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빨리 서둘러요!”
만여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무전기를 통해 조선 그룹 소속의 경호원들을 닦달했다.
그녀를 비롯한 경호원들이 탄 차가 빠른 속도로 복잡한 종로 시내를 질주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평소의 조선 그룹이라면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절대 하지 않을 여러 위법 사항들을 거침없이 저질렀다.
복잡한 시내를 질주하던 만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정보가 늦었어.’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누비는 조선 그룹이다.
하지만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너무 늦었다.
일단 조모강의 외손녀인 세인을 보호하기 위한 경호원들이 출발하고 있었지만, 그 시각까지도 조선 그룹에서는 흑룡파의 정확한 움직임을 알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냥 우군인 것 같았던 흑룡파가 갑자기 배신해 버렸다. 우발적인만큼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캐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찰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시내 한복판이라는 점.
바로 주변에 정부의 주요 기관들이 있기 때문에 상주하고 있는 경찰들이 많다는 것이다.
여차하면 조선 그룹의 힘을 이용해 공권력을 움직일 수도 있었지만, 섣불리 자극했다가 혹시라도 세인이 그들의 수중에 넘어가면 조모강만 곤란해질 수 있었다. 때문에 만여는 이번 일에 최소한의 공권력만 동원할 생각이었다.
“홍보팀과 법무팀에 연락을 넣으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언론을 막아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옆에 앉은 경호팀장보다도 한참 어린 나이에 여자였지만, 만여를 대하는 경호팀장의 모습은 깍듯하기 그지없었다.
조모강의 총애를 받는 전무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것보다도 외형을 뛰어넘는 만여의 진면목은 가히 ‘마녀’란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경호팀장도 그런 만여에게 걸리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흑룡파라…….’
난폭하게 도로 위를 질주하는 조선 그룹 경호팀의 차량들로 인해 도로 곳곳에서 차들이 급정거를 하고 울려 대는 클랙슨 소리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만여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지금까지 바짝 긴장해 있던 몸을 시트에 파묻었다.
‘이상해. 흑룡파가 갑자기 그렇게 나올 리는 없어.’
바보가 아닌 이상 조선 그룹도 자신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세력을 모를 리 없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시스템상 몇몇의 대기업이 막대한 부를 먹어 치운다면, 대기업과 연계된 중소기업, 혹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다른 조그만 단체들은 먹고 남은 부스러기 정도만을 가지거나, 그마저도 가지지 못한 채 대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실 대기업이 하는 일 중에는 그들의 상품을 개발하고 광고하며 그곳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뿐만이 아닌, 계열사라든지 중소기업의 동향을 파악하고 불만이 터지지 않게 적절히 어루만져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밀리에 계약을 맺은 흑룡파지만 이런 면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품고 있는 불만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불만이 곪아 터지지 않도록 양보해 주는 것도 많았다. 그로 인해 그들이 얻는 이익도 생각보다 꽤나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도박이라니!
‘흑룡이 이렇게 욕심이 많은 인물인가?’
흑룡파의 보스인 흑룡은 단순한 조폭이 아니었다.
아니, 단순한 조폭이었다면 그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흑룡파의 보스가 될 수도 없을 터였다. 영악하게 조선 그룹과의 제휴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노력조차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그룹의 거의 모든 대외 업무는 만여의 손에서 이뤄졌다. 그 때문에 만여는 흑룡을 만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최소한 만여가 느끼기에 흑룡은 그토록 무모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만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가씨를 찾는 게 급선무다.’
경호팀의 인원이 대략 열 명 정도.
흑룡파는 서울의 한 구역을 주름잡는 전국구 폭력 조직. 열 명 가지고 전문 조폭들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만여는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가씨만 먼저 찾으면 돼.’
*
*
*
“바깥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강패의 매몰찬 거절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던 세인은 지하보도 바깥이 시끄럽자 인상을 찌푸리면서 책을 덮었다.
시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자주 집회가 열리기는 했다.
