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장 (23/30)

3장

“형님! 애들 다 모였습니다!”

태운은 앞에 있는 남자를 보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에 다시 한 번 감격했다.

딱히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체능 계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고등학교마저 졸업한다면 마땅히 할 것이 없다는 것에 안 그래도 고민이 많던 처지였다.

잘나가는 일진이기는 하지만 그것만 믿고 무작정 암흑가에 뛰어들기에는 그가 가진 연줄이나 배경이 너무나도 없었다.

그렇게 막연하던 찰나, 그냥 평조직원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흑룡파의 조직원 중 하나가 그를 찾아온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일만 성공하면 흑룡파에 들어갈 수 있다!’

흑룡파의 조직원이 일개 고등학교 일진인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 궁금했지만, 일을 해 주는 대가로 받게 될 어마어마한 보상은 태운의 눈을 뒤집히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의 암흑가를 주름잡는 삼대 암흑 세력 중 하나인 흑룡파에 조직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비록 양지에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는 없는 직업이지만 태운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는 가장 좋은 직업이었다.

게다가 잘 살아남기만 한다면 나름 비전(?)도 있었기에 태운은 망설이지 않고 그 제안을 덥석 물었다.

여자 하나만 데려오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

무슨 이유에서인지 태운에게 찾아온 흑룡파 소속 조직원은 최대한 많은 일진을 모아 올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눠 줄 두둑한 비용까지 챙겨 줬기 때문에 태운은 망설이지 않고 다른 일진들까지 불러 모았다.

이 일만 해결하면 자신은 흑룡파에 들어간다.

그뿐이랴? 받은 비용으로 일진들에게 떵떵거리면서 생색까지 낼 수 있었다. 태운은 벌써 흑룡파 소속원이 된 듯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모인 일진만 스무 명.

고등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웬만한 성인 남성만 한 체격을 가진 일진들이 스무 명이나 모이니 그 기세가 제법 흉흉했다.

일진들을 둘러본 흑룡파 조직원이 만족스럽다는 듯 태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짜식. 고생했다. 위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일이니까 잘 처리해라. 이 일만 잘 처리하면 너도 앞길이 창창할 거다.”

“가, 감사합니다, 형님!”

조금 냉정했거나 머리가 더 똑똑했다면 조폭들이 직접 하기 꺼리는 일을 시키려는 것쯤은 눈치챘을 터였다.

하지만 당장 흑룡파라는 이름에 정신이 팔린 태운은 그저 앞의 조직원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런 태운을 보며 흑룡파 조직원의 얼굴에 비웃음이 살짝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비대한 덩치를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는 태운과 일진들뿐이었다.

“우아. 포스 쩐다. 저 사람이 흑룡파 조직원이라고 그랬지?”

“그래, 짜식아.”

“근데 네가 어떻게 흑룡파 형님들을 알았냐?”

성수가 비대한 몸을 비척거리며 걸어가는 흑룡파 조직원을 보면서 묻자 태운은 마치 자신이 흑룡파 조직원인 양 어깨를 쭉 펴고 거드름을 피웠다.

“새끼야. 당연히 이 형님의 잠재력을 보고 흑룡파에서 먼저 스카우트 나온 거지.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난 탄탄대로다! 푸하하!”

조폭이 되는 것이 어찌하여 인생의 탄탄대로가 되는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찌하였건 태운이 기분 좋게 웃어 젖히자 모여서 웅성대던 일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날아와 꽂혔다.

“자, 후딱 끝내고 한잔 걸치러 가자!”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과 동등한 일진들이었다.

태운이 일방적으로 명령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일진들은 태운이 흑룡파의 조직원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본 후, 태운의 흑룡파 진출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인지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일진으로 활동하는 그들에게 진짜 조직 폭력배는 일종의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바라고 바라는 워너비나 다름없는데, 태운은 바로 그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 개 같은 놈도 짓밟아 주겠어.”

태운은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이 저번에 된통 당했던 그 노숙자가 있는 지하보도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다.

