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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유능한 따까리와 든든한 협업자 (2) (25/201)

24화. 유능한 따까리와 든든한 협업자 (2)

“백기완 의원을 만나보고 싶어. 자리 좀 만들어줘.”

“네?!!”

장수진은 아연실색했다.

백기완 의원.

원내 야당 중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바른정치당 소속 의원이다.

당의 차기 대표로 거론될 정도로 당내에서 영향력이 센 인물이다.

앞으로 내 힘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그와 작업해야 할 일이 있다.

“제가 그걸 어떻게······”

“그건 너가 알아서 해. 유능하잖아. 참고로 내 앞에서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마. 그랬다가는 바로 네 흑역사 다 공개해 버릴 테니까.”

“······”

장수진은 거의 울 표정이었다.

방금까지 흉칙한 칼을 들고 날 겁박하려는 사람이 맞나 싶다.

“그런 표정 지어 봤자 안 봐줘. 그러게 왜 함부로 남의 집에 쳐들어오냐? 다 너가 자초한 거야.”

“······언제까지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이 장수진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인가 보다.

그걸 걸고 넘어지니 바로 꼬리를 내린다.

좋은 약점을 얻었다.

“최대한 빨리. 내 연락처 보낼 테니까 일 진행되면 거기로 알려줘. 그리고 핸드폰 다시 확인해 볼래?”

장수진은 핸드폰을 확인하고 또 기겁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건 또 대체······”

오늘 얘 몇 번이나 이런지 모르겠다.

다 내 탓이긴 한데······

장수진이 이번에 놀란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국정원이 저지른 각종 비리를 증거자료와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국정원 녀석들

그동안 영양가 없는 짓거리도 많이 했다.

간첩 조작을 시작으로 여당을 위한 댓글 및 인터넷 여론 조작, 각종 정치 공작, 메신저 사찰을 포함한 각종 사찰활동 등등······

공개하면 난리가 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혹시 국정원장이 자기 허락도 안 맡고 내가 널 맘대로 이용해서 싫어할 수도 있잖아. 만약 뭐라 하면 그거 보여주면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 ‘그거 싹 다 공개 당해서 ㅈ되기 싫으면 잔말 말고 장수진 내 밑에서 일하게 해.’ 알았지?”

“······”

장수진은 할 말을 잃은 채 숨만 크게 쉴 뿐이었다.

“뭐해? 가봐. 내가 좀 전에 격투기 운동 좀 했더니 피곤해. 좀 쉬어야겠어.”

“······알았습니다.”

“오케이. 약속 잡으면 연락 줘. 잘 가라.”

그래도 마지막은 부드럽게 인사해줬다.

장수진은 뭔가 굉장히 억울하고 분한지 침울한 얼굴로 집을 나갔다.

“좋아! 이제 유능한 국정원 똘마니도 생겼네.”

[축하드립니다.]

“하하하하. 표정 봤냐? 완전 통쾌하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남아있는 물을 모두 들이켰다.

“날 건들면 아주 다 주옥되는 거야.”

***

장수진은 곧바로 이호영 원장에게 가서 겪었던 일을 모두 보고했다.

“하아······”

이호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장수진 말대로 warrior는 이라일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낸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차라리 알아내지 못한 편이 더 나을 뻔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쩌긴······그 녀석 말대로 해야지······그거 공개되면 그냥 다 끝나는 거야.”

이호영은 체념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잠자고 있던 괴물의 코털을 건드려 버린 것 같아. 어쩌면 이 정도에서 끝난 게 다행일지도.”

이미 이호영 원장은 warrior가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이제껏 국정원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좌절감을 느끼게 한 존재는 그가 처음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다 부족해서입니다.”

장수진은 암담해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야. 상대가 너무 강한 거지.”

이호영은 씁쓸하게 말했다.

“녀석이 부탁한 대로 백기완 의원과 자리를 마련해주게.”

“네······.”

장수진은 이호영에게 인사를 한 다음 물러났다.

“warrior······이번엔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

이미 warrior는 충분히 많은 일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갑자기 백기완 의원이라니······

이호영 원장은 왠지 조만간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나는 오랜만에 박이나와 일수를 만났다.