그런데 그런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주변에 연예인이라도 온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에 책을 제자리에 놓아 둔 세인이 바깥으로 걸어갔다.
우당탕탕!
“끄윽!”
“꺄악!”
계단 쪽을 힐끔거리며 다가가던 세인은 검은 물체가 자신의 눈앞을 지나가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꿈틀대는 사람이란 것을 확인하고서는 아예 비명을 내질렀다.
“으어, 으어어!”
태운은 지금 겁에 질려서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다.
서른 명의 일진들이 무참히 깨져 나가는 데는 고작해야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단 한 번.
여기서 한 번이란 공격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강패가 피하기라도 했으면 기회가 한 번 더 있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강패는 일진들의 공격을 막을 생각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공격이란 공격은 전부 맞아 주었다.
그런데 단 한 번.
그 한 번의 공격을 자신들이 하건, 강패가 하던 간에 가리지 않고 모두 나가떨어졌다. 그러니 서른 명의 인원이 정리되는 데 오 분 이상 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조차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강패의 실력을 체험한 이들이 함부로 덤벼들지 않았기에 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괴, 괴물이야! 도망가야 돼!’
강패에게 멱살이 잡혀 지하보도 아래로 던져진 태운은 등짝이 아리고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강패의 공격에서 치명적인 일격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상대방을 대적 불능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공격들이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땅바닥만 벅벅 긁던 태운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손길이 자신의 상체를 부축해 주는 것을 느끼고서야 자신이 혼자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태운이 절실한 마음으로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저기요!”
“네?”
세인은 갑자기 손을 잡는 태운의 행동에 화들짝 놀랐지만 그래도 노숙자들을 상대하던 경험이 어디로 가지는 않은 듯, 태운의 눈을 마주 보면서 그를 안심시키려 했다.
“저, 저 좀 살려 주세…….”
일진의 자존심이고 남자의 체면이고 뭐고 간에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태운은, 세인에게 무어라 말하려다가 말을 뚝 멈췄다.
‘이 여자다!’
위기 상황에 처하자 태운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 세인이 바로 흑룡파에서 자신들에게 데려오라고 시켰던 그 여자란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이곳에 있다는 건…….’
태운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그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읽어 낸 세인이 손목을 빼내려는 찰나, 태운이 우악스럽게 세인의 목을 감으며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휙!
“꺄악!”
“닥쳐! 목을 꺾어 버리기 전에! 너! 여기 있는 그 괴물이랑 무슨 관계야!”
“이…… 이것 좀 놓고…… 꺅!”
“씨발! 됐어! 어떻게든 흑룡파 형님들이 올 때까지만……!”
“어이, 애송이. 뭐하냐, 거기서?”
“으, 으악!”
태운은 소리 소문 없이 내려온 강패가 빙긋 웃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기겁하면서 세인의 목을 감싼 채 물러섰다.
“오, 오지 마!”
“꼬맹이. 넌 또 거기 왜 있어?”
“…….”
배포가 크고 간담이 큰 세인이다.
하지만 억센 남자의 팔뚝이 자신의 목을 누르고 있는 상황에는 어쩔 수 없는지 잔뜩 당황해 강패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강패가 인상을 찌푸렸다.
“애송이.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내…… 내가 알 게 뭐야! 너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이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지금껏 거침없이 움직이던 강패가 세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태운은 무서워하는 와중에도 세인이 자신이 무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란 것을 눈치챘다.
“뭐, 너한텐 특별히 기회를 주지.”
바짝 언 채 가만히 있는 세인을 한번 쳐다본 강패가 일진들을 두들기는 내내 한 번도 지은 적이 없던 미소를 그대로 지은 채 팔짱을 끼며 태연하게 말했다.
“하나. 지금 그 꼬맹이를 풀어 주고 딱 한 대만 맞는다.”
“뭐…… 뭐?”
“아직 말 안 끝났다. 둘. 계속 그 꼬맹이 데리고 어쭙잖게 위협하다가 정말…….”
