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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유능한 따까리와 든든한 협업자 (3) (26/201)

25화. 유능한 따까리와 든든한 협업자 (3)

“잠시만 실례할게요.”

거기서 바로 전화 받기는 좀 그래서 밖으로 나왔다.

“어. 그래. 수진아. 무슨 일이야?”

“백기완 의원과 만남 준비됐습니다.”

“그래~ 수진아. 이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 왜 뺐어?”

“······”

핸드폰 너머로 희미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 반응이 웃겨 나는 피식했다.

“뭐 수고했다. 언제 시간 되신다고 하디?”

“다음 주 월요일 점심에 어떠냐고 물으십니다.”

“월요일이라······”

스케줄을 확인하니 딱히 일이 없었다.

“좋아. 그때 만나자고 해. 열두 시나 보면 되겠다.”

“알겠습니다.”

“모임 장소는 내가 마련한 곳에서 만났으면 싶은데.”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좋아. 정확한 주소는 문자 메시지로 보낼게.”

“네.”

장수진은 꽤 순종적으로 변해있었다.

이 녀석.

이렇게 나오니까 꽤 마음에 든다.

“수진아. 그렇게 예의 바르게 나오니까 내가 네 흑역사 자료 말소할 의지가 막 생긴다. 앞으로 그렇게만 해라.”

“······네.”

방금 좀 망설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자비로우니 그냥 넘어가 주지

“그나저나 이호영 원장은 뭐래?”

“어떤 거 말씀입니까?”

장수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가 너 좀 쓰겠다는 거 말이야.”

“아······”

“뭐래?”

“그냥 알았다고 하십니다.”

“뭐야. 그게 끝이야? 싱겁네.”

거센 저항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호락호락하게 넘어갔다.

“이미 국정원은 라일 님의 힘을 충분히 체감했습니다. 굳이 저 하나 때문에 라일 님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하긴. 당연한 건가? 녀석들 warrior를 추적하려고 너무 애쓰더라고. 불가능한 것을 굳이 끝까지 붙들고 있으니까 짠하기는 했어.”

국정원 녀석들.

이제까지 나 같은 놈은 처음 봤겠지.

나와 사이버전으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테다.

싱거워서 김빠지기는 한다.

나를 좀 더 자극해줘서 재밌게 해주기를 바라는 변태적인 심성이 올라온다.

“아무튼 수고했다. 그럼 의원님께 전해 줘.”

“네.”

“아! 그리고 사례금 보냈으니까 확인하고.”

“네?!!!”

장수진은 내 말에 깜짝 놀랐다.

“뭘 놀래? 노동에 합당한 보수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거지. 뭐 많이는 아니야. 적당히 넣었어.”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앞으로 계속 내 말 잘 들어. 잘 안 들으면 사례금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까 각오하고.”

“잘 나가다가 또······”

장수진의 소심하게 반항했다.

솔직히 그 반응이 좀 귀엽긴 하다.

“밥 먹고 있는 중이니까 이만 끊는다. 그럼 수고.”

“예.”

좋아.

백기완 의원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할 차례다.

***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백기완 의원은 장수진과 통화를 마쳤다.

“하아······”

그는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처음 국정원 직원에게 연락 올 때는 어이가 없었다.

다짜고짜 warrior에 대해 물어보면서 그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솔직히 좀 무례하다고 느꼈고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warrior다.

녀석은 지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온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이 그를 경계하고 있다.

이유는 그가 맘만 먹으면 어떤 비리든 다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warrior가 갑자기 나를 만나자고 한다.

왜?

어째서?

그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warrior는 이제껏 각종 비리들을 밝혀왔다.

일평생 그는 비리, 뇌물과는 아예 벽을 두고 살아왔다.

그는 그 난잡한 정치계에 몸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렴이라는 소신을 끝까지 지켜왔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맘먹고 꼬투리를 잡으면 뭔가가 나올 수도 있다.

그는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안해하며 지내느니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차라리 빨리 warrior를 만나고 싶었다.