그때는 비록 처참히 당했지만, 지금은 두 명이 아니라 거의 서른 명이 몰려가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일진 서른 명이라면 내심 어지간한 조직 폭력배와도 싸워 이길 자신이 충만했다. 그래서 태운은 이 기회에 오히려 강패까지 박살 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흑룡파의 일원이 되실 몸인데 그런 수치스런 과거를 남겨 둘 필요는 없겠지.”

띠링!

결의를 다지던 태운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태운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가자! 얼른 가자고!”

우르르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서 불량스럽게 담배를 피워 대던 일진들이 하나둘 담배꽁초를 던지면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태운을 따라 한 골목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뭐야. 저건 웬 고삐리들이야?”

국정원 요원 중에 하나가 승합차 창문으로 지하보도 쪽을 쳐다보다가 돌연 등장한 일진들의 행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얼굴, 무엇보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상징인 것처럼 전부 북면 패딩을 걸친 그들이 우르르 몰려가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 분분히 피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저 새끼들이 단체로 패싸움이라도 하러 가나……. 말세구만, 말세야.”

국정원 요원이 혀를 차면서 투덜거렸다.

“선배. 우리가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소영이 묻자 요원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왜?”

“아니…… 저희가 그래도 공무원인데 애들이 패싸움하는 걸 두고 볼 수도 없고…….”

역질문에 오히려 당황한 소영이 횡설수설하자 요원은 한숨을 더 크게 내쉬며 말했다.

“막내. 잘 들어 둬. 우린 경찰이 아니야. 저런 일은 경찰이 해야 하는 일이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하면 돼. 우리 임무는 저 지하보도에 있는 그놈을 감시하는 일이지? 그동안에는 한시라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리면 안 된다고.”

“선배님. 하지만…….”

“네 기분은 알아. 물론 우리도 공무원이고, 어른이니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줘야 하지. 하지만 쟤네 잘못 건드렸다가 부모한테 잘못 들어가기라도 하면 우리는 바로 모가…….”

“그게 아니구요! 지금 저 녀석들 지하보도로 몰려 가고 있다구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 뭐, 뭐!?”

한창 연설을 늘어놓던 선배 요원은 소영의 말을 한 박자 늦게 이해하고서는 재빨리 창에 달라붙었다.

과연 한 무리의 일진들이 지하보도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미…… 미친!”

요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에잇!”

드르륵!

그 순간, 소영이 돌발적으로 승합차의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야! 너 어디 가!”

요원이 애타게 불렀지만 이미 소영은 지하보도 쪽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중이었다.

“팀장님! 팀장님! 지원 요청합니다! 이런 제기랄!”

팀장에게 지원 요청을 한 선배 요원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승합차에서 뛰어내렸다.

*

*

*

“뭐야. 애들 아냐?”

단체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싶어서 좋다구나 지하보도에서 뛰어나온 강패는 인도 한쪽을 가득 메운 일진들을 보고 김샌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패를 발견한 듯 일진들은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강패는 조금도 위축된 표정이 아니었다.

“너 이 개새끼!”

제일 앞에서 걸어오던 태운과 성수는 강패를 발견하고 씹어 먹을 것처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때 기억이 남아 있기는 한 것인지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개새끼?”

무방비 상태에서 육두문자를 맞았다. 딱 봐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놈들에게 따귀를 정통으로 맞은 기분이라 강패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처척!

거의 서른 명 정도 되는 일진들은 강패와 십 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멈춰 섰다.

강패 홀로 지하보도 입구에 서서 일진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태운과 성수는 말 그대로 의기양양했다.

“너 이 새끼, 잘 걸렸다! 저번에 그렇게 하고서도 무사할 줄 알았냐? 어!”

“넌 뒤졌어, 새끼야!”

뒤에 서른이나 되는 일진들이 버티고 서 있으니 아주 든든했다.

