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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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버블의 붕괴
가진 지분을 대부분 정리한 규태는 2000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신문과 방송의 신년인터뷰를 통해 나스닥의 과열을 지속해서 경고했다.
뉴욕에서 찾아온 새한일보의 박웅호특파원과 나눈 인터뷰에서도 나스닥과 코스닥의 주가과열을 경고했다.
“작년 바이 나스닥의 나스닥 투자성과는 엄청났습니다. 앞으로도 이 추세가 계속될 거라고 보십니까?”
“나스닥은 이미 과열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큰 조정 없이 주가가 큰 폭으로 올라서 앞으로 상당기간 조정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규태는 일부러 말을 순화시켰다. 급격한 하락을 예상하고 있지만 조정이란 단어를 사용했고 2년가량의 장기 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상당기간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규태와 만남에서 나스닥의 활황을 예상하는 말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박웅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더 큰 투자이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로군요.”
“조정국면이 끝이 나면 다시 주가를 매입할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나스닥 못지않게 한국의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주식들의 주가 상승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코스닥도 함께 조정을 받을 거라 예상하십니까?”
“최근 코스닥에 상장된 종목들의 주가상승은 상상이상입니다. IT기업인 새롬기술의 주가상승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수익성이나 성장성, 여러 가지 지표를 비교해보면 코스닥 시장역시 과열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규태는 코스닥시장의 뜨거운 화두인 새롬기술을 거론했다.
연일 주가가 제한폭까지 상승하면서 급격하게 오르는 새롬기술은 한국주식 투자자들에게는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었다.
액면불할 전에 30,000원대에서 시작한 새롬기술의 주가는 강ㄹ부터 오르기 시작해 새해 들어서도 상승을 멈추지 않았다.
1/10의 액면분할이후에 주가가 20만원을 넘긴다.
분할 전으로 따지면 200만원이 넘는 주가상승이 단기간에 벌어진 것이다. 20만원의 주가가 조정을 보이면서 10만까지 내려앉았다가 100%의 무상증자와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다시 주가가 20만원으로 솟구친다.
이때의 시가총액이 삼정전자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코스닥에 신규 상장된 종목들은 하나같이 상장되자마자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하며 자금을 빨아들였다.
나스닥의 규모에 미치지는 못해도 코스닥역시 미친 주가움직임을 보였다.
가장 유명한 벤처기업자의 하나로 유명한 규태가 기술주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늘어놓자 뜨겁던 인터뷰열기가 시들해졌다.
박웅호의 얼굴표정을 보면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보였다.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는 내용의 인터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인터뷰를 마쳐야 하겠는지 형식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고갔다.
“언제쯤 나스닥이 조정국면에 들어갈 것이라 보십니까?”
“빠르면 연초의 상승이 끝나면 한번쯤은 조정이 시작될 거라고 봅니다.”
계속해서 나스닥이 오를 것이라 생각했는지 대답을 들은 박웅호의 얼굴이 영 좋지 못했다.
“바이 나스닥 펀드가 높은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추가적인 펀드를 만들지는 않으실 계획이십니까?”
“당분간은 계획이 없습니다. 나스닥의 조정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라면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규태는 나스닥의 상승 이제 끝이 날거라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규태의 이야기를 시큰둥하게 듣던 박웅호가 형식적으로 취재를 마치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박웅호를 배웅하고 돌아온 오선한이 머리를 흔들었다.
인터뷰를 하러 올 때는 열광적이더니 돌아가는 모습이 영 시큰둥한 게 이번 인터뷰를 크게 다루지 않을 모양이었다.
규태의 인지도라면 1면 톱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이지만 인터뷰 내용이 문제였다.
“말하는걸 보면 기사가 제대로 날 것 같지 않은데요. 본사로 기사를 보낸다고 해도 위에서 기사를 신문에 실을지는 모르겠답니다.”
“상관없어요. 내가 미리 나스닥의 고열을 경고했다는 말을 했다는 게 중요할 뿐이지 그걸 받아들일지 말던 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죠.”
규태가 아이를 돌보는 보모도 아니고 주식투자자들에게 더 자세한 정보를 풀이유가 없었다.
다만 나스닥의 과열을 경고하는 현명한 투자자의 이미지가 필요할 뿐이었다.
나중에 인터뷰한 새한일보의 기사를 살펴보니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작게 나온 기사뿐이었다.
이미 기술주의 주가상승에 홀려버린 세상은 카산드라의 신탁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한국과 미국의 신문과 방송들과 연이어 인터뷰를 하면서 규태는 지속적으로 나스닥의 과열을 경고했다.
주춤하던 주가는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이란 대형호재를 만나 다시 한 번 불타올랐다.
콘텐츠가 필요하던 AOL의 필요를 충족해 주는 초대형합병은 시장에 격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다시 한 번 나스닥 열풍을 불러왔다.
그리고 나스닥 지수는 6,800을 찍었다.
원 역사의 5,004가 최고치였던걸 생각하면 원역사보다 더 심한 닷컴 버블이었다.
닷컴의 버블붕괴의 순간은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이 마무리되는 순간 찾아왔다.
2000년 3월 2일 더 이상 호재가 없어진 나스닥은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하루 만에 나스닥 지수가 8.9%하락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12%의 나스닥 지수가 하락했다.
끝도 없는 하락장이 이어지면서 화려한 파티에 익숙하던 벤처기업들은 하나둘 짙은 화장 속에 숨겨왔던 민낯을 드러냈다.
끝도 없이 지속되는 막대한 투자와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익률.