“뭘까? 대체 왜?”

그는 답답한 마음에 먼 산만 바라봤다.

***

월요일.

오전 11시 50분.

서울 근교에 있는 한 고급 한정식집에서 나는 먼저와 백 의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밖에서 직원이 안내하는 소리가 들렸다.

온 것 같네.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검은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등장했다.

백기완 의원이었다.

그는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부진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 꽤 세련되어 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은 사람을 뭔가 압도하게 만들었다.

겉모습만 보더라도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누구나 눈치챌 것이다.

그는 비서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warrior입니다. 본명은 이라일입니다.”

“이라일 씨. 반갑습니다. 국회의원 백기완입니다.”

백기완 의원은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가볍게 그의 악수를 받았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으시죠.”

나는 그를 자리로 안내했고 그는 미리 깔아둔 방석에 앉았다.

“실례지만 의원님과 단둘이 있고 싶습니다. 비서는 나가 있어도 괜찮으실련지요?”

이 말에 잠시 백기완 의원과 비서의 눈빛 교환이 있었다.

보아하니 별로 안 내켜 하는 눈치다.

혼자 있기는 좀 그렇다 이건가?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꺼려하는 눈치였지만 백기완 의원은 곧바로 비서에게 지시해 그가 나가 있도록 했다.

아무래도 되도록 내 심기를 건들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감사합니다. 좀 은밀한 대화를 하고 싶어서요.”

내 말에 백기완 의원의 표정에서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은밀한 대화라. 솔직히 좀 불안한 말이군요.”

“하하하.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좀 먹으면서 이야기하죠.”

나는 음식이 나오도록 주문했다.

각종 고급 한식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많이 드십시오. 의원님을 위해 특별히 여기서 가장 비싼 걸로 주문했습니다.”

“하하.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백기완 의원은 친근한 어조로 말하긴 했지만 뭔가 긴장하고 있고 나를 경계하고 있는 게 역력했다.

하긴 그러는 게 당연하기는 했다.

뭔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다짜고짜 그 warrior가 만나자고 했으니 이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백기완 의원은 음식이 나왔음에도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안심시켜주려고 최대한 편한 태도로 말을 걸었다.

“오시기 전에 뭘 먹고 오신 것은 아니지요?”

“하하. 점심 약속이 잡혀 있는데 설마 그랬겠습니까? 아침도 안 먹어서 지금 많이 배고픕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라일 씨도 배고프실 텐데 드시지요.”

“그래도 저보다 어른이신데 의원님께서 먼저 드셔야 제가 먹지 않겠습니까?”

“어이쿠. 저 때문에 못 먹고 있었다니 이거 실례를 범했군요.”

백기완 의원은 서둘러 음식을 뜨기 시작했다.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뭔가 눈치를 준 꼴이 되어버린 것 같다.

[큭!]

뭔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디오야. 너 설마 비웃은 거냐?’

[아닙니다.]

‘그러지?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웃긴 했는데 비웃지는 않았습니다.]

‘······’

디오.

이 자식 뭔가 요새 기어오른다.

날 잡고 교육 좀 시켜야겠다.

그런데 전부터 느낀 건데 가끔 디오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이질감이 느껴질 때는 마치 디오가 사람 같다랄까?

개발자가 그렇게 개발했겠지 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이전부터 신경 쓰이긴 했다.

“갑자기 멍하니 왜 그러십니까?”

백기완 의원은 날 의아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사람을 불러놓고 잠시 딴생각을 해버렸다.

이건 지금 당장에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일단은 앞에 있는 백기완 의원에게 집중하자.

“아닙니다. 그냥 뭐가 갑자기 생각나서요. 별일 아닙니다.”

나는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의원님께 어떠한 적의도 없으니까요.”

“하하하. 그렇다면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라일 씨와 이렇게 만나는 게 되게 부담스럽긴 합니다.”