번뜩!
“……뒈지거나.”
강패의 말에 세인을 붙잡고 있는 태운이나, 목이 억센 팔로 조여진 채 얼어 있던 세인이 서로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강패의 눈이 스산하게 빛난 순간 태운은 형용하지 못할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목표 대상과, 이 목표 대상을 원할 흑룡파란 든든한 뒷배가 떠올라 간신히 버텨 냈다.
한편 강패의 다른 모습을 처음 보는 세인은 그녀 나름대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번뜩거림은 다시 얼굴에 자리 잡은 미소에 묻혀 사라졌다.
세인은 멍한 눈으로 강패를 쳐다보는 사이, 태운은 덜덜 떨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고서 강패에게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어차피 네놈은 끝이야! 형님들이 오시기만 하면 넌 끝이라고!”
“형님들? 무슨 개소…….”
우르르르!
“……리는 아니네?”
강패는 다른 쪽 입구에서 우르르 내려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흑룡파의 등장에 태운은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혀…… 형님들!”
태운이 일면식도 없는 그들을 향해 형님이라는 언어를 내뱉는 순간, 외칼을 선두로 흑룡파 조직원들이 지하보도를 가득 메우며 들이닥쳤다.
“쳐!”
강패와 이야기를 나눌 최소한의 시간도 아깝다는 것인지, 조직원들은 연장 하나씩을 손에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일진들보다 곱절은 더 흉흉한 기세들이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우르르!
거칠 것 없는 조폭들이 지하보도 한편에 마치 벽처럼 가지런히 쌓여 있는 강패의 책 더미를 얌전히 피해 갈 리 없었다.
덩치 좋은 조폭들이 안 그래도 좁은 지하보도를 꽉 채운 채 달려오자 책 더미는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안 그래도 건달패들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는데, 네 덕분에 좋은 구경한다?”
태운에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인에게 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눈을 찡긋거린 강패가 몸을 완전히 돌렸다.
등이 훤히 드러났으나 태운은 그런 강패를 공격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 태운의 상태로는 세인을 놓치지 않고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던 것이다.
“후…… 후…….”
하지만 태운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서른 명의 일진들을 때려눕혔다고 해도 조폭 서른 명은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더구나 이미 서른 명의 일진을 상대한 후다. 본래 서른 명의 조폭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 지친 지금은 절대로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서른 명의 조폭들 앞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긴장하지 않는 강패를 보니 그런 굳건한 믿음마저도 간당간당해지려고 했기 때문에, 태운은 애써 그 믿음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았다.
“여차하면…….”
그리고 그 믿음을 붙잡아 주는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자신의 품 안에 들어와 있는 세인이었다.
자신의 한 팔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체격의 여성.
태운은 비상시에 그녀가 강패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있을 반항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태운은 힘껏 목소리를 깔아 최대한 위협적으로 세인에게 협박했다.
“허튼짓하면 죽어. 알았어?”
“…….”
그러나 세인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왜 안…….”
세인에게조차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태운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세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순간, 태운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년도 미친 거 아니야?’
분명히 처음만 해도 비명을 내질렀고, 몸이 딱딱하게 경직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태운이 쳐다본 세인의 표정은 겁을 먹기는커녕, 흥미진진한 영화가 개봉하기를 기다리는 관객의 얼굴처럼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런 씨발! 애초에 저 괴물이랑 엮이는 게 아니었는데!’
애초에 처음부터 이 지하보도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후회가 뼛속까지 사무쳤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흑룡파고 뭐고, 당장 눈앞에 있는 괴물과 품 안에 들어온 미친년을 내던지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괴물에게서든 흑룡파에게서든 인생이 끝나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강패는 지하보도를 가득 메우고 자신의 안식처였던 책 더미를 무너뜨리고 짓밟으며 달려오는 조폭들을 쳐다보며 최대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 이걸 뭐라고 하더라……. 그래. 특수 주거 침입죄라고 하던가? 법률 위반이다, 이 새끼들아!”