강기석과 양기택을 조지느라 이 사람들에게 전혀 신경 못 쓰고 있었다.

일을 맡겨두고 그동안 너무 나 몰라라 한 것 같아 좀 미안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마음껏 드세요. 오늘은 제가 쏩니다.”

나는 특별히 아주 초호화 레스토랑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이런 곳은 나 역시도 처음이다.

갖가지 화려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셋 다 나온 음식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너······이런 걸로 내가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다면······아주 큰 오산이야.”

일수는 음식을 오물거리면서 말했다.

녀석은 벌써 한 접시를 비운 상태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잘 먹는데?”

“그럼! 내가 그 고생했는데 이거라도 먹어야지!”

일수는 들고 있던 포크를 나에게 겨누며 말했다.

녀석이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난 일수에게 디씨소프트에 남아 우리 게임을 계속 개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지금 신작을 개발하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현재 디씨소프트는 나 때문에 그야말로 아주 개 작살이 나 있는 상황.

디씨소프트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레인 오버 시리즈가 처참하게 망하면서 회사는 거의 부도 직전까지 몰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이곳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바빴다.

이런 와중에 일수는 내 부탁대로 회사에 남아 신작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들 날 미친놈으로 여겨. 지금 회사 망하게 생겼는데 신작이나 개발하고 앉아 있다고. 지금 너 하나 믿고 보증까지 서가면서 팀원들 나가는 거 막았다!”

“하하하하하하.”

그러면 안 되는데 일수의 상황이 너무 웃겨서 그만 박장대소해버리고 말았다.

“야!!! 웃어?!!!”

결국 일수의 헤드락으로 응징을 당했다.

“하, 항복!!! 미안해!!!”

“짜식이 말이야.”

내 사과에 일수는 헤드락을 풀어줬다.

박이나는 이런 우리 모습이 우스운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음식을 먹는 것마저 우아했다.

“이나 씨. 진짜 얘 너무한 것 아니에요?”

“정말 너무하네요.”

박이나는 일수를 두둔해줬다.

“좀만 참아줘. 분명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그리고 내가 힘내라고 선입금까지 해줬잖아.”

“그건 땡큐. 역시 금융치료만 한 게 없더라고. 음~ 맛있네. 아무튼 오늘 이렇게 해주니까 한번 봐준다.”

일수는 호쾌하게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진짜 맛있긴 했다.

비싼 건 다 이유가 있다.

박이나 쪽을 쳐다보니 그녀 또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기품있게 와인을 마시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나 씨는 잘 준비하고 계세요?”

“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시뮬레이션하면서 계획 세우고 있는 중이에요. CEO는 예전부터 꿈꿔왔던 거라 재밌게 준비하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곧이니까 마음의 준비 하시고요.”

“네.”

박이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요?”

“왜 라일 씨가 직접 운영 안 하고 저에게 맡기는 거예요? 솔직히 저보다는 라일 씨가 더 유능하시잖아요. 아니 유능한 정도가 아니죠. 라일 씨는 그냥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인데.”

“그니까 제가 안 하고 맡기는 거죠. 저는 더 거대한 목표가 있으니까요.”

“아······하긴요. 라일 씨 정도나 되는 사람이 고작 디씨소프트를 운영하긴 아깝죠.”

내가 말해놓고도 좀 재수가 없었는데 박이나는 거기에 호응해줬다.

“솔직히 저 처음 계획서를 받았을 때는 황당무계했어요.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었죠. 근데 실제로 지금 계획서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걸 지켜보면서 감탄하고 있어요.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디씨소프트가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근데 라일 씨는 그런 디씨소프트를 완전히 계획대로 무너뜨렸죠. 전 이제 라일 씨가 할 거라고 맘먹은 일은 무엇이든 다 될 거라고 완전히 확신해요. 라일 씨는 그만큼 뛰어나시니까요.”

“하하. 이거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이나 씨도 뛰어나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믿고 맡기는 겁니다. 부디 뛰어난 능력만큼 잘 운영해주시길 바랍니다.”

“맡겨주세요. 최선을 다해 훌륭하게 운영할 테니까요.”

박이나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며 말했다.

