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데이터 쉴드 성능 테스트 (4)
한밤중의 GOP.
VIP 특별지시로 두 명의 민간인이 철책선을 넘어갈 준비를 했다.
“하아…….”
전일수는 긴장되는지 계속 심호흡을 깊게 내쉬었다.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요?”
장수진은 그런 전일수가 염려되어 말했다.
자기야 이미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봤고 이런 일에 익숙했지만, 전일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장수진 입장에서 이건 전일수가 도와주는 것이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라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같이 가고자 하는 마음은 고마웠으나, 다른 일도 아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이런 위험천만한 일에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솔직히 부담이었다.
“못 하겠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세요. 저 혼자 해도 되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말은 오히려 전일수를 자극시켰다.
“아니야. 갈 거야. 너 혼자 보낼 수는 없지.”
솔직히 전일수는 많이 무서웠다.
북한으로 넘어간다는데 누가 안 떨리겠는가?
그리고 그는 군대에서 받은 훈련 외에는 전문적인 전투 훈련이라곤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냥 생 민간인이다.
이런 작전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도저히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장수진은 말없이 전일수를 쳐다봤다.
그녀는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분명 무서워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그녀를 생각해서 이렇게 같이 가겠다고 말해주는 그다.
상황이야 어찌 됐든 그런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녀의 보스인 이라일도 이렇게 말했다.
“일수 좀 챙겨줘. 무리한 부탁을 하는 와중에 이렇게 또 가중되는 부탁을 하는 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나도 말려봤지만 너를 도저히 혼자 보낼 수는 없다네……. 그 마음을 봐서라도 같이 가 줘.”
이라일이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한 적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동안 뻔뻔하게 부려 먹기만 했던 그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그만큼 친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게 그녀에게는 믿을 구석이기도 했다.
이라일이 전일수와 자신을 절대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그는 어떻게든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두려울 게 없었다.
“고마워요. 그럼 이제 슬슬 이동해 볼까요?”
그들은 철책선을 따라 산 비탈길로 내려가 군 간부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한 군인이 그들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계급이 중령인 것으로 봐 대대장인 듯했다.
“오셨군요.”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장수진과 전일수를 바라봤다.
한 명은 젊은 여자에 한 명은 그냥 특별할 것 없는 민간인.
대통령은 무슨 생각인지 이 둘은 비밀리에 북한으로 보내라고 한다.
그는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와는 달리 둘은 너무나 태평해 보였다.
“정말 건너가실 겁니까? 저기는 지뢰밭입니다. 몇 걸음 못 가서 바로 터질 텐데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걸 바라고 있어요.”
이걸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말하는 장수진을 보며 대대장은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따져봤자 의미가 없다.
이 작전은 그 warrior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분명 뭔가 다 생각이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럼 무사 귀환을 바라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철조망을 열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장수진은 가볍게 대대장에게 인사하고 철조망을 넘어갔다.
FM대로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야간 전술 보행으로 이동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그런 거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냥 막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적은 적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들키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금 걸어가는데 장수진은 뭔가 묵직하고 딱딱한 것을 밟은 느낌이 들었다.
딸칵-!
“밟아버렸네…….”
펑-!!!!!
한밤중 시원하게 폭발이 일어나 주위를 밝게 비추었다.
충격으로 인해 장수진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으앗!!!”
전일수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수, 수진아!!!!”
그는 사색이 되어 헐레벌떡 그녀가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딸칵-!
하지만 전일수도 똑같이 지뢰를 밟아버렸다.
“마, 망할!!”
펑-!!!
이번에도 지뢰가 시원하게 터져버렸다.
전일수도 장수진처럼 폭발의 충격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으앗!!!”
전일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쿵-!
그는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
전일수는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누워있는 채로 그냥 두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하늘에는 별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뭘까? 이 상황은?”
그의 몸은 너무나 멀쩡했다.
조그만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어느새 활성화된 푸른 데이터 쉴드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일수 오빠. 괜찮아요?”
데이터 쉴드 내부기능을 통해 장수진의 무전이 들렸다.
“응. 괜찮아. 너는?”
“저야. 당연히 괜찮죠. 이거 완전 재밌는데요?”
장수진의 목소리는 조금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하하하. 재밌다고?”
전일수는 기가 막히는지 실소하며 물었다.
“내열 기능까지 추가되니 아예 열이 느껴지지 않아요. 저 아까 날아가는데 무슨 놀이기구 타는 줄 알았다니까요?”
솔직히 전일수도 그런 기분을 느끼긴 했다.
“하하하하.”
그는 그냥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이미 지뢰로부터 그들이 안전하다는 것은 보장되었다.
“그러면 한바탕 놀아볼까?”
“좋죠.”
장수진과 전일수는 GOP 건너편 지뢰밭을 맘껏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펑-! 펑-!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연이은 폭발 상황에 한국과 북한 군대 양측은 깜짝 놀랐다.
한국 측이야 이미 장수진과 전일수가 그곳으로 건너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침착해졌지만, 북한은 아니었다.
애앵앵앵앵-!!!!
북한 측에서는 경보가 울리고 아주 난리가 났다.
“비상!!! 비상!!!”