그때 경험한 강패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그래도 같은 연령대에서는 많이 싸워 본 경험이 있는 태운과 성수다. 혼자서 아무리 잘 싸워 봤자 다섯 명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서른 명이다. 그들 입장에서 이미 이야기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개새끼라……. 개새끼…….”

강패는 욕의 여운이 꽤나 길게 남는 것인지 비스듬하게 땅을 쳐다보며 개새끼란 단어를 되뇌고 있었다.

그 모습이 또 태운과 성수에게는 잔뜩 겁먹은 듯한 모습으로 비춰졌기에, 둘의 얼굴에는 더욱더 의기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얼른 저놈 밟아 버리고 여자애만 데리고 나오자고!”

“크큭, 뭐야. 저 구질구질한 놈한테 무슨 원수라도 진 거야?”

“쯧. 어찌 됐든 놈도 불쌍하다. 하필이면 걸려도 우리한테 걸리냐. 크큭.”

“야야, 어디 안 부러뜨리게 조심해. 그냥 적당히 다져 주는 게 깔끔하다고.”

누구를 앞에 뒀는지 짐작할 리 없는 일진들은 서로 킥킥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일진들이 믿음직스러운지 태운이 외쳤다.

“밟아 버려!”

“쩝. 뭐 밟을 거나 있겠어? 저렇게 여리여리해서.”

일진들은 태운의 말에 거부감을 품지 않고 불량스럽게 건들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때까지도 강패는 비스듬히 보도블록만을 주시하며 개새끼란 단어를 곱씹을 뿐이었다.

한편 태운과 성수는 당연히 자신들이 강패를 가볍게 밟아 버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강패의 무서움을 체득했기에, 태운과 성수의 본능은 다른 일진들이 앞으로 나가는 사이 은근슬쩍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보실까?”

대낮의 길 한복판.

자칫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일진들은 걱정하는 기색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었다.

대한민국 암흑가를 주름잡는 흑룡파에서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그런 자신들이 두려워할 것이 무에 있겠는가.

게다가 그들은 무적의 청소년들이었다. 어떻게 걸린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훈방될 것이었고, 심해 봤자 소년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만약 이 일이 조선 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을 상대하는 것이고, 때문에 흑룡파에서도 직접 나서기가 껄끄러워 그들을 이용해 먹을 생각이란 걸 눈치챘더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사회 경험이 없고 어린 일진들이 그런 흑룡파의 속내까지 짐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 일단 가볍게 한 방!”

후웅!

그래도 제법 싸워 본 경험이 있는 일진들 중 한 명이 강패에게 달려들면서 내뻗은 주먹은 군더더기라곤 없어 보였다.

문제는 상대가 강패라는 것이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시선을 들어 올린 강패의 눈에서 스산한 안광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일진들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강패를 주시하고 있던 태운과 성수는 그 모습에 간담이 서늘해지며 저도 모르게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강패의 눈은, 분명히 태운과 성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빠악!

그사이 먼저 내뻗은 주먹이 강패에게 적중했다.

“뭐야! 피하지도 못하고 그냥 얻어맞은 거야?”

“완전 쫄았구만 이거!”

“앞에 너희들만 때리기 없기!”

달려들던 일진들의 눈에는 강패가 겁을 먹어 피하지도 못한 모습으로 보였다.

뒤쪽의 일진들이 각기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강패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은 일진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우드득!

“끄아아악! 끄윽!”

분명히 강패에게 먼저 주먹을 내뻗은 일진이었다.

그걸 강패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제자리에 서서 얼굴로 받았다.

하지만 정작 주먹을 내지른 일진이 비명을 지르며 퉁퉁 부어오른 손을 부여잡은 채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끄아아! 내, 내 손이!”

흉측하게 퉁퉁 부어오르는 것을 보니 손 어딘가가 부러진 것이 틀림없었다.

강패를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쯤으로 취급하던 일진들은 그 모습에 순간 놀랐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너무 무지했다.

“못생긴 얼굴 저리 치워라.”

가볍게 한 발자국 나선 강패가 파리를 내쫓듯 손을 내저었다.

