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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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태풍
8월까지는 다저스가 잠시 부진하며 애틀랜타와 다섯 게임까지 차이가 벌어지면서 규태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었다.
애틀랜타가 선두를 달릴 때는 뻔질나게 전화해서 애틀랜타의 성적을 자랑하던 터너의 전화가 뚝 끊긴 것은 9월 중반이후 다저스가 연승을 거듭하며 애틀랜타와의 승차를 뒤집으면서부터였다.
결국 마지막5경기를 남겨놓고 다저스는 리그우승을 결정지었다.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신시내티 레즈와 LA 다저스의 경기를 보기위해 경기장을 찾은 루드 터너의 얼굴은 우중충 했다.
이미 다섯 게임차로 지구우승이 결정됐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라서 VIP석에서 규태가 경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막강한 투수진과 강력한 타선, 초반에는 신인들이 많아서 경기내용이 불안했지만 시즌을 치를수록 다저스의 전력은 차근차근 올라갔고 포스트시즌의 전망도 밝았다.
우승이 결정되면서 포스트시즌을 대비하기 위해 대다수 주전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루키들로 경기를 꾸려나갔다.
7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호쾌하게 방망이를 휘둘러 안타를 뽑아내는걸 보며 터너가 투덜거렸다.
“FXXX, 다저스는 단장이 능력이 뛰어난지 데려오는 선수들마다 잘 뛰는 군. 우린 엉망이야! 하나같이 드래프트로 뽑은 놈들은 실력이 안 올라오고, 데려온 놈들도 성적이 그저 그래.”
“제리가 능력이 뛰어나긴 하죠. 지금 안타를 치고 나간 선수가 작년에 드래프트 1순위로 뽑은 선수 아닙니까. 앞으로 3할 30홈런은 너끈하게 칠 유격수입니다. 유격수. 흐흐흐. 유격수가 30홈런이라니 엄청나지 않습니까.”
수비부담이 많은 유격수가 장타자의 기준인 30홈런을 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신인이야 나중에 시간이 지나봐야 제대로 실력이 드러나는 법이지. 스카우터들이 잠재능력이 뛰어나다고 저기 3루를 보는 블라디미르 게레로하고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탐내던데 트레이드를 요구하면 받아줄 텐가?”
“어림도 없습니다. 적어도 두 사람은 적어도 10년은 다저스의 3루와 유격수자리를 지킬 놈입니다.”
은근히 탐내던 젊은 선수들의 트레이드를 단칼에 잘라버리는 규태의 모습에 터너가 쩝 입맛을 다셨다.
애틀랜타의 수석 스카우터 멜 로저스가 입에 거품을 물고 추천한 선수들이었다.
투수력은 강하지만 타격이 상대적으로 약한 애틀랜타의 입장에선 꼭 필요한 선수들인데 구단주가 트레이드를 거부하니 입맛만 다실 수밖에.
규태의 입장에선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미래의 스타들을 얼렁뚱땅 넘겨받으려 드는 터너를 곱게 보기 힘들었다.
“그러지 말고 원하는 선수가 있으면 시즌이 끝나고 한번 트레이드를 해보자니까.”
“일없다니까요. 당분간은 트레이드를 할 생각이 전혀 없네요. 아니지? 내기에서 졌으니까 톰 글래빈을 넘겨주시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내기라니! 나 그런 거 한적 없네.”
화들짝 놀라서 펄쩍 뛰는 터너를 보며 규태가 음충맞게 웃었다.
“남자가 뭐 그렇게 잔말이 많아요. 그렇게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면 그냥 넘어갈 줄 아는가 본데 아주 착각이란 말이죠.”
“제기랄 멍청한 단장 놈하고 감독 놈을 잘라야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투자를 해줬는데도 우승하나 못하다니! “
터너는 우승실패를 애꿎은 감독 탓을 하며 투덜거렸다.
이 인간도 스타인브레너를 따라가지는 못해도 비슷한 부류였다. 무슨 일만 생기면 단장과 감독을 바꾼다.
“죄 없는 단장하고 감독만 들볶지 말고요.”