“근데 이게 또 운영만 문제가 아니라 게임도 좋은 게 나와야 하는데요. 일단 이번에 나올 우리의 신작이 어떠냐가 관건입니다.”

“저 사실 설명을 제대로 못 들어서 궁금했어요. 대체 어떤 게임을 만들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제가 대표가 되려면 회사 게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지당하신 말씀. 그러면 그건 한번 우리의 개발자님께 들어보도록 할까요?”

나는 일수 쪽으로 턱을 내밀며 브리핑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내 신호를 받았다.

“그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번 신작은 저와 라일이의 공동 아이디어가 들어간 게임이죠. 이 게임엔 요즘 글로벌 트렌드인 메타버스 개념이 들어가 있어요. 그니까 쉽게 말하면 굉장히 현실감도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사실 이건 이미 예전부터 저희가 생각했었던 겁니다. 그런 게 현재 글로벌 트렌드가 되었으니 역시 우리의 안목이 뛰어나다랄까요?”

일수는 자화자찬하며 신나게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이번 게임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가져와 박은 듯한 세계를 만들 거예요. 거기에서 몬스터도 잡고 레이드도 뛰는 거죠. 스토리 진행은 그렇게 하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컨텐츠도 준비할 겁니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웬만하면 거의 다 할 수 있게요. 예를 들면 건축, 공연, 스포츠, 쇼핑 심지어 데이트까지.”

“와~ 자유도가 엄청난데요? 근데 그러면 구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핵심을 찔렀다.

사실 우리가 이제야 이 아이디어를 꺼냈던 이유도 바로 구현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디어야 말만 하면 장땡이겠지만 그것을 구현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맞습니다. 쉽지 않죠. 그래서 지금 프로그래밍 팀에서 온갖 욕을 다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기획팀 죽여버릴 거라면서요. 하하하. 저도 라일이 욕하면서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것도 며칠 연속 휴일 없이 야근하다가 간만에 갖는 휴식이에요.”

일수는 그러면서 나에게 일별을 보냈다.

하하하.

쌓인 게 좀 많네?

하긴 내가 요새 신작 쪽에 통 신경을 못 쓰긴 했다.

“구현하는데 어렵거나 막히는 부분 있으면 다 나에게 가져와. 내가 다 만들어 줄 테니까.”

“안 그래도 어려운 거 다 대기시켜 놨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허허. 이거 놀고 먹으려고만 하고 안 되겠네.”

“지금 집에도 못 가고 거의 회사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그런 섭한 말을······”

일수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살기가 느껴졌다.

이제 그만 놀려야겠다.

더 놀렸다가는 손절 당하겠다.

“아무튼 이번 게임은 우리의 야심작이에요. 분명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겁니다.”

“맞아! 우리 신작 때문에 레인 오버 따위는 이제 기억도 안 날 거라고!”

일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오케이. 아무쪼록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건배할까요?”

“좋죠!”

“오케이!”

“건배!!!!!!”

우리는 모두 와인잔을 경쾌하게 부딪쳤다.

띠리리리~!!!

그렇게 건배를 하고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나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장수진]

준비가 됐나 보군!

124화. 악당본색(惡黨本色) (3)

“선전포고라니, 대체 왜……?”

박이나는 충격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잭슨. 그 자식이 결국 일을 저지른 거죠.”

“라일 씨!”

통화를 마친 백기완 대통령은 황급히 나를 불렀다.

“지금 빨리 청와대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네. 바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백기완 대통령은 집무실로 돌려보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정말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박이나는 못 믿겠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네. 정말 그럴 것으로 보이네요.”

“…….”

박이나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경악했다.

나는 그녀에게 기사를 읽어주었다.

“warrior가 미국 대통령 에이든을 꼬드겨서 미국을 망하게 할 생각이었다. 에이든은 그걸 들키자 한국으로 도주……. 하핫!”

기사를 읽다가 기가 막혀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진짜.

“진짜 언론은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것은 최고라니까요.”

“근데 이런 걸로 전쟁이 가능한 거예요?”

“전쟁하고 싶으면 무슨 이유를 갖다 못 붙이겠어요? 아무거나 적당한 이유 골라잡으면 되죠. 이게 적당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요.”

“…….”

박이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은 거 맞죠? 라일 씨께서 막을 수 있는 거죠?”