짜악!

우당탕탕!

강패의 손등에 얼굴을 정확히 가격당한 일진 중 한 명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거의 일 미터를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저 새끼가!”

“뭐, 뭐야!”

“이 미친놈!”

자신들은 서른 명이나 된다.

그런 자신들에게 덤비려는 강패가 어이없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뺨을 얻어맞은 친구의 입에서 허연 이빨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모습에 더욱 당황한 일진들이었다.

“죽어!”

후웅!

제법 강단 있는 일진이 앞으로 나서며 발차기를 하자 흉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패가 그 공격을 힐끗 보고서는 피식 웃었다.

퍽!

“끄아아악!”

일진의 공격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리고 일진은 사람의 몸을 걷어찬 것이 아닌, 흡사 단단한 고목을 걷어찬 충격으로 정강이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뼈에 금이라도 간 듯,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일진을 보며 다른 일진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오히려 자신들이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차피 한 놈이야! 다 같이 덤벼!”

“개새끼! 아무리 잘 싸워 봤자지!”

강패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일진들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싸움 잘하는 한 명이 서른 명을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용기를 얻은 일진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흐압!”

“핫!”

휘잉!

파밧!

일진들이 합격술 따위를 알 리 없었다.

한꺼번에 공격하려고 애쓰는 일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어린 나이치고는 강력해 보이는 공격이 몇 있었지만, 강패는 그저 느긋하게 팔짱을 낄 뿐이었다.

퍽!

퍼버버벅!

강패의 전신에 일진들의 주먹과 팔다리가 꽂혔다.

“잘했어!”

“좋아!”

뒤에 있던 일진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끄악!”

“끄으으…….”

하지만 그들도 앞서 강패의 몸에 공격을 성공시켰던 다른 일진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뭐, 뭐야, 저 새끼?”

“사람이야?”

“제길. 어떻게 하지?”

여섯 명이 넘는 일진들이 강패를 공격해 놓고서도 오히려 자신의 주먹이나 다리를 붙잡고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상황.

이쯤 되자 머리가 나쁜 놈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공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강패를 공격하면 저 꼴이 난다는 것.

하지만 더 미치고 팔짝 뛸 일은, 막상 당사자인 강패는 팔짱을 끼고 있었을 뿐 한 번도 먼저 주먹이나 다리를 뻗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 이 정도면 CCTV에 충분히 보였겠고…….”

강패가 먼저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지난 2주일 동안 강패가 읽은 책 중에는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의 법규에 관한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무분별한 폭력을 얼마나 배척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제재한다고 해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무력으로 인한 폭력이 사라질 리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강패는 자신이 그런 무분별한 폭력을 휘두르는 야만인 취급을 당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변했어도 자신이 살 나라였고, 과거에는 자신의 조국이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 잘 아는 강패였다. 괜한 일을 벌였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은 거절하고 싶은 일이었다.

힐끗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쪽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한 강패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주위를 빙 둘러싼 채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일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맨 뒤에서 지켜보던 태운과 성수는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분명히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어 그다지 보기 좋은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으면 나오는 게 웃음이었고, 대개 그런 웃음은 보는 사람들까지 기분이 좋게 만든다.

그런데 강패의 것은 달랐다.

마치 난폭하고 굶주린 맹수가 먹기 좋은 식량을 앞에 잔뜩 두고서는 입맛을 다시는 것만 같은, 식사 전 보이는 그런 기대에 찬 미소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을 다른 일진들도 받았다.

“뭐, 뭘 쪼개!”

하지만 그래도 꿀리기 싫었던 치기 어린 한 일진이 강패에게 용감하게 소리쳤다.

강패는 시선을 돌려 일진을 쳐다보았다.

“네 녀석이 좋겠다.”

“뭐, 뭘……. 커헉!”

강패와 눈이 마주친 일진이 다시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일진은 목이 졸리는 느낌을 받으며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분명히 눈을 한번 깜박했을 뿐인데, 그사이 강패가 일진들 틈 사이로 들어와 한 명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린 것이다.

