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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27화 (127/220)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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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업

이야기를 듣는 규태가 뜨끔한 소리였다.

확실히 시간이 흐를수록 캐서린의 말처럼 회사의 규모가 커질 것은 분명했지만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보기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걸요. 이건 한두 해를 보고 만든 회사가 아니거든요.”

규태는 이번에는 외부투자를 최소화하고 싶었다. 구태여 많은 자금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데다가 성장에 시간이 필요한 탓이었다.

PGS가 제대로 된 주가평가를 받으려면 1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캐서린 그린은 작년에 처음으로 벤처펀드의 투자금액이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

벤처시장이 조정기를 맞아서였지만 내심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여겼던 투자한 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규태와, 제리, 마크가 힘을 합쳐 만드는 회사이기에 이걸 놓칠 수가 없었다. 캐서린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 회사에 투자를 하려고 하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회사가 필요하거든요.”

작년 나스닥에 상장한 회사들의 타격도 컸지만 기대를 했던 비상장사들이 맥을 추지 못한 탓이었다.

3%에서 6%까지 이어진 이자율 상승의 충격파는 저변이 얇은 벤처업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1/3에 가까운 벤처 회사들이 도미노처럼 넘어갔다.

회사의 벤처펀드 규모가 300억 달러에서 270억 달러로 줄어드는 역성장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투자펀드의 연간수익도 회사가 창립한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95년 들어서 다시 플러스로 전환했지만 이것도 케서린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타이거 펀드의 규모가 다른 회사를 압도하는 건 사실이지만 전 투자은행하고 비교를 하고 싶네요. 자회사의 투자규모가 어지간한 투자은행정도는 되니까요.”

“그건 과욕이 아닐까요? 자산크기는 비슷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운영자산의 규모는 상당히 차이가 나잖아요.”

타이거 펀드의 투자자산은 500억 달러로 규태가 경영권을 가진 리만과 비슷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투자규모는 2,100억 달러가 넘었다.

“자산규모가 보면 어지간한 투자은행보다 우리 회사가 더 크다고요.”

“자산만 보면 그렇죠.”

벤처업계에선 비교할 곳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투자은행과 비교를 하는 모양인데 벤처투자업계는 기본적으로 크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벤처케피탈의 자산규모가 100억 달러를 넘어가는 회사는 타이거 벤처를 빼고 나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벤처투자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투자다. 그리고 상장에 성공하면 일정기간이 흐른 후에 엑시트를 해야 했다.

벤처펀드의 규모가 커지는 건 굉장히 어렵다. 쓸 만한 투자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고 투자금액도 작다. 94년 미국에서 110억 달러의 벤처자본이 기업에 투자됐다. 그중 절반을 투자한 곳이 타이거 벤처펀드다.

타이거 벤처가 거둔 가장 커다란 수익은 비상장 기업인 야후의 상장으로 거둔 것이 아니라 마이크로 소프트와 오라클, 선 마이크로 시스템 같은 상장주식에 투자해서 얻은 수익이었다.

모든 스타트업기업들이 타이거벤처의 투자를 반기는 건 아니었다. 타이거벤처는 투자자금은 충분하게 지원하지만 알게 모르게 간섭이 심해 거부감을 느끼는 창업자들도 많았다.

회사가 받아들이는 벤처펀드의 자금은 많지만 정말 투자할 곳은 드물었다. 이런 사정에서 쓸 만한 회사이고 전망도 좋은데 회사의 자본금도 크다면 이건 두말할 필요 없이 덤벼들어야 한다.

규태가 캐서린의 투자를 최대한 적게 받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코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한참을 설왕설래 하다 결국은 3억 달러의 투자를 받아들였다.

바람처럼 달려와서 목적을 달성한 캐서린이 바람처럼 사라지자 규태는 머리를 흔들었다. 규태의 회사임직원 가운데 제일 바쁜 사람이 캐서린이었다.

힘이 넘쳐흐르는지 투자할 곳이 있다하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케서린이 벤처투자 업계에서 느끼는 연못속 고래와 같은 기분을 규태는 주식시장에서 느끼고 있었다.

전년도에 거둔 수익가지 합치면 타이거 펀드의 자산 총액이 8,000억을 넘어섰다.

전 세계의 주식을 투자하고는 있지만 주식시장에만 투자하기에는 자산규모가 너무 컸다.

원유와 금과 같은 자원시장이 침체를 벗어난다면 몰라도 이 시장이 제대로 커지는 건 중국이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그래서 선택한 투자가 부동산매입과 회사인수였다.

매일 오전마다 규태는 해당 실무책임자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부동산투자를 담당하는 리츠 사는 오선한이 최고책임자였다. 그가 데리고 있던 제레미 조던이 실무책임자로 직원들과 함께 전 세계의 상업용부동산을 쓸어 담았다.