백기완 의원은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서 저도 지금 의원님과 같은 입장이라면 두려웠겠지요. 아무래도 제가 이제까지 한 게 있으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라일 씨를 멀리하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갑자기 왜 저를 만나자고 하시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은밀할 대화라고 해서 비서까지 내보냈으니 뭔가 가벼운 대화는 아닐 것 같아서요······”

백기완 의원은 내가 빨리 본론으로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았다.

뭐 나도 딱히 이야기를 돌릴 생각은 없다.

“맞습니다. 가벼운 대화는 아니죠. 사실 오늘 제가 의원님을 만나자고 한 이유는 의원님께 뭘 제안하고자 해서입니다.”

“제안이요?”

백 의원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대체 어떤······”

“전 의원님을 당 대표로 만들 생각입니다.”

“네?”

그는 내 말에 마치 잘못 들었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무슨······”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바른정치당의 의석수도 제가 과반수를 넘게 차지하도록 만들어 드릴 생각입니다.”

“!!!!!!”

백 의원은 경악하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오죽 놀랐는지 딱 얼굴에 놀란 티가 확 났다.

“저는 불법 청탁은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만약 그럴 생각이시라면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는 정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까 조금이라도 풀렸던 경계심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하하하.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역시 청렴결백하시군요. 제가 그래서 의원님을 선택한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백기완 의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모든 국회의원들의 비리를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에 의원님을 제외하면 죄다 비리를 저질렀더군요. 의원님만이 유일하게 비리가 단 한 건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깨끗하고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하자가 제 신념이니까요.”

“하하하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이 자리까지 올라오시다니. 아무나 못 할 일입니다.”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진심으로 그를 칭찬했다.

“저는 의원님과 불법을 저지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의원님께 어떠한 돈도 드리지 않을 것이며 제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대체 무엇을 위해 저를 당 대표로 만들고 당 의석 수도 과반수가 넘게 확보해 준다는 말입니까?”

“단지 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게 무슨······”

백기완 의원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의원님께 바라는 것은 의원님께서 청렴결백하신 것처럼 다른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도 그렇게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겁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법 하나만 제정해주시면 됩니다.”

“법이요?”

“네. 이름하여 warrior 특별법입니다.”

125화. 악당본색(惡黨本色) (4)

“넌 지금부터 몬테레이에 있는 공장을 운영한다.”

“네?”

디에고는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영광인 줄 알아라. 그 공장은 내 아버지가 세운 공장이었으니까. 한때 네 아버지 패밀리에게 강탈당했다가 지금은 내가 다시 차지했지.”

“그 소중한 곳을……. 제가 정말 운영해도 되는 겁니까?”

“응. 믿고 맡기는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디에고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방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저는 이제까지 공장을 운영해본 적이 없는데요.”

“그건 걱정 마. 내가 친절하게 세세하게 쓰여 있는 메뉴얼을 줄 거니까. 거기에 쓰여 있는 대로 따라가면 돼. 대신 그걸 잘 숙지하는 것은 네 몫이겠지. 어때?”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작네?”

“알겠습니다!!!!”

바로 힘차게 대답하는 녀석이었다.

“한 가지 여쭈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

“그 공장은 무슨 공장으로 사용될 것입니까?”

“좋은 질문이야. 그 공장은 이제 군수공장이 될 거야.”

“예?”

계속 놀라기만 하는 디에고였다.

“그만 좀 놀래라. 그래 가지고 심장이 남아 나겠냐?”

“아니…… 그게 무슨……?”

“아! 너는 아직 모르려나? 미국과 한국이 곧 전쟁을 벌일 건데 멕시코에서 한국을 도와주기로 했어. 고로 멕시코도 미국과 싸울 거야.”

“!!!!!!!”

녀석은 이제껏 놀랄 것 중에 가장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리스마 넘친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저렇게 놀라니까 바보 같긴 하다.

“농담…… 이시죠?”

“내가 굳이 너한테 농담을 할 이유가 있을까?”

“…….”

그래.

차라리 농담이기를 바랐겠지만 명백한 팩트야.