쿵!
퍼억!
“크허어억!”
강패의 모습이 푹 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땅을 박찬 강패의 어깨가 맨 앞에서 달려오던 조폭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으악!”
“저 새끼가!”
그것도 수평으로 들이받은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몸을 숙여 어깨로 올려쳤다.
덕분에 가슴을 적중당한 조폭은 입에서 분비물을 뿜어내면서 포물선을 그리며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지하보도를 가득 메우며 달려오던 조폭들은 제 동료의 몸에 치여 뒤로 나동그라졌다.
위력적인 선방에 조폭들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호오. 한 수는 있는 놈이라 이거지?”
주춤하는 조폭들 사이에서 호리호리한 체격의 외칼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강패의 앞을 막고 비릿하게 중얼거렸다.
“너,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놈이로구나?”
강패는 자신의 앞을 막아 선 외칼을 보면서 흥미롭다는 듯 위아래를 쓸어 보며 감탄성을 내뱉었다.
팔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한 체형인 듯 보였지만 다른 조폭들에 비해 덩치만 키운 근육이 아닌, 오밀조밀하게 짜인 단단한 근육을 가진 외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조폭들에 비해 긴 시간을 싸워도 쉬이 지치지 않았고, 긴 팔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각지대에서의 공격은 경험 많은 다른 조직의 폭력배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기묘하고 강력했다.
그리고 자세.
“빈틈이 안 보일 정도라니. 좋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체형이 있고 각자의 체질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자세라고 할지라도 전부 사람에 따라 개성이 묻어나고, 효과도 달랐다.
한 예로 어떤 분야의 무술을 오랫동안 수련한 이들의 자세는 교범에 나온 것과는 다들 제각기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습관을 잘못 들였다기보다는 그 교범을 쓴 사람과 다른 체형과 체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오랜 기간 수련해 오면서 자신의 몸에 맞는 최적의 자세를 체득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강패가 볼 때 외칼도 그와 같은 부류였다.
몸을 비틀고 두 팔을 늘어뜨린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빈틈이 쉬이 보이지 않았다. 필시 이 뒷골목에서 수도 없이 싸우고 맞고 깨져 가면서 본능적으로 체득한 하나의 자세일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가 좋아 봤자…….”
강패는 대한민국, 아니 2010년의 이 세상에 와서 처음 보는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사마귀가 마차 바퀴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 크큭.”
당랑거철이라고 했던가.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항거할 수 없는 힘에도 굴하지 않는 위대한 정신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결국 마차 바퀴를 피하지 않는 사마귀는 그 마차 바퀴에 깔려 처참하게 터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슈욱!
강패가 주먹을 내뻗자 외칼이 실소를 흘렸다.
“한가락 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고작 이거냐?”
그다지 빠르게 주먹을 내지른 것도 아니었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내뻗어진 주먹도 아니었으며 연계 공격의 일부분도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정권 지르기’였다.
‘왼팔로 쳐 내고 한 방 먹인다!’
외칼은 날아오는 강패의 주먹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외칼이 몸을 비틀면서 왼팔로 강패의 주먹을 막아 내려고 했다.
찌릿!
“……!”
왼팔로 강패의 주먹을 막으려는 순간, 외칼은 마치 야생 동물처럼 위험 신호를 캐치하고 재빨리 몸을 완전히 틀어 버렸다.
“큭!”
지이익!
그리고 주먹이 스쳐 지나간 부분의 옷이 찢어져 있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패를 쳐다봤다.
“피했어?”
하지만 당황한 것은 강패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강패가 중국과 일본군들에게 그렇게 화려한 별명을 듣고 대재앙으로 불리며 군림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 타(打).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이 타.
죽고 싶지 않아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삼 타.
단순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듯, 강패의 전투 방식은 항상 직선적이었고 직설적이었으며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강패는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맞수는 있었어도, 패배는 없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외칼에 의해서 그 승리 방식이 빗나간 것이다.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고 하나, 상대방의 실력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에 강패는 자신의 자만을 인정해야 했다.