그 시적점이 89년 미쓰비시 부동산이 인수한 록펠러 센터의 매입이었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매입예정금액이 18억 달러로 인수 후에 대규모 새 단장을 거칠 예정이었다.

“빌딩 두개를 남긴다고요?”

순조롭게 진행되던 록펠러 센터의 협상이 미쓰비시의 요청 때문에 덜컹거렸다.

“14개의 빌딩 가운데 타임라이프와 마그로우힐을 남겨두고 싶답니다.”

미쓰비시 부동산이 일본의 경기침체와 엔화 강세, 록펠러 센터의 임대부진의 삼연타를 두드려 맞은 데다 금리까지 오르며 파산법원으로 갔지만 아직 욕심이 남은 모양이었다.

“금액을 올려도 좋으니까 전부 인수하도록 하세요, 아니면 그만 둬도 좋습니다.”

규태가 인수하려는 금액인 18억 달러는 경쟁자들이 부른 가격에 비해서는 한참 높았다.

그런데 뒤늦은 욕심을 부리는 미쓰비시의 요청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리미어호텔그룹의 인수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파리에 본사를 둔 프리미어 호텔그룹의 인수도 진행 중이었다. 전 세계에 48개의 호텔체인을 보유한 프리미어 호텔의 인수가격은 34억 달러, 그밖에도 유럽본부에선 샤넬과 입센로랑과 같은 명품업체들의 인수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협상팀이 대부분의 내용에 합의했습니다. 인수금액은 34억 7천말 달러로 결정을 했고 지금 세부적인 내용을 정하고 있는데 다음 주까지는 마무리가 될 거 같습니다. 샤넬과 입센로랑의 인수협상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

“자존심이 더럽게 세지요.”

인수금액의 크기는 얼마 되지 않지만 명품 기업의 인수협상이 힘든 건 상대 쪽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비이성적인 요구를 자주 한다는 것이다.

“리만의 협상팀이 나서서 진행하고 있으니까 머지않아서 결과가 나올 겁니다.”

동시에 많은 기업들의 인수를 추진하다보니 타이거 펀드의 자체인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리만 브라더스의 M&A팀이 전적으로 매달려 다섯 개의 인수를 진행 중이었다.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은 있습니까?”

규태가 질문한 대상은 M&A보고를 위해 회의에 참석한 리만의 M&A 책임자인 샤를 드보아였다.

“힘들 긴 합니다만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결론이 날겁니다.”

“고생하세요. 성공하면 보상은 섭섭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세계적인 갑부로 유명한 사주가 하는 소리에 샤를의 얼굴이 밝아졌다. 타이거 펀드와 홀딩스의 임직원들이 받은 막대한 성과급은 한동안 월스트리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었다.

“프랑스 정부에서 톰슨과 르노의 지분인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톰슨과 르노요?”

톰슨은 가전부분의 경쟁력이 뒤처지면서 어려운 처지였지만 르노의 지분인수 요청이라니?

르노는 1945년에 프랑스 정부가 지분을 전부 인수하면서 국영기업이 되었지만 민영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정부지분이 줄어들었다.

“지금 르노의 프랑스 정부지분이 얼마정도나 되죠?”

“프랑스 정부가 전체지분의 30%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파인 자크 시락대통령이 대대적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려고 시도하면서 투자자원 조달 차원에서 팔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는 14년 만에 좌파에서 우파인 자크 시락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사회보장 제도와 공공부분의 개혁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사회보장제도 개혁, 한마디로 사회보장지출의 축소와 지하철과 철도, 항공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이 예고되면서 연일 파업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규태가 기억하기로는 꽤 시끄러운 장기간의 파업이었다.

“톰슨이야 빈 껍대기뿐일텐데요? 그거 거저 준다고 해도 사면 안 되는 회사잖아요.”

민감한 군수부분은 제외하고 가전부분의 매각시도가 있었지만 선뜻 응하는 회사가 없었다.

TV와 같은 가전부분의 경쟁력이 일본에 밀리면서 매년 적자를 기록하던 톰슨은 프랑스 정부의 지원으로 겨우 숨이 붙어있는 상태.

우파로 정권이 바뀌면서 톰슨에 대한 정부지원금이 끊긴 위기였다.

“지금 조용하게 인수협상을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게 어딥니까? 어떤 멍청한 회사가 거길 인수한다고 덤벼든답니까?”

겉으로 드러난 부채만 20억 달러가 넘었다. 거기에 드러나지 않는 부실까지 합치면 4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가 쌓여있는 엉망진창의 회사를 누가 인수한단 말인가?

규태는 어느 회사인지 몰라도 어수룩한 회사가 X밟았다고 여겼다.

“...그게 한국의 대운에서 인수하겠다고 의사를 밝혀서 투자협상을 진행 중이랍니다.”