“한다고 한 순간부터는 발 못 뺀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마.”

“하, 하하. 정말……. 복수를 이런 식으로 하시다니. 결국 아버지 선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저까지 괴롭히실 생각이신가요?”

…….

얘 지금 뭐라는 거야?

“착각하지 마. 절대 그런 거 아니니까. 이건 오히려 갱생의 기회를 주는 거야.”

“네?”

“넌 지금 전 세계를 지키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거야. 겉으로는 미국과 한국의 전쟁이지만 실상은 전 세계를 파괴하려는 놈과 싸우는 거니까. 네가 도와주면 우리는 그 자식을 막을 수 있어. 어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짐 챙기고 떠날 준비해.”

디에고는 내 지시대로 신속하게 행동했다.

난 아버지의 공장을 데이터 쉴드 공장으로 재가동할 생각이었다.

마침 몬테레이가 지리적으로 미국과 가깝기 때문에 바로바로 물품을 보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데이터 쉴드 공장으로 바꾸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차피 연천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데이터 메뉴얼을 기계에다 넣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보급 지점까지 확보해 놓았다.

***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잭슨은 대통령 집무실 의자에 앉아 책상에 발을 올리고 볼펜만 돌리고 있었다.

비서는 잭슨의 건방진 태도가 불편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가 어떤 놈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 멍하니 있지 말고 커피나 내오시지?”

잭슨은 마치 익숙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비서에게 커피를 요구했다.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자존심이 굉장히 상했지만 잭슨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동료는 잭슨의 부당한 명령에 항의하다가 그 자리에서 잭슨에게 살해당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지 아무도 잭슨의 행동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애꿎은 그녀의 동료만 그렇게 죽었다.

그녀는 당장에 이 일을 밖에다가 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되려 그녀만 화를 입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잭슨이 계속 자기를 위해 일해줄 것을 요구했었기 때문이다.

비서는 벌벌 떨며 잭슨에게 커피를 내왔다.

그녀가 너무 떨려서 커피 물이 흔들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왜 이렇게 떠는 거야? 정신 사납게!”

잭슨은 갑자기 일어나 비서의 양 볼을 세게 잡았다.

“꺄악!!”

“닥쳐!!!”

잭슨의 윽박에 비서는 황급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웠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하지만 공포로 인해 흘러 내려오는 눈물은 참지 못했다.

“하, 하핫. 하하하하하.”

잭슨은 그녀의 눈물을 보며 섬뜩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에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자아내졌다.

“두려워? 이 내가 두려운 거야?”

“아, 아닙니다!”

비서는 황급히 부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점점 더 떨려왔다.

“거짓말을 하네?”

“아, 아닙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부정했다.

하지만 잭슨은 믿지 않았다.

“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필요 없는데. 오늘부터 해고니까 나오지 마.”

그녀는 그만두라는 잭슨의 그 말이 그렇게 좋게 들릴 수가 없었다.

비서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가 품에서 권총을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잭슨은 비서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비서는 심하게 오들오들 떨며 잭슨에게 물었다.

“쓸모없으면 죽어야지.”

“네?”

탕-!

잭슨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머리에 구멍이 난 비서는 힘없이 털썩 쓰러졌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잭슨은 자신의 얼굴에 튀긴 피를 닦으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또 죽이셨습니까?”

총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온 올리버가 잭슨에게 말했다.

“거짓말을 하더라고. 짜증 나게. 쓸모없어져서 죽여버렸어.”

“…….”

CIA 국장 자리에까지 올라 온 올리버는 이제껏 수많은 미친놈을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잭슨처럼 미친놈은 처음 봤다.

잭슨은 사이코패스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이 녀석은 매우 강했다.

올리버의 마음 한편에는 자신들이 잭슨에게 붙은 게 과연 잘한 짓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빨리 저 시체 덩어리 좀 치워주실래요? 역겨워서 못 보겠으니까요.”

“……네.”

