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사 오병호-24화 (24/45)

24. 해바라기 작전

그리지아가 소퍼 위로 몸을 눕혔다. 가랄은 몸을 일으켜

차창을 커튼으로 가렸다. 번개불이 잠깐 실내를 비쳤을 때

그리지아가 드러누운 채 바지를 벗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장이도 급히 옷을 벗었다.

중간에 놓에 있는 볼품 없는 조그만 탁자가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차의 흔들림이

유난히 심했다. 그것이 오히려 묘한 기분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는 여자 쪽으로 움직이다가 넘어졌다. 일어나면서 킬킬거리고

웃자 그리지아가 '가랄.'하고 불렀다. 그래도 웃자 '웃지

말아요!'하고 역정을 냈다.

난장이는 아주 정성스럽고 섬세하게 그녀를 애무했다.

그리지아는 금방 달아올라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상대해온 동지들 가운데 난장이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녀를 완벽하게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남자였다. 키가 작은

왜소한 체구의 남자였기 때문에 어린애와 관계하는 것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었다.

그는 마치 어떤 예술 행위에 임하는 것처럼 성실하고 정교하게

그녀의 몸을 애무했고, 유연한 몸놀림과 놀라울 정도로 크고

강한 무기로 그녀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던 것이다. 그때의 그는

난장이가 아닌 거인이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탐색하듯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몸을 헤쳐나갔다. 그리지아는 자신의 몸뚱이가 완전히 해체되어

조각난 그것들이 제각기 기쁨에 넘쳐 팔딱이는 것을 느꼈다.

그 해체된 것들이 다시 모여 조립되는 것을 그는 허락치

않았다. 열차의 흔들림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몸뚱이를 그는 규칙적으로 힘차게 밀어붙였고, 그때마다 그녀는

굉장히 큰 소리로 울부짖는 듯했다.

가랄은 희열의 시간을 끌기 위해 속도를 늦추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이 은신처에서 나와 활동을 시작하면 검문에 걸릴지도

몰라요. 만일 지명수배되어 있다면 어떤 비행기도 탈 수 없을

거예요."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리지아는 아직 흥분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난장이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들이 지명수배됐다면 모두 패스포트를 바꾸지 않으면

안돼요. 다른 패스포트를 가지고 있나요?"

그리지아가 머리를 흔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가랄은 그녀의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주었다.

"그렇다면 빨리 준비시켜요."

"너무 늦어요."

그녀가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조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두 눈은 강한 욕구로 빛나고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모두 체포될지 몰라요. 연기를

해서라도......"

"그럴 수 없어요. 태풍은 25일을 고비로 26일 쯤에는 가라앉을

거예요. 따라서 작전개시는 26일 아니면 27일이 될 거예요.

패스포트를 밖에서 새로 만들어오려면 최소한 1주일 정도는

걸려요. 그리고 그것이 있다해도 사용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건 왜 그러죠?"

그의 손이 그녀의 긴 목을 더듬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그것을

누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희고 갸름한 아름다운 목이기

때문에 그런 충동을 느낀 것 같았다. 그녀의 두 손이 올라와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입국 사실이 없는 패스포트를 사용할 수는 없잖아요. 출국할

때 패스포트를 제시하면 검사요원은 거기에 적혀 있는 내용만

보지 않고 틀림없이 컴퓨터를 두드려 볼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언제 입국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인적 사항은 물론

수배인물인지 여부도 알 수 있어요. 만일 컴퓨터에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불법 입국자가 되고 그가 지닌

패스포트도 가짜라는 것이 밝혀져요."

"그럼 모두 자수해야 되겠군요."

하면서 그는 그녀의 몸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녀의 입이

벌어지면서 거기서 '아!'하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단단히 휘어

감으며 물었다.

"어떡 하면 좋지?"

"우리는 시기를 놓쳤어요. 반면 태풍 때문에 한국 경찰은

시간을 벌었어요. 우리는 이제 포기할 수도 없게 됐어요. 계획을

포기한다고 해도 한국을 무사히 빠져나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럴 바에는 오히려 비행기를 탈취해서 빠져나가는 게 낫지."

그는 다시 천천히 상하운동을 시작했다.

"아, 목이 타요! 맥주 있어요?"

그녀가 갑자기 그의 허리에 걸쳤던 다리를 풀면서 말했다.

환희가 어둠 속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난장이는 일어나 창가에 탁자를 끌어다 놓고 맞은편 소퍼에

앉은 다음 캔맥주 두 개를 새로 꺼내놓았다. 그녀가 일어나 앉자

그는 마개를 따내고 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창가의

커튼을 거칠게 걷어치웠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어느 역사가

마치 스크린처럼 지나쳐갔다.

그리지아는 단숨에 캔 하나를 마셔치웠다.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내린 맥주 거품이 목을 타고 내리다가 가슴을 적셨다.

가랄은 희미한 빛 속에 드러난 그녀의 난잡한 모습을 흥미있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지아는 빈 캔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만일 모두 지명수배됐다면 비행기를 탈취할 수도 없게

됐잖아요!"