규태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망하는 회사라서 회사채 인수를 하지 않았었는데 하는 짓을 보니 망하지 않는 게 용했다.

“하이고! 진짜 한심하기 짝이 없네요. 협상내용은 어쩠답니까?”

“지불하는 인수금액없이 부채만 인수하는 조건이랍니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은 부채규모가 상상이상이라서 나중에 인수하고 나서 놀랄 겁니다.”

“대운도 TV부분을 보고 덤벼드는 거겠죠. 다른 부분은 이미 경쟁력이 하나도 없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인 미국시장에서 RCA 마크를 달고 팔리는 톰슨의 시장 점유율이 20%, 냉장고와 세탁기부분은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미미했다.

대운전자는 국내에서도 가전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였다.

톰슨의 인수로 기술력도 쌓고 인지도도 높이겠다는 계산이겠지만 톰슨은 실제로는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다.

“톰슨의 기업 내용을 보면 회사를 인수하면 바보입니다. 기술력도 떨어지고 재무구조도 형편없으니까요. 저희가 그쪽에 정보를 넘겨서 도움을 주도록 할까요?”

샤를이야 프랑스 출신의 M&A전문가이니 톰슨의 속사정에 누구보다 밝았다.

하지만 규태는 머리를 내저었다.

“그 회사가 알아서 하겠지요. 도와준다고 나서봐야 좋은 소리 못들을 겁니다.”

제대로 된 전문가로 구성된 인수협상팀도 없이 재벌총수가 지시하니까 인수하는 M&A의 폐해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고스란히 돌아온다. 가뜩이나 규태가 대운만 회사채를 인수해주지 않아서 미운털이 박혔는데 충고를 한다고 순순히 들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프랑스 정부가 지분을 팔겠다는 르노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르노는 국내시장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유지 중이었다.

당연히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춰서 제법 구미가 당기는 매물이었지만 정부지분을 전부 매각하는 것도 아닌 부분매각이라 덤비는 투자자가 많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가 르노의 지분 10% 매각에 40억 달러를 부르고 있습니다.”

“가격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통째로 매수하는 거 아니면 안삽니다.”

프랑스 차인 르노는 독일의 자동차 회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다. 독일 차에 비하면 비슷한 가격에 성능은 떨어지는 자동차였다.

프랑스 정부의 입장에서는 나름 잘나가고 있는 자국의 대표 자동차 회사를 팔아넘겼다간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기 십상이었다.

좌파 미테랑 정부의 14년 집권으로 방만하게 늘어난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겠다며 집권한 우파 자크 시락대통령이 임명한 알렝 쥐페 총리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국 산업체를 매각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매물은 많이 나왔지만 딱히 끌리는 기업이 없었다.

“그리고 영국은행이 베어링스의 인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베어링스는 자사 직원인 닉 리슨이 일본의 니케이 지수 파생상품 투자에 실패하면서 8억 3천만 파운드(1.5조)의 손실을 입으며 파산했다.

은행 자산총액의 두 배가 넘는 투자 손실이었다. 내부통제가 전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230년 전통의 은행이 침몰한 것이다.

런던에 기반을 둔 영업부분에 강점을 가진 은행이라 규태가 한국에 머물 때 타이거 펀드가 이미 한번 인수제의를 했지만 거절당했다.

의외의 소리였기에 규태가 눈을 크게 떴다.

“영국정부가 아니라 영국은행에서 직접요청을 했다고요?”

1차로 진행된 협상에서 영국정부의 높은 콧대를 경험했던 샤를이 코웃음을 쳤다.

망한 회사를 팔면서도 따지는게어찌나 많은지.

“마땅한 인수자가 나서지 않으니까 이제야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입니다.”

베어링스가 직원통제에 실패해서 망하기는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영국내부의 영업망은 튼튼했다.

“다른 곳도 덤벼드는 곳이 있을 텐데요?”

“ING와 협상중인데 1파운드에 인수하는 조건이랍니다. 메릴린치와 ANB암로등도 인수 물망에 올랐지만 6억 5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를 깎아달라는 조건을 제시해서 탈락했습니다.”

“그럼 인수금액이 부채가 전부 6억 5천만 파운드를 넘겨받는 조건이란 말이죠?”

“예, 베어링스 증권하고 자산운영사까지 한꺼번에 넘겨받는 조건입니다.”

“우리가 인수하면 메리트가 있을까요?”

“베어링스가 영국만이 아니라 홍콩에도 영업기반이 탄탄해서 인수하면 상호보완이 될 겁니다. 영국정부가 매각을 서두르는 게 파산기간이 길어지면서 인력유출이 현실화 되고 있어서입니다. 인수협상이 길어져서 인재가 모두 빠져나가면 자칫하면 빛만 남은 깡통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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