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병문안
솔직히 부담된다.
저분을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말이다.
그리고 언제 또 그때처럼 내가 돌변할지도 모르고 해서 난 누군가에게 SOS를 청했다.
참고로 그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마워."
"아니에요, 선배......."
연희였다.
사실 서큐버스랑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래도 같은 여자일 것이다. 한마디로 같은 남자로서는 그 누구도 그녀의 유혹을 견뎌 내기 힘들다.
한편 연희는 다소곳한 행동으로 내가 간단히 설명해 준 이리엘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흠칫!
"......."
"......."
연희를 보고 흠칫하는 이리엘.
왜 저러는 거지?
분명 연희를 보고 움찔할 이유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이리엘은 움찔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 순간이었다.
"저, 저기 저, 전 안 돼요!! 이, 이러지 마세요!!"
"......."
한편 갑작스러운 이리엘의 대사에 당황하는 연희.
그녀도 너무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저런 이상 반응에 말이다.
그리고 저 심정, 내가 잘 안다.
나도 당해 봤거든.
왠지 모르게 순식간에 짐승이 되어 버린 느낌, 정말 말로 표현한 그 자체다.
그런데 저분, 그러고 보니 심각하다.
솔직하게 말해 내가 좀 변태같이(?) 생겨서 무서워하고 덮치지 말라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연희한테도 그런 소리를 하니 답이 안 나온다.
연희는 엄연히 여자, 그것도 슈퍼 하이레벨 급 미소녀다.
그런 미소녀를 향해 덮치지 말라는 걸 봐서는 이리엘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저기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여자가 여자를 덮치면 그건 백합 모드가 아닌가?
그리고 그게 만약에 연희와 이리엘이라면 솔직히 말해 기대된.......
아, 아니, 무슨 소리냐!!
난 절대 나도 모르게 연희와 저 이리엘이 백합 모드 상태로 들어간 상상은 절대적으로 안 했다.
죽어도 안 했다. 죽어도!!
"주인님은 연희 님과 이리엘 님과 금단의 장난에 대한......."
퍼억!!
그때 용케도 내 생각을 읽고 고자질 때리려는 케찹이.
하지만 내 손이 더 빨랐다.
난 항상 저 케찹이의 대사를 주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죄송합니다. 흐흑."
"......."
"......."
그때 죄송하다고 흐느끼는 이리엘.
정말 독특을 넘어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서큐버스 공주님이다.
하지만 예쁘니까 뭐.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두근두근.
"허억!!"
또다시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마치 저번 이상 현상.
즉 내가 나도 모르게 이리엘을 덮칠 뻔했던 그 상황.
꺄아악!! 또 시작인 거냐!!
제발 내 몸뚱아리야, 말을 들어라!!
하지만 나의 이런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 몸은 서서히 이성과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눈에 띄는 한 소녀.
아아악! 안 돼!!
연희가 있는데, 연희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 앞에서 내가 이리엘을 덮치는 장면을 보인다면?!
그냥 게임 끝이다.
나의 순수한(?) 이미지는 박살날 뿐만 아니라 연희와도 거리가 벌어질 게 분명하다.
이성민! 정신 차려!!
안 돼!!
낚이면 우어어억!!
하지만 반항을(?) 하면 할수록 내 몸은 더욱더 제어선을 벗어난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가는.......
그때 바로 내 옆에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
난 느꼈다.
저 나무야말로 나를 구원(?)해 줄 나무라는 거.
그리고 그 순간.
퍼억.
"서, 선배!!"
"주인님!!"
"......."
내 머리랑 나무님이 서로 헤딩 오브 헤딩(?)을 하셨다.
물론 그 모습을 본 연희와 이리엘은 소리쳤지만, 난 그 소리보다 다른 것에 집중된다.
아프다는 거.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고통을 느끼는 것 자체가 죽을 때나 심각한 고통을 제외하고는 느껴지는 세상이다.
그런데 나무님과 내 머리가 부딪쳤으니 그 고통이란 진짜 말로 형언할 수 없다.
그렇지만 행복하다.
내 이미지는 지켰으니까.
"선배, 피예요!!"
"......."
주르륵.
그때 연희의 말과 함께 내 머리에서 붉은색의 무언가가 훌렁훌렁(?) 떨어지신다.
붉은색의 무언가가.
"선배!"