“최선을 다해 임해야죠.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장담은 못 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역으로 당하는 것은 나일 테니까.

“대신 이나 씨도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더 쉽게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어요.”

“예. 저도 최선을 다해서 라일 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일단은 돌아가셔서 쉬고 계세요. 전쟁이 당장에 일어나지는 않을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박이나와 가볍게 작별 인사를 한 뒤 그녀도 집무실로 돌려보냈다.

곧바로 나는 에이든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warrior 님.”

“뉴스 확인하셨나요?”

“네……. 정말 황당하더군요. 그 빌어먹을 자식들.”

에이든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큰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한순간에 자신을 역적으로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저희 쪽에서도 이제 나서야죠. 그래도 다행히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부통령의 입장에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많네요. 여론전에는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 같아요.”

“안 그래도 방금 다 연락을 취해 놨습니다. 주지사들도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더군요. 다들 마약 사건을 덮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녀석들의 더러운 속내를 알고 있더라고요.”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겠죠. 물론 바보들이 꽤 있는 것 같지만요.”

“하하…….”

에이든 대통령은 씁쓸해하며 웃었다.

“일단 여론전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 주세요. 그러는 동안 저도 대비를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내 안에서 또 투지가 샘솟기 시작했다.

잭슨.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르고 설치다가 어떻게 되는지 내 똑똑히 보여주도록 하지.

***

미국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단위로 벌어졌다.

“마약 카르텔 사건을 덮기 위해서 전쟁을 벌이는 것을 모를 줄 아느냐?!!!”

“왜 애꿎은 미군들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하느냐? 당장 쓸데없는 전쟁 멈춰라!!!”

미국 국민들은 거리에 나와 피켓을 들며 열심히 정부에 항의했다.

모두 에이든 대통령이 주지사들과 합작한 결과였다.

그러나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잭슨 쪽에서도 사람들을 풀어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었다.

“언제부터 미국이 한국에게 놀아났나? 우리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당장 한국을 응징해야 한다!!!”

“한국은 에이든 대통령과 손잡고 미국을 지배하려고 했다. 그에 응당한 보복을 해야 한다!!”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반역자 취급을 했다.

그에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격분하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초래됐다.

자칫, 내란이 생길 수도 있었기에 경찰들은 황급히 시위대 사이를 중재하며 나섰다.

한 언론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한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80%를 넘었다.

하지만, 정치인들 쪽에서는 거의 전부가 한국과의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 금융회사 연합이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하수인인 상원의원들은 전쟁을 반대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고, 이미 미국의 수뇌부는 잭슨에게 넘어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전쟁을 바로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아무래도 일어날 것 같습니다.”

백기완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 정부에게 항의하고 협상 제의도 했지만, 씨알도 안 먹힙니다. 이미 전쟁이라는 답 외에는 보이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백기완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준비해야죠. 전쟁.”

“……결국 그것밖에는 없는 것입니까?”

“가만히 학살당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대통령은 씁쓸해하며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하아……. 미국과 전쟁이라.”

미국과의 전쟁.

그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이건 지금 부정할 수 없는 앞으로 일어날 미래였다.

한탄만 할 수는 없다.

살아남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비해야 한다.

“승산은 있는 겁니까?”

“대통령님도 알다시피 그냥 붙으면 당연히 우리가 집니다. 이길 확률은 그냥 0%입니다.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돌려본다 한들 답은 없습니다.”

“…….”

이미 대통령도 데이터 자아를 통해 계산해봤는지 조용히 끌끌 대며 웃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붙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있는 한 우리가 미국과 그냥 붙을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전쟁이 시작된다면, 먼저 미국 본토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내 말에 백기완 대통령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무슨?”

“흐흐. 제가 다 작업을 해 놓은 상태거든요.”

***

며칠 전.

나는 멕시코에 가서 가르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순간이동을 배운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 갑갑한 비행기를 몇 시간 동안이나 탈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진짜 저번에 이동할 때는 답답해서 죽을 뻔했다.

“으악!”

미리 공지를 해 놓은 상태였음에도 가르시아 대통령은 내가 눈앞에 갑자기 등장하자 까무러치며 놀랐다.

