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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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준의장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원래도 2005년에 은퇴하는 그린스펀이었다. 1987년부터 연준의장에 취임한 이후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고집이 세고 말을 잘 안 들어서 재무장관과 충돌이 꽤 자주 있었지만 워낙 영향력이 거대하다보니 섣불리 교체를 하지 못했었다.
“빌 마틴기록은 넘기겠다고 그러더니. 조금 일찍 그만두네요?”
윌리엄 마틴 주니어는 1951년부터 1970년까지 다섯 대통령 밑에서 미 연준의장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전후의 세계경제를 조율했다.
- 은퇴날짜를 조율해야겠지만 10월에 은퇴하게 되면 빌 마틴의 기록을 조금 넘기게 될 거네.
“임기가 내년까지 아닌가요? 내년에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리처드의 연준의장임명은 모건 쪽에서 반대하지 않을까요?
리처드가 연준의장자리에 오른다면 규태의 입장에선 땡큐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월가의 숨은 지배자이자 연준의 터줏대감인 모건가가 반대한다면 연준의장 임명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규태가 애를 써서 연준의 지배지분을 가져왔다곤 해도 3%남짓, 30% 남짓한 정부의 지분을 생각하더라도 아직 연준은 모건과 휘하의 동맹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규태가 3%를 가져오면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연준의 지배지분구조는 극비로 취급되어 규태도 지방의 은행들을 인수하다가 연준지분의 보유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 모건 쪽에서 찬성하기로 했네.
“예! 그럴 리가 있나요? 리처드는 반월가 세력의 중심인물 아닙니까?”
웰스파고에서 근무할 때나 타이거 펀드 사장자리에 있을 때도 결코 월가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재무장관으로 있으면서도 반월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인물이 리처드였다.
그런 이유에서 엘 고어 행정부에서는 리처드를 새로운 연준의장자리에 꽂으려는 것이지만 어째서 모건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는지 영문 모를 일이었다.
- 원래 연준의장의 장기 집권을 허용하면 그다음은 중립적인 인물로 임명하는 게 모건쪽에서도 대충 넘어가주는 게 관례네.”
“아! 그렇군요. 저는 그걸 몰랐네요. 그래도 리처드를 용인한다니 아주 의외네요?”
중앙은행이나 마찬가지인 연준의장자리를 계속 독점하겠다면 어느 행정부가 가만 두겠는가. 최악의 경우 중앙은행을 만들겠다는 시도가 나올 수도 있으니 모건가도 넘어가 주는 모양이다.
느닷없이 대통령이 케네디의 전철을 밟아 FED의 국유화를 선언하려 한다면 모건 쪽도 낭패였다.
제아무리 수를 써도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예전에야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또다시 그런 일로 시비가 붙는다면 국민적인 분노에 휘말려 모건가의 영향력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
- 어차피 4년 아닌가. 그 정도는 참아줄수 있다는 거지. 반월가 인사가 연준의장자리를 차지해도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연준이사들은 자기 수족들로 채워놨으니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겠지. “
“일 리가 있네요.”
입맛이 쓰긴 해도 아직까지는 이게 현실이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반독점법에 의해 다섯 개의 회사로 갈라진 이후 모건과 록펠러 가문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의 지분구조를 대외로 드러내지 않았다.
모건의 이익이 가장 첨예하게 걸린 곳은 당연히 연준이었고 그다음은 월스트리트였다.
이들의 독점 아닌 독점이 깨지는 것은 2,030년쯔음.
기술개발의 특이점에 도달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의 발전 속도를 금융이 따라가지 못하면서부터였다.
아니 의도적으로 국가권력이 이들을 배재시켰다는 것이 보다 타당했다.
앞으로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규태의 목표는 이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
모건과 동맹들이 지배하는 월스트리트와 연준보다는 규태가 이들을 지배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 그렇게 알고 있게. 앨런이 물러나는 공식적인 이유는 건강이 될 걸세. “
공식적인 임기 막바지에서도 엘 고어는 할 일을 다 했다. 그동안 모건을 구워삶는다고 별별 일을 다 벌였을 것.