그때 연희가 다가와서 다급하게 손수건으로 내 이마를 감싸 준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아프면서 뭔가 희열이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뭐지?
난 정상인인데 말이다.
그나저나 나 이리엘과 다니다가 내 몸이 견뎌 낼지 의문이다.
오늘의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원래 오늘의 일정이란 연희와 이리엘과 함께 데젠에게 가서 고스트 헌터인가 뭔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병문안이라는 것에 의해 차질이 생겼다.
병문안.
아픈 사람 빨리 나으라고 오는 거.
그때 추가적으로 맛난 것도 옵션으로 딸려 오고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원래 사람들은 감동한다.
그렇지만 난 감동은커녕 얼굴이 찌푸려진다.
왜냐고?
병문안 오는 사람이 그분이니까.
사실 난 연희가 학생 대표로 병문안 온다는 사실에 펄떡 펄떡 뛰었다.
연희가 나를 병문안 오다니.......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에 그대로 인상이 구겨진다.
선생님 대표로 오는 분 때문에 말이다.
악어 선생, 나 물어뜯으려고 매일매일 이를 간다는 소문이 있는 그분이다.
그런 분이 나의 병문안을 오시는 거?
사실적으로 말해 그분은 병문안을 오는 건 아니다.
나를 물어뜯으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벌써 발 다 나은 거 파헤치러 오는 것?
그럴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연희가 오다 보니 또 그 옆에 떨거지들도 달라붙을 확률 100%.
정말 연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병문안이 아니라 나를 갉아 먹으려고 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인상이 이 모양일 수밖에 없다.
"휴우......."
난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다리 깁스를 점검한다.
아무래도 오늘 진실 공방이 왔다 갔다 할 듯싶으니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 수많은 적을(?) 상대로 나의 정식 땡땡이를 지켜 내기 위해서 말이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 순간 손님이 왔다는 말에 난 전투태세를 취한다.
오늘 피 냄새가 진동할 것만 같다.
"......."
난 감동 절대로 안 했다.
문 밖에서 줄 서서 있는 남정네들을 보고 말이다.
대략 숫자만 해도 몇 백 명.
그리고 그 손에 들려진 병문안 선물들.
확실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게 내 병문안을 왔다면 감동 받겠지만, 이분들은 병문안을 위장한 악마들이다.
특히 저기 선물 들고 나를 노려보는 연희 팬클럽 떨거지들.......
참으로 저 많은 선물.
정말 많다.
하지만 내용물이 문제다.
건강에 해롭다는 거.
한마디로 맛있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스턴트 류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빨리 먹고 뒤지라고.......
너무 고마운 병문안 선물이다.
"걱정 많이 했네, 성민 군. 크크!"
"......."
그때 오늘의 라스트, 보스 악어 선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뒤에 웃음 '크크'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걱정하는 말 뒤에 붙게 되었는지 난 참으로 궁금하다.
한편 악어 선생은 휠체어에 타고 있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나에게만 들릴 만한 소리로 속삭였다.
"오늘은 재미있지 않을까?"
완전 이건 대놓고 잡아먹겠다는 심보다.
추가로 이곳에 내 편은 없다.
아니, 연희가 있기는 하지만 쪽수에서 너무 차이난다.
지금 저 연희 팬클럽 떨거지들은 확실하게 이 악어 선생의 부하가 된 상태다.
그의 한마디라면 모든 걸 할 각오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지원군을 부르는 수밖에.......
"으아악!!"
"선배?!"
"......?!"
"......?!"
"......!!"
내 갑작스러운 비명에 모두 당황한 표정이다.
특히 그중 연희는 직접 달려와서 깁스를 한 두 다리를 붙잡고 있는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듯 바라본다.
사실 지금 연희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난.......
삐익.
내 휠체어에 있던 긴급 도움 요청 버튼을 마구 고통스러워하면서 꾸욱 누른다.
다른 사람도 잘 볼 수 있게 말이다.
덜컥.
"지금 당장 병원으로 운송하겠습니다."
"......."
"......."
그때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119 구급대원들이 당황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그대로 나를 들고 나간다.
리얼 연기로 인해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날 말이다.
한편 그렇게 순식간에 내가 밖으로 나가자, 모두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크크크.
왠지 웃음이 변태 같은 이유는.......
"나 119에서 잘리면 네놈 탓이다."
"에이, 형도 참......."