“이 개새끼가!”
정신을 차린 외칼이 사납게 소리쳤다.
놀라운 위력의 주먹이었지만 외칼의 투기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존심이 상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투기는 더욱더 강해졌다.
옷이 풍압에 찢어지는 것을 목도하고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더 불타오르는 모습에 강패가 방금 전까지의 조소를 지우고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너, 성격이 조금 마음에 드는데.”
“닥쳐, 이 새끼야. 곧 그 주둥아리를 찢어 버릴 테니까!”
타닥! 팟!
험하게 내뱉은 외칼이 땅을 박차고 강패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행동대장인 외칼이 나서자 흑룡파 조직원들은 각기 자리를 터 주었다.
자연스레 강패과 외칼이 일대일로 겨루는 형식이 되자,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흑웅이 자신을 근접거리에서 경호하는 조폭 중 한 명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눈짓을 받은 조폭은 원을 이루고 있는 조직원들 사이로 들어가 태운이 있는 곳으로, 강패가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걸어갔다.
“저 계집애만 있으면 그만이다. 저 계집애만.”
사실 흑웅의 이런 방식은 암흑가의 불문율을 어기는 일이었다.
조폭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절대 서로를 죽이려고 들지 않았다.
어차피 다들 비슷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그래서 겉으로는 으르렁대고 거칠게 굴면서도 분쟁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물러서고 양보하기 일쑤였다.
특히 이렇듯 강패와 외칼처럼 일대일의 상황에서는 비겁한 수를 가급적이면 쓰지 말아야 한다.
과거 김두한이 야쿠자들을 일대일로 무릎 꿇리던 시절부터 지속된 암묵적인 룰.
머리나 권력, 돈 같은 것이 아닌, 순수한 육체적인 힘만을 이용해 상대와 겨루는 이 행사에, 그 의미를 변색시키는 더러운 술수가 끼기 시작한다면 뒷골목은 쓰레기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취지였다.
그런 것을, 흑웅은 지금 무시하려 하고 있었다.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 다른 건 필요 없어.”
흑웅에게 이미 조폭들의 암묵적인 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마치 눈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흑웅은 조선 그룹 총수의 외손녀 납치에만 정신이 팔려 눈이 벌게져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에 조금 전 명령을 내렸던 조폭이 태운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흑웅은 그쪽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려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하고 인상을 와락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건 또 어디서 굴러 온…….”
하지만 흑웅의 말은 채 끝마쳐질 수가 없었다.
자신들처럼 정장을 갖춰 입은 채 계단을 우르르 내려오던 덩치들 사이에서 어떤 여자 한 명이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마치 영화나 게임에서 볼 법한 화려한 발차기로 태운에게 거의 접근한 조폭의 머리통을 후려갈겨 버렸다.
뻐걱!
우당탕탕!
발차기에 그대로 직격당한 조폭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자의와 상관없이 공중제비를 돌아 다른 조폭들의 등에 부딪쳤다.
“저 새끼들, 다 밀어 버려!”
“10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흑룡파 조직원들과, 계단에서 달려온 기세 그대로 조선 그룹의 경호원들이 부딪쳐 갔다.
세 배가 넘는 인원의 흑룡파였지만 한 번 기세에서 밀리자 그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넓은 공간도 아닌 좁은 지하보도이다 보니 세 배란 인원수가 그리 큰 이득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흑룡파 조직원들을 기함하게 한 것은 단 한 명의 여자였다.
휘리릭!
빠각!
우당탕탕!
무슨 태권도 국가대표라도 되는 것인지, 우악스럽게 옆을 터 버린 정장 치마를 입은 만여가 공중 돌려차기를 선보였다.
휙!
쩌억!
“끄악!”
정확히 그 궤적에 걸린 조폭은 허공을 붕 날아 벽에 부딪친 채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땅에 착지한 만여는 고양이처럼 몸을 날려 또 다른 조폭의 어깨를 뒤꿈치로 찍었다. 움직이기 힘들 것 같아 보였던 하이힐은 엄청난 무기가 되어 조폭의 어깨를 뚫어 버렸다.