올리버는 잭슨의 말을 잠자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에게 붙어버린 이상 되돌릴 수가 없었고, 지금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되려 그가 화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올리버는 부하들을 불러 입단속을 시킨 다음 비서의 시체를 치우도록 했다.

“고마워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잭슨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잭슨이 미쳐가는 게 점점 더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로버트 의원을 죽인 이후로 증상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피 맛을 제대로 알아버린 건가?’

그 생각이 들었을 때 올리버는 온몸에 소름이 확 끼치는 걸 느꼈다.

“그나저나 올리버 국장. 제가 부탁한 것은 어떻게 됐어요?”

잭슨은 한국에 스파이를 보내 warrior의 정황을 파악하라고 올리버에게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워낙 감시가 삼엄해 스파이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되려 스파이들이 붙잡히는 상황까지 발생해버리고 말았다.

“노력하는 중이지만……. 솔직히 잘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잘 안 되고 있으면 안 될 텐데요?”

잭슨은 볼펜만 유심히 살펴보며 무심히 말하다가 갑자기 하던 짓을 멈추고 올리버를 쳐다봤다.

그는 올리버를 향해 씨익 웃었다.

올리버는 온몸이 오싹해져서 하마터면 다리가 풀릴뻔했다.

“warrior 그 녀석이 대비를 잘해 놨는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계속 녀석을 캐보고 있지만,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단 말이에요.”

잭슨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요. warrior가 지금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에요.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을 거라니까요? 근데 제가 그것을 알 수 없어요. 더 깊게 접근해봤다가는 오히려 역으로 당할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

잭슨은 올리버에게 침까지 튀겨가며 넋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당장 warrior가 뭐 하고 있는지 알아내서 저한테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잭슨은 올리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올리버는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았다.

그는 ‘네가 모르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내?’라고 따지고 싶기도 했지만, 꾹 참았다.

“빨리 알아내 주세요.”

“……네.”

“가봐요.”

잭슨의 명령에 올리버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잭슨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드네.”

아까 그가 말했다시피 잭슨은 warrior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었다.

warrior는 철저하게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숨기고 있었다.

물론 잭슨만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었다.

잭슨 또한 warrior가 자신을 추적 못 하도록 철저하게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했지만, 둘 사이에는 엄청난 정보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warrior가 잭슨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 이렇게 보안에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잭슨은 지금과 달리 warrior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정보를 얻어내며 warrior를 죽일 계획을 세웠었다.

잭슨은 아마존에서 확실하게 warrior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warrior의 반격이 매서웠고, 그의 회심의 공격은 막혀버렸다.

그로 인해 상황은 오히려 잭슨에게 안 좋게 흘러가 버렸다.

warrior가 그의 존재를 알아버렸고 그에 대한 대비도 철저하게 해 나갔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예 실마리 하나조차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잭슨은 아마존에서의 실패를 통탄해했다.

정체를 계속 숨기면서 더 확실해졌을 때 warrior를 공격했었어야 했다.

잭슨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야? 그게 뭘까?”

warrior는 에이든 대통령과 합작해 내란을 조장하려 했다.

꽤 좋은 시도이긴 했지만, 정치인들 대부분이 그의 편인 상황에서 여론 따위야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면 잠재울 수 있는 것이었다.

국민들이 반대한다고 한들 잭슨은 그냥 무시하고 계속해서 전쟁을 하는 쪽으로 밀어붙일 계획이었다.

warrior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국민들을 선동한 선에서 끝낼 리가 없어. 뭔가 허술해. 마치 여기로 시선을 돌리게 한 다음에 실은 다른 일을 꾸미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잭슨은 warrior가 어떤 일을 꾸밀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녀석은 분명 한국에서 싸울 생각은 없을 거야. 그 작은 땅덩어리에서 싸웠다가는 본인들 피해만 막심할 테니까. 그렇다고 미국으로 역으로 쳐들어올 리는 없는데 말이야…….”

잭슨은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혼잣말을 하다가 멈췄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잭슨은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 녀석, 멕시코 대통령과도 꽤 사이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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