“뭐……. 뭐야!”

“으헉!”

일진들이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강패는 자신의 손아귀에 멱살을 잡힌 일진을 쳐다보면서 스산하게 웃었다.

“넌 시험 대상이니까 적당히 해 주지.”

“컥……. 커걱…….”

일반인에 비해 족히 한 뼘은 더 큰 강패다.

강패의 손에 잡힌 일진은 제법 발육이 좋았음에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계속 목을 죄어 오는 멱살에 일진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컥컥거렸다.

“이 새끼가!”

맨 처음 강패를 패닉에 빠지게 한 ‘개새끼’라는 단어를 내뱉은 일진이 그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빠악!

시원한 타격음이 도로 위에 울려 퍼졌다.

“넌 뒤졌어, 이 새끼야!”

책이 든 가방을 휘둘러 강패의 뒤통수를 내려친 일진이 득의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하지만 채 그 성취감이 사라지기도 전, 거센 충격에 뒤로 나가떨어졌다.

강패가 들고 있던 일진을 휘둘러 그 미소 띤 얼굴을 후려쳤던 것이다.

우당탕탕!

“커……. 커흐…….”

“으윽…….”

강패가 목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는 일진과 뒤엉켜서 쓰러져 있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으…….”

“씨, 씨발!”

강패가 버젓이 사이로 들어와 휘젓고 다녔지만 다른 일진들은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오히려 강패가 가는 쪽에 있는 일진들은 자신들이 먼저 물러나고 있었다. 얕잡아 보이기는 싫었는지 연신 육두문자를 내뱉고 있었지만, 그러면서 강패 주변으로 얼씬도 하지 못하는 것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강패의 주위로는 벌써 일고여덟 명 정도가 각기 퉁퉁 부어오르는 신체 한 부분씩을 부여잡고 눈물 콧물을 짜고 있었다.

그러나 강패의 입가에 떠오른 스산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흥! 어디 한번 놀아 보자꾸나!”

강패가 어린아이에게 보여 주는 인형극처럼 우스꽝스럽게 호랑이 소리를 흉내 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개새끼란 욕을 날리고, 지금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일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강패를 다른 일진들은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태운과 성수는 아예 하얗게 질려서 도망갈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지하보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건물의 후미진 곳에 어깨가 떡 벌어진 흑룡파 조직원들 대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형님. 굳이 저 어린놈들까지 써야 합니까?”

외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지만 흑웅은 조용했다.

“우리 애들 몇 명만 나서도 간단하게 끝날 일을 꼭 이렇게 크게 만들어야 했습니까?”

외칼은 고등학생 일진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연신 투덜거렸다.

괜히 경찰들의 시선을 끌어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에 지금 흑룡파 조직원들은 이 근방에 전체적으로 퍼져 있었다. 그들은 흑웅이나 외칼의 한 마디 명령이면 금방 모일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수만 무려 삼십여 명.

경찰이나 상대 조직원들이 본다면 바짝 긴장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만한 숫자였다.

외칼은 이 정도 조직원들이 고작 여자아이 하나 잡아가는 일에 모인 것이 불만스러웠다. 거기에 총알받이로 고등학생 일진들이 서른 명이나 동원됐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형님!”

외칼이 답답하다는 듯 재차 말했지만 흑웅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일진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한테 두 놈만 붙여 주십쇼. 여자애 하나 잡는데 조직원 서른 명이 왜 필요합니까.”

외칼이 호기로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흑웅은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 명이시다. 그리고 나도 이 정도 인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님! 괜히 저 고삐리들 썼다가 경찰한테 불어 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고삐리를 풀어 경찰들의 이목을 돌린 후 조선 그룹 총수의 손녀를 납치한다는 계략 자체는 훌륭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계략이 완벽한 것도 아니었다.