난 어느새 깁스를 한 채로 번쩍 일어선 채 태평하게 방금 전 나를 데리고 나간 119 대원과 아주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나저나.......
"형, 연기력 좀 더 키워야겠어요."
"......?"
"평소에 들이닥치면 어디 아프냐고 묻지 않아요?"
"그, 그렇긴 한데......."
"근데 왜 오늘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끌고 나가기만 해요."
"......."
"뭐 어차피 다들 당황해서 별 신경 안 쓴 듯싶지만요."
"지금 힘들게 도와준 나에게 불만 제기냐?!"
"아뇨. 불만 제기가 아니라 앞으로 이런 일을 할 거면 좀 더 능숙하게......."
"이런 일 죽어도 안 해, 인마! 내가 한가로워 보이냐?! 내가 네놈이어서 해 줬지, 이런 미친 짓거리를 왜 해!"
흐음, 확실히 자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진짜 119에서 잘릴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나저나 모두들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은 모르겠지?
흐흐흐. 난 혹시 천재?
자중하겠다.
그날 저녁.
난 유유자적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모두 갔을 거라는 판단 하에 말이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집으로 들어가는데.......
"헉!!"
집 안에 누군가가 있다.
정확히는 아마도 누군가가 아까 온 뒤 아직 안 갔을 거라고 추정된다.
아니, 도대체 어떤 분이 이런 독한......!
"연희?"
내 눈에 클로즈업 되는 한 분을 보고 난 그대로 그 이름부터 부른다.
연희였다.
연희가 지친 얼굴로 소파에 기댄 채 조심스럽게 잠들어 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천사 같은지 보는 사람이 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연희야......?"
"으음......."
내가 다급히 다가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고, 잠시 후 내 모습을 보더니.
"서, 선배!"
덥석.
헉!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희는 무척이나 얼굴이 붉어지더니 당황하는 얼굴로 떨어져 더듬거리며 말했다.
"서, 선배, 죄송해요."
"아, 아니 죄송하기는......."
죄송하기는커녕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막 눈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고마워요.
흐흑.
"저, 저기 그런데 괜찮으세요?!"
그때 다시 연희는 나름대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나의 안부를 묻는다.
설마 연희 님은 내가 막 비명 지르고 가니까 걱정이 돼서 아직 안 가고 이 자리를 지킨 건가?
충분히 그럴 가망성이 높다. 내가 아는 연희는 그러니까.
연락 두절까지 되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나니 아무래도 그녀는 더욱더 걱정했겠지.
난 그런 연희를 생각하자 극도로 미안해졌고 연희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
"너한테까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는 연희.
난 그런 연희를 향해 조심스럽게 나의 다큐멘터리(?)를 들려주었다.
"그, 그럼 벌써 다 나으신 거예요?"
"다 낫기야 했지만 아직은 안정 구도야."
"......."
"하지만 학교에서 알면 100% 기어 나오라고 할 거 아니야?"
"그, 그건 그렇지만......."
"연희야, 너만 모른 척하면 아무도 몰라.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
"비밀, 지켜 줄 거지?"
"......."
연희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곤혹함을 드러냈지만 난 그런 연희를 정말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한편 이런 나의 눈빛이 통했는지 연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고마워!"
역시 연희는 킹왕짱.
그렇게 연희는 저녁에 뒤늦게나마 자신의 보디가드들과 집에 돌아갔다.
내일 게임에서의 만남을 약속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연희는 또다시 그 질문을 하지 못한 자신에게 한숨이 나온다.
단둘이 있는 시간, 전문 용어로 찬스였다.
항상 선배와는 단둘이 있는 시간이 없는 만큼 그런 시간은 연희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을 이용해 물어보려고 했지만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혹시나 선배가 이상하게 생각해서 자신과 거리가 멀어질 까 이런 생각에 말이다.
"하아......."
연희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정말 묻고 싶은데, 묻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안 되니까 말이다.
여자 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솔직히 선배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여성이 호감을 느낄 정도로 정말 멋있는 남자였다.
물론 선배는 전혀 그런 자신의 상황을 자각 못하는 것 같지만(자기도 자신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자각 못함).......
그러니 여자 친구가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은 것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선배가.......'
여자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이런 기분은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이다. 아무래도 성민이가 그녀의 첫사랑이기에 어쩌면 처음 느끼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