주가의 상승과 상승이란 열광에 빠져 보지 못하던 추한 모습이 드러나자 나스닥의 열풍은 순식간에 수그러들고 자금이 모자란 닷컴기업들은 한 달을 버텨내지 못했다.
기존에 모집한 자금을 모두 소모하고 추가자금조달에 실패한 부닷컴이 파산했고 커머스원, 이디지탈, 이토이스, 코즈모가 차례대로 주저앉았다.
마이크로 스트레티지의 주가는 주당 7달러에서 333달러까지 올랐다가 3월 20일 하루만에 140달러가 하락했다.
마이크로 소프트도 4월 20일의 반독점법위반 판결의 영향으로 하루 동안에 15%의 주가가 하락했다.
끝도 모르게 오르던 나스닥의 지수는 축제가 끝나자 끝도 모르게 추락했다.
대공황이후 주식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피어올랐던 닷컴버블의 허무한 종말이었다.
나스닥 시장이 급격하게 내려앉자 S&P지수도 마찬가지로 하락을 시작했다.
오늘도 나스닥에 상장된 종목 하나가 부도가 나서 거래가 정지되었다.
“리처드, 연준의장은 뭐라고 하던가요?”
오랫동안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 자리를 지키던 리처드는 연말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뒤를 이른 재무장관은 재무차관이었던 서머스였다.
여생은 낚시나 하며 지내겠다고 오리건의 별장으로 돌아간 리처드를 규태가 강제로 끌고 온지 한 달이 지났다.
“나도 몰라! 알렌이 함부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잖나.”
아직도 편하게 지내려는 사람을 끌고와서인지 리처드의 대답이 거칠었다.
“겨울에 무슨 오리건이에요. 차라리 여기가 낫죠. 한가하게 지내려면 플로리다로 가요. 거기라면 보내드릴게요.”
“정말 보내줄텐가?”
당장이라도 플로리다로 달려갈 것 같은 리처드의 반응에 규태가 헛웃음을 웃었다.
“아직 나이도 많지 않은 사람이 은퇴는 무슨 은퇴에요. 타이거 펀드의 의사회 의장 자리에 앉아서 폼만 잡으면 된다니까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고요.”
“......끄응, 여전히 입만 살아서.”
“타이거 펀드를 만든 사람이 리처드 아니에요. 리처드가 빠지면 어떻게 해요.”
절대로 편한 은퇴생활을 보내게 해줄 수가 없다는 규태를 보며 리처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예? "
“얼마나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 되느냐고!”
버럭 화를 내는 리처드를 보며 규태가 미소를 지었다.
“한 십년?”
“오년! 더 이상은 때려 죽여도 안 돼.”
“칠년으로 하죠.”
“끄응.”
“약속한다니까요. 그때까지만 이렇게 버텨주세요. “
뺀질거리는 규태의 낯짝을 보면 한때 줘 패고 싶었지만 리처드도 규태를 입장은 조금 이해했다.
나스닥이 터지면서 연달아 뉴욕증시도 덩달아 꽁꽁얼어붙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쪽도 불황을 염두에 둔 듯 원자재가격의 변동이 심상치 않았다.
긴 경제호황을 누리며 여유 있게 움직이던 클린턴 행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알렌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연준에서는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 같네. 3%선까지 금리를 인하해서 경기하강을 막으려고 할 거네.”
그래도 경기가 호황이 길어지면서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려놓은 게 다행이었다. 충격은 있을지 몰라도 금리인하가 효과를 발휘하면 증시침체가 길어지더라도 경제에 주는 충격을 완화시켜 줄 것이었다.
금리인하를 앞두고 알렌은 전문가들과 식사를 하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식사멤버에 리처드가 포함된 것은 당연한 일.
리처드가 재무장관으로 있으면서 연준에 크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기에 둘의 사이는 좋았다.
규태도 리처드의 말에 동감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가만히 앉아서 경제하강을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언제까지 나스닥이 이렇게 바닥을 헤맬까?”
경기가 살아나려면 증시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주가상승을 이끌던 나스닥은 완전히 활기가 죽어버렸다.
“앞으로 최소 2년은 조정을 거쳐야 할 것 같네요.”
“아직도 바닥이 멀었다고? 아이고! 서머스의 두터운 뱃살이 빠지겠군.”
최고점대비해서 이미 절반 주가가 빠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닷컴기업들이 문을 닫는 위기상황이었다.
이런 위기가 2년 동안 지속된다는 소리는 끔찍하게 들렸다.
“믿어지지 않는군. 이미 고점대비 지수가 절반이나 빠졌지 않나?”
단기간에 최고점대비해서 절반의 주가가 빠져도 망하는 벤처회사가 부지기수였다. 여기서 더 빠진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주가가 내린다는 말인가.
“더 빠져야죠. 오르기 전까지 수준까지 주가가 하락할 겁니다.”
리처드는 규태의 암울한 주가전망에 두 눈을 꾹 감았다. 급등하기 전의 나스닥 주가가 1,100 수준이었다.
3,000까지 나스닥 지수가 내려오자 온통 난리가 났는데 여기에서 또 큰폭의 주가하락이 있어야 바닥이란 소리였다.
“더 암울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전체 벤처기업들이 망하거나 적어도 1/10 까지 주가가 내려가야지 그제야 사람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제기랄! 앞으로도 계속 한동안 욕이란 욕은 다 먹어야겠군.”
어째서 나스닥이 폭락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다니는 이들은 타이거 펀드의 벤처주식 매도를 한 가지 원인으로 생각했다.
나스닥의 상황이 좋지않을수록 점점 타이거 펀드와 타이거 벤처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나스닥이 급락하기 전에 타이거 펀드와 타이거 벤처가 보유지분을 대거 처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