고삐리들이 서른이나 나타나서 깽판을 부리니 경찰은 출동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고삐리들이 단체로 굴비 엮이듯 줄줄 경찰에 끌려간다면, 그 취조 과정에서 흑룡파의 이름이 안 나올 리 없는 것이다.

애초에 고삐리들에게 의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으니 말이다.

“무식한 새끼. 그냥 회장님과 내가 하라는 대로나 해라!”

“형님!”

하지만 흑웅은 귀찮기만 한 것인지 외칼을 아예 밀쳐 버렸다.

외칼이 흑웅의 거친 행동에 당황했다.

“요즘 정말 왜 이러십니까! 이상해지셨습니다, 형님!”

흑웅과 외칼은 처음부터 형제처럼 지낸 사이였다.

말단 조직원 시절부터 흑웅와 외칼은 콤비처럼 붙어 다녔다. 곰 같은 덩치로 상대방을 밀어붙이는 흑웅과 낭창낭창하고 유연한 몸을 무기로 날카롭게 공격하는 외칼은, 최강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무시할 사람은 없는 콤비로 암흑가에서 이름을 날렸다.

세월이 흘러 흑웅은 간부가 되고 외칼은 그 심복이 되었지만, 흑웅은 지금까지 한 번도 외칼을 지금처럼 함부로 대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외칼의 당황스러움은 더욱더 클 수밖에 없었다.

“외칼!”

흑웅이 버럭 소리지르자 외칼이 바싹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며칠 들어서 흑웅의 행동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했다.

조직의 사활을 건 일이 걸려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 옆에 있었던 외칼은 흑웅이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변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호탕하고 화끈한 성격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조급하고 폭급해졌다.

머리를 잘 굴리고 꾀를 잘 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다스렸던 흑웅이었건만, 지금은 자기밖에 모르는 옹졸한 위인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외칼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흑웅이 어색했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경찰의 조사는 피하면 그만이다! 증거도 없어! 지금 우리의 상대가 누군지 잊지 말아라.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거나 꼬투리를 잡히는 순간 우리는 끝이야!”

흑웅의 목소리는 비장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표정에도 긴장감이 흘러넘쳤지만, 외칼은 그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형님! 백상어파 놈들에게 포위됐을 때도 호탕하게 웃으시던 형님입니다! 그런데 왜 이러십니까! 정말 형님답지 않으십니다!”

행동대장인 외칼은 그 직함대로 직설적이기 그지없었다.

흑웅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외칼! 난 그때 그 말단 조직원이 아니야! 내 밑에는 수백 명이 넘는 식구가 있다. 그 식구의 목숨을 쥐고 지금 모험을 하는 거다. 예전 방식대로는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후…….”

“그리고!”

한숨을 내쉬려던 외칼이 흑웅을 다시 쳐다봤다.

“누가 저기 있는지 잊었던 거냐. 우리 조직을 엉망으로 만든, 그 개자식이 저 안에 있다. 밟을 거면 철저히 밟아야지. 감히 흑룡파를 건드리고도 무사한 놈이 있을 순 없다.”

“하지만 형님! 그래도 고삐리를 사용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조직원들을 …….”

“그만!”

흑웅의 눈을 본 외칼은 자신이 지금 어떤 말을 하더라도 먹히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사람이 바뀌어도 너무나 바뀌어 있었다.

흑웅이 바뀐 이유가 자리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외칼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로 계산하고 움직이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흑웅의 모습은 외칼에게 너무나도 낯선 모습이었다.

“차라리…… 옛날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흑웅의 눈을 쳐다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 외칼은 그 말을 끝으로 다른 조직원들 앞에 가서 섰다.

흑웅은 충혈된 눈으로 그런 외칼을 차갑게 바라보다가 지하보도를 쳐다보았다.

“지금이다. 가서 조모강의 외손녀를 데리고 나와라!”

일진들과 강패 간의 마찰이 벌어지고, 그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흑웅이 외칼을 향해 말했다.

동시에, 지하보도 근처 곳곳에 퍼져 있던 흑룡파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