그녀는 성이 나서 말했다. 난장이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맥주 거품이 묻은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작거렸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건...... 도대체 현재 수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 맞는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가 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내지? 한국 경찰에는 우리 끄나불이 없단

말이에요."

"미끼를 던지는 거죠."

"미끼를 던지다니?"

"적당한 동지를 한 명 선정해서 은신처에서 내보내는 겁니다.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면 어떤 반응이 있을 겁니다."

"그가 체포되면?"

"작전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그리지아는 뚫어지게 그를 쏘아보았다.

난장이는 자기가 생각한 바를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그의 계획은 놀랍고 기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담무쌍한

것이기도 했다.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난 그리지아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만일 실패하면 난 자결할 수밖에

없어요."

"고스란히 앉아서 체포될 수는 없잖아요. 가장 쓸모가 적은 한

사람만 우선 실험적으로 희생시켜보는 거예요. 그 희생을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확대시키느냐 하는 건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요."

그녀는 깊은 눈길로 난장이를 들여다보았다.

"가랄, 어쩌면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었지? 정말

놀라와요."

붉은 머리 사나이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히죽 웃었다.

"그런 생각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문제는 그걸

실천에 옮길 수 있느냐 하는 거죠."

"성공할 수 있을까?"

"난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우선 시험해 보는 거예요. 가장

쓸모가 적은 한 명을 밖에 내놓고 반응을 떠보는 거예요."

"가장 쓸모가 적은 사람은 누구일까?"

"일본 아가씨......"

"오다 기미 말이에요?"

"그 여자가 적당해요. H호텔에 투숙한 적도 있고, 지금 부산에

숨어 있고, 가장 쓸모가 적은 인물이니까요. 그 아가씨를 서울에

풀어놔 봐요. 그리고 만일 체포된다면 경찰 수사가 매우

치밀하게 가까이서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지요." 그녀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난장이를 쳐다보았다.

"대장과 상의를 해봐야겠어요.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대장은 찬성할 겁니다. 두 사람이 알아서 결정하세요. 다른

동지들의 의견까지 물어볼 필요는 없어요. 명령을 내리세요."

그리지아는 난장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가 선 채로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7월25일 새벽, 부산.

밤열차는 낮열차보다 주행시간이 더 길어진다. 경부선의 경우

종착역까지 한 시간 이상 연착되는 게 보통이다.

부산역 광장의 탑시계가 새벽 4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산에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바람도 불고 있었는데 서울보다

더 거세게 불어대고 있었다.

"우산이 필요 없겠어요."

집표구를 빠져나온 그리지아가 말했다. 이윽고 그녀는 비를

맞으며 비탈길을 뛰어내려갔다. 그 뒤를 난장이가 뒤뚱거리며

따라갔다.

택시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줄을

서는 대신 비어 있는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가 비바람을

피했다.

그리지아는 어디에다 전화를 걸었다. 벨이 울리는 소리가

무섭게 신호가 떨어지면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영어로 이야기했다.

"난 베니스의 비둘기......거기는?"

"해바라기 10호......도착했나요?"

"지금 역앞에 있어요."

"택시를 타고 S동 H비치 아파트 205동 1208호로 오세요."

오다 기미는 세 번 되풀이해서 말했고, 그리지아는 그녀가

말해주는 것을 볼펜으로 손바닥에다 급히 적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리지아는 서울의 제2의 은신처로 전화를

걸었다. 대장 하인리히 분케는 쉬어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별일 없었나요?"

"무사히 도착했어요. 그런데 해바라기는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아요."

"어떻게 말인가요?"

목소리가 팽팽히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리지아도 긴장했다.

"그렇다고 해바라기를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예요. 우리는 지금

한국 경찰의 수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녀가 말하는 해바라기란 이번 작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겼나요?"

분케는 아직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를 모르고

있었다. 곁에 서 있는 난장이가 전화통 안에다 계속 동전을 집어

넣어주고 있었다.

그리지아는 문제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게 아주 열심히 이야기해 주었다.

"문제는 오다 기미를 설득하는 일이에요. 그보다 먼저 사쓰마

겐지를 설득시키는 게 중요할 거예요. 그가 반대하면 오다도

설득시킬 수 없을 거니까요. 사쓰마가 전화를 걸어주면 오다는

쉽게 승복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나한테 생각할 여유를 주십시오. 8시에 결과를

알려주겠습니다."

"내가 전화하겠어요."

분케는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아주 간단명료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고 딱 한 마디로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었다.

택시 정류장의 줄은 많이 줄어 있었다.

택시 운전사는 그리지아의 더듬거리는 말을 알아듣고 S동

쪽으로 차를 몰았다.

H비치 아파트는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 규모가 꽤 큰

단지였다. 205동 앞에서 차를 내린 그들 앞으로 젊은 여인이 한

명 다가왔다.

경비원은 젊은 일본 여인이 택시에서 내린 사람들과 포옹하는

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치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그들은 포옹을 나눈 다음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안의 불빛에 드러난 오다 기미는 마르고 연약한

모습이었다. 감색 스커트 위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깨끗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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