신임 연준의장의 임명은 그만큼 파괴력이 컸다. 실질적으로 미국금융계를 다스리는 황제를 선발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물론 실질적인 권력은 그 뒤에 흑막으로 버티고 선 모건가가 쥐고 있지만.
앨런다음에 버냉키가 아니었나?
버냉키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자리에 있다가 연준의장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규태가 머리를 쳤다.
부시에서 엘 고어로 대통령이 바뀌는 바람에 신임 연준의장도 바뀌게 된 것이다.
버냉키를 백악관으로 부른 사람은 부시였으니까.
지금 백악관의 경제자문위원장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 사람도 월가 출신이라 엘 고어의 신임은 그리 크지 않았다.
타이거 벤처의 이사회 의장자리에서 연준 의장으로 직책을 바꾸게 되지만 하는 일은 천양지차였다.
‘리처드가 한동안 이젠 낚시도 못한다고 꽤나 투덜거리겠군.’
현직에서 은퇴해서 낚시나 할 거라고 자리만 차지한 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리처드가 낭패한 얼굴로 자신을 찾아올 것을 생각한 규태가 쓰게 웃었다.
리처드 본인이나 주변에선 4년짜리 연준의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2,007년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할 때 모건의 영향력을 지워버릴 마음을 먹고 있는 규태였다.
그게 성공한다면 리처드의 연준의장임기는 예상보다 한참 길어질 것이었다.
한참동안 어떻게 연준에서 모건가를 몰라낼까를 고심하던 규태는 그제야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하나를 떠올렸다.
‘이런 빌어먹을 엘 고어에게 빌어먹을 카트리나를 경고해주려고 했는데 그걸 까맣게 잊었잖아. 어쩐지 뭔가 잊어버린것 같더라니!’
규태는 스스로 머리통을 탁탁 쳤다.
카트리나로 인한 피해도 피해였지만 그로인해 치안이 무너져서 한동안 난리가 났었다.
무능력한 주정부들만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으면 재선을 앞둔 엘 고어에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재난을 대비하고 있다가 한껏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대통령이라면 재선가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한참동안 입맛을 다시던 규태가 전화기를 붙잡았다.
***
기득권을 쥐고 있는 세력이 신규 진입자에게 용납해줄 수 있는 한계는 어느 정도인가?
가지고 있는 엑슨 모빌의 주식 18%를 넘어서는 주식매입을 시도하자 득달처럼 달려온 리치몬드는 더 이상의 주가취득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막말로 추가로 주식을 사들이면 전쟁이란 소리였다.
“저사람 엑슨 모빌에서의 직급이 뭐라고?”
“건넨 명함의 직책이 엑슨모빌 재정담당 책임자입니다.”
“회사의 실권을 상당한 수준으로 쥐고 있나보군. 제일 대주주에게 이렇게 냉큼 달려와서 협박을 하고 사라지는걸 보면 말이야.”
“아무래도 록펠러 쪽과 연관이 있다고 봐야겠죠. 차명으로 분산해서 쥐고 있는 주식이 우리 쪽보다는 한참 많을 겁니다.”
“스탠더드 오일이 분리되면서 힘이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여전한가 보군.”
“회사는 쪼개졌지만 록펠러의 지분이 사라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독점법의 여파로 엑슨, 모빌, 텍사코, 걸프, 소칼 이렇게 다섯 개로 쪼개졌다.
99년 엑슨과 모빌이 결합해 엑슨 모빌이 되었고 소칼과 걸프오일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셰브론이 2001년에 텍사코와 합쳐지면서 세브론 텍사코가 되었다.
다섯 개가 다시 두 개로 된셈.
이들 둘과 셀, BP, 토탈이 서방세계에서 힘을 쓰는 다섯 개의 석유 업체였다.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메이저 석유기업들에 록펠러의 입김은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차명으로 명의를 분산해서 주식을 매입했는데도 용케 알아차렸네?”
“자기들이 하는 짓이니까 다른 사람도 할까봐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걸테죠.”