“노,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습니까?”

안 그래도 눈이 큰 가르시아 대통령이었는데 저렇게 놀라니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농담할 정도로 지금 저희 쪽 상황이 좋은 게 아니라서요.”

“하하…….”

내 말에 가르시아 대통령은 멋쩍게 웃었다.

“뉴스를 봐서 아시겠지만, 미국 쪽에서 지금 저희 한국과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희한한 건 보통 그런 소식은 극비로 먼저 들어오기 마련인데, 저희는 뉴스를 통해서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 미국 수뇌부의 배후에 있는 자식이 다 작업을 해 놓아서 그런 겁니다.”

나는 가르시아 대통령에게 잭슨과 관련된 일을 비롯하여 이번 사태에 대해 자초지종을 다 설명해주었다.

“맙소사…….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니요.”

가르시아 대통령의 잭슨 존재에 대해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런 놈이 지금 전 세계를 파괴하려고 하니 최악이지요. 녀석은 분명 한국만 공격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근엄하게 자세를 잡고 가르시아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음 타겟이 멕시코가 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

내가 공포감을 불어 넣자 가르시아 대통령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만약 제가 이 싸움에서 진다면 그 이후에 다른 나라들은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박살이 날 겁니다. 마치 제가 마약 카르텔들을 손쉽게 박살 냈듯이요.”

“그, 그런…….”

위기감을 불어넣는 작전은 잘 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매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지금이 딱 치고 나갈 때였다.

“여기 온 이유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멕시코가 한국을 도와 미국과 싸워주기를 요청하러 왔습니다.”

“!!!!!!”

가르시아 대통령은 또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충격이 컸는지 그는 바보처럼 어버버하기만 했다.

“저, 저희도 미국과 싸우라고요?”

그는 상당히 망설이며 말했다.

이해는 된다.

누가 미국과 싸운다는데 겁을 먹지 않겠는가?

“다음 타겟이 멕시코가 될 수도 있다는 제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녀석과 맞서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

가르시아 대통령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지금 제가 대책 없이 대통령님께 동맹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녀석에게 맞설 수 있는 설계를 짠 다음에 제안하고 있는 겁니다. 부디 제 제안을 받아들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할 말은 다 했다.

나는 조용히 대통령의 결정을 기다렸다.

“……하겠습니다.”

결국 가르시아 대통령은 한국과 동맹할 것을 약속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그 선택 후회하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참전하는 군인들은 제가 최선을 다해 지켜드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그런 부분이 걱정되긴 했습니다. 소중한 젊은이들의 목숨이 제 오판으로 인해 그냥 무의미하게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지켜드릴 겁니다. 제 계획대로만 따라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warrior 님의 지시에 전적으로 따르도록 장군들에게 특별히 지시해 놓겠습니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

이 사람도 백기완 대통령처럼 한 번 하기로 결정했으면 거침없는 스타일인가 보다.

이로써 나는 멕시코를 얻었다.

미국과 접경 지역에 있는 곳을 확보했기 때문에 상당히 유리해졌다.

그다음 할 일은 디에고를 만나는 것이었다.

“후앗!”

디에고 또한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자빠져버리고 말았다.

“여,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보다 어떻게 이렇게 온 거죠?”

“자세한 건 알 거 없고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다.”

“할 말이요?”

디에고는 상당히 불안해했다.

하기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상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안 그러면 이상하겠지.

“너! 나를 도울 생각 있냐?”

“…….”

디에고의 표정은 굳어졌다.

나는 그것을 보며 피식했다.

“강요는 아니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거절한다고 해서 너에게 어떠한 해코지도 안 할 테니까 걱정 말고.”

“…….”

녀석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왜, 싫어?”

“아뇨. 그것보다는… 당신이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도와달라고 하는 게 이상해서요.”

“그건 네 아버지 문제였잖아.”

“네?”

내 말에 디에고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아버지가 극악무도한 사람이라고 해서 꼭 너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잖아. 그리고 너는 그런 현실을 철저하게 부정해 왔었고. 너를 믿기 때문에 이렇게 스카우트 제안을 하는 거야. 어때?”

“조, 좋습니다.”

디에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훗. 좋아. 그럼 너에게 지시를 내리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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