“후우…….”
타닥! 탁!
한두 번 싸워 본 것이 아닌지, 만여는 공처럼 통통 튀어서 경호원들에게 합류했다. 그리고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넋 놓고 보던 경호팀장의 어깨를 툭 쳤다.
“지금 이 라인 그대로 지킵니다. 알았어요?”
“네……. 네!”
처음에는 왜 그런 위험한 곳에 여자를 데리고 가야 하는지 내심 불만이었던 경호팀장이었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만여는 그냥 성격이 괴팍한 마녀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황천길로 직행시킬 수 있을 만한 무술 실력도 가진 완벽한 마녀였다.
경호팀장은 만여를 딸려 보낸 조모강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우르르르!
원을 이루던 흑룡파 조직원들이 조선 그룹 경호팀의 공격에 의해 밀려나자 원이 무너지면서 자연스레 외칼과 강패의 신경도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아, 조금 재미있어지려니까 어떤 자식들이…….”
“허억……. 허억…….”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패와 외칼의 모습은 완전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강패는 조금 흥이 오르려던 시점에서 그 흥을 확 깨 버린 조선 그룹 경호팀의 등장에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외칼은 완전히 지친 표정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눈에서는 투지를 내뿜으며 서 있었다.
“너네 쪽이 완전히 밀리겠는데?”
외칼의 태도가 심히 건방졌지만, 강패는 그런 외칼에게 뭐라 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강패의 기준으로 봤을 때 외칼의 실력은 매우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시대에서 눈을 뜬 후 일반인 중에서 이토록 단련한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또, 자신의 힘을 느끼고서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그 성미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으득!
외칼이 이를 갈았다.
강패의 말마따나 흑룡파 조직원들이 서른 명이나 된다고 하지만, 경호팀장이나 다른 경호원들 개개인의 실력도 흑룡파 조직원들에 비해 강했다.
만여의 활약이 그중에서도 가장 눈부셨기 때문에 외칼이 나서서 그녀를 막지 않는 이상, 자칫 조직원들의 사기가 꺾여 그대로 물러나게 될 위험이 있었다.
외칼은 강패와 어떻게든 승부를 내고 싶었지만 자신의 호승심과 투지를 채우자고 조직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지금 뒤에는 흑웅이 있었다.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흑웅이 직접 나서게 되는 것은 조직의 위신을 깎아 먹는 일이다.
“너…… 잊지 않겠다.”
외칼은 밀리고 있는 흑룡파의 라인으로 뛰어가면서도 강패를 향해 소리쳤다.
“쩝. 오랜만에 재미 좀 보나 싶었더니…….”
강패는 주변으로 우르르 휩쓸려 물러나는 흑룡파 조직원들의 등을 살짝살짝 밀어 자신에게 부딪치게 하지 않으면서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좁은 지하보도는 산만한 덩치의 장정들 수십 명이 엉켜 싸우고 있는 터라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연신 주위로 손을 휘두르는 강패의 주변은 태풍의 눈처럼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휘릭!
퍼벅!
우당탕탕!
“히야. 웬 계집애가 저리 잘 싸워? 아까 그놈보다 더 나은데?”
강패는 냄새나는 남정네들 사이에서 한 마리 나비처럼 허공을 누비는 만여를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까무잡잡한 피부.
크면서도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은 슬쩍 보기에도 매서워 보였다.
그 눈이 붉은색의 탐스러운 입술과 조화되니, 만여의 인상은 그야말로 관능미가 넘쳤다.
치마는 발차기를 위해서 우악스럽게 잡아 찢어 건강미 넘치는 허벅지가 반 이상 드러나 있었다.
그 다리가 호선을 그을 때마다 최소한 그녀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들이 포탄처럼 휭휭 나가떨어졌다. 굳이 강패가 아니더라도 만여는 충분히 돋보이고 있었다.
