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사 오병호-6화 (6/45)

6. 독신자의 아파트

30분쯤 지나 그는 강건너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조용히 차를 몰고 들어갔다. 새벽녘이라 단지 안은

조용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아파트 건물은 5층짜리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아파트는 5층에 있었다. 그는 주택공사에서 지은

13평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나마 그것도 그의

소유가 아니고 세를 얻어 살고 있는 것이었다.

아파트는 지은 지 너무 오래되어 몹시 낡아 있었다. 이윽고

5층에 올라온 그는 509라고 표시되어 있는 철문 앞에 다가서서

자물쇠 구멍에다 열쇠를 꽂았다.

현관 바닥에는 신문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신문들이었다. 그는 나흘만에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안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지금도 공허감을

느끼고 있었다.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그러한 느낌을 깼다. 그는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새장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하얀 문조

한 마리가 횃대 위에 올라앉아 놀란 듯이 울어대고 있었다. 울고

있는 놈은 수놈이었다. 둥지 속에는 역시 눈처럼 하얀 문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것은 암놈이었는데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아마 죽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비로소

그는 수놈이 그렇게 울어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이통 속에는 노란 조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물그릇 속에는

물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목이 타서 암놈이 죽은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새장 속으로 손을 집어넣자 수놈이 놀라서 파닥거렸다. 그는

죽은 새를 집어냈다. 털은 보드라웠지만 몸뚱이는 이미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짚을 엮어 만든 새집 속에는 품다만 알들이 몇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자 비로소 그는 가슴이

아파왔다. 세상에! 알을 품은 채 고스란히 앉아서 죽다니!

그것은 순전히 그의 잘못으로 그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너무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그는 집안에 갇혀

있는 새들이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만 깜빡 잊고

말았던 것이다.

죽은 새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서 새장 속에 모이와 물을

넣어주자 수놈은 먼저 물그릇 쪽에 달라붙어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부리로 여러 번 물을 찍고 나서 비로소 갈증이

풀렸는지 다음에는 물 속에 들어앉아 날개를 파닥이며 목욕을

한다.

그는 한참 동안 둥지 속에 놓여 있는 하얀 알들을

들여다보았다. 그것들은 암놈이 새끼를 까기 위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것들인데 이제 어미가 죽었으니 품어줄 새가 없게

되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는 주방 쪽으로

가서 코피포트에 물을 조금 넣고 나서 끓는 물을 부었다.

그는 코피잔을 들고 창가로 가서 섰다. 그의 아파트에서는

한강이 잘 내려다보였다. 강변도로 위로 차들이 질주하고 있는

것이 그림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빨리 암놈을 사다가 넣어

주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새 문조가 자기가 낳지 않은 알을

품어줄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둥지 속에 들어 있는 알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소퍼로 돌아와 앉았다. 집안은 몹시 어질러져 있었지만

그는 그것들을 치우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탁자 위에는 나흘 전에 사용했던 코피잔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재떨이 속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히 들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혼자 사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고독과 침묵을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것들에도 아주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 그처럼 쓸쓸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병호야말로 서울에서

제일 쓸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런

것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남은 코피를 마시고 나서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죽은 새가 가여워서 다시 가슴이 아려왔다. 자신의 무관심과

실수로 새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조간신문을 펴들고 대강 제목만 훑어보고 나서 소퍼 위에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그의 몸은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었다. 자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내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드러누운 채 손을

뻗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두꺼비 왕형사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분류를 모두 끝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것은 H호텔 숙박카드를 모두 필요에 따라 분류해 놓았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할까?"

그는 대답대신 되물었다.

"외국인들은 계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래? 음......"

그는 벽에 걸려 이는 낡은 벽시계를 쳐다보면서 신음했다. 그

시계는 오래 전부터 고장이 나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8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라는 말은 H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

1차 수사대상인 투숙객들이 호텔을 떠나고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들은 프런트에 가서 정식으로 체크아웃하고 나가는

사람들이다.

"내버려 둬."

그는 생각 끝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사해 보지도 않고 모두 내보내란 말입니까?"

왕이 볼멘 소리로 물었다.

"할 수 없잖아."

"공범이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두꺼비는 억울해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할 수 없어."

그는 화가 나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국인은 전부 몇명이야?"

"카드에 등록된 외국인은 모두 109명입니다. 나라별로

분류하니까 18개국에 속해 있습니다."

"카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동숙자들도 있겠지?"

"네, 대강 체크해 봤는데 같은 방을 쓴 외국인은

32명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원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중에는 이미 호텔을 떠난 사람들도

있고 해서......"

"지금 갈 테니까 기다려."