북한 군인들 모두 잠에서 일어나 서둘러 전투 채비를 했다.
“무, 무슨 상황입니까?”
“지금 지뢰밭에서 계속 지뢰가 터지고 있어.”
“네?!!”
그들이 직접 보니 정말로 계속해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나도 모르지…….”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한동안 그 폭발을 계속 관찰하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폭발이 일어나는 지점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뭔가가 지금 우리에게 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망할! 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대비를 해야 해!”
북한 군인들은 정체불명의 상황에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지점을 총으로 겨누며 경계하고 있었다.
어느덧 폭발은 멈췄고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경계하고 있다가 철수하려는 찰나, 갑자기 풀숲을 해치며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샤사삭-!
“전부 다 사격 준비.”
북한군 지휘관은 침을 꿀꺽 삼키며 청각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윽고 정체불명인 사람 두 명이 등장했다.
“누구냐?!!!!”
지휘관은 그들을 향해 외쳤다.
어두웠기 때문에 그들의 실루엣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누구냐니까?!!! 신원을 밝혀!!”
“…….”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셋 셀 동안 대답하지 않으면 바로 사격하겠다. 하나!”
그들은 지휘관의 경고를 무시하고 가까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당장 멈춰라! 둘!”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말없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셋! 모두 사격해!!!!!”
지휘관이 손을 내리며 명령하자 부하들은 일제히 그곳을 향해 사격을 실시했다.
투두두두두두-!
요란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챙-! 챙-!
그와 동시에 총알이 튕겨 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뭔가 이상한데요? 전혀 공격이 통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두 명이 총알 세례에도 계속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자 북한 군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수류탄 투척해!”
이번에 그들은 일제히 수류탄을 꺼내 목표를 향해 던졌다.
펑-! 펑-!
수류탄들이 요란하게 터지면서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주위는 고요해졌다.
“아무래도 사살한 것 같습니다.”
“가서 확인해봐.”
“네!”
북한 군인들은 아까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있었던 곳으로 다가갔다.
“헉!”
그들은 그곳에 갔다가 그들을 향해 웃고 있는 두 남녀를 보며 기겁했다.
“으아아아아!!!”
깜짝 놀라서 북한 군인들은 다시 그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챙-! 챙-!
하지만 그들이 쏜 총알은 다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뭔지는 알 거 없어.”
장수진은 순식간에 북한 군인에게 돌진했다.
“뭐, 뭐?!!!”
퍼억-!
장수진의 발차기를 정통으로 얼굴에 맞은 그 군인은 그대로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북한 군인들은 그것을 보며 경악했다.
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장수진에게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
투두두두두두-!
하지만 차라리 도망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퍽-! 퍼억-!
그들은 차례로 장수진의 무술에 쓰러져나갔다.
“나도 도울게.”
전일수도 그 앞에 있는 북한 군인 한 명을 타겟으로 삼아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퍽-!
“크윽!”
시원하게 공격이 들어가긴 했으나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군인은 할 만하다고 느꼈는지 바로 반격을 가했다.
그도 전일수의 얼굴에 주먹을 세게 날렸다.
퍽-!
“끄아아아악!”
그는 데이터 쉴드의 방어로 깨져버린 손을 가누지 못한 채 비명만 질러댔다.
“어우. 야! 아프겠다.”
전일수는 쓰러져서 발버둥 치는 그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이만 기절해 있으세요.”
퍼억-!
전일수는 그 군인의 얼굴에 사커킥을 날렸다.
“커헉!”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축 늘어졌다.
“이런 전투는 처음이신 것 같은데 꽤 하시네요.”
“하하하하. 뭐 이런 걸 다…….”
장수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일수는 어느새 군인들이 전부 다 제압되어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수진이 수십 명의 적들을 제압하는 동안 그는 고작 단 한 명을 처치한 것이었다.
“흠. 흠.”
전일수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해댔다.
장수진은 그것을 보며 피식했다.
“칭찬 진심이에요. 처음치고 정말 잘했어요.”
“그래?”
금방 다시 반색하는 전일수였다.
“네.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나아가자고요.”
“오케이!”
장수진과 전일수는 그렇게 거침없이 북한군들을 휘젓고 다녔다.
총알과 수류탄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들은 두려울 것 하나 없었다.
장수진은 완전히 이 일을 즐기고 있었다.
간만에 느껴보는 타격감에 그녀는 희열을 느꼈다.
퍼억-!
“와. 진짜 살겠다.”
찰진 타격 소리에 그녀는 이제껏 연구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풀리고 있었다.
퍼억-! 퍼억-!
“이제 할 만한데?”
전일수도 어느새 전투에 익숙해져서 적들을 능숙하게 해치워나가기 시작했다.
장수진처럼 전투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 그가 적들을 제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게 그들은 한 부대를 작살 내고 있었다.
“대충 이 정도만 하고 이제 포를 찾아볼까요?”
“오케이.”
그들은 부대를 뒤지며 포를 찾기 시작했다.
적들을 협박하며 찾으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장수진과 전일수는 마침내 포 앞에 도착했다.
“찾았네요.”
“좋아! 그러면 실험을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