“그 말이 정답 같다. 더 샀다간 전쟁이라니 아쉽지만 물러서야지.”
“보스답지 않게 약한 모습이네요.”
“약한 모습은, 모건가하고도 사이가 나쁜데 록펠러까지 적으로 돌리라고? 아직은 무리다 무리야. 그나저나 셰브론은 생각보다 조용하네? 지분을 두 곳 모두 비슷하게 사들이지 않았나? ”
“셰브론은 록펠러의 지배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대주주인 웰링턴가문이 상당히 힘을 쓰는 모양인데요.”
합병으로 덩치를 불린 엑슨모빌보다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아도 나름 미국에서 두 번째 석유기업이다.
“국제유가가 50달러수준까지 올라왔으니 이젠 더 이상 주식을 사들일 필요는 없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
투자은행들과 은행의 수익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월가의 세력들이 기세가 등등해졌다.
거기에다 세계경제의 성장이라고 쓰고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이라고 읽는 시대였다.
중국은 블랙홀처럼 석유와 철강, 석탄같은 원자재들을 무한정 빨아들였다.
“앞으로도 유가가 계속 올라갈 거라면서요?”
“중국의 성장세가 꺾이기 전까지는 국제유가라고 별수 있나 계속 올라야지. 지금 추세라면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걸.”
“정말 중국은 미쳤다니까요. 그 커다란 덩치가 연속해서 해마다 8%를 넘는 경제성장이 가능한 겁니까?”
이젠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 노련해진 복일모였지만 중국의 경제성장에는 혀를 내둘렀다.
“앞으로도 중국경제는 계속 성장을 할 거다. 세계경제가 계속 활기를 띠려면 중국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경제성장으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부동산 가격이 가장 많이 뛴곳은 상해, 심천과 같은 경제성장이 빠른 해안지역의 도시들이었다.
“로드릭이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더라고요. 전화를 하때마다 얼마나 자랑질을 해대는지.”
“상해 인터내셔날의 성과급이 엄청나잖아. 부동산에 투자를 했는데 가격이 급등하니까 당연한 일이지.”
명목상 상해인터내셔날의 대표로 있던 제임스 릴리가 고령으로 퇴진하고 그 뒤를 이어 대표 자리에 오른 로드릭 맥컴은 성과급대박을 맞았다.
초기투자자금이 100억 달러이고 추가로 250억 달러가 투입되었다.
푸동지구의 개발채권과 상업용 부동산에 집중해서 투자한 결과, 투자수익이 2,000%를 넘었다.
투자이익 규모가 너무 커서 중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투자매물들을 하나씩 천천히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중국 놈들 너무 치사하지 않나요? 우리가 넘기는 부동산 매물들을 사들이는 게 아무래도 중국 권력자들 자금 아닙니까. 상해방에서 사들이는 것 같던데요.”
“중국에서 뭘 기대하는 거냐. 거긴 원래 그런 동네야. 지금까지야 거지로 살았으니 없어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앞으로 지금보다 심해지면 심해졌지 줄어들지 않을 거다. 덕분에 이익송금에 큰 도움을 받고 있잖나. 그쪽에 부동산을 넘기지 않았으면 이익금을 빼낼 때 고생을 많이 했을걸.”
투자자금이 중국으로 들어갈 땐 투자자 마음대로지만 나올 때는 정말 중국정부 마음대로였다.
자금이 중국외부로 빠져나가는 일에 온갖 꼬투리를 다잡고 고율의 수수료까지 받으려고 들었다.
아직까지 중국경제의 급속성장이 지속되면서 유입되는 달러를 처치곤란하게 여겨서 자금이 나가기 쉽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투자이익의 송금은 어려워진다.
로드릭은 규태의 지시대로 주석 자리에서 물러난 장쩌민의 상해방과 새롭게 주석 자리에 오른 후진타오의 공청단까지 두루두루 관시를 맺고 있었다.
규태에게도 무수하게 많은 공식적인 초청이 있었지만 규태가 미쳤다고 거길 가겠는가. 아마 죽을 때까지 중국을 제 발로 찾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