병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소퍼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방으로

가서 남비에 수도물을 받아 그것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놓고

가스불을 켰다. 찬장에서 라면 한 개를 꺼내 봉지를 뜯으면서

그는 H호텔에 투숙한 외국인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차적인 수사대상은 H호텔에 투숙하고 있거나 투숙했던

외국인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피살자가 외국인인데다 제1용의자로 지목된 토머스 러트 역시

외국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공범 역시 외국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을 확실한 증거도 없이 조사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호텔에 투숙한

외국인들을 일일이 만나서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호텔 영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에 대한 수사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되도록 피하라는 것이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당시 H호텔 숙박카드에 등록된 투숙객은

내외국인 합해 412명이었다. 그중 외국인은 109명인데, 카드에

등록하지 않은 채 그들과 함께 동숙한 외국인이 32명이라니

그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141명으로 불어난다.

외국인들은 한가롭게 노니는 사람들이 아니다. 시간을 쪼개어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어떻게

수사를 벌인단 말인가. 그들은 단 1분간의 시간도 쓸데 없는

일에 빼앗기는 것을 싫어할 것이고, 그런 그들을 붙잡고

늘어진다는 것은 매우 실례되는 짓임에 틀림없다. 물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남비 뚜껑을 열고 라면을 분질러 넣었다.

그는 호텔 숙박카드에 등록된 412명 가운데 내국인에 대해서는

일단 수사를 보류하기로 했다. 먼저 외국인에 대한 수사가 별

진전이 없을 경우 그때 가서 내국인에 대한 수사를 벌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시간과 인력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라면을 먹고 나서 휴지에다 죽은 새를 싼 다음 그것을 빈 라면

봉지 속에 넣었다. 새장 쪽으로 다가가 문조에게 말을 걸었다.

"슬프고 외롭겠지만 참아줘. 아주 예쁜 놈을 소개시켜 줄께."

그는 사람에게 말하듯 그렇게 말하고 나서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을 보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길쭉한

얼굴은 극도의 피로감에 젖어 메마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앙상한 턱 주변에는 시커먼 털이 덮이기 시작하고 있었고,

두개의 큰 눈은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넓은 이마에는 두

갈래의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되는 대로 빗어넘긴 머리에는

흰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섞여 있었다. 면도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귀찮은 생각때문에 잠시 거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을 때 새장 속의 새가 울기 시작했다. 횃대

위에 올라앉아 울고 있는 새를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와 문을

잠갔다.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온 그는 건물 뒤로 돌아가 나무

조각으로 화단의 흙을 조금 파낸 다음 거기에다 죽은 새를

묻어주면서 다시 한번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임시수사본부가 있는 호텔 쪽으로 가는 동안 그는 생각을 바꿔

일단 보류하기로 했던 내국인에 대한 수사를 즉시

개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인들에 대한 수사자료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남긴

숙박카드밖에 없었다. 그들을 일대일로 만나 직접 조사할 수

없는 한 수사자료만 가지고 간접적인 수사를 벌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병호는 복사된 109장의 숙박카드와 그것을 항목별로 분류해

놓은 자료들을 검토해 보았다.

"카드에 등록하지 않은 외국인 동숙자 32명에 대해서는 자료가

하나도 없습니다."

왕형사가 곁에서 말했다.

"그건 할 수 없는 일이지."

병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109장의 카드를 수사의 기본자료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09장의 카드에 올라 있는 109명의 국적별 분류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인적사항을 모두 정리해서 각국 대사관에 빨리

보내요. 신원조회를 의뢰하란 말이야. 각 나라 말로 공문을

적도록 하되 그게 어려우면 영어로 작성해도 되겠지."

"어디다 부탁하죠?"

외국어라고는 영어 몇 마디밖에 더듬거릴 줄 모르는 왕형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국제형사계에 지원을 요청할 테니까 그쪽 요원들과 상의해서

작성하도록 해봐. 미국 쪽에는 노엘 화이트의 인적사항도 보내고

토머스 러트에 대해서는 살인 용의자라는 점을 주지시켜. 러트의

몽타지가 완성되면 그것도 보내줘."

병호는 초조해 오는 기분을 달래려는 듯 계속 줄담배를

피워댔다. 자료를 앞에 놓고 보니 수사범위가 한없이 확대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전세계를 상대로 수사를 벌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의 중얼거리는 말에 형사들은 한결같이 놀라는 표정들을

지었다.

"내국인들에 대한 수사도 병행하는 게 좋겠어."

그는 사건발생 당시 호텔에 투숙해 있던 한국인들의 복사된

숙박카드를 쳐들어 보였다. 그것은 모두 303장이나 되었다.

"열 장씩 맡아요. 형식적으로 훑지 말고 자세히 조사해요.

내국인은 외국인과 달리 얼마든지 조사해도 좋으니까 지금

당장 시작해요."

그는 형사들에게 열 장씩의 카드를 나누어주었다.

카드를 받은 형사들은 즉시 밖으로 사라졌고 남은 카드는

외출했다 돌아온 형사들에게 일정하게 배분되었다. 맨 마지막

형사에게는 열세 장이 덤으로 떠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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