“흠. 군인들? 아니면 무술인들인가?”
갑자기 등장해 흑룡파 조직원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조선 그룹의 경호팀을 보며 강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여의 실력만 해도 아까 강패와 붙은 외칼이 고전을 면치 못할 실력이었다.
그런데 여자뿐만 아니라 다른 덩치들도 암흑가에서 구르고 구른 흑룡파의 조직원들에 맞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 오히려 밀어붙이며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외칼이 합류한 것으로 어느 정도 동수가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래도 열 명밖에 안 되는 숫자로 서른 명이나 되는 흑룡파 조직원들을 밀어붙이는 모습은 역시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저 계집애는 어디서 배운 몸놀림인데…… 다른 녀석들은 어딘가 부실한데?”
외칼은 강패가 봤을 때, 분명 어디서 따로 무술을 배운 흔적이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뒷골목을 전전하며 몸으로 살아남으면서 체득한 것이 뛰어난 재능을 만나 그렇게 발전한 것이라면, 지금 흑룡파 조직원들에 비해서 우세한 실력으로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는 조선 그룹 경호팀의 경호원들은 외칼에 비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엉성해 보였다.
단, 만여만 빼고.
강패가 보기에 만여는 어디서 실력 있는 강자에게 착실히 훈련을 받은 몸놀림을 보이고 있었다.
“너희 어디 소속이야!”
흑웅에게서 아직 다른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외칼은 조금 거친 상황이 진정되고 대치 상황이 이뤄지자 이를 갈면서 앞으로 나섰다.
외칼이 나서자 조선 그룹 쪽에서는 경호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조폭 새끼들이 감히 누구를 노려! 너희들이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더냐?”
“빌어먹을! 조선 그룹이 벌써?”
외칼은 경호팀장의 말에 곧바로 그들이 조선 그룹 소속임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세인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와 있지도 않은데 벌써 조선 그룹이 등장해 버리면, 흑룡파는 정말 그대로 새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외칼이 뒤쪽의 흑웅을 슬쩍 쳐다봤다. 하지만 흑웅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을 뿐, 별다른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진행하라는 뜻이었다.
외칼이 외쳤다.
“포위해 버려!”
지하보도는 그 폭이 좁아 서른 명이건, 열 명이건 간에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인원은 최대한이라고 해 봤자 다섯 명이 전부였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세인과 태운이 지하보도에서 내려오는 입구 쪽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 탓에 조선 그룹 경호팀은 입구 쪽에서 조금 들어온 지점에 진을 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조폭들이 모두 경호팀의 앞에만 있었기 때문에 막을 수 있었는데, 만약 조폭들이 그들의 양옆에 나 있는 계단으로까지 온다면 난감했다.
그들이 막아야 할 공간이 더 넓어진다면 당연히 승세는 흑룡파에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가서 계집 먼저 확보해.”
“예, 형님!”
우르르!
외칼의 명령을 받은 조직원들이 일정 수만 남기고는 썰물처럼 빠져 버렸다.
그들이 돌아서 지하보도의 입구 쪽으로 올 것임을 눈치챈 경호팀장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비록 만여에 의해서 조직원들 중 몇몇이 나가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남은 조직원들의 수만 해도 조선 그룹 경호팀의 수에 비하면 월등히 많았다.
그리고 외칼이 합류한 이상, 아까처럼 만여가 혼자서 날뛰는 상황은 연출되기 어려웠다. 조폭들도 그걸 아는지 움직임에 활기를 띠었다.
“아마 지금쯤 경찰이 오고 있을 거다. 최대한 빨리 끝내라, 외칼.”
지하보도 쪽이 시끌거리면서 흑룡파 조직원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자 흑웅이 마침내 입을 열어서 외칼에게 말했다.
“네. 형님.”
외칼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신들을 씹어 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조선 그룹 경호팀을 쳐다보며 이를 드러내 보였다.
