쿵-!
하지만 이 멍청한 놈은 내 몸을 통과해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젠장할…!”
“그 녀석이 날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는 안 알려준 거야?”
“닥쳐!!!”
그 녀석은 갑자기 내 발에 손을 대더니 비물질화된 내 몸을 원래대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뭐……?”
“이거나 먹어라!!”
녀석은 주머니에서 전기 충격기를 꺼내 원래대로 돌아온 내 몸에 그것을 꽂으려고 했다.
“칫!”
순간 방심해서 몸이 변환되어버렸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몸을 비물질로 변환시켰다.
이 녀석이 그렇게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데 능숙한 게 아니었기에 복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전기 충격기는 내 몸을 통과해서 지나갔고 허공에서 애꿎게 탁탁 소리만 냈다.
“마, 망할……!”
회심의 공격이 너무나 간단히 막혀버렸는지 녀석은 절망한 것처럼 보였다.
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이번에는 내 쪽에서 전기충격을 먹여주었다.
괘씸해서 더 강하게 공격을 가했다.
“허억…. 허억…….”
이번에는 사선 근처까지 갔다 왔는지, 녀석은 몸을 와들와들 떨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보아하니 능력을 얻은 지 좀 안 됐나 봐. 잔재주는 부릴 줄 알지만, 너무 미숙해. 네 말대로 그 녀석이 대충 써먹다가 버리는 패로 너를 사용하는 것 같네.”
아마도 적당히 순진하고 힘을 갈구하는 녀석을 골라 꼬드긴 다음 이렇게 이용한 것 같다.
이 멍청한 놈은 그저 힘을 받았다고 좋아서 헬렐레 정신을 못 차렸겠지.
그 말로가 이거다.
“너한테 능력을 준 놈이 누군지 솔직하게 불어라. 그러면 살려줄 테니까. 진짜 마지막 기회야. 다음은 없다. 그 녀석이 너를 보호해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
녀석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지 침만 삼키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정말 다 말하도록 하죠.”
“잘 생각했…….”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창문 밖을 보니 갑자기 건설 크레인이 나타나 이곳을 부수려고 하고 있었다.
“……뭔데?”
“저건 뭡니까?”
이 얼빵한 녀석도 내 시선을 따라 크레인이 이곳을 덮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얼른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