“아니야 이번기회에 팀을 한번 갈아 엎어야겠어. 마침 리그도 나뉘지 않았나.”
“말 돌리지 말고요. 내기에 졌으니까 글래빈을 주시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글래빈은 우리 팀 에이스야! 어떻게 에이스를 달라고 할 수 있나!”
펄펄 뛰는 터너에게 규태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기에 이겼으면 매덕스를 트레이드로 달라고 하려 하지 않았나요?”
“그...그건.”
“아니 우리 팀 에이스는 탐내면서 자기 팀 에이스는 못주겠다. 그건 도대체 무슨 심보입니까?”
톰 글래빈은 93년 22승을 거둔 애틀랜타의 에이스다. 강력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였다.
“그래도 글래빈은 안 돼! 절대 글래빈은 절대 넘겨줄 수 없어.”
사색이 되어 손을 내젖는 터너를 보며 규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루드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농담한 겁니다. 달라고 할 생각도 없어요.”
“그래... 잘 생각했네.”
“글래빈이 와도 우리 팀에 자리가 없어요. 제리도 반가와 하지 않더군요. 매덕스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요.”
“......”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터너는 마음이 복잡했다.
자기 팀의 에이스를 준다고 해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다저스의 선발 구성이 탄탄해졌다는 소리였다.
“우리 팀 단장인 제리가 선호하는 투수는 의외로 파이어볼러더군요. 지금 선발투수들 가운데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랜디하나밖에 없다고요.”
“다저스에 욕심나는 선수들이 많기는 하더군. 랜디 존슨도 좋은 투수가 될 걸세.”
구단주를 오래하다 보니 저절로 야구를 보는 눈이 트인 터너였다. 다저스의2선발로 나오는 랜디 존슨도 대투수의 향기가 느껴졌다.
서비스타임이 끝나려면 먼 선수라 탐을 내지 못하지만.
그런 선수를 발굴하지도 못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단장과 감독을 생각하니 다시한번 속이 터졌다.
잔뜩 벼르는 터너를 보며 규태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다가 지구우승도 못하고 미끄러졌으니 열불이 나기는 할 것이다.
“내년부터는 리그가 갈리니까 자주 보지는 못하겠네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94년부터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로 이동한다. 앞으로는 인터리그를 제외하면 다시 볼일이 없다는 소리였다.
팀이 늘어나면서 리그를 분리하는 과정은 피곤했다. 어느 팀이 이동할지를 정하느라 구단주회에서 고성이 오갔다. 결국에는 사무국의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정했지만 터너는 불만이 많았다.
“리그결정도 마음에 안 들어 몬티리올 놈들하고 같은 조가 될게 뭐야. 자네 팀은 강자들이 다 빠지고 경쟁자라곤 달랑 샌프란시스코 하나만 남아잖나? 제기랄! 이동거리도 길잖아. 캐나다에 한번 경기하러 들어가려면 얼마나 골치가 아픈데.”
사무국의 결정사항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동안 투덜거리는 터너였다.
“어쩌겠어요 거리를 따져서 팀을 나눈다는데.”
NL 서부지역에 남은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샌디에고 파드라스, 콜라라도 로키스였다. 콜로라도를 제외하면 전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팀이었다.
그만큼 이동거리가 짧다는 소리.
다저스에게 이번 리그분리는 엄청나게 이득이었다. 골치 아픈 경쟁자인 애틀랜타도 내셔널리그 동부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제기랄 선수들 약물 검사를 강화한 거 말이야. 그거 자네가 손을 쓴 거라면서?”
“알면서 왜 물어요? "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주전선수들 가운데 한두 놈이 이상하단 보고가 들어왔거든.”
“사무국 약물검사에 걸렸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단장이 자체검사를 하다가 적발한 놈들이 있나 보더라고. 처벌 규정도 없으니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야.”
약물검사 강화가 시작된 첫해라 처벌규정이 제대로 없어서 검사에 걸려도 경고만 하고 넘어갔다. 재차 걸리면 그때부터 처벌을 하겠다지만 실제로는 그냥 덮어두겠다는 소리였다.