흑룡파 조직원들이 금세라도 달려 나갈 것처럼 발을 움찔거렸다.
경호팀은 그것을 보면서 전의를 다졌다.
태운과 세인은 난생처음 보는 대규모 난투극에 바짝 얼어 있었다.
그때, 그 첨예한 감정 대립선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듯한 강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깐, 잠깐. 나 좀 지나가자. 아휴. 너 너무 덩치가 크다. 살 좀 빼, 자식아.”
“어? 어?”
외칼과의 싸움이 경호팀에 의해 흐지부지 끝나 버리고, 이제 자신과 상관없는 싸움터가 되어 버리자 흥미를 잃은 강패였다.
그가 이제 세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흑룡파 조직원들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툭, 툭!
겉으로 보기에는 가볍게 민 것 같았다.
하지만 강패의 손에 등이 떠밀린 조폭들은 허수아비처럼 비틀거리며 제자리에서 고꾸라지거나 동료에게 부딪쳤다.
잠시 그로 인해 소요가 일었지만, 강패는 태연한 얼굴로 외칼과 경호팀장이 얼굴을 맞대고 으르렁대는 라인까지 나올 수 있었다.
“휴우.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이네. 대체 뭘 먹고 이렇게 덩치들이 큰 거야?”
강패가 이마에 맺히지도 않은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넉살 좋게 말했다.
경호팀장과 외칼은 진이 쭉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당연히 나오는 말이 고울 수가 없었다.
“너! 저쪽 편이냐?”
그래도 한번 손속을 섞어 보았다고 외칼이 강패에게 물었고, 강패는 외칼의 손가락이 향한 쪽에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경호팀장을 힐끗 보고 고개를 저었다.
“저런 돼지는 몰라.”
“돼…… 돼지?”
날렵할 것만 같은 무술인의 이미지와는 달리, 경호팀장의 몸은 다른 이들과 비교해도 눈에 확연하게 띌 정도로 살집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괜히 붙어 있는 살집은 아니었다.
190이 넘는 거대한 덩치.
햇빛에 그을려 까맣게 탄 피부를 가진 경호팀장은 조모강에게 스카우트되어 조선 그룹의 경호팀장으로 오기까지 유수의 인물들을 완벽하게 경호한 이력이 있는, 나름 이 세계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이었다.
‘그런데 돼지라니.’
“푸하하핫!”
‘저놈이!’
경호팀장은 자신의 앞에서 대놓고 웃는 외칼의 면상에 주먹부터 박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함부로 덤벼들었다가는 적은 인원으로 간신히 구축해 놓은 방어 라인이 깨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울분을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넌 빠져! 이놈들 정리한 다음에 넌 나랑 다시 붙는다. 알았어?”
외칼이 손목을 돌리며 말하자 경호팀장이 지지 않겠다는 듯, 팔을 휘휘 돌리며 몸을 풀었다.
하지만 애초에 강패는 외칼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 생각이 없었다.
“글쎄. 일단 너희들은 내가 살던 곳을 부숴 놓았으니 특수 주거 침입죄에 해당하고…….”
외칼과 경호팀장이 막 부딪치기 위해 움직이려는 그 시점, 강패가 절묘하게 타이밍을 끊었다.
“특수…… 뭐?”
“……?”
짜증을 내려던 외칼은 생소한 법률 용어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경호팀장은 자신들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는 강패의 얼굴을 신경질적으로 쳐다봤다.
딱 봐도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것이 영락없는 노숙자의 행색이었다.
이 틈바구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미친놈 같아도 보였다. 하지만 경호팀장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투지를 발산하는 모습에서 강패가 심상치 않은 작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들의 어깨 너머를 쳐다보다니.
경호팀장은 불현듯 드는 불안한 상념을 애써 떨쳐 내려 했지만, 강패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뒤에 저 꼬맹이도 내 거야. 이 새끼들아.”
조선 그룹 경호팀 십여 명, 흑룡파 조직원 서른 명을 향해 강패의 사이한 미소가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