“자체적으로 규정을 만들어서 선수들에게 공지해요. 그냥 내버려두면 엄청난 문제가 일어날걸요.”
“무슨 문제가 일어난다는 거야?”
“약물을 사용하는 놈들을 처벌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놈만 바보가 되는 세상이면 억울해서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요즘 조금씩 선수들 기록이 올라가는 거 알죠? 그거 전부 다 약물 사용자들일걸요.”
80년대까지만 해도 30홈런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50홈런을 넘기면 엄청난 강타자였다.
이런 기록은 94년부터 시작된 대약물시대에서는 쉽게 깨졌다.
어지간한 선수들은 홈런 40,50개를 쳐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약물 사용자인 새미소사와 마크 맥과이어의 홈런 경쟁으로 제일 피해를 본 인물을 57개 홈런을 치고도 주목받지 못한 캔 그리피 주니어였다.
“걸린 놈들 깨끗하게 치워둬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시끄러워질 겁니다. 워싱턴 포스트를 시작으로 해서 약물 스캔들로 시끄러워질 겁니다. 사무국에서 잡아낸 놈들 명단이 흘러나올 테니까요.”
약물을 하는 놈들이 피라미들이면 단호하게 처벌하겠지만 하필이면 걸린 놈들이 각팀에서 스타로 대접받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의심을 받는 놈들도 하나같이 고액 연봉자들이었다.
비싼 값을 주고 산 물건에 하자가 생긴걸 다른 사람들이 알까 싶어서 자체 조사를 강화한 구단주 놈들도 하나같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커미셔너인 버드셀릭이나 구단주들은 약물검사를 하는 흉내만 내며 조사한 결과를 대충 덮고 싶겠지만 규태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애초에 규태가 버드 셀릭을 압박해서 사무국에서 약물검사강화를 받아들이게 만든 이유가 깨끗한 메이저를 만들기 위해서다.
대충 넘어가려는 사무국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한동안 시끄러워 질 테니 미리 준비해두면 타격이 덜할 터였다.
신문이 앞장서 떠들어대면 가뜩이나 다른 종목에 비해 의심을 받고 있는 메이저리그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은 불보 듯이 뻔했지만 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과정이었다.
“젠장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가 없군. 알았네. 나도 준비를 해두지.”
***
야후가 나스닥에 상장되는 날 아침, 정장을 차려입은 제리와 직원들이 상장을 축하하기 위해 나스닥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가졌다.
이어진 거래시작부터 강력한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주가가 힘차게 위로 솟아 올랐다. 72달로 시작한 거래가 시간이 흐를수록 매수세가 강력해지면서 100달러가 넘어서는 걸 보며 규태의 얼굴이 저절로 달아올랐다.
거래소인근의 호텔에서 이어진 상장 축하자리에서 직원들은 서로를 축하했다. 직원들도 상장 전에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의 가치가 오르면서 하나같이 많은 돈을 벌였다.
이른 낮부터 샴페인을 마셔서인지 제리의 얼굴이 발갰다.
“제리 축하해, 이젠 억만 장자네.”
제리가 받은 야후의 주식은 5%가 넘었다. 처음에는 8%를 받았지만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분배하면서 조금 줄어들었다.
상장주가로 계산하면 4억 달러가 넘는 부자가 되었다.
“나야 그렀다지만 규태는 이번 상장으로 얼마나 번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주식을 가진 사람이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안다는거야.”
상장전 규태는 개인지분을 돌려 여러 명의로 분산시켰다. 밖으로 드러난 규태의 지분은 25%정도였다.
“하여간 남의 재산은 함부로 알려고 하지마라.”
“아니 사장인 내가 대주주의 지분관계를 정확하게 모르면 어떻게 하냐? 너 지분을 전부 다른 법인 명의로 돌렸다면서?”
“회계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개인명의로 가지고 있으면 부자명단에 올라서 골치 아파.”
“하긴, 넌 재산이 밖으로 드러나는